5인병동이다보니 서로 커텐만 가리고 24시간 머물러야 하다보니 얼굴은 모르지만 소리는 다 들리게 되어 있습니다. 소리 관련 예의가 무척이나 중요한 환경입니다. 오지랖이 넓은 사람들은 때로 옆 환자의 치료결정에 대해 자기 의견을 막 피력하기도 합니다. 우리보다 하루늦게 입원한 중년남자가 병원 측의 계속되는 조직검사 권유에 안하겠다는 뜻을 계속 표시하자 듣고만 있기가 뭣한지 옆환자가 검사해보는게 좋다는 자기의견을 내놓기도 합니다. 상당히 논리있고 점잖은 멘트인데 상대는 설득당하지 않습니다.
중장년 남자들이 있는 병동이라 그런지 그래도 과묵하고 남의 공간에서 피해가 없도록 주의하지만 참다참다 자기하고 싶은대로 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아침에 눈뜨면 아주 오래 전에 흘러간 가요(목포의 눈물 수준)를 불러대던 환자 그리고 바로 옆의 돌발적인 쌍욕을 해대는 환자.
쌍욕환자의 돌발적 욕설은 하루에 두세번 정도 나오는데 제가 판단컨데 치매증세의 신호들이 아닌가하는 생각이 듭니다. 화기애애한 듯한 가족분위기, 남편에게 살가운 태도를 잃지않으려는 부인의 말투와 행동 등으로 보아 애초 나쁜 가정은 결코 아님에도 남자의 돌발적 욕설과 부인을 향한 막말은 그럴 여지가 충분해 보입니다.
뇌는 참으로 정직해서 고장났거나 고장나기 시작한 영역의 가동이 원활치 않음은 어떠한 형태로든 표시를 해줍니다. 행동변화 체크는 그래서 참 중요한 듯 합니다. 하지않던 행동을 하거나 평범하지 않은 비상식행동은 그냥 넘기지 말아야 하는 이유입니다. 우리 아이들의 돌발적이고 비사회적 행동 모두 고장난 뇌의 작동입니다.
쌍욕환자의 형태도 보면 돌발적 쌍욕을 할 때 패턴이 아주 유사하게 반복되는 경향이 있습니다. 밥이 충분하지 않거나 뭔가 바라는대로 되지 않았을 때 C로 시작하는 쌍욕이 시작되면서 부인이 고집불통이라고 욕을 해대는데 내용이 늘 똑같습니다. 이미 전두엽 측두엽 부분의 치매증세가 좀 깊어진게 아닌가 의심들게 하지만 그저 제 생각일 뿐 제가 관여할 일은 전혀 아니죠.
여기서 1분 유머. 어떤 환자가 종합검진을 받고나서 의사를 만나니 의사하는 말, 나쁜 소식과 좋은 소식이 있다는 것입니다. 나쁜 소식은 암이 너무 많이 진행되서 기껏해야 2개월 남짓 살 수 있다는 것. 다급해진 환자가 그럼 좋은 소식이 뭐냐? 하고 물으니 의사 왈, "치매도 함께 와서 이 사실을 곧 다 잊어버리게 될 것입니다."
이 와중에 그래도 조용히 버텨주는 태균이 아주 기특합니다. 수술 직후 요도에 연결된 관으로 소변을 흘려보내야 하니 기존의 소변배출 방식이 아닌지라 적응하는데 몇 시간 걸렸고, 수술 후 6시간 모든 종류 취식 금지, 12시간 고형식 금지 인지라 이걸 참느라 힘들어했고 살짝 어기기도 했지만 그래도 태균이 수준에서 보면 잘 지켰다고 점수줄 수 있습니다.
좀전에도 새벽 5시도 안된 시각에 자는 아이 깨워 소변에다 피검사한다 하니 살짝 소리높였지만 조용히 해야한다는 엄마말에 다시 눈감고 열심히 잠 청하는 중입니다. 전두엽 가동이 이제는 꽤 많이 회복되었습니다. 이 정도 자제력이면 다소 어려운 사회환경 속에 편입되어서 무난히 버티는 수준은 가능할 것이라 보여집니다.
오늘 퇴원하면 바로 공항으로 직행, 제주도로 향할 것입니다.
첫댓글 아고
고생하셨습니다. 태균씨 많이 고생하셨고, 맘께서도 많이 수고 하셨네요.
억제력 내지 자제력은 우리 자스 자녀들의 첫번째 목표인데 태균씨 좋은 점수 받으신거 축하합니다.
퇴원 즉시 제주행 고생 없이 진행되길 바라고요.
텃밭의 작물들이 눈에 삼삼 어립니다. 대표님도 그러실것 같네요.🙏🍒‼️
저 7월에 세브란스 5인실 입원시에 아예 입원실 안에 못 들어갔습니다. 혈액검사도 겨우 여러 명 붙잡고 하고, 심전도는 시도도 못 했어요ㅠㅠ 사실 인지보다 적절한 자기 감정 조절이나 통제력이 사회 속에서 더불어 살아갈때 가장 중요한 부분이지요.
어떻게 하면 이런 부분이 좋아질까요? 아...택이의 돌발행동과 한번 꽂이면 통제 안되는 것 너무 어렵습니다. ㅠㅠ
아직 택이는 어리잖아요. 계속 경험쌓으면 5인실 병동에서도 잘 있을꺼예요. 경험이 가장 좋은 학습이고 그리고 택이가 힘들어하는 일일수록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다는 것을 각인시켜주는 게 필요할꺼예요. 내가 피하고 떼써봐야 해야할건 꼭 끝내지 않고는 주변에서 허락하지 않는다 라는 것을 빨리 인식할수록 빨라집니다.
태균이도 택이나이 때 병원에 입원했다면 더하면 더했지 덜하지 않았을꺼예요. 노력하시려하니 반드시 좋아지리라 생각합니다.
@황순재 저도 과거의 저의 양육 습관을 버리고, 말로 하지 않고 행동으로, 정확한 한계 표시를 하려고 노력중입니다. 안되는 건 정말 안되는 걸로...정말 태균씨는 우리 모두의 희망입니다^^
태균이랑 엄마랑 고생했네~ 돌발성 휴가였나? ㅎㅎ 제주에서 잘 회복하기를!
큰일 치루셨네요. 태균씨 의젓함이 부럽고 뿌듯하기도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