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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과역사] 발표자료 [민족국가의 태동과 제국주의의 침략]헤이그특사사건이 실패한 까닭은? - 온새미로
한보배 추천 0 조회 511 06.11.16 05:22 댓글 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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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 06.11.21 20:46

    결 했다는 것입니다. 일차적으로 세운 계획이 무산되었다면 더 나은 方法을 强求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자결한다는 것은 자신의 분에 못이긴 지혜롭지 못한 행동이었습니다. 이준이 自決함으로써 해결된 일은 하나도 없었습니다. 이 부분에서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감정적인 태도보다는 이성적은 태도가 더 중요하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 06.11.22 00:36

    적자생존의 논리가 東西古今을 막론하고 적용되어 오는 걸 보면서 좀 씁쓸한 현실이기는 하지만 살아남기 위해서는 그 질서에서 좋은 位置를 차지해야겠지요. 자신의 목소리를 내기 위해 국력신장이 꼭 이루어져야 한다는 유란 학우의 말에 공감합니다. 그렇지만, 이준 烈士에 관한 부분은 조금 다른 생각입니다. 이준 열사가 조국에 돌아간다고 한들 과연 살아있을 수 있었을까요. 돌아갔었다면 오히려 모진 신체적 고문과 정신적 핍박 속에 苦痛받았을 것입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변하지 않은 祖國의 惡條件과 고생하는 百姓들의 모습이 가장 큰 고문이지 않았을까 짐작해봅니다. 그가 한 행동은 민족 전체의 울분을 대신 토로한 행위였으

  • 06.11.22 00:36

    며 선비정신인 올곧은 지조에서 나온 것이라고도 볼 수 있지 않을까요? 헤이그에서 뜻을 못 이룬 그가 국제사회를 향해 내뱉은 最後의 외침이라고도 볼 수 있을 것 이고요. 단지 감성적 행위로만 말하기에는 아쉬운 생각이 듭니다.

  • 06.11.21 20:59

    헤이그 特使 事件에 대한 再認識이 可能하게 하는 映像이었습니다. 外交 하나에 기댈 정도로 궁지에 몰린 상황에서 失敗로 끝난 이어진 特使派遣이 고종 强制 退位와 韓日新協約 강요, 軍隊解散의 壓力으로 이어진 것을 생각하면 지금도 안타깝지만, 그 뒤에 끝까지 抵抗하려는 고종의 努力을 엿볼 수 있었습니다. 發表를 듣는 도중 설령 特使가 成功했다하더라도 參加하는 것 외에 큰 변화가 있었을까 하는 물음이 생겼지만, 그만큼 弱小國이었던 우리나라가 비록 큰 成果를 거두지는 못했다하더라도 派遣한 것만으로도 外部에 부당함을 알릴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는 발표자의 說明은 이 事件이 無意味한 일이 아니었음을 다시 한 번

  • 06.11.21 21:00

    일깨워주었습니다. 外交關係에 힘의 論理가 作用한다는 것을 아프게 배우는 歷史的 事件이었다고 생각합니다.

  • 06.11.21 23:10

    우리나라의 큼직큼직한 事件을 돌아보면 언제나 國力의 不在가 사건의 발단이고 가슴 아픈 결과를 초래했던 듯합니다. 나라의 힘이 좀더 셌더라면 어쩌면 乙巳勒約의 부당성을 만국에 알렸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해보고 씁쓸한 마음이 남습니다. 그리고 근대 사회가 되는 과도기적 단계에서 국제 정세를 보는 빠르고 정확한 눈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도둑들의 잔치에 특사를 파견한 것도 제대로 된 사전 파악이 없었기 때문에 이와 같은 결과가 나타난 것은 아닐까. 그리고 日本의 철저한 감시체제하에서 외세에만 依存하려고 했기 때문에 암담한 역사를 가지게 된 것은 아닐까. 그렇지만 헤이그특사를 파견하므로써 國制의 觀心

  • 06.11.21 23:10

    을 끌 수 있었고, 민족을 위하여 목숨까지 바치는 애국 청년의 모습을 통해서 청년의 정신과 지식인이 指向해야 할 태도를 보았습니다.

  • 06.11.21 22:51

    발표 잘 들었습니다. 헤이그 특사 사건이 실패한 이유에 대해 발표를 하셨는데요. 헤이그 특사 사건은 비록 실패하여 우리의 未來를 더욱 암담하게 이끌었지만 그 자체만으로도 갖는 의의가 크다고 생각합니다. 그저 무능력한 왕으로만 알고 있던 고종이 일제의 침략에 나름대로 이를 막기 위한 積極的 노력을 했다는 데에서 의의를 찾을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네덜란드의 한 기자에 의하여 전 세계적으로 을사늑약의 不當性이 알려지게 된 계기이니까요. 하지만 발표자께서 말씀하신대로 “도둑들의 잔치”라고 불리는 만국평화회의에

  • 06.11.21 22:52

    정확한 정세에 대한 현실 인식도 제대로 하지 못한 채 특사를 파견한 것은 國際的으로 孤立되었던 조선의 過誤라고 생각합니다. 각 나라간의 외교관계에 있어서 관계의 유연성과 國力의 重要性을 다시금 切感할 수 있었습니다.

  • 06.11.23 09:52

    을사늑약을 폭로하려 했지만 일제의 방해공작과 국제정치질서의 이해 보족으로 실패하였지만 이일을 거울삼아 치욕적인 역사를 되풀이 되지 않도록 하고 불의에 대한 지식인의 자세와 국제 정세에 대한 빠른 판단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현재 우리에게 알려주었다. 또한 외교 관계는 국가의 운명과 직결되있는데 국력이 있어야 외교도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이중화와 같은 외교관은 그냥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성숙된 문화 의식 속에서만이 애국정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 06.12.13 11:28

    한 나라의 최고 統治者 고종이 직접 시도했을 만큼 窮地에 몰린 상황이었고 그만큼 헤이그특사는 중요한 역할을 갖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 중요성에 미치지 못하는 준비와 상황 때문에 실패하고 말았습니다. 이러한 사실은 外交에 鈍感하다면 국가의 중요한 기회를 놓칠 수 있다는 사실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이러한 外交의 중요성을 아는 만큼 우리가 國際情勢와 정부의 대처에 많은 관심을 갖는 것이 정부가 外交問題를 처리함에 있어 더 책임감 있고 중대한 마음가짐으로 임할 수 있도록 할 것입니다

  • 06.12.16 22:36

    외교활동……. 제가 초등학교 4학년 때, 우리나라에 IMF가 닥쳤는데 저는 그 때 외교관이 되어 IMF와 같은 不況을 다시금 반복되지 않게 하겠다는 장래희망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이번 발표가 깊이 와 닿았습니다. 역사적으로 서희의 外交談判, 을지문덕의 수나라 장수 우중문에 대한 挑發 등 국가의 흥망성쇠를 불러일으켰던 外交活動이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고종 주도의 헤이그특사 파견의 실패가 작으나마 한 요인이 되어 국가의 ‘亡’, ‘衰’을 불러일으킨 것입니다. 만약 대성공이었다면 우리나라는 ‘興’, ‘盛’의 길을 걸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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