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삼신할머니
삼신은 옥황상제의 명을 받아 인간세상에서 출산을 돕고, 산모와 갓난아기를 보호하며, 자식 갖기를 원하는 부인에게 아기를 점지하는 신인데, ‘삼신할매’, ‘제왕할매’, ‘제왕님네’라 부르는 것으로 보아 여성신격이다. 삼신의 어원은 ‘삼줄’, ‘삼가르다’ 등의 사례로 미루어, 본디 ‘삼’이 포태(胞胎)의 뜻이 있어 포태신을 지칭한다고 볼 수 있다.
이 땅에 살고 있는 우리 모두는 삼신할머니의 점지로 태어났다. 그런데 우리는 그 삼신할머니의 내력을 잘 모르고 지낸다. 그러면 삼신할머니 신화에 깃들인 우리 민족의 생각을 더듬어 보자. 삼신에 대한 내력 즉 본풀이도 무가에 실려 전승된다. 삼신의 유래를 말해주는 서사무가에는 ‘제석본풀이’와 ‘삼승할망본풀이’가 있다. 그럼 먼저 ‘제석본풀이’를 보자. 제석은 제석천의 준말인데, 도솔천의 33천을 다스리는 불교의 신이다. 그리스 신화에 비기면 올림포스 산의 제우스신과 같다. 그런데 이 ‘제석본풀이’ 신화는 원래의 우리 신화가 불교의 수입에 의하여 윤색되어, 그 본래의 모습이 불교적으로 변형된 모습으로 전해지고 있다. 그리고 이 신화의 주인공이 당금애기인데 우리의 삼신할머니가 된 인물이다. 인제 그 줄거리를 보기로 하자.
당금애기는 높은 담장과 열두 대문으로 겹겹이 쌓인 집에서 외부세계의 부정적인 것과는 닿지 않게 보호받으며 자란다. 그러던 어느 날 부모와 오빠들이 집을 비운 사이에 시준님이 당금애기가 예쁘다는 소문을 듣고 찾아온다. 도술로 열두 대문을 모두 열고 집안으로 들어와 끈질기게 시주를 요구한다. 당금애기가 먹던 쌀로 시주를 하지만 바랑이 터져서 쌀이 새어나온다. 시준님은 당금애기에서 쌀을 다 주워 담으라고 요구한다. 당금애기가 쌀을 다 줍자 날이 저물어 시준님은 그 집에서 하룻밤을 묵게 된다.
결국 당금애기는 처녀의 몸으로 임신을 하게 된다. 임신한 사실을 들키게 되고 집에서 쫓겨난다. 당금애기는 뒷산 돌구멍에서 세 명의 아이를 낳는다. 건강하게 자란 세 아이는 당금애기에게 아버지에 대해 묻고 당금애기는 그간의 사정을 이야기해 준다. 시준님이 남기고 간 박 씨를 뒤뜰에 심자 하룻밤 사이에 박 덩굴이 자랐다. 덩굴을 따라가 시준님을 만나 세 아들은 제석신이 되고 당금애기는 삼신이 되었다.
당금애기는 고귀한 집안의 딸이다. 그런 당금애기가 처녀의 몸으로 시준님과 사통하여 임신을 하고 아이 셋을 출산하게 된다. 시준은 아마도 세존의 변한 말이라 생각된다. 전래된 불교의 영향이다. 우리 민속에 ‘시준 단지’를 모시는 신앙이 있다. 해가 바뀌면 그 안에 햇곡식을 갈아 넣고 방의 높은 곳에 모시는 작은 항아리를 시준 단지라 한다. 간단한 음식을 그 앞에 차리고 절하며 소원을 빈다. 이 ‘시준’은 원래 풍요를 관장하는 곡신(穀神)이었는데 불교가 들어와서 불교적인 이름으로 변형되었을 것으로 보인다.
그러니 제석본풀이 신화의 ‘시준’은 표면적으로는 인간의 모습을 한 중으로 등장하고 있지만 사실은 신적인 인물이다. 시준이 하늘에서 하강하고 승천하기도 하며 도술을 부려 접근하는 신이성을 보이는데, 이는 본래 해모수와 같은 태양신인데 불교가 전래된 이후 스님으로 변모한 것으로 보인다. 이 신화에서 시준님이 ‘박 씨’를 주고 간 이야기가 나오는데 이 ‘박’ 또한 태양과 관련된 ‘밝음’을 의미한다. 우리 민족은 고래로 밝음을 지향하는 ‘밝달’ 민족이다.
당금애기의 ‘당금’이란 말 또한 ‘단금’에서 온 말이라는 설이 있다. ‘단’의 ‘단(檀)’은 ‘밝달’ 즉 ‘밝은 땅’이란 뜻이고, ‘금’은 신이란 뜻이다. 그러니 ‘단금’ 즉 당금은 ‘밝은 땅’의 신 곧 우리 민족의 신이란 뜻이다. 이러한 이야기의 전개는 삼신의 신성함을 제고하기 위한 배치로 보인다. 삼신할머니는 신이하고 지고한 존재라는 것을 말하기 위함이다.
오늘날도 임신과 출산은 인간사에서 가장 중대한 일 중의 하나다. 아울러 그에 대한 공포도 대단하다. 의술이 부족했던 과거에는 출산으로 인한 고통과 사망에 대한 공포감은 더 컸을 것이다. 지금도 삼신은 임신이나 출산을 전반적으로 관장하는 신이기 때문에 중요하게 모셔진다. 아이를 낳게 되면 산모와 아이의 건강을 빌기 위해서 삼신상을 차리고 비는 습속이 남아 있다. 삼신상에는 밥과 미역국을 올린다. 아이가 자라는 과정에서도 갖가지 질병이 따르기 때문에, 삼신을 위한 의례는 매우 중요하게 행해졌다. 그에 따라 여러 가지 금기와 산속(産俗)이 생기게 되었다. 삼신할머니 신화는 바로 이러한 인간의 불안과 공포감에서 우러나온 신화라 생각된다.
그래서 당금애기 신화에서도 삼신은 신성하고 고귀한 존재로 자리매김 되어 있다.
다음으로 ‘삼승할망본풀이’를 보자.
옛날 옛적에, 동해용왕이 서해용왕의 딸하고 결혼을 했는데 나이가 마흔이 가깝도록 자식이 없었다. 후사를 걱정한 부부는 옥황상제에게 간절히 기원하였다. 그리하여 잉태는 하였으나 낳고 보니 섭섭하게도 딸이었다. 뒤늦게 딸이라도 낳은 게 더없이 좋아서 금이야 옥이야 하며 키웠다. 그러나 너무 귀엽게 키운 나머지 버릇이 없고 행실이 고약하였다. 그래서 용왕은 딸을 그냥 둘 수가 없어 죽이기로 작정하였다. 이것을 눈치 챈 용왕의 부인은 딸의 목숨만은 보전하게 하여야겠다고 생각하고 용왕을 달래었다. 그래서 차마 딸을 죽일 수가 없었던 이들은 딸을 무쇠상자에 담아 바다위로 띄워버리며, “인간세계에는 아직 아이를 낳게 하고 길러주는 삼신할미가 없으니 삼신할미가 되어라.”하였다.
딸은 곧 무쇠상자에 들어가고 자물쇠로 채워져 바다에 띄워졌다. 지나가던 사람들이 그것을 보고 보물 상자인 줄 알고 뜯어보았더니, 웬 아리따운 아가씨가 앉아 있었다. 사람들이 너는 누구냐고 물으니 “나는 동해용왕의 딸인데 인간세계에 삼신할미가 없다고 하여 왔습니다.” 하였다.
이를 들은 임 박사가 “그래, 그렇다면 우리 집 식구도 쉰이 되도록 아이가 없는데 아이를 하나 낳게 해주면 어떻겠느냐.”하자, 동해용왕의 딸은 임박사댁으로 가서 부인이 아이를 배게 하였다. 한 달, 두 달이 지나면서 임 박사 부인은 만삭이 되었으나, 용왕의 딸은 어디로 해산을 시켜야할지 몰랐다. 용왕의 딸은 그만 겁이 나서 산모의 오른쪽 겨드랑이 밑을 가르고 아이를 꺼내려 하였다. 그러다 그만 산모와 아이를 죽이고 말았다. 임 박사는 모처럼 얻은 아이와 사랑하는 아내마저 잃게 되어 그 원통함이 한량없었다. 며칠을 두고 생각한 끝에 금백산에 올라가 칠성단을 차려놓고 요령을 흔들면서 빌었다. 옥황상제가 이를 듣고 곧 인간세계에서 삼신할미가 될 만한 사람을 조사하여 보고하도록 하였다.
그런 명을 받은 지부사천대왕은 명진국 따님아기를 삼신할머니로 옥황상제에게 추천하였다. 옥황상제는 명진국 따님에게 “내가 오늘로 너에게 삼신이 되기를 명하노라.”하고 명진국 따님에게 아이를 이 세상에 태어나게 하는 일을 가르쳐 주었다. 명진국 따님아기는 옥황상제의 분부대로 삼신할미가 되어, 사월 초파일 인간 세상으로 내려왔다. 명진국 따님아기는 바닷가를 한참 걷다가 보니 처녀 하나가 울고 있었다.
“어떤 일로 이곳에서 이렇게 슬피 웁니까?”하니, “나는 본래 동해용왕의 딸로서 인간세계에 삼신으로 왔다가 해산시킬 줄을 몰라 사람을 하나 죽이고 답답하여 우는 것이오.”하였다. 이에 명진국 따님이 “내가 바로 옥황상제의 분부를 받은 삼신인데 그게 무슨 말이오.” 하였다.
이 말을 듣자, 동해 용왕의 딸은 명진국 따님아기의 머리채를 감아쥐고 욕설을 퍼부었다. 둘은 그 길로 하늘나라로 올라가 옥황상제 앞에 무릎을 꿇고 엎드려, 누가 인간세계의 삼신인가 판가름 해달라고 호소했다. 옥황상제가 “너희들에게 꽃씨 두개를 내어 줄 테니 서천서역국 모래밭에 각각 심어서 그 꽃씨가 자라는 것을 보고 구별할 것이다.”하였다.
두 처녀는 꽃씨를 받아서 심었다. 그런데 동해용왕의 따님아기가 심은 꽃은 뿌리도 하나요, 가지도 하나요, 순도 하나가 돋아나 꽃도 시들어가는 한 송이가 겨우 피어 있었는데, 명진국 따님아기의 꽃은 뿌리는 하나인데 가지는 4만5천6백 가지로 번성하였다. 옥황상제는 즉석에서 판결을 내렸다. “너는 시들어가는 꽃을 피웠으니 저승할미로구나”하고 명진국 따님아기를 보고는, “너는 번성한 꽃을 피웠으니 삼신으로 들어서도록 하라.”하고 명령하였다.
그러자 동행용왕의 따님아기는 명진국 따님아기의 꽃가지를 하나 꺾어 버리면서, “아기가 태어나서 백일이 지나면 경풍과 경세 등 온갖 병이 걸리게 하리라.”며 심술궂은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명진국 따님아기는 용왕의 따님아기를 어떻게 해서든지 달래지 않으면 안 되겠다고 생각했다. “아기를 낳으면 너를 위하여 아기 업는 포대기 등 일습과 좋은 음식을 차려 줄 터이니 서로 좋게 지내자.”고 청하였다. 명진국 따님 아기가 이렇게 사정을 하자 서로 화의가 이루어졌다. 어느 날 삼신할머니는 급히 해산을 시켜야 할 사람이 있어서 바쁘게 길을 걷다가 마마신인 대별상의 행차와 마주쳤다. 모든 사람들의 자손들에게 마마를 시키러 오는 것이 분명했다.삼신할머니는 길을 비키고 공손히 합장을 하고 인사를 드렸다. “대별상님, 제가 사람들에게 잉태시키고 환생을 준 자손에게 예쁘게 마마를 시켜주소서.”라고 간청하였다.
대별상은 눈을 무섭게 부릅뜨고 수염을 쓰다듬으며, “이게 무슨 망측한 짓이냐. 여자란 꿈만 꾸어도 좋지 않은데 대장부가 가는 길을 막다니 괘씸하도다.” 대별상의 노기는 대단했다.
삼신할미는 그 길로 대별상의 집으로 가서 대별상의 부인인 서신국 마누라에게 잉태를 시켰다. 한 달, 두 달이 지나면서 서신국 마누라의 배는 표가 나게 커갔다. 드디어 열 달이 지났다. 그러나 해산을 못했다. 삼신할머니가 해산을 시켜주지 않으니 해산을 할 도리가 없는 것이다. 서신국 마누라는 배가 하도 불러서 숨도 제대로 쉬지 못하게 되었다. 그래서 그는 몇 번이나 까무라치기도 했다.“여보, 마지막 소원이니 삼신할미를 한 번 청해다 주오.” 서신국 마누라는 남편에게 이렇게 사정을 했다. 대별상은 마음이 내키지 않았으나 마누라가 곧 죽을 지경에 이르렀으니 어쩔 도리가 없었다. 대별상은 삼신할머니네 대문 밖에서 무릎을 꿇었다. 대별상은 고개도 들지 못하고 빌었다. 그제야 삼신할미는 서천강을 건너 대별상의 집으로 갔다. 서신국의 마누라는 죽을 지경에 놓여 있었다. 삼신할미는 서신국 마누라의 배를 두어 번 손으로 쓸어내렸다. 그러자 서신국 마누라는 옥같은 아들을 낳았다.
이 신화에서 보듯, 명진국 따님아기는 수많은 고난을 겪고 우리의 삼신할머니가 되었다. 특히 동해 용왕의 따님애기와 경쟁을 하면서 보여준 포용성은 두드러진다. 성질이 괴팍한 동행 용왕의 따님아기가 명진국 따님아기의 꽃가지를 꺾어 버리면서, 아기가 태어나서 백일이 지나면 경풍과 경세 등 온갖 병이 걸리게 하리라며 심술궂은 행동을 했을 때도, 아기를 낳으면 너를 위하여 아기 업는 포대기 등 일습과 좋은 음식을 차려 줄 터이니 서로 좋게 지내자며 용왕 따님을 달랬다. 상대를 포용하는 이러한 모습에서, 우리는 삼신할머니가 태어난 아기를 병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얼마나 염려하며 애를 쓰는가를 볼 수 있다.
이러한 삼신할머니의 노력은 마마신인 대별상을 설복시키는 데서도 여실히 볼 수 있다. 거만한 대별상의 행차를 만났을 때, 삼신할머니는 길을 비키고 공손히 합장을 하고 인사를 드리며 “대별상님, 제가 사람들에게 잉태시키고 환생을 준 자손에게 예쁘게 마마를 시켜주소서.”라고 간청한다. 그러나 이를 한마디로 거절하며 거드럭거리는 대별상에게, 그의 부인을 임신시켜 해산하지 못하도록 고통을 줌으로써, 삼신할머니는 결국 대별상의 항복을 받아낸다.
지난날, 마마는 홍역과 더불어 가장 위험한 전염병이었다. 신라 향가 처용가도 이 역병 때문에 생긴 노래다. 그만큼 역병은 무서운 질병이었다. 그래서 우리들의 삼신할머니는 그런 위험에서 우리를 구원해 주기 위해 애를 쓴 것이다. 오늘도 삼신할머니는 이 땅에 태어나는 우리 자손들을 위해 여러 가지 병을 막아 주기 위해 힘쓰고 있을 것이다.
만약에 용왕 따님아기가 삼신이 되었다면 어땠을까? 용왕 따님아기는 아무것도 모르면서 산부의 옆구리를 째어 아기를 나오게 하려다가 산모와 아기를 죽였다. 그야말로 돌팔이다. 그녀가 삼신이 되었다면 어쩔 뻔했을까. 생각만 해도 아찔하다. 우리의 거룩한 삼신할머니 덕분에 우리 민족은 안전한 출산과 출생의 과정을 겪고 지금 이렇게 번성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