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석] 재량근로제 해도 “근무장소 지정, 특정시간 출근의무 두는 것 가능”···요건 완화한 고용부 가이드

[분석] 재량근로제 해도 “근무장소 지정, 특정시간 출근의무 두는 것 가능”···요건 완화한 고용부 가이드

 
고용노동부가 지난 7월 31일 재량근로제 활용 가이드라인을 내놨다. 일본 수출규제 대응의 일환이라는 것이 고용부의 설명이다. 그런데 이번 가이드라인을 살펴보니, 구체적인 사례를 들어 비교적 민감한 사례까지 자세히 안내하고 있고, 요건이 다소 완화돼 있다는 점에서 예년과 다르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재량근로제란 업무수행 방법을 근로자 재량에 위임할 필요가 있는 업무의 경우, 실제 일한 시간과 관계 없이 사용자가 근로자대표와의 서면합의로 정한 시간을 근로한 것으로 간주하는 제도다.

재량근로제의 핵심은 업무수행 방법에 있어서 재량성 보장이다. 즉 사용자가 근로자에게 업무의 구체적인 방법이나 시간 배분에 대해서 구체적인 지시를 하지 않는 것이 필수 조건이다.

재량근로제가 인정되면 근로자가 더 많이 근로했거나, 반대로 사용자가 더 적게 일했다고 증거를 제시한다고 해도 간주된 근로시간이 바뀌지 않고 약속된 임금을 지급받게 된다.

 
재랑근로제를 신중하게 해석해야 하는 이유는 따로 있다. 재량근로제를 제대로 사용하고 있다고 믿고 활용한 사업장이라고 해도, 나중에 요건을 갖추지 못한 것으로 판단돼 재량근로제 사용이 무효가 된다면, 근로기준법에 따라 임금을 다시 계산해 지급해야 한다.
 
즉, 실 근로시간에 따라 임금이나 법정수당을 지급해야 하기 때문에, 장시간 근로자와 재량근로를 합의한 경우였다면 근로시간을 제한한 근로기준법 위반은 물론 상당한 액수의 미지급 임금 보상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

 
■재량근로제여도 업무 장소는 제한가능---특정 시간, 특정일 출근의무 부여도 가능

 
고용부 가이드라인에 따르면 재량근로를 사용한다고 해도, 사용자가 근로자가 근무할 장소를 지정하는 것은 가능하다. 예전 고용부 기준과 사뭇 달라진 부분이다.
 
가이드라인은 "일반 근로관계에서 업무지시는 업무의 내용, 방법, 시간, 장소에 대한 지시"라며 "재량근로제는 이 중 '업무수행 수단' 및 '근로시간의 배분'에 관해 '구체적 지시'를 하지 않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업무의 내용 및 취업할 장소 등에 대한 사용자의 지시는 원칙적으로 가능하다"고 명시한 점이 눈에 띈다.
 
한 대형 로펌 노동팀 변호사는 "최근 법인에서 재량근로 도입이 문제가 되면서, 재량근로 적용을 받게 되는 피고용 근로자들이 '재택근로'가 가능한지를 두고 크게 관심을 보이는 것으로 알고 있다"며 "재량근로라고 해도 업무 장소를 지정할 수 있게 한 것을 판단한 것은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또 다른 대형로펌 노동팀 변호사는 해당 가이드가 법을 임의적으로 해석해 장소적 제한까지 완화해 준 것은 아닌지를 묻는 질문에 "법규만 두고 보면 장소적 재량근로가 필요한 경우엔 58조 1항으로 해결 가능하다"며 "업무상 내용 때문에 재량을 인정해주는 3항에서 근무 장소를 지정할 수 있게 한다고 해도 법리상 크게 무리는 없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화이트칼라나 연구직의 경우 보안 등의 이유로 회사에서 일할 수 밖에 없는 경우가 많은 것을 감안하면 당연한 해석"이라고 덧붙였다.
 
가이드라인에 따르면 사용자가 특정일이나 시간에 출근할 의무를 부여하는 것도 가능하다고 해석한 점도 눈길을 끈다. 원칙적으로 취업규칙 등에 따른 소정근로일에 출근의무를 부여하는 것도 가능하다는 부연 설명이다.
 
가이드는 업무 완성을 위해 필요한 경우에는 근로자대표와 서면합의로 특정 시간대를 정해서 운영하는 것도 가능할 수 있다는 해석을 내놓았다. 가이드는 "업무수행을 하면서 합리적인 이유가 있다면, 근로자 대표와 서면 합의로 특정 시간대를 정해 근무하도록 하는 것이 원칙적으로 재량을 침해했다고 보기 어렵다"고 설명했다. 다만 "특정 시간대를 너무 넓게 설정해서 사실상 출퇴근 시간을 정하는 것이라면 재량을 침해한 것으로 봐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 해석대로라면 유연근로제의 코어 타임처럼 업무상 협업이 필요한 시간대에 출근을 하도록 정하는 것도 재량성을 해치지 않는다고 볼 수 있다. 이 같이 다소 확대된 재량성 인정 기준을 두고서는 다소 논란이 점쳐진다.
 
한국노총은 보도자료를 통해 "재량근로제의 핵심은 노동자의 업무수행 재량권이 보장돼야 한다는 점인데, 가이드라인은 '업무수행의 장소', '업무의 완성을 위해 필요한 근무시간대'를 정할 수 있다고 한다"며 "'노동자의 업무수행 재량권'을 심각하게 침해할 여지를 제공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요건 완화됐지만 활용 촉진 효과는 "글쎄"

 
그밖의 내용을 살펴봐도, 이번 가이드는 전체적으로 재량성을 어느 수준까지 인정할 것인지를 두고, 세부 판단 기준을 구체화했다는 평가다.
 
원칙적으로 업무 진행 상황을 매 단계마다 확인하는 경우에는 재량근로로 보기 어렵다. 다만 일정한 단계에 이르러서 어느 정도 진행 됐는지 경과를 보고하도록 하는 것은 허용된다. 특히 제품 출시 등이 임박한 단계에서 별도 보고 일정을 정해 보고를 받는 것은 재량성을 부정하지 않는다는 설명이다. 또 업무 방향 수정이나 기능 변경, 추가를 요청하는 것은 업무 수단이나 시간배분에 관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가능하다는 설명이다.
 
회의 참석을 요구하는 것도 근로자 대표와 서면합의가 있다면 가능하다. 필요하다면 서면합의로 주기, 횟수 등 일정한 시간을 정하고 회의참석 의무를 부여하는 것도 재량을 해치는 것은 아니라는 설명이다.
하지만 보고나 회의참석 주기가 지나치게 짧고, 보고를 하지 않으면 불이익을 예정하고 있는 경우에는 재량을 침해했다고 볼 여지도 있다는 것이 가이드라인의 해석이다.
 
또 근로자를 보호하기 위한 목적으로 근로시간 총량을 제한하거나 야간근로시간대 근로 제한을 하는 것도 가능하다.
 
이처럼 전체적인 내용을 살펴보면 이번 가이드는 사용자가 어느 정도 근로자와 업무직 접촉을 하거나 업무진행 상황을 체크할 수 있는 여지를 부여해, 제도 활용에 유연성을 확보한 점이 눈에 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해석이다.

민주노총도 보도자료를 통해 "재량근로 도입 시 사용자 업무지시가 가능한 사례를 확대 해석했다"며 "노조 없는 사업장 사용자에게 재량근로 사용 유인을 확대한 셈"이라고 반발했다. 민주노총 관계자도 "구체적인 업무지시가 모호하게 규정돼 폭넓게 장시간 근로를 조장하는 것으로 보일 여지가 있다"고 평가했다.

하지만 당장 이로 인해 재량근로제 사용이 증가하지는 않을 것이란 평가도 있다.

경총 관계자는 "가이드가 요건을 다소 완화한 것은 사실"이라며 "재량근로제를 이미 쓰고 있지만 적법하게 제도를 활용하고 있는지 의문이 있던 사업장 일부는 구제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이어 "하지만 특별히 이 점 때문에 새롭게 사업장들이 적극적으로 제도를 활용한다던지, 크게 촉진되는 효과가 있을 것 같지는 않다"고 말했다.

[노동법률] 2019.08.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