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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 마태복음 22:15-22와 병행본문 □
이동일 (분당광성교회 목사・신약학)
1. 들어가는 말
셋돈에 대한 질문과 예수의 간결한 답변으로 꾸며지는 이 사건의 단원 pericope 은 외관상으로 매우 단순하고 쉽게 해답이 끝난 사건이다. 그러나 이 짧은 질문과 답변 속에는 신약시대 이스라엘의 정치, 경제, 사회, 종교 등 다각적인 문제요소를 속속들이 담고 있는 사건이었다.
동시에 예수의 답변 속에는 인류구속사의 핵심인 예수제자들과 교회가 땅끝까지 들고 나아가야 할 메세지가 담긴 단원이기도 하다. 예수의 생애 마지막주간, 예루살렘에서 일어난 토론 사건 속에서 우리는 다음 같은 전제를 이해해야 한다.
1. 교리와 철학이 서로 다른 유대종파들의 이데올로기와 그 행동반경에 대하여
2. ‘세금’을 둘러싸고 오랜 세월 쌓여온 상처받은 유대민족의 현실과 고통에 대하여
3. 신정국가 theocracy 를 표방하는 고유종교성 때문에 다양한 문명권의 와중에서, 정치적 격동 속에서 살아남은 이스라엘의 종교심에 대하여
4. 여러 세기동안 팔레스틴에 들어온 외세와 그 지배세력에 대하여
5. ‘사람’이시고, ‘하나님의 아들’이셨던 예수를 둘러싼 민중과 종파들의 기대와 회의에 대하여
짧은 질문-답변의 단원 속에 숨어있는 팔레스틴의 유대인, 그들의 삶, 그들의 현실, 그 속에 담겨있던 문제들을 구속사적으로 재해석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2. 사 역
이것은 본문 마태 22:15-22과 이에 병행되는 마가 12:13-17, 누가 20:20-26을 종합한 필자의 사역이다.
당국자들은 바리새인을 중심으로 하여 헤롯당 몇 사람을 사절단에 넣어 예수에게 파견하여 말로 올무를 씌우도록 한다. 그들이 와서 묻는다. “선생님, 당신은 참되십니다. 누구의 호의 때문에 비위를 맞추지도 않습니다. 황제에게 세금을 내는 것이 허용될 일인가요? 아닌가요? 우리도 바쳐야 합니까? 말아야 합니까? 계획을 세워 그를 고발하려는 의도를 알아차리시고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왜(이런 방법으로) 나를 (잡으려고) 시험하느냐? 셋돈-데나리온 하나를 내게 가져오라. 내게 그것을 보이라’ 그들이 한 개를(가까스로 급히 찾아) 그에게 가져왔다; 그가 그들에게 물으셨다. ‘이 얼굴은 누구의 상이냐? 누구의 이름이 (동전에) 새겨 있느냐?’ ‘황제의 것들입니다’ 그래서 예수는 말씀했다. ‘황제의 재산은 황제에게 가져가라; 하나님께 속한 것들은 하나님께 바치라’ 그들은 그의 답변하시는 말 때문에 그리고 큰 군중의 면전에서 놀라움에 빠졌고, 일단 자취를 감췄다.
3. 본문형성과 유월절 축제 전승
마태의 ‘가이사의 셋돈’ 질문사건은 ‘혼인잔치 비유’를 삽입하기 위하여 마가의 자료 순서에서 떨어져 나갔다가 그 흐름이 다시 돌아와 마가-누가의 병행자료에 합류하고 있다. 예수생애 말기에 전개되는 뜨거운 쟁점들이 네 개의 제목을 따라 토론자료로 배열되어 있다. ‘셋돈’(16-22절), ‘부활’(23-33절), ‘가장 큰 계명’(34-40), ‘다윗의 아들’(41-46) 토론자료 등이 그것이다.
이 자료에 대한 최근의 주요 주석가들은 특별한 전승의 문학형식에 영향을 받은 것으로 이해한다 (D. Daube, F.W. Beare, D. Hill). 본 단원은 서로 연계되어 있는 다른 세 개의 질의-문답 자료와 함께 일정한 문학 형식으로 짜인 Question and Answer 法으로써 신약시대 유대 랍비들이 즐겨 쓰던 문학형식으로써 “사중 질문 도식” Four Types of Question 의 기본 틀에 맞추어 짜여졌다는 것이다.
*四重 질문도식이란?
유대인은 최대 명절 유월절 축제주간의 처음 1-2일 밤에 유대민족의 출애굽사건을 회상하며 가지는 가족중심의 축제예배와 함께 축제음식을 먹는다. 이때 가장 (아버지)과 세 아들사이에 축제의미를 살리는 질문-답변이 사중 질문 도식을 따라 시행된다. 이것을 랍비문학에서는 일정한 ‘틀’로 사용되었는데, ‘출애굽 하가다’ Haggada on the Seder 라 한다. 본 단원과 계속된 세 단원자료의 구성이 예배 자료 Haggada on the Seder 에 쓰이던 질문-답변형식과 놀랄 만큼 상호일치요소가 있다고 지적한다.
이 구조에 따르면, 첫 질문은 율법에 관계된 것이다. 둘째는 행위를 꾸중하는 요소 Scoffing 이다. 셋째는 아들의 일상생활중의 평범한 경건 the 'tam' 에 관해서이다. 예로써, ‘마가’자료에 따르면 ‘하나님의 나라에서 멀지않다’라는 묘사는 이런 세 번째 질문-답변형식에 일치한다. 넷째는 가족의 가장에 의해서 물어지고, 그가 예배의 사회자가 된다. 이것이 질문의 四大유형이다.1)
마가 저자는 랍비문학저술의 문학적 형식에 익숙한 처지가 아니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의 자료 속에 이러한 문학형식에 따라 배열된 편집소재가 있었다. 그렇다면 마가의 처음 자료도 이미 보다 이른 시기에 기독교 서기관에 의하여 편집되었으리라는 가설이 가능하다. 제3의 질문을 도입한 서기관 때문에 이런 추측이 가능해진다. (마 22:35/서기관 nomiko,j) 네 번째 질문은 예수자신이 바리새인들에게 직접 묻고 있다. 이런 변형도 가장이 사회자가 되어 가족에게 묻는 형식을 닮고 있다. 마태와 누가 자료에는 적대정신을 묘사하는 저술의도가 분명하게 드러나서 사중 질문 도식은 살아있으나 축제 분위기는 예수의 수난기사 쪽으로 흐르고 있다.
마가의 기록이후에 쓰여진 마태와 누가본문들은 구술적 묘사나 문장을 저자들의 신학에 따라-유대당파의 죄악-위선을 고발하는 변화를 보인다. 그러므로 출애굽 하가다의 영향은 최초의 수난전승이 형성될 때, 유대인 기독교회 안에서 수난전승의 틀이 되었다.2)
출애굽 기념예배와 축제음식의 전통행사에서 쓰던 유대랍비의 사중 질문 도식의 틀에, 수난에 이르는 가장 의미심장한 유대종파들과의 토론 자료를 넣어 재구성함으로써, 예수를 유월절 양이신 메시아로 해석했음직한 가설이 가능하다. 메시아 수난 기사 전승의 최초 자료 속에는 교회를 위하여 오신 고난의 종-유월절 양의 죽으심에 대한 고백이 기초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4. 병행자료 재구성
오늘날 공관복음서 연구에 있어서 네 자료설로 정리되는 가설이 있다. 공관복음 저술과정을 자료의 형성 년대로 보아 마가복음을 제일 먼저 쓰여진 책으로(주후 67년경), 마가를 자료로 하여 마태복음(주후 87년경)이, 거의 같은 연대이나 마태복음보다 약간 늦게 누가복음(주후 88년)이 쓰여졌을 것으로 추정하는 가설이 그것이다.
세 복음서의 본문은 각각 저자의 손에 의하여 재편집의 과정을 밟는다. 각 책의 저자는 통일된 신앙-신학을 가지고 자신들의 책을 썼기 때문에 자료는 공동의 출처에서 나오는 듯하지만 세 책은 같은 책들로 분류하기 어려운 구체적인 차이점들을 가지고 있다. 이러한 신학문제들은 글체, 어휘, 수사적 묘사, 강조, 수신자의 목회적 콘텍스트, 또는 저술연대와 관계된 제반문제에 따라 상당한 차이점과 특색을 드러낸다.
이러한 차이점과 특색을 파악하고 분석하여 들여다보노라면, 메세지는 더욱 생생하게 살아 나오고, 또한 증언자의 신학적 체취를 느끼게 한다. 필자가 취급하는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로 명명해 부르는 이 본문과 병행자료는 이러한 편집자 신학이 특별히 극명하게 드러내는 자료로 보여진다. 배열된 자료의 자리가 메시아 수난을 준비하고 있는 자리 메김 때문에 더욱 그러하다.
□ 마 22:15 / 막 12:13 / 눅 20:20
‘예수의 말씀을 책 잡으려하여.’ 마가는 가정법 단순과거를 써서 음모사실을 단순하게 역사적으로 서술한다. 이 말을 마가와 마태가 공동으로 쓰고 있다. 음모를 꾸미고 특수임무를 띠고 접근하고 있다는 질문자들의 의도를 세 책이 공통으로 보고한다. 문장과 어휘변화가 심한 것은 누가자료다. 이렇게 함으로써 음모의 계획성을 가장 치밀하게 전개하는 것이다. 첫 절 20절이 그러하고, 마지막 절 26절이 그러하다. ‘엿보다가’는 ⌈파라태레오⌋ parathre,w 의 단순과거분사형을 쓰는데 ‘신중하게 관찰한 후에’로 번역될 수 있다. 질문자들을 영역에는 ‘정탐꾼들’로 번역하였다. ⌈엥카테토스⌋ evgka,qetoj 는 ‘웅크리고 숨어 기다리는 자’란 뜻이다. 파견 전에 치밀하게 계획된 음모였음을 누가가 잘 묘사한다.
마가와 마태에는 각 16절과 14절에서 아첨하는 말귀에 통일되고 있으나, 누가에는 ‘그들이 스스로 의인인 체하며’를 첨가하여 전체단원을 음모의 범주로 묶고있음이 이채롭다.
마태는 '음모의 회의를 모였다'를 써서 예수를 죽일 덫(책잡으려)을 걸려는 계획을 세웠다는 정도로 마가를 보충한다. 이 어휘도 마가나 누가에 없는 마태의 신학적 어휘로 보여진다. 바리새인이 문장의 유일한 주어로 쓰여짐으로써 바리새인과 예수사이의 반목감정을 표출시킨다. 마가에는 바리새인과 헤롯당원이 공동의 주어로 나오며, 누가에는 ‘정탐들’로 묶어 이 음모를 꾸민 자들의 성격을 구체적으로 해석하는 쪽으로 다듬었다. 누가의 수신자들이 이방인 지식층이었기 때문에 예수 모함한 자들의 성격을 이렇게 정리했을까? 그러나 질문자들의 죄악을 교회사적 관점에서 공격하는 것은 아닐지?
‘사명을 띠고 접근했다.’ 또는 ‘사명을 띠어 보내어진다’에 주의하자. 마가와 마태에 쓰인 말이다. 마태에는 첫 절에 나오지 않고, 16절에 쓰여지는데 이는 예수에게 파송되는 이들의 목적을 15절에 더욱 자세히 밝히려는 묘사 때문에 뒷 절로 밀려나 있다. 마가는 첫 문장의 머리에 ‘목적을 가지고 보내졌다’고 써서 역사적 사실을 감정개입 없이 썼다
마태는 다른 자료보다 뚜렷하게 바리새인이 음모진행과정에서의 주도적 역할을 했다고 15절에 강조하고 있다. 마태의 반-바리새적 편집신학이다. 마가에는 바리새와 헤롯당이 동등한 주어로 묶여있고, 마태에는 바리새 제자들이 가는데 헤롯당원들이 동행한 것처럼 표현되었다.
세 책이 모두 ‘말에 책잡으려고’는 공통이고, 본 자료에서 가장 중요하게 취급되어야 할 어휘라고 본다. 세 복음서 기자 모두 ‘말로 얽어매려 했다’는 상황을 공통으로 파악하고 정확하게 묘사하기 위해 다음과 같은 동사들을 사용하고 있다.
마태 : ⌈파기듀오⌋ (pagideu,w ‘덫으로 잡다’)
마가 : ⌈아그류오⌋ (avgreu,w ‘덫으로 잡다’)
누가 : ⌈에피람바노마이⌋ (evpilamba,nomai ‘죄인을 체포하다, 포위하다’)
세 책의 동사어휘가 모두 다르나 ‘말로써’란 방편은 모두 같다. 이 토론자료가 ‘말싸움’자료로써 중요했다고 인식한 점이 모두 공통이고, 예수의 죽음에 이르는 재판에 직접 연결된 음모였음을 잘 파악하고 있었다는 점이 중요하다.
□ 마 22:16 / 막 12:14 / 눅 20:21 □
이 부분에서 마태와 마가는 중요묘사에 일치한다. 누가자료는 변형이 심하다 (고급 희랍어). 먼저 쓰여진 마가의 자료에다 마태는 ⌈카이··· 카이⌋ kai. … kai. 문장으로 전개하여 앞 절에 ‘참으로써 하나님의 도를’ 앞에다 ‘당신은 참되시다’를 첨가했다. 아첨의 말이다. 바리새인의 위선을 강조시킨 묘사이다. 바리새인들의 그들다운 교리논쟁시에 사용하던 상투어를 삽입했다고 본다. 질문자들의 위선적이고 아첨하는 말투를 세 책은 모두 ‘하나님의 도를 참으로’라고 써서 비웃고 있다. 역시 바리새인에 대한 반감을 표출하는 대목이다. ‘인간의 얼굴을 보지 않는다’ (개역은 ‘사람을 외모로 보지 않고’)는 아첨어는 세 책이 공동 묘사한다. 누가만 ‘인간의’를 생략하고 있다.
□ 마 22:17 / 막 12:14b / 눅 20:22 □
본 단원의 핵심 질문 부분이다. 마가의 질문에 마태는 수사적 말귀 ‘그러므로 우리에게 말하시오. 당신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를 보탠다.
‘가이사에게 세를 바치는 것이 가하니이까 불가하니이까?’ 마태와 마가는 ‘세’를 인두세인 ‘캔소스’ kh/nsoj 를 쓴다. 누가는 포로스fo,roj 로써 당시의 보편적이고 부드러운 어휘로 변형시켰다.
(유럽과 북미사회에선 오늘날도 캔소스, 즉 인두세-머릿수에 따라 메기는 주민세의 개념을 대단한 수치로 받아들인다. 피지배민으로써 노예처럼 세금으로 봉사한다는 뜻이 들어 있는 듯 하다.)
□ 마 22:18 / 막 12:15 / 눅 20:23 □
질문자의 의도를 서로 다른 어휘로 씀으로써 세 저자의 관심이 특별한 부분임을 드러낸다. 마태는 악함(⌈포네리안⌋ ponhri,an)으로, 마가는 외식함(⌈휘포크리신⌋ u`po,krisin)으로, 누가는 간계(⌈파누르기안⌋ panourgi,an)으로 묘사한다.
국역에 모두 ‘아시고’로 번역된 단순과거형 동사도 마태는 ⌈그누우스⌋ gnou.j 마가는 ⌈에이도스⌋ eivdw.j 누가는 ⌈카타노에사스⌋ katanoh,saj 로 되어있다. 필자의 견해로는 우리말 번역도 ‘아시고’, ‘보시고’, ‘주의하여 파악하시고’ 정도로 다르게 해야 할 것 같다.
동사를 서로 다르게, 목적어가 되는 질문자의 의도(악함, 외식함, 간계)를 서로 다르게 쓰는 이유도 편집자들이 이 부분에 유난히 관심을 가졌다는 표식일 것이고,
되도록이면 이 악한 의도를 저자들은 주를 괴롭힌 죄악으로 보는 노여움이 배어 있을 것이라 본다.
‘어찌하여 나를 시험하느냐?’는 마태와 마가가 동일문장을 쓰고, 누가는 생략한 대신 ‘간계’란 목적어에서 뜻을 포함시킨 듯 하다. 다만 마태는 ‘외식하는 자들아’를 삽입하여 유대주의와 바리새종파에 대한 정의를 생생하게 재현했다.
□ 마 22:19-20 / 막 12:16 / 눅 20:24 □
‘세금 내는 돈’을 가져오도록 요구하는 문장에서, 최초자료인 마가에는 ‘데나리온’이다. 누가도 그대로 따랐다. 유독 마태만이 ‘셋돈’(⌈토 노미스마 투 캔수⌋ to. no,misma tou/ kh,nsou)라 구체적으로 설명한다. 데나리온만이 당시 가이사의 주민세 내는 화폐로 쓰여졌으므로, 이 단어를 문형상 가장 길게 쓰는 한정어로 꾸미고, 의미도 명백하게 “머릿세의 화폐”(=셋돈/국역)로 풀어쓰고 있다. 마태는 질문자를 경멸하는 말로 재구성한 것이 흥미롭다.
데나리온을 가져온 행위 묘사에서도 마태는 그들이 ‘데나리온을 가져왔다’로 쓰는데, 원자료였던 마가는 데나리온을 앞줄에 썼으므로 생략했다. 누가는 가져오는 동작문을 전부 생략하여 유대사회의 감정처리를 극복하는 모습이 다르다. 누가는 유대인의 알력 부분을 일부러 회피한 것이 아니었을까?
‘이 형상과 이 글이’란 구절도 세 책의 공통문장이다. 모두 같은 문장(마태와 마가)이지만, 누가는 어휘는 같고 문장만 그의 어투로 바꾸고 있다.
마가와 마태 : Ti,noj h` eivkw.n au[th kai. h` evpigra로,*
누가 : ti,noj e;cei eivko,na kai. evpigrafh,n*
□ 마 22:21 / 막 12:17 / 눅 20:25 □
질문자는 모두 ‘가이사의 것’(⌈카이사로스⌋ Kai,saroj)이라고 짧게 대답하는데, 세 책이 모두 같은 단어이다.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께 바치라’는 문장은 세 저자가 공통이다. 확실한 예수의 답변을 변형시킬 수가 없었으리라 추측된다. 이 문장의 단순과거명령형 동사 ⌈아포도테⌋ avpo,dote 는 ‘주인을 찾아 돌려주는’ 동작의 일회적이고 간결한 행위묘사이다.
□ 마 22:22 / 막 12:17하 / 눅 20:26 □
마태와 누가는 마가의 ‘저희가 심히 기이히 여기더라’를 나름의 신학으로 풀어써서 한 절씩 편집을 늘리고 있다. 이 부분도 편집자의 손이 많이 닿은 흔적이 역력하다.
마태 : ‘들은 자들이 들은 후에 경이감에 쌓여 놀랐다. 그리고 그를 떠나서 자취를 감췄다.
누가 : (좀 길다) ‘백성의 모임 앞에서 그의 말에 올무를 거는 일이 불가능한 줄 알고 그의 답변에 어리둥절하여 잠잠해졌다.’
마태는 음모를 꾸며 묻던 바리새인들이 답변에 ‘놀라서 사라졌다’ 또는 ‘꽁무니를 뺐다’ ‘자취를 감추었다’는 해설에 역점을 두었고, 누가는 질문자들에게 여전히 잡으려는 의도가 있었지만, ‘군중을 앞에 두고 음모자는 압도당하여 행동에 옮기지 못했다’는 해설에 치중한다.
5.셋돈 : 데나리온 화폐 (강해 1)
까다로운 질문 속에 숨겨진 질문자들의 음모를 미리 아시고, 예수는 당시의 세금으로 내는 화폐의 종류를 구체적으로 지적하여 그 화폐를 가져오라고 대답하신다. 쉽게 찾아오지 못하거나, 찾아서 가져오는 행위과정을 미리 예측하신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면, 질문자와 답변자 사이에는 서로 핵심을 비켜 가는 의도가 드러난다. 예수를 말의 올무에 걸려고 바리새당원들과 헤롯당원들의 질문 속에 가시가 있었다면, 대답 속에도 이 올무를 피해나갈 그 무엇이 있었다는 말이다.3)
당신 스스로는 어떻게 생각합니까?: “인두세(주민세)를 가이사(로마황제)에게 주어야 하나요? 안 주어야 하나요?
마태는 이 문장 앞에다 ‘그러므로 우리에게 말해주시오’를 덧붙이고 있다. 질문자들이 그들의 질문에 예수가 피해나갈 수 없도록 강조하는 말투일 것이다. 그리고 그 당시 고통을 당하던 당시 유대인들의 분노를 그대로 담고 있는 듯 하다. 마가도 이런 분위기를 누가보다도 살려주는 문형을 보여준다.
‘주어야 되나요? 안 주어야 하나요?’를 가정법 문형을 씀으로써 그 당시 고정된 세금법에 대한 유대인의 의무에 대한 피할 수 없는 부담감을 피력한다. 누가는 가장 가볍게 질문을 처리하려는 의도를 분명히 보인다. 누가복음의 저술의도가 이방인들을 상대로 썼던 점을 감안할 때, 유대인들의 특수문제-환경요인을 가볍게 처리하려 했을 것을 이해할 수 있는 요소이다.
마태와 마가가 쓰는 ⌈캔소스⌋와 누가의 ⌈포로스⌋ 사이에는 당시 사용상의 차이가 있을까? ‘캔소스’는 인구조사와 관계된 어의로 쓰인 점이고, ‘포로스’는 일반적으로 세금을 뜻했다는 점이다. Kittel의 사전에 의하면, ⌈쥐고스⌋ zugo,j 는 ‘멍에’라는 뜻으로 신약에서 동물의 멍에나 노예의 멍에에 쓰인 말인데, 마 22:15절 이하와 평행구에 쓰이는 캔소스가 의미상으로 ‘멍에’로 해석된다고 풀이했다.4)
간접세보다 캔소스는 ‘머릿수를 세어 걷는 세금’으로 해석한다.5) 세금을 내야만 하느냐?’는 질문은 당시로서는 선동적인 뉘앙스를 지닌 물음이었다.
세금을 내는 화폐였던 데나리온은 세금 내는 행위의 돈으로써 경멸 섞인 묘사로 볼 수 있지 않을까? 마태는 이런 점에 있어서 보다 더 반-바리새주의 색채를 드러낸다. 세금은 데나리온 화폐로만 냈다. 당시 길에서 만나는 누구나의 지갑 속에 있던 바로 그 은화 silver coins 인데 로마화폐로 쓰이고 있었다.
본문 분위기로 보아 예수 자신에게는 수중에 안 가지고 계신 듯 하다. 질문자들이었던 바리새인과 헤롯당원중에서 셋돈을 가져와야 했다 (막 12:16 ; 마 22:19).
주석하는 이들 중에는 예수께서 화폐에 새겨진 로마황제얼굴을 보는 것조차 우상경배로 여겨져서 일부러 로마 데나리온을 몸에 지니지 않았다고 보는 견해도 있으나 필자로서는 동의하기 어렵다. 오히려 예수는 가져오면 보겠다는 의사를 분명히 언급한다. 예수의 짧은 질문은, ‘이 형상과 이 글이 뉘 것이냐?’, 대답도 내키지 않는 것이었으나 답변자들의 답변도 한마디뿐, ‘가이사의 것’이다. 희랍어는 더 짧은 소유격의 한 단어이다 (⌈카이사로스⌋ Kai,saroj).
가져와야 할 화폐도 예상된 돈이었고, 반드시 세금을 처리하는 데나리온이어야 했다. 셋돈을 가져오도록 요구하는 이유도 자명한 것이었다. 가이사의 돈이었다. 황제 형상과 새겨 넣은 글도 바로 가이사의 것이었다.
대화의 절정은 화폐가 주는 의미였을 것이다. 예수께 가져온 화폐는 어떤 것이었을까? 로마의 표준화폐도표가 19세기말에 편집되어 런던에서 출간된 바 있다.6)
가장 그럴듯하게 추정되는 가능성은 티베리우스의 데나리온이다. 가울 Gaul 지방에 주조소가 있어서 몇 가지 화폐가 제작되었다. 티베리우스 황제조폐소도 이곳이었을 것이다. 가능성이 가장 높은 것은 주후 15년 3월 10일 이후 티베리우스가 대신관 pontif Maxim 에서 더 높은 최고의 대신관 pontifex Maximus 이 되는 기점의 것이다. 이 때 이후, 많은 화폐주조가 제작된 듯하고, 황제의 남은 재위기간을 걸쳐서도 많은 당시 데나리온화폐가 발견되고 있다.7)
앞면에는 월계관을 쓰고 있는 황제얼굴과 동시에 ‘황제 아우구스투스는 신성하다’를 새기고, 뒷면에는 황제비 리비아의 얼굴과 ‘평화’ PAX 를 새겨놓고 있다. 약 25년간 엄청난 숫자의 화폐가 주조된 듯 하며, 조폐소도 한곳이 아닌 듯 하다. 이 화폐가 바로 신약시대의 그것들 일 것이란 추정이다. 앞선 황제가 죽으면, 얼굴상만 바꾸고, 비문은 거의 변화가 없다. 황제 중에는 아우구스투스와 티베리우스 두 사람 중 한 형상을 새겨 넣은 로마화폐가 가장 신빙성 높은 것으로 추정되며, 연대로 살펴볼 때도 그럴 것이다. 로마 제국전체에 통용된 이 화폐들이 팔레스틴에서도 셋돈으로 사용되었으리라.
중요한 화폐발굴이 1960년 팔레스틴의 카르멜산에서 있었다. 이스라엘의 고고학자 라취매니 L. Rachmany 가 주도한 발굴이었다. 2년 후에 캐드만 Leo Kadman 이 논문으로 보고한 자료에 따르면, 카르멜 저장소에서 나온 화폐들은 두로의 세겔화가 3천 4백개, 1천개의 반세겔화(주전40년-주후53년 제조)이고, 160개의 로마 데나리온화이다. 아우구스투스 1세 형상의 것이 대부분이고, 약 30개정도가 티베리우스시대의 것이다.
마 22:19의 셋돈은 바로 이 후자의 것이었던 것이다 (Hart).
6. 세금에 얽힌 이야기들
가. ‘전승’의 변형
본 단원의 세금질문은 시간이 지남에 따라, 그 본문진의가 변해가고 있음을 보여 주는 전승자료들이 있다. 세금에 얽힌 정확한 이해가 필요하다. 메시아의 수난전승에 깊숙하게 도입되었던 본 사건의 현장이해가 바르게 보존되어야겠다. 신약시대의 세금 문제와 유대종교성의 이해에는 이스라엘 역사이해도 병행해야 한다.
파피루스-에거튼 2권에는 다음과 같은 변형된 전승이 있다.
그들이 그에게 와서 시험삼아 질문했다. ‘주 예수여 (‘주’를 ‘선생이여’/ dida,skale) 우리는 당신이 하나님께로부터 오셨다고 알고 있습니다. 모든 선지자들을 능가하여 보여주는 증거가 그러합니다. 그러므로 우리에게 말해 주십시오: 지배권에 딸린 왕들의 소유를 그들에게 돌려줘야 합니까? 이것들을 돌려주어야 할까요 말까요? 예수는 그들의 마음을 아시고 노하여 말씀했다. ‘왜 나를 너희입술로 ‘주’라고 부르느냐? 내가 말하는 것은 귀로 듣지 아니하는 너희가 아니더냐? 이사야가 너희에 대하여 잘도 예언하였구나: ‘이 백성이 입술로는 나를 알고, 그들의 심장은 내게서 멀리 있는 이들이여, 헛되이 나를 경배하는 너희여, (사람의)계명을 가르치는 무리들이구나.’ 8)
보다 짧은 전승이 도마복음의 로기온 100줄에 나온다:
그들이 예수께 하나의 금 조각을 보이고 말했다. ‘황제의 사람들이 우리에게 세금을 요구합니다.’ 그가 그들에게 말씀했다: ‘황제의 것은 황제에게 가져가라.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께 바치라. 내게 속한 것은 내게 가져 오라.’9)(註. 2)
위의 두 인용문으로 보아, 이 사건이 다양한 영향을 수용하면서 전승 발전과정을 거치고 있다는 사실이다. 원래의 질문이 던진 신약시대상황의 긴박성은 시간이 지날수록 상실해가고 있다는 점이다.
나. 음모에 제휴하는 당파들
이 사건은 원래(마가가 일찍 언급) 갈릴리지방에서 발생했을까? 아닐 것이다. 남쪽의 유대지방이 세금문제에 더욱 민감하였다.
바리새인들은 이즈음 유대에 주둔한 로마 행정관리에게 다양한 행동을 취하고 있었다. 주후 6년에 일어난 ‘가말라의 유다’ 봉기사건에 그들이 가입하고 있다. 이것은 사두개파의 제휴를 뜻한다. 또한 사카이의 아들 요하난은 66년 로마의 베스파시안 정복사령관을 성전파괴자임에도 불구하고, 세계지배자로 한 발 앞서 선언하고, 민중봉기를 진정시켜서 로마에의 항복을 설득하는데 바리새인들은 이 권고에 따르고 있다. 바리새파 대부분은 로마지배를 필요악으로 수용했을 것이다. 바리새파 원로로써 제사장들의 수장이던 하니나가 남긴 말도 이를 뒷받침한다: ‘제국의 평화를 위하여 기도하라. 제국을 두려워하지 않으면, 사람들이 산 채로 인육을 먹을 처지가 되리라.’(요세푸스)
헤롯당원들은 종교의 당파가 아니다. 헤롯왕정에 이해가 걸린 사람들이었다. 헤롯 1세의 왕국이 정지당하지 않고, 왕자들중에서 후계자가 나오기를 바라는 사람들이었다. 당시 정정으로 보아 황제직속의 총독에 의하여 정부가 폐지될 수 있었으며, 따라서 친 로마정책의 핵심그룹으로 남아 있었다. 로마의 충실한 동맹자들로써 또는 꼭두각시들로써 팔레스틴의 영향력을 유지하려고 힘쓰는 사람들이었다. 헤롯당원은 헤롯-안티파스와 함께 이즈음 예루살렘에 머물고 있었다.(눅 23:7 참조)
두 그룹이 서로 적대관계였던 터에 어떻게 제휴하여 예수를 제거하는 음모에 나섰을까? 그러나 두 그룹은 본래부터 정복세력에 적대적인 원칙을 세우고 있는 당파가 아니었다. 현실상황을 받아들이며 생존하는 두 당파에게 서로 제휴하여 세금에 대한 국민의 감정을 유리하게 이용하려는 음모가 본 단원의 핵심주제이다.
열심당(셀롯당)의 관점도 생각해 볼 수 있다. 이 당파는 바리새파의 사상에 가까운 종교관에 외국세력들에 대한 행동적 저항을 내세우는 일파들이었다. 셀롯당은 비교적 젊은 세대를 중심으로 하여 갈릴리지역에 널리 뿌리내리고 있었다. 바울이 예루살렘에서 만난 극렬한 유대주의 행동파 4인(행 21장)과 같은 골수 유대인들이 50년대 이후는 공개적으로 반-로마 항쟁을 일으켰다. 60년대 말에 황군을 예루살렘에 진입케 한 유대전쟁도 열심당을 중심으로 한 봉기 때문이었다. 만일 예수께서 세금에 대한 질문에 ‘거부하라’는 대답을 내렸더라면 셀롯당은 그를 동조자나 동맹관계로 환영하였을까?
질문자들은 바리새당과 헤롯당의 중요음모의 사절단으로써 예수께 접근하고 있다. 질문 속에 암시된 핵심은 예수가 황제세금의 적법성을 부인한다면 총독부에 그를 고발할 터였다. 누가는 그들의 이러한 동기를 보다 중요하게 지적한다. ‘저희가 엿보다가 예수를 총독의 치리와 권세아래 붙이려하여 정탐들을 보내어’(20:20) 예수의 대답여하에 따라 다음행위가 계획되었음을 시사한다. 그러나 그들의 계획은 빗나갔다.
사절단으로 온 질문자들이, ‘바치리이까?’라는 질문을 했을 때, 기대하던 예수의 즉석반응은 ‘바치라’는 답변이었으리라. 그 결과 이방인의 세금이라는 멍에에 찌든 모든 백성의 동정이 예수로부터 즉시 떠나는 것을 기대했을 것이다. 예수는 어느 쪽에 서 있었던가? 예수께서 그들의 마음을 읽으셨듯이, 질문을 가지고 접근하는 사절단의 의도는 음모로 가득한 동기뿐이었다.
다. 로마의 인두세 poll-tax 와 헤롯1세의 세금원
유대가 로마에 조세의 속국으로 귀속된 시기는 폼페이의 원정이 있던 주전 63년 이후이다. 유세푸스는 ‘그가 유대지경과 예루살렘을 조세지로 접수했다’고 기술한다. 처음 얼마동안은 시리아의 예속국이 되어 세금의 일부를 분담하고 있었다. Cicero 이런 상태는 시리아주둔 로마총독의 지배를 받는 것이었고, ‘세금을 일구는 세금밭’ tax-farming 으로 시달렸을 것이다. 로마의 율리우스-씨저가 유대인들에게 세금상의 특혜를 허용하여 안식년을 배려해준 바가 있다. 안식년에는 밭들이 경작되지 않고 쉬는 특혜였다. 그가 암살된 후에 로마원로원 Roman Senate 이 씨저의 유대에 대한 양보조항을 정식 합의해 준다 Josephus .
헤롯 1세
주전 40-37년경 고대 카스피해 남동 지역에서 로마가 전쟁하고 있을 때, 유대지역에는 하스모니왕조가 설립된다. 로마는 당분간 조세를 감면해주었다. 헤롯 1세는 유대인 사회에 왕권을 세워 효과적으로 통치했다. 로마 원로원은 그의 왕권을 특혜로써 허용해줬다. 주전 37년 이후 주후 4년까지 로마인의 동맹 rex socius 으로 통치행위를 지속한다. 이즈음, 유대나라는 로마에 조세국이 아니었다. 헤롯은 로마지배자들을 엄청난 선물로써 무마하였고, 이런 노력은 그의 생애 기간동안 지속된다. 아우구스투스에게는 은-달란트 1,000개(희랍 드라크마로는 100만개)를, 황제비 리비아에게는 그 절반정도를, 황제측신이나 가족들에게도 각각의 뇌물이 제공되었다 (Josephus). 헤롯은 자신의 값비싼 시설물들과 건축비용을 충당할 다른 세수원을 확보하는데 힘썼고, 그가 본토 왕국에서 매년 거두어들이는 세수원은 대략 1천 달란트(금화)에 이르렀다 (Bruce).10)
헤롯의 통치아래서 백성들은 세금으로 인하여 힘겨웠다. 외교비용 외에도 그의 지배를 지탱시키는 비용은 무거웠다. 한 예로써 주전 20년경 왕은 세금의 삼분의 일을 감세시킨 예가 있었다. 그보다 5년 앞서서는 나라에 기근이 있었는데, 왕의 국고에 있던 금과 은접시로써 에집트의 식량을 사들일 수 있음을 확인한 적도 있었다. 헤롯 1세의 사후, 백성들의 첫 요구사항은 유대의 분봉왕 아켈라우스에게 매년마다 내는 세금의 감면이었다.
아켈라우스
헤롯 1세 사후, 그의 왕국은 황제의 허락 아래 세 아들에게 삼등분된다. 유대와 사마리아는 아켈라우스에게 돌아갔다. 헤롯이 죽은 후, 갈릴리지역과 유대지방은 민란으로 소란해진 적이 있었다. 사마리아가 이 봉기에 참여하지 않고 평화를 지켰다는 이유로써 황제는 그 상급으로 분봉왕 아켈라우스에게 할당된 세금 중에서 사분의 일을 탕감해주었다 한다.
아켈라우스의 봉토에 매해 메겨지는 세금은 400~600달란트 정도였다 (Bruce). 백성들은 당연히 세금을 조달하는 일에 심한 중압감을 느꼈다. 아켈라우스는 부친의 장례식에서 세금감면을 호소하는 요청을 받았는데, 충분한 인내를 가지고 경청했으며, 대중으로부터의 호의를 얻으려고, 로마로부터 귀환하면 청원을 배려해준다고 약속한다. 귀국 후 왕위계승 기회를 확보하려는 입장 때문이었다. 그러나 그가 아직 로마에 있을 때 유대인 사절단이 로마에 와서 황제 아우구스투스에게 알현을 청하고, 그들의 땅이 헤롯가문의 지배에서 해방되기를 청원한다. 이들의 희망은 아켈라우스 즉위이후 세금상승을 막고자 함이었으리라. 이런 사건들에 영향받았는지 실상 왕의 즉위 후에도 매년 내는 세금이 크게 오르지 않았다고 한다. 그러나 수주간 후에 아켈라우스는 백성을 착취하던 부친의 아들임을 유감없이 발휘하였다. 백성들의 희망은 그들의 땅이 시리아 봉토의 일부에 편입되어 황제 직속세만 내는 쪽으로 탄원한다. 감세의 노력은 필사적이었다. 우위에 있는 총독 권위아래에서 헤롯 1세 때보다 경제적으로 국내안정을 찾고자 한 노력이었다.
시리아 총독의 속국
아켈라우스는 사마리아와 유대의 분봉왕으로 추인된다. 세금멍에는 높았다. 십년 후 황제는 그를 퇴위시키고, 그의 지배가 너무 압제적이라는 이유로써 그를 가울 Gaul 지방으로 추방하였다.(주후 6년) 이후 유대인들은 그들의 요구대로 로마의 직속 세금원으로 수용되었다. 유대는 로마의 제3등급 봉토가 되었다. 로마황제가 임명한 총독 prefect; procurator 에 의한 직할통치로 들어갔다. 이런 분류아래서 유대인은 로마에 주민세(머릿세)를 내도록 되어있었고, 시리아총독 사절 감독 하에 인구조사가 실시되었을 것이다. 토지에 대한 세(경작세 tributum agri 혹은 토지세tributum soli)는 매해 생산된 수확이나 가축의 이득금에 대한 추산으로 매겨졌다. 동시에 개인 소유재산에 대한 세 tributum capitis 를 냈다. 시리아총독 퀴리니우스의 산출기준을 알 수는 없다. 로마의 표준산정치에 따랐을 것이다. 지역에 주둔한 군대유지비 및 그 행정비 정도의 세금이었을 것이다. 11년후 시리아와 유대가 연대하여 황제에게 제출한 세금하향탄원 기록을 볼 수 있다 (참조: Tacitus).
총 수입의 40% 세금
간접세 종류(관세, 무역세···)도 많았다. 이것들도 주민세 외에 우선적으로 부과되었다. 유대지방의 유대인들은 재정지출 부담이 특별히 무거웠다. 로마의 공세(貢稅)와 국내의 의무세(분봉왕), 예루살렘성전 유지에 필요한 종교법에 따른 세금도 의무사항이었다. 상급 제사장들의 생활비, 레위인, 성전종사자들 생활비, 성전 일상 근무자들 Temple-servants 을 위한 경비를 충당해야만 했다. 머릿수에 따라 매년 내는 주민세(인두세)는 반-세겔인데 종교생활과 관계되어 지출하는 경비(세금과 유사)는 그 이상이었다. 십일조는 이런 목적의 정규지출이었고, 신성한 종교국가유지를 위하여 엄격히 구분하였다. 신명기 법률, ‘제 2의 십일조’는 종교심에 따라 선택사항이었으나, 이 당시 유대인은 삼년마다 의무화되고 있었다. 세금부담이 감당하기 어려운 것이었음을 예상케 한다. 엄정한 데이타로 가상치의 세금액을 산출하기는 어렵지만, 세금의 총액은 총 수입의 40%에 육박했을 것으로 추산된다 (Bruce).11)
라. 새로운 교리와 예루살렘의 긴장
가이사의 세금에 대한 질문은 세금자체의 고통만이 중요이유였을까? 나라를 불붙게 한 사회적 요인은 또 있었다. 시리아 총독 퀴리니우스가 실시한 주후 6년의 인구조사 때에 유대지역에는 종교적으로 새로운 교리를 앞세운 새로운 학파가 발생한다. 이들을 개혁파 또는 혁명파로 부른다 (M. Hengel).
새 교리에 따르면, 로마에 바치는 인두세는 이스라엘의 종교적 신성성 theocratic ideas 에 위배된다는 주장이었다. 로마인은 이교도이므로 납세하지 말아야 한다는 교리이었다.
이런 운동의 시발은 ‘가말라의 유다’가 제창하였다. 유대인의 제 4의 교리로 분류된다. 바리새파, 사두개파, 엣세네파에 이어 제 4의 철학으로 분류했다. 철학사상을 따라 분류하던 관례대로 유다를 ‘소피스트’로 불렀다. 유다는 이교도지배자에게 세금 내는 일을 죄악으로 주장하는 종교적 실천가였다.
이스라엘에 선례가 없는 교리이었다. 이스라엘과 유다가 타국의 지배아래에서 세금을 내는 신민 tributary 이었을 때, 다른 지도자들과 예언자들은 백성의 불성실에 대한 야웨의 심판이 내렸다는 입장이었다. 하나님이 높이실 때까지 견딜 수밖에 없었다. 때가 찰 때까지 이교도지배자들의 공세를 감수하는 신민이었다. 세금저항 행위는 야훼를 향한 반역으로 여겨졌다.
시드기야가 느브갓네살의 공세를 파악하고 거부했는데, 그에 앞서 야웨의 이름으로 느브갓네살의 봉신이 될 것을 서약했다는 점이다. 에스겔은 이것을 죄악으로 책망했다. (겔 21:25 이하) 예레미야도 시드기야를 경고했다. 느브갓네살은 야웨의 종이며, 야웨가 그에게 왕의 주권을 허락했으니 유다의 안전은 바빌론 멍에를 순종하는데 달렸다고 말한다.(렘 27:4이하) 이방인 지배자에 대한 세금 내는 관례는 후기예언시대를 통하여 지속된 태도이었다.(학 2:20이하, 슥 4:7, 말 1:8)
페르시아의 세금체계가 주전 331년 이후 알렉산더와 그 후계자들에게 답습되었다. 이런 세금멍에는 하스모니아의 시몬(주전 142년)이 독립을 유지할 때까지 지속되었다. 하스모니아 왕조아래의 독립경험은 주전 63년 이후의 로마정복의 고삐에 대하여 더 큰 괴로움을 맛보게 하였다. 쿰란공동체의 경건한 유대인들은 ‘솔로몬의 시편들’에서처럼 선지자들의 아들임을 자처하여, 로마의 침략을 하스모니아 가문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으로 간주하고 있다.
최초로 반-세금 반란은 가말라의 유다와 바리새인 사독에 의해서였다. 봉기는 곧 진정되었다. 그러나 ‘제 4의 철학’은 꺼지지 않았다. 이 저항운동이 주후 70년의 재난-유대전쟁-을 불렀다는 입장이다.(요세푸스) 가말라의 유다는 셀롯당의 창시자로 여겨지며, 가이사에게 세금 내는 일을 유대종교심의 죄악으로 보는 점은 민중에게 호소력이 있었다. 일반대중의 인기를 얻었다. 애국적이고 경제적인 관점에서 가이사의 세금은 많은 유대인을 분노케 하였다.
마가에 따라 셋돈-질문사건 발생 날짜를 추정해 볼 때, 유월절의 주간 Holy Weeks 이었는데, 바로 이즈음에, 유혈저항운동이 예루살렘에 있었고, 바라바가 이 민란의 주동자였다 (Bruce, 요 18:40 참조). 그래서 셋돈질문에 쏠리는 예루살렘청중의 관심은 집중되었을 터이고, 이 까다로운 사회문제에 해답을 구한 의도는 단순한 재미로써나 순수한 종교적 해석을 묻는 질문이 아니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7. 다양한 해석의 가능성
신약시대 유대인들은 주머니 속에 어떤 화폐를 몸에 지니고 다녔을까? 당시에 성전헌금은 두로 화폐가(유대와 변방에서) 사용되었다. 이런 행위가 유대인이 두로 지배권을 인정하는 행위는 아니었다. 두로 지역도 로마의 속국화되어 있었다. 두로에서 화폐가 주조되었고, 드라크마로 불리는 것들이었다. 두로 화폐에는 지배자의 형상이나 이름이 새겨져 있지 않았다. 그런 이유로 성전세금은 두로 화폐를 사용했지만 정치적인 이유는 없었다. 예수의 답변은 질문 속의 음모, 그 특별한 성격과 유대인의 고통에 대한 명확한 입장정리가 포함된 말씀이었다. ‘데나리온’은 주조한 자의 이름과 형상과 함께 세금납세의 의미가 새겨져 있었기 때문이었다.
답변 속에는 율법문제도 포함되어 있다. 제 2계명의 우상숭배금지 일탈이 그것이다. 율법에 엄격한 정통파 유대인들의 눈에 황제형상이 새겨진 화폐는 불경스러운 것이었다. 3세기 랍비저술에 화폐에 새겨진 초상에 눈조차 돌리지 않고 일생을 지냈다는 기록도 있다.12) 어떤 엣세네 일원들은 자기수련의 실천생활에 동전을 스치는 일조차 기피했다고 한다. 형상을 새겨 넣는 화폐는 제조해서도, 몸에 지니고 다녀서도 안된다고 믿었다 (히폴리투스 증언). 그렇다면 예수의 답변 속에는 질문자들의 위선을 반격하는 의미도 함축되어 있지 않았을까? 세금 내는 셋돈은 이방인들의 손에서 주물러지는 화폐이니만큼 경건한 유대인이라면 이방인들의 돈을 이방인에게 즉시 되돌려주는 것이 이치 아닌가라는 반격은 아닐까?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께 바치라’는 뜻은 무엇일까? 문형상 이 말귀는 첨가어이다. 그러나 어느 학자는 이 말이 첨가어가 아니고 답변의 핵심어라고 말한다.13)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란 답변은 피상적이란 해석이다. 하나님께 속한 것 중에 이스라엘의 땅도 하나님의 것이다. 땅의 소산은 어떤 것도 이방인 손에 넘기지 말라는 말이라고 해석한다. 이런 관점은 적절한 해석이 아닌 듯하다.
예수께서 청중이 독자적으로 이해하도록 그런 요점을 주지시키지 않았다. 열성당원이 알아듣고 예수를 로마정청에 탄핵하는 일을 중지할 수 있었던가? 아니다. 이스라엘 땅이 하나님께 속한다는 주장이 경작소득에 대한 세금 tributum agri (Soil) 과 주민 인두세 tributum capitis 를 면제할 수 있었을까? 아니다. 황제얼굴을 담고 있는 데나리온에 대한 예수태도는 그 돈이 자명하게 ‘가이사의 것’이란 답변이었다. 무엇이 하나님께 속한 것인지 눈에 보이는 형상과 비문으로 판명하여 주인에게 돌려주라는 답변이시다.
보다 중요한 질문 하나가 있다. 예수는 제 4철학인 열성당의 입장을 거부하고, 예레미야처럼 선지자들의 전통적 입장을 견지했을까? 마 16:14에는 당시 사람들이 예수를 예레미야로 보고있는 관점이 나온다. 예수의 로마에 대한 무저항 입장이 예레미야의 바벨론에의 복종태도와 동일한 관점이었을까? 그래서 국가배반의 태도로 볼 것인가?
유대지역의 왕조시대 말기에 예레미야와 같은 태도는 최고의 애국적 입장으로 받아졌다. 이런 태도는 그대로 지속되었다. 주후 30년, 예루살렘의 평화를 위하여 예수자신도 간절히 기도하셨다. 도시의 안녕이 보장되도록 노력하였고 무장봉기를 지원하는 사람은 없었다. 하나님의 왕국은 현세의 세계제국들을 능가하는 것이었지만, 하나님의 왕국의 승리는 인간의 폭력에 의한 것이 아니었다.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에서 예수의 답변은 다음과 같다는 주장이 있다. ‘황제의 명령을 복종하라. 그렇게 함으로써 하나님의 명령도 수행되는 셈이다.’ 혹은 ‘가이사의 명령을 지킴에 있어서 하나님의 명령을 깨는 일이 아니라면 복종하라’는 해석이다.14) 재미있는 말이나 설득력이 없는 해석이다.
혹자는 다른 견해의 해석을 제시한다. ‘하나님께 속한 것’은 바로 성전세금을 뜻한다는 견해이다. ‘가이사의 주민세는 물어야 한다. 동시에 하나님께 바치는 반 세겔의 일년세도 드려야 한다’ ‘지상에서는 주민세의 정당성 여부를 묻는 사실자체가 정치적인 난제의 개입을 뜻한다. 오직 말없는 묵인으로써만 진정되는 질문인 것이다. 하나님의 아들들과 그 나라의 백성을 그들의 참된 임무에 돌려놓는 길은 이 방법이 최선이다. 납세야말로 하나님 사람들의 마음과 에너지를 자유케 하는 방법이다’고 한다.15)
이런 입장의 자료가 마 17:24이하에 있다. 그러나 이 사건의 해석에 관련시키는 것은 조화가 어렵다. 예수는 돈의 가치에 대하여 매우 낮게 언급하였다. ‘맘몬’으로 부르고 있다. ‘가이사의 것은 그에게 돌리라’한 말이 돈의 가치를 향상시켜서 해석될 말은 아니다. 그저 가이사의 돈을 임자에게 돌려주라 그뿐이다. 하나님께 돌아갈 존귀와 영광이 돈은 아니다. 성전세금이라 할지라도 그것으로 하나님의 권위를 평가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하나님께 바칠 것’은 한 인간의 삶 전체로 드릴 것이리라. ‘하나님의 나라에 복종하는 일’은 가이사의 돈을 그에게 돌리는 일로 혼합되거나 타협의 사안이 될 수 없다.
청중 속에 열심당원이나 동조자들이 있었다면, ‘예수의 답변은 통탄을 금치 못할 타협의 말’이었을 것이다.16) 가이사는 하나님의 백성에게서 세금을 청구할 권리가 없다는 열심당의 주장은 거부되었을 뿐 아니라, 하나님께 속한 이스라엘의 토지와 개인재산에 대하여 가이사세금을 인정한다는 생각을 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질문자들은 그를 얽어매려던 노력에서 기대했던 이득을 얻을 수 없었다. 답변에서 예수는 로마에 대한 세금실천을 묵인하였고, 총독에게 탄핵할 기회도 열리지 않았다. 국가독립에 대한 청중의 감상주의 Sentimentalism 에 예수가 동조하여 정치적 쟁점을 발화하는 빌미에 걸리지도 않았다. 이교도지배자의 형상과 이름이 새겨진 화폐는 소유주에게로 돌려라. 이런 화폐를 경건한 유대인이라면 몸에 지니고 다니지 않을 것이다. 가이사가 그 자신의 화폐를 거두어 간다해도, 이스라엘 사람은 그 누구도 진정한 자유에 제한을 받는단 말인가? 이스라엘공동체는 총체적으로 그 자체로 남아지게 될 것이 아닌가? ‘하나님의 것’-‘하나님께 속한 모든 것’이 ‘가이사에게 돌아갈 것’보다 훨씬 중요한 부분으로 남아지는 것이 아닌가? 가이사 화폐를 돌려준다 해도 너희에게는 잃은 것이 없다. 너희 몸과 마음과 뜻을 다하여 믿음에 서라. 하나님은 가이사로 인하여 ‘자신의 것’이 탈취되지 아니한다. 가이사에게 바치든지 다른 이에게 바치든지 어떤 이유도 관계되지 않는다.
예수는 말의 딜레마도 벗어났고, 그 자신의 사역의 중심으로써의 하나님의 나라를 오히려 되강조할 수 있게 되었다. 질문사건이 발생하는 절기 중간시점에서도 예루살렘에서 당시 민중에 널리 호응되던 독립열망의 불을 당긴 호소는 하지 않았다. 예수의 답변은 오히려 예루살렘을 평온케 하는 답변이었을 것이다.
예수의 답변은 변조되고, 음모자들은 그를 엉뚱한 죄목으로 고소하였다. 빌라도 앞에 어떤 혐의를 씌웠던가? 누가의 표현에는, “가이사에게 세 바치는 것을 금하고”(눅 23:2)라는 고소이유를 삽입한다. 마가의 사건기록을 옮겨 쓰고 있으나, 고소자들이 후에 이 사건을 조작하여 혐의를 씌웠다는 점을 더 분명히 설명하려고 한다. 그리고 예수가 자신을 유대인의 왕으로 주장했다는 혐의를 넣어 재구성함으로써 이 질문-답변사건이 실제의 예수의 답변과는 전혀 다르게 그들의 계획대로 변조되어 갔다고 누가는 보고해 준다.
“우리가 이 사람을 보매 우리 백성을 미혹하고, 가이사에게 세 바치는 것을 금하며, 자칭 왕 그리스도라 하더이다.”(눅 23:2)라고.
누가는 법정심리에 대한 전승자료를 따로 가지고 있었을까? 마가의 자료가 내포한 자료를 기초로 하여 아마도 예수재판에 관한 독립된 기록을 접하여 삼중혐의로 고발되는 예수탄핵 죄목을 위와 같이 해설하는 것이 아닐까? 누가의 기술은 당시 로마의 법정 심리의 과정과 고발 혐의의 기술적 요건에 일치하고 있다.17)
8. 설교를 위한 생각들
1. 신약시대의 유대사회는 유일신관에 입각한 종교심의 정도, 또는 사회적 환경과 상황에 따라 여러 종교당파들로 나뉘어 있었다. 당시 사회의 종교당파를 상세히 이해하는 일이 신약 메세지 산출에 중요하다. 교회는 세상의 권세와 어떤 관계를 유지해야 할까? 교회의 사회적 영향이 증대되는 오늘의 시점에서 점점 복잡한 반응으로 나타나지 않을까? 사회와 국가의 심각한 이슈들을 수용하면서도 ‘하나님의 나라’ 증언을 초연하게 실행할 수 있을까?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께 바치라’)
2. 설교자는 참으로 고독한 사람이다.
오늘 우리의 목회현장에는 세상의 문제들이 모두 밀려 들어오고, 밀려나간다. 하루아침에 또는 단숨에 이런 문제들 중 어떤 것을 설교자-목회자가 해결할 수 있단 말인가? 유대사회의 세금에 얽힌 이야기들과 역사적 멍에가 백성에게지운 굴레는 실로 비참한 것이었음을 들여다 볼 수 있다. 오늘 설교자는 교회를 통하여 하나님의 나라를 선포한다. 실제로 도와야 할 민초들의 슬픈 멍에를 풀어주는 일에는 단절과 갈등이 없었으면 싶다. 예수와 바리새인들(배후그룹을 포함하여) 사이의 갈등과 대화의 단절이 설교자와 이 시대의 모든 이들과의 관계는 아닌 듯하다. 설교의 기회가 열려있고, 설교할 수 있는 소명에 감사하는 믿음에 섰으면 좋으리라. ‘셋돈’문제처럼, 심각한 문제-우리시대의 문제를 가볍게 넘기는 자세는 설교자의 태도가 아니다.
3. 오늘 우리사회에서 ‘셋돈’문제처럼 뜨겁고 복잡한 문제는 무엇일까? 지역 감정문제, 남북통일과 이념문제가 그에 못지 않은 이슈들이다. 설교자는 하나님의 음성을 들어야 하겠다. 내면적 소명의 소리-믿음의 말씀을 받아 치유하는 강단을 세우자. 잘못하면 심판 보좌 앞에서 꾸중들을 것 같다.
4. 설교자는 살면서 죽어 가는 사람들이다.
결국 세상의 세력-음모의 클라이막스가 있을 것이다. 설교자의 죽음은 널려있다. 음모자들과 대치되어 있는 사람들이 설교자들이다. 그들은 끊임없이 교묘한 질문을 가져온다. 마귀는 언제나 사람들과 그럴듯한 이슈들을 동원한다.
오늘의 문제들에 대한 정확한 정보와 이해가 필요하다. 언제나 적대자들의 음모에 대비하고 있어야 한다. 그래도 못 이기면, 하나님이 주신 ‘죽음’이다. 주님도 토론에서 이기셨으나, 십자가의 수난은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크게 보아 셋돈-질문 사건은 그리스도의 수난기사의 서론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