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3일부터 9일까지 우리역사문화연구모임에서 답사할 예정인 요서지역의 주요 지역에 대해 안내하는 글을 올리도록 하겠습니다.
열하 피서산장
열하(熱河, 현 承德)는 청나라 황제가 임시로 머무는 곳인 행재소가 있는 곳으로, 북경에서 동북쪽으로 420리(약 165㎞) 떨어진 곳에 있습니다. 청나라 황제는 심양(봉천)에 제사를 지내러 갈 때마다 요양과 휴식을 위해 청더(承德)에 머물렀는데, 온천이 있고 경관이 아름다운 이곳에 반한 강희제가 1703년에 별궁을 짓기로 결정합니다. 1790년까지 87년에 걸쳐 완공된 것이 피서산장(또는 피서별궁, 열하행궁)입니다. 피서산장은 청나라 시기 베이징 다음가는 제2의 정치 중심지가 됩니다. 피서산장의 궁전권역은 정궁, 송학재, 만예송풍, 동궁 4그룹의 건물로 구성됩니다. 그리고 자연경관 권역에는 호수(정자, 누각 등), 평원(군사훈련장, 목초지), 산악 구역으로 나뉩니다. 그리고 궁전을 에워싼 10㎞ 성벽 바깥에는 외팔묘(보타종승지묘(티베트 라싸의 포탈라궁을 본 떠 지은 사원), 수미복수지묘, 보녕사, 안원묘, 보락사 등) 등 12개의 사원이 있습니다. 이곳은 1994년 세계문화유산으로 선정되었습니다.
현재 피서산장 정궁 지역은 피서산장박물관으로 개방되어 있습니다. 당시 청나라 궁중 문물과 궁중 생활 등을 볼 수 있습니다. 정궁 지역 안으로 들어가면 담박경성(淡泊敬誠) 건물을 만나는데, 이곳은 황제가 중요한 축제를 열거나 외국 사절을 만나거나 백관이 임금을 배알하는 경복궁의 정전(正殿)과 같은 역할을 한 곳입니다. 다음 건물인 사지서옥(四知書屋)은 황제가 조정에 나가기 전에 옷을 갈아입거나 잠시 휴식을 취하는 곳이면서, 일상적인 업무를 처리하고 신하들과 만나던 곳입니다. 조선 사절단이 이곳에서 강희제를 만나기도 했습니다. 침전 건물 가운데는 연파치상(煙波致爽)은 황제의 주요 침전으로 사용된 중요 건물입니다. 이곳은 때로 중요한 정무가 이루어지는 공간이기도 했습니다. 또 운산승지(雲山勝地) 건물은 1층에 무대를 설치해 황제와 후궁이 공연을 볼 수 있는 곳이며, 2층은 불당으로 사용된 곳입니다.
궁전구 안 박물관을 둘러보고 나면 호수 구역으로 연결됩니다. 열하의 정원은 중국 4대 정원 중 가장 규모가 커서, 호수를 관통하려면 1시간이 넘게 걸린다고 합니다. 호수에는 관광용 배가 운행되기도 하며, 경회루와 비슷한 연우루라는 정자 건물도 있습니다.
조선의 사신단이 청나라를 방문했을 때, 종종 청 황제가 열하 피서산장에 머무는 경우가 있으면 열하까지 찾아가게 됩니다. 열하를 방문한 조선인 가운데는 연암 박지원이 있습니다. 박지원은 1780년 청나라 건륭제 칠순을 축하하기 위한 조선의 진하겸사은사에 정사 박명원의 자제군관 신분으로 열하를 방문합니다. 박지원은 6월 24일 압록강을 건너 8월 5일 연경(북경)에 도착한 후, 9일까지 다시 열하로 이동합니다. 박지원은 며칠간 산골 길을 다니다가 8월 9일 열하에 들어가니, 궁궐이 장려하고 좌우에 시전이 10리에 뻗쳐 실로 장성 북쪽의 큰 도시라고 말합니다. 그는 봉추산(경추산)의 풍경에 놀랍니다. 그는 열하성(熱河城)은 높이 세 길이 넘고, 둘레가 30리나 된다고 증언합니다. 박지원은 8월 14일까지 열하의 ‘태학(太學-열하문묘)에 머물게 됩니다. 그는 이곳에서 청나라 학자들과 교류합니다.
박지원은 『열하일기』 <태학유관록>과 <피서록> 2부분에서 열하 피서산장을 방문하여 보고 느낀 것을 적었습니다. 열하에는 36개소의 이름난 경치가 있는데, 그곳마다 강희제가 전각 하나씩을 지었다고 했습니다. 박지원은 정사와 부사가 열하 궐내로 들어갈 때 따라 들어갔는데, 피서산장이란 편액을 보게 됩니다. 유교에 매몰되어 청나라를 오랑캐 나라로 비판하던 조선 사신들에게 청 황제는 자신의 활불로 섬기는 티벳 라마승려를 만나러 가라고 명합니다. 하지만 조선 사신단을 처음에는 거절하다가, 결국 황제가 직접 명을 내리자, 어쩔 수 없이 라마 승려를 만나러 갑니다. 그러면서도 조선 사신단은 속으로 불평합니다. 박지원이 태학에 돌아와서 보니, 중국의 사대부들은 활불이라 불리는 라마승려 반선을 만난 것을 영광으로 생각하고, 그의 도술의 신통함을 극구 칭찬하는 것을 봅니다. 박지원은 이런 중국 사대부의 태도를 달갑지 않았습니다. 실학자 박지원은 청나라의 불교 옹호에 대해 비판적이었고, 그래서 외팔묘에 해당하는 라마 불교 사원에 대해 언급하지 않으려고 합니다. 대신 박지원은 열하에서 말, 소, 당나귀, 양을 치는 사람들을 만납니다. 그는 이곳에서 조선이 가난한 것은 목축이 제대로 되지 못한 까닭이라고 지적합니다. 말과 나귀, 소가 많았다면 수레가 많았을 것이고, 기병도 육성했을 텐데 그러지 못한 조선의 현실을 꼬집습니다.
열하 피서산장은 청나라의 다민족 통치 전략의 산물입니다. 조선은 이곳에서 청나라의 실체를 제대로 인식할 수가 있었지만, 여전히 선입견에 사로잡혀 제대로 보지 못한 것이 많았습니다. 조선에게 문명 충격의 무대였던 이곳을 우리 역사 성찰의 현장으로 삼아야 할 것입니다.
열하 답사는 시간이 충분하다면 궁성 지역 뿐만 아니라, 외팔묘 지역, 특히 포탈라궁을 연상하게 하는 보타종승지묘 또는 보녕사를 답사하겠지만, 이번 답사에서는 시간이 많지 않기 때문에, 궁성을 중심으로 답사하도록 하겠습니다. 규모가 웅장하고 양식이 독특한 청나라 건축예술의 정수인 외팔묘 등을 다 볼 수 없는 것이 아쉽지만, 세계문화유산 열하 피서산장은 한 번쯤은 돌아보아야 할 곳입니다. 2006년에 찍은 피서산장 사진을 올려봅니다.
이하는 보타종승지묘(포답랍궁)
이하는 보령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