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샤론강단-429 계명과 전통(마가복음7장1-8절)
성경말씀은 마가복음 7장 1절에서 8절까지 봉독합니다.
[마가복음 7장]
1 바리새인들과 또 서기관 중 몇이 예루살렘에서 와서 예수께 모였다가
2 그의 제자 중 몇 사람의 부정한 손 곧 씻지 아니한 손으로 떡 먹는 것을 보았더라
3 (바리새인들과 모든 유대인들이 장로들의 유전을 지키어 손을 부지런히 씻지 않으면 먹지 아니하며
4 또 시장에서 돌아와서는 물을 뿌리지 않으면 먹지 아니하며 그 외에도 여러 가지를 지키어 오는 것이 있으니 잔과 주발과 놋그릇을 씻음이러라)
5 이에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이 예수께 묻되 어찌하여 당신의 제자들은 장로들의 유전을 준행치 아니하고 부정한 손으로 떡을 먹나이까
6 가라사대 이사야가 너희 외식하는 자에 대하여 잘 예언하였도다 기록하였으되 이 백성이 입술로는 나를 존경하되 마음은 내게서 멀도다
7 사람의 계명으로 교훈을 삼아 가르치니 나를 헛되이 경배하는도다 하였느니라
8 너희가 하나님의 계명은 버리고 사람의 유전을 지키느니라
[마가복음 7장]
1 바리새인들과 또 서기관 중 몇이 예루살렘에서 와서 예수께 모였다가
그 모임에 왔다가 감시한다든지 이런 생각을 가지고 왔겠죠.
2 그의 제자 중 몇 사람의 부정한 손 곧 씻지 아니한 손으로 떡 먹는 것을 보았더라
우리 성경 번역할 때는 ‘빵’이란 말이 그렇게 익숙하지 않아서 ‘떡’이라고 했는데, 사실 떡과 빵은 상당히 다르죠.
3절과 4절은 보통 더 일찍 발견된 사본에서는 나오지 않고, 후대 사본에서 나오는 그런 형태죠.
괄호안에 있는 것은 원래는 없었을텐데, 후대에 누가 설명한답시고 첨가했던 것인데 본문으로 들어온 것입니다. 그래도 도움은 되죠.
3 (바리새인들과 모든 유대인들이 장로들의 유전을 지키어 손을 부지런히 씻지 않으면 먹지 아니하며
4 또 시장에서 돌아와서는 물을 뿌리지 않으면 먹지 아니하며 그 외에도 여러 가지를 지키어 오는 것이 있으니 잔과 주발과 놋그릇을 씻음이러라)
열심히 씻고 또 씻고 하는 건데, 특히 식사할 때에 포크나 무슨 젓가락으로 먹는 것이 아니고, 그 사람들은 빵을 그냥 손으로 집어 먹습니다.
우리나라 사람들도 바게트처럼 그렇게 생긴 빵들은 대개 손으로 뜯어 먹는 거죠.
그런데 사실 이스라엘 사람들이 먹는 빵이란 게 과자예요. 과자..
우리 같으면 딱 소리가 납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실은 손 안 씻고 먹어도 문제가 없는 거예요.
우리 떡 같으면 떡떡 붙으니까 손에 있는 게 혹시 그럴지 몰라도, 딱 쪼개지는 빵 같으면 손 안 씻고 먹어도 큰 문제가 없을 텐데, 어떻든 씻는 것은 좋은 거죠.
젓가락으로 먹는다할지라도 식사하기 전에 씻는 것은 좋은 거예요.
그렇지만 좋은 것이지만 그것을 가지고 꼬부랑한 눈을 가지고 남을 감시하고 정죄할려고 딱 폼 잡고 있는 이런 모습들은 별로 아름다운 모습이 아니죠.
오늘 우리가 교리나 어떤 신학이나 율법이나 규례나 율례 이런 것이 있다할지라도 그것은 내 삶에 적용하는데 열심이어야지, 그것을 가지고 항상 남을 정죄할려고 하는 그런 자세는 꼭 우리가 어디가서 욕먹기 알맞다는 거예요.
조심해야 돼요.
심지어 믿는 사람에 대해서 했는데, 믿는 사람들이 안 믿는 사람들의 행동을 정죄하는 그런 눈으로 보면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우리 속에 사랑이 식어버립니다.
그래서 그 씻지 않는 손 이런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사람을 사랑하는 마음인데, 그런 게 다 식어져버린다는 거죠. 조심해야 돼요.
그래서,
5 이에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이 예수께 묻되 어찌하여 당신의 제자들은 장로들의 유전을 준행치 아니하고 부정한 손으로 떡을 먹나이까
이런 것을 보면 예수님이 일단 그런 장로들이 만든 전통과 유전, 유전(遺傳)이란 말은 ‘파라도시스라’고 하고 영어로 트레디션(tradition)인데, 전통(傳統)입니다.
전통은 사실 지금부터 2천년 그 이전때에 음식을 먹을 때 손을 씻으라는 전통을 세운 것은 어느 모로 보나 대단한 거죠.
바리새인들 서기관들 이런 사람들이 만든건데, 씻으라는 말이 율법에 있기는 하지만 그래도 그것을 지나치게 과잉으로 해석해가지고 우리가 더러운 게 묻었을 때는 씻는 게 좋죠.
그런데 늘상 습관적으로 씻는다든지 또 안 씻고 마른 빵 먹는 것을 정죄하고 이런 게 옳지 않다는 거죠.
그래서 손 씻는 것은 좋은 것이지만 그것을 가지고 탁 감시를 하러 와서 지켜보고 있다. 일부러 파송되어 왔어요.
그런데 또 재미있는 것은 예수님께서 그런 전통을 싹 무시하고 참 계명과 율법 본래 정신에 충실하지만 그런 형식적으로 만든 것에는 예수님이 자유하니까 예수님을 따라서 같이 한 2-3년 오는 중에 제자들 중 몇은 예수님과 함께 그런 장로들의 유전에 대해서 상당히 자유롭게 했던가 봐요.
그러니까 그런 사람들이 와 있음에도 불구하고 손 씻는 절차없이 그저 빵을 먹었던 모양인데..
여러분 제가 가끔 드리는 얘긴데, 제자들의 이런 저런 사소한 잘못에 대해서 시비를 걸어왔을 때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참 끔찍하게도 변호하시는 모습을 봅니다. 제자들을 보호하시고 변호하는 그런 모습을 볼 수 있어요. 범사에..
결코 제자들이 잘한 것이 아닌데도 충분히 예수님께서 변호하시는 거예요.
여러분 예수님을 보혜사(保惠師), 우리를 변호하시는 분, 우리를 지키시는 분, 책임지시는 분. 그런 얘긴데..
재판관이 우리 아버지이고.. 그렇지 않습니까?
최후의 심판하실 재판관은 우리 아버지이시고, 또 변호하시는 분도 예수님이시고 그러면 마귀가 참소해봤자 큰 문제 없겠죠.
재판석에 안 가봐서 그래..
재판을 한번 받아보면 그것 참..
변호하는 사람이 얼마나 변호를 잘 하느냐에 따라서 운명이 달라지는데..
저도 재판을 두번 받아봤어요.
별로 선량한 사람이 아니죠.
안 받는 게 잘 하는 건데..
한번은 예수 안 믿을 때 입니다.
술먹고 까불다가 그것도 무학산에서..
무학산에서 까불다가 잡혀가지고 까딱하면 5.16 민족도로 닦는데 끌려갈뻔 했어요.
즉결로 잡혀 넘어가서..
마침 참 죄 없는 것으로 해서 나오긴 나왔습니다만, 죄 없는 것도 아니죠.
사람 때린 것은 아니지만, 그 패거리와 함께 술먹고 까불었으니까..
그런 적이 한번 있었는데, 별로 죄가 없으니까 한번 받은 것이고..
한번은 저 경기도 지역에 가서 교통사고가 났는데, 나도 잘못한 것이 있지만, 상대방이 술을 먹고 오토바이로 내 차를 받았으니까 아무래도 그 쪽이 더 잘못된 거죠.
그래서 나는 교통사고를 처음 당하니까 또 목사로서 나는 안 다쳤고 그 사람은 많이 다쳤으니까 어차피 내가 빌린 렌트를 한 차가 보험에 들어있으니까 하여튼 피해자에게 범사에 유리하도록 그렇게 해달라고 형사에게 순진하게 그렇게 말했네..
그러니까 그 형사가 온갖 덤태기를 나한테 씌워가지고 자기 지방 사람에게 유리하게 그렇게 하는 거야.
초도 수사를 그렇게 해버리니까 아 이것 중앙선 침범에다가 온갖 것을 가지고 8대 과실을 씌워가지고 구속으로 만들어놨어.
그래가지고 내가 ‘뭬야? 지금 구속되면 되느냐?’
아 이것은 구속이라는 거야.
그래서 할 수 없이 부탁을 했더니 연세 많은 변호사가 구속적부심 서류를 꾸며서 이것은 구속건이 아니다. 그래가지고 구속이 안 되고 한 적이 있었어요.
그 재판 꽤 오래 끌었는데, 상대방이 너무 많이 다쳤거든요. 꽤 오래 걸려서 치료를 했던 모양인데, 그래서 재판을 하는데, 나중에 벌금을 70만원 내라고 하더라고..
내가 못 낸다고 했어요. 내가 잘못한 게 있으면 70만원이 아니라 그 이상도 내겠지만 내가 잘못한 게 없는데 왜 70만원을 내야 되느냐?
하고 벌금 못 낼 이유를 소상하게 써서 검사 판사에게 냈더니 그게 수리되어가지고 벌금 안 내는 것으로 하고, 면허정지 35일에다가 안전교육 받는 것으로.. 그것까지 못하겠다고 못하더라고..
받기는 받았어요.
변호사를 안 사본 사람들은 변호사가 얼마나 중요한가 잘 모르는데..
그래서 이 세상이라는 구조가 공정한 재판이 되면 참 좋겠는데, 그게 참 어렵습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끔찍이 변호하시는 것을 보면 적이 안심이 되는 거죠.
그리고 더 놀라운 것은 나중에 심판이 예수님께서 인자됨을 인하여 심판을 예수님께 다 위탁했다는 거야.
그러니까 예수님 믿으면 예수님 말씀대로 살아버리면 우리가 정죄함이 없는 거죠.
그래서 어떻든 여기 제자들이 썩 잘못한 것은 아닌데 바리새인 서기관들은 그것을 꼬부랑한 눈을 가지고 정죄할려고 했을 때 예수님께서 오히려 그렇게 시비거는 사람들 혼을 냈는데..
7장 6절에,
6 가라사대 이사야가 너희 외식하는 자에 대하여 잘 예언하였도다 기록하였으되 이 백성이 입술로는 나를 존경하되 마음은 내게서 멀도다
이사야 29장 13절에 있는 말씀인데,
7 사람의 계명으로 교훈을 삼아 가르치니 나를 헛되이 경배하는도다 하였느니라
이것은 진짜 우리가 조심해야 돼요.
예수님은 이것을 외식이라 이렇게 보통 말씀하셨는데, 입술로는 하나님을 존경하는 것 같은데, 마음은 내게서 멀도다.
하나님의 마음을 이해하지도 못하고 또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도 아니고 형식적으로 종교행위만 무성하게 또 삶의 아름다운 열매도 없이 잎만 무성한 종교행사만 무성하고 아름다운 열매가 없는..
그게 구약시대를 보고 하는 말이 아니라, 여러분 구약시대는 입술로도 하나님을 존경하는 사람이 없었어요. 별로..
그렇지 않습니까?
아시는 대로 모세부터 말라기까지 누가 입술로 하나님을 존경한 사람 있습니까?
전부 우상숭배하고 엉망이죠.
그리고 말라기 이후에 세례요한까지 400년간 아예 공백기간으로 있다가 겨우 유대교하고 오늘 기독교인들이 상당히 입술로는 ‘주여 주여’ 하고 하나님 공경하는 것 같은데, 마음은 하나님에게서 먼..
그것이 일반 성도들에게도 책임도 있지만, 제가 볼 때 성도들 보다는 목회자에게 전적으로 책임이 있는 것 같아요.
성경강좌할 때마다 강조하고 또 나중에 간증문 같은 것 보면, 하나님 마음을 한번도 자기가 생각해보지 못했다는 거야.
오늘 우리 한국 기독교 한국 강단에서 흐르는 메시지를 들어보면 하나님을 꼭 복주는 기계처럼 생각해요. 복주는 기계.. 성도는 헌금하고 충성하고 기계..
인격적으로 하나님을 이해하게끔 되어 있지 않습니다. 이게..
그러니까 자연히 입술로는 굉장한 찬양을 하지만, 실제 삶에 있어서 마음이 참 하나님께 감사하고 하나님을 사랑하는 그런 쪽으로 가 있지 않는 것 아니냐..
심각한 문제죠.
구약시대 누구보고 하는 말이 아니라, 구약시대에는 입술로도 하나님을 존경하는 사람이 없었다니까..
그래서 유대교라는 게 예수님 오시기 직전에 형성된 그런 모습이고, 그 이후 예수님때 까딱하면 오늘날도 우리도 입술로는 찬양하고 굉장한 것 같지만 마음은 여전히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져 있는 그러면서 우리가 참 깊이 생각해야 돼요.
까딱하면 우리도 외식하는 그런 신앙으로 전락된다는 거죠.
헛되이 경배하는 거예요. 헛되이..
그래서 바른 예배 바른 경배를 할려면 우리가 하나님을 알아야 돼요.
정말 하나님을 알고 믿고, 믿고 알고 이렇게 해 가는데, 하나님을 알아가는데 다른 방법이 없습니다.
하나님 말씀을 제대로 읽어봐야 돼요. 제대로..
8 너희가 하나님의 계명은 버리고 사람의 유전을 지키느니라
오늘 제목이 ‘계명과 전통, 계명과 유전’인데, 계명은 하나님께로부터 온 것이고, 전통 이런 것은 그것은 사람으로부터 온 거야.
전통도 좋은 것은 저는 지키는 게 옳다고 봅니다.
그런데 별로 옳지도 않은 것을 가지고 심지어 교회가 만든 전통 말고, 세상이 만들었던 세상 풍속까지도 어지간히 챙기면서 성경 말씀은 무시하는 그런 사람이 많아요.
동지 팥죽은 열심히 끓여먹으면서 성경말씀은 예사로 무시하는 사람이 많다는 거야.
저는 일부러 팥죽을 아무때나 끓여먹어요. 동지에 안 끓여먹고..
그런데 세상 것을 따라하는데 너무 열심이면서 성경의 계명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계명을 무시하면 안 된다는 거야.
9 또 가라사대 너희가 너희 유전을 지키려고 하나님의 계명을 잘 저버리는도다
심지어 계명도 지키고 유전도 지키면 모르겠는데, 계명을 폐하는데다가 계명을 무시하는데다가 전통을 써먹는 거야.
그래서 이른바 부모님을 공경하라 하는 것은 계명인데, 자기들이 만든 그런 하나님께 예물드린다고 하면 부모공경하기 어렵다. 이게 그냥 일반화되어가지고 하나님 섬기느라고 부모섬기는 것을 소홀히 하는 것을 예수님께서 바로 지적을 한 거예요.
여러분 이것도 혼돈하기 쉬운건데, 하나님 섬기는 것을 우선을 하라 하는 것 때문에, 우리가 까딱하면 교회는 열심이고 교회 헌금은 열심히 하면서, 부모님을 모시는 것은 소홀히 한다든지..
혹시 우리 중에도 충분히 그럴 수 있습니다.
그게 그 나라와 그 의를 구하는 것이다. 저는 그렇게 보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돈에 별로 궁색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돈으로 안 섬겨도.. 이게 헌금하지 말라는 것으로 잘못 받아들이면 곤란해요.
하나님은 돈에 어려운 분이 아니고, 우리 부모님이나 사람은 돈이 없으면 그냥 어렵지 않습니까?
그래서 사람 섬기는 것이 우선이예요.
사람을 잘 섬기는 것이 하나님을 잘 섬기는 것입니다. 사람이 하나님의 형상이니까..
그래서 ‘마음은 하나님께, 손은 이웃에게..’ 그런 표어가 있어요.
구세군 교단에 가면 머리 마음 이런 것은 하나님께, 손은 이웃에게 이렇게 해가지고 그대로 실천해요.
예배와 이웃 사랑, 예배와 자선.. 자선냄비라고 있잖아요.
하나님께는 예배, 이웃에게는 자선. 이게 아주 철저하게 군대식으로 훈련해요.
신학교 공부하는 중에 그것은 저녁마다 거의 저녁마다 당번을 정해서 서울역 영등포 용산역 이런 데에 가서 노숙자들에게 육계장을 끓여서 대접하는 것..
이것을 신학생들이 의무적으로 하는 거예요.
그래서 사람은 우리가 돕지 않으면 굶어죽지 않습니까?
하나님은 우리가 헌금 안해도 굶어죽지 않습니다.
제가 전에도 한번 얘기했죠?
예배드리러 오다가 어떤 사람이 더러 예배에 빠지는 거예요. 이 사람이..
그래서 알아보니까 예배드리러오는 중에 교통사고 난 것을 보고는 지나치지 못해 가지고, 예배에 오는 중이지만 그 사람 병원에까지 해놓고 오니까 예배 다 끝나고 오는 거예요.
그래서 내가 몇번 잘했다.
예배당 안에서 드리는 예배가 아니라 그게 참 하나님이 받으시는 예배다.
그런데 자기는 되게 미안해 하더라고.. 그것을 갖다가..
그래서 지금은 교회 안 다닌다고 해. 그 사람이..
그것 참 어렵죠.
사람이 타고난 성품이 그래요.
타고난 성품이 어려움 당한 사람을 보면 그냥 지나치지 못하는 그런 성품인데,
나는 그게 바로 선한 사마리아인 아니겠는가..
혹시 지금은 교회에 안 다니고 있다할지라도 나중에 나올 수도 있는 문제고..
우리가 자칫하게 되면 하나님께 예배하러 간다면서 그냥 사랑도 긍휼도 다 뿌리쳐버리고 이런 바리새인적인 종교가 되기 쉽다는 거예요.
최고의 계명이 사랑과 긍휼이라는 거예요.
그래서,
10 모세는 네 부모를 공경하라 하고 또 아비나 어미를 훼방하는 자는 반드시 죽으리라 하였거늘
11 너희는 가로되 사람이 아비에게나 어미에게나 말하기를 내가 드려 유익하게 할 것이 고르반 곧 하나님께 드림이 되었다고 하기만 하면 그만이라 하고
12 제 아비나 어미에게 다시 아무 것이라도 하여 드리기를 허하지 아니하여
13 너희의 전한 유전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폐하며 또 이같은 일을 많이 행하느니라 하시고
너희는 잘 하는 거냐?
하고 제자들 감시하고 왔던 못된 사람들에게 예수님께서 호통을 치는 거죠.
예수님께서 여간해서 이렇게 잘 안하는데, 그런 못된 종교냄새만 풍기고 사랑의 향기가 없는 사람을 질책하는 거야.
13 너희의 전한 유전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폐하며 또 이같은 일을 많이 행하느니라 하시고
그뿐 아니라 많다는 거야.
그래서 원래 이 성경 말씀의 본래 주어졌던 의미를 제대로 깨닫고 그것을 실천하지 않고 자꾸 형식으로 형식으로 해서 종교화되어가지고 있는 모습들은 하나님께서 기뻐하지 않는 거예요.
14 무리를 다시 불러 이르시되 너희는 다 내 말을 듣고 깨달으라
15 무엇이든지 밖에서 사람에게로 들어가는 것은 능히 사람을 더럽게 하지 못하되
16 사람 안에서 나오는 것이 사람을 더럽게 하는 것이니라 하시고
17 무리를 떠나 집으로 들어가시니 제자들이 그 비유를 묻자온대
18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도 이렇게 깨달음이 없느냐 무엇이든지 밖에서 들어가는 것이 능히 사람을 더럽게 하지 못함을 알지 못하느냐
‘사람을 더럽게 한다’는 것은 인격이나 영혼을 말하는 거예요.
19 이는 마음에 들어가지 아니하고,
여러분 빵 먹는 게 마음으로 들어가는 것 아니잖아요.
씻지 않은 손으로 빵 먹었다해도 거기에 어떤 불순한 것이 있다해서 마음으로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그냥,
한 고개 넘어가면 그거나 그거나 똑같아.
고개 넘어가면 똥인데..
한 고개 넘어가면 똥이지.. 여러분 차릴 때는 가정주부가 정성을 다해서 보기좋은 떡이 먹기 좋다고 해서 화려하게 차리지만, 꼭꼭 씹어서 토해봐. 별로 모양 안 납니다.
한 고개넘어가면 똑 같아요. 이거나 그거나..
일부러 O-157같은 대장균을 집어먹으면 곤란하지만 그 외에 웬만한 것은 우리 입안에 침속에도 소독작용이 있어요.
그리고 위 안에 들어가면 위산이 또한번 소독하게 되고..
여러 번 거치기 때문에..
애들이 흙을 집어먹고 해서 그것 때문에 비위생적이다 그런 게 아닙니다. 그런 애들이 더 건강해요.
무슨 말인지 이해가 통 안 되는 모양이야.
너무 깔끔하게 살아가지고..
옛날에 어른들이 적당하게 더럽게 길러라. 야성이 있게 길러라는 거예요.
그렇게 할수록 건강합니다.
음식중에 우리가 만약에 좀 고배율 현미경을 가지고 들여다보면 우리가 먹는 김치 된장 속에 꾸물거리는 것 안 보이게 해 놔서 다행이지, 그것 보이면 아무도 식사 못할 거예요.
그래서 가능하면 우리가 기분이라도 손씻고 먹는 것 좋지만, 손 안 씻고 먹었다고 해서 영혼이 더러워지거나 인격이 더러워지는 것은 아닙니다.
예수님께서는 계속 음식이 그 사람 인격을 더럽히는 게 아니다. 이렇게 생각하는 것이니까..
그 다음에 보세요. 19절,
19 이는 마음에 들어가지 아니하고 배에 들어가 뒤로 나감이니라 하심으로 모든 식물을 깨끗하다 하셨느니라
20 또 가라사대 사람에게서 나오는 그것이 사람을 더럽게 하느니라
21 속에서 곧 사람의 마음에서 나오는 것은 악한 생각 곧 음란과 도적질과 살인과
22 간음과 탐욕과 악독과 속임과 음탕과 흘기는 눈과 훼방과 교만과 광패니
23 이 모든 악한 것이 다 속에서 나와서 사람을 더럽게 하느니라
사람의 인격이나 이웃사랑을 더럽게 한다는 거예요.
그러니까 씻지 않은 손으로 먹은 빵보다 더 더럽게 하는 것이 사람 입에서 나오는 것들 사람 마음에서 나오는 것들이 사람을 더럽게 한다.
매우 기초적 초보적 율법은 대개 육체적 물질적 가시적 이런 것들이예요.
그 다음에 두 번째 조금 성숙한 율법이라는 것은 정신적 율법이고,
더 차원높은 것은 영적 내적인 법으로 그렇게..
예수님께서 내적으로 이야기하는데, 유대인들은 맨 껍데기 빵을 씻지 않은 손으로 먹는 것 이런 거예요.
더 깊은 데 더 내면 세계를 말씀하고 있는 거죠.
24절도 우리가 전에 본 내용인데,
24 예수께서 일어나사 거기를 떠나 두로 지경으로 가서 한 집에 들어가 아무도 모르게 하시려 하나 숨길 수 없더라
25 이에 더러운 귀신들린 어린 딸을 둔 한 여자가 예수의 소문을 듣고 곧 와서 그 발 아래 엎드리니
26 그 여자는 헬라인이요 수로보니게 족속이라 자기 딸에게서 귀신 쫓아 주시기를 간구하거늘
여기 수로보니게라는 것은 수리아에 있는 페니키아 여인이다..
수리아 지역에 사는 페니키아 여인..
.. 자기 딸에게서 귀신 쫓아 주시기를 간구하거늘
27 예수께서 이르시되 자녀로 먼저 배불리 먹게 할지니 자녀의 떡을 취하여 개들에게 던짐이 마땅치 아니하니라
굉장히 시험이 되겠죠?
여러분 같으면 ‘썅’ 그러면서 가버리겠죠. 나를 개 취급 한다면서..
굉장히 시험 되었을거야.
물론 여기 ‘개’라는 말이 ‘귀나리온’이라는 말이 개중에서 작은 개예요.
이것을 보통 ‘지소사(指小詞)’라고 하죠? 작은 것을 지칭하는 말인데,
말은 큰 것을 ‘말’이라고 하고 작은 것은 ‘망아지’, 큰 것은 ‘소’이고 작은 것은 ‘송아지’, 큰 것은 ‘개’이고 작은 것은 ‘강아지’.. 그렇잖아요?
우리말로 하면 ‘강아지에게’ 이렇게 해야 맞는 거야.
‘귀나리온’ 하는 것은 작은 것을 가리키는 지소사를 쓰고 있기 때문에,
자녀의 떡을 빼앗아서 강아지에게 던짐이 마땅치 아니하다.
그래도 ‘어’ 다르고 ‘아’ 다르다고, 개 하는 것과 강아지 하는 것이 다르잖아요.
헬라어 원어에 보면 개가 아니고 강아지예요.
강아지에게 던짐이 마땅치 아니하다.
이렇게 하면 1단계 시험인데, 그렇게 하면 딱 여자가 응 하면서 갈 수 있는 거예요. 그렇죠?
그런데 그렇게 하지 않고,
28 여자가 대답하여 가로되 주여 옳소이다,
하지 않고 ‘마는..’
.. 옳소이다마는,
이렇게 얘기한 사람이 신약성경에서 처음이예요. 처음이고 마지막이야.
.. 옳소이다마는 상 아래 개들도 아이들의 먹던 부스러기를 먹나이다
어디에서 이런 지혜가 나왔느냐? 여자머리에서 나왔어요.
남자 머리에서는 이런 게 잘 안 나와요.
순발력있게 나오는 여자머리에서 나오는 거야.
29 예수께서 가라사대 이 말을 하였으니 돌아가라 귀신이 네 딸에게서 나갔느니라 하시매
귀신도 끈질기지만 우리가 귀신보다 더 끈질겨야 돼요.
그래야 이기죠.
우리 믿음이 그렇게 약해빠져서는 귀신도 안 나가고 아무 것도 안 나가..
그래서 그 여자 참 대단한 분이죠.
강아지 취급을 당했는데도 불구하고 ‘옳소이다마는 개들도 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를 먹나이다.’
다른 복음서에 보면 ‘여자여 네 믿음이 크도다.’
‘네 믿음대로’라고 하지 않고 ‘네 소원대로 될지어다.’ 이렇게 했어요.
신약성경 전체에 ‘네 소원대로 될지어다’ 하는 그런 큰 허락을 받은 사람은 이 여자 하나 밖에 없어요.
그런데 놀랍게도 이방여자야.
수리아 지역에 사는 페니키아 여인인데도 이런 믿음을 가지고 찾아온거야.
그래서 그 사람이 하는 말만 가지고 다 알 수 없어요.
한두마디 말을 듣고는 알 수 없지만, 평소에 항상 그 사람 입에서 나오는 그 사람의 말을 보면 그 사람의 인격이다.
사람이 마음에 가득한 것이 입으로 나온다고 예수님이 말씀하시는데, 그 사람 말이 바로 그 사람이예요.
그 딸이 귀신들렸는데 그것을 낫게 할려고 그렇게 애를 태우고 그리고 딸 낫게 하는 길만 있다면 부끄러움을 무릅쓰고.. 강아지 취급을 당해도 괜찮은 거야.
자기 딸만 나을 수 있다면 강아지 취급을 당해도 괜찮다.
그렇게까지 귀신과 싸울 의지가 있어야 돼요.
우리가 베데스다 못가에 38년 된 환자가 병과 싸우는 것 보세요.
세상에 38년 어지간하면 포기하지 그래..
38년 동안이나 투병을 하면서 그래도 나아보겠다고 거기 습관적으로 나온 거야.
세월이 하도 가니까 습관이 되어가지고 예수님께서 ‘네가 낫고자 하느냐?’ 그러죠.
이 사람은 낫는 것은 모르겠고 ‘주여 다른 사람이 먼저 들어갑니다.’
들어갈 것도 나갈 것도 없고 네가 낫고자 하느냐?
저는 그것을 볼 때마다 우스워요.
‘낫고자 하느냐?’ 하면 ‘예 낫고자 합니다.’ 그러면 될텐데, 먼저 들어간대..
안 들어가도 괜찮아. 안 들어가도..
그러나 그 낫고자 하는 열정..
제가 몸에 고장나면 정말 나을려고 애쓰는 분이 우리 어머니였어요.
우리 어머니는 반 의사야.
학교 문턱도 안 밟아봤는데 의사야.
칠남매를 길렀으니까, 그리고 손자를 다섯명 길렀으니까 열둘이죠.
열둘씩 기르고 우리 가족들 다 13명 이렇게 하니까 아마 20-30명을 다 챙기고 보니까 옛날에 오죽 병이 많이 납니까?
그런데 그 때는 의료보험도 없고 병원이 전국에 몇개 있기는 하지만, 우리는 병원과 상관이 없었어요.
그러니까 그것을 어떻게 낫게 해볼려고 방법을 자꾸 찾다보니까 이게 더러 적중하는 게 있는 거야.
우리 어머니가 어디에서 귀동냥 해서 들은 것 중에 옳은 처방이 있어서 동네에서 웬만한 병은 우리 어머니에게 물으러 오는 거예요.
그래도 안 되면 굿을 하는 거야.
하여튼 굿을 하든지 약을 쓰든지 어떻든 나아야 되니까..
그런데 그렇게 해서 우리 동네에서 굿을 제일 많이 하는 집이 우리 집이야. 그래서 점쟁이가 오면 우리집이 단골이야.
그런데 하나님께서 우리 어머니를 버리지 않고 저를 믿게 하고, 그 다음에 내 동생을 믿게 하고 한 다음에 우리 어머니 아무 것도 몰라도 세례받았어요.
어떤 때는 우리 어머니가 정말 천국 갔나..
세례받았지만 맨날 할아버지 제사날만 되면 ‘제사드려야 되는데..’ 하면서.. 아이고 참.
안돼 아무리 이야기 해도 안 되는 거야. 이미 딱 굳어가지고..
그렇게 낫고자 애를 태우는 그 마음을 하나님께서 받으셨는지 그래도 우리 어머니 슬하에서 시원찮지만 목사가 네명이나 나왔잖아요.
저 지리산 신작로 끝나는 동네 토끼 발맞추는 동네에서..
그래서 참 낫고자 애쓰는 사람을 보면 저는 우리 어머니가 생각나요.
온갖 방법을 다 동원해요.
우리가 어릴 때는 두드러기라는 게 왜 그렇게 많은지 몰라요.
두드러기 올랐을 때는 우리에게는 어떻게 하느냐?
우리 어머니는, 그 지붕을 초가지붕을 이는데 화장실 초가지붕이 있어요.
거기에 짚을 빼다가 연기를 피우면서 그 연기에 우리를 그슬러..
그러면 또 낫는 거야. 그게 어떻게..
나으니까 하는 거죠. 나으니까..
그리고 버짐이라는 게 있어요. 버짐.. 왠 버짐이 그렇게 많았는지 몰라.
버짐은 어떻게 하느냐 하면, 버짐잡는 풀이 있어요.
풀이 있어서 그 풀을 짓이겨요. 맷돌에..
해가 뜰 때 해돋이에 버짐잡자 하면서 그 풀물을 버짐에 찍는 거예요.
그렇게 한 것을 다 쓰면 책이 한권 될 거예요.
그렇게 낫게 할려고 애를 쓰는 거예요. 약도 없는데.. 그래도 낫는 거예요.
지금 괜찮잖아요. 피부도 좋고..
우리 어릴 때 머리마다 무덤이 생겨.. 부스럼이 나서..
무덤이 생기고 무슨 마른 버짐 젖은 버짐 할것없이..
그렇게 그런 가운데에서 우리가 컷어요.
사실 그렇게 커서 그런지 저항력이 강한 거예요.
온갖 질병과 안 싸워본 질병이 없으니까..
저도 가끔 1년에 한번 정도 감기하고 합니다만 제가 감기 자주 안 하잖아요.
몸살도 1년에 한번 정도 하지 자주 안 하는 편이고..
제가 혈청검사 해보면 상당히 깨끗하다고 해요. 이 나이에 동맥경화도 없다고 하고..
그래서 저는 너무 깔끔을 떨고 그렇게 하지 말고 조금은 야성있게 특히 아이들..
유리박스 속에 인큐베이터 속에 콩나물처럼 그렇게 기르지 말고 야성있게 길러야 돼요.
30 여자가 집에 돌아가 본즉 아이가 침상에 누웠고 귀신이 나갔더라
아마 귀신이 가만히 생각해보니까 ‘야 이 여자한테 있다가는 내가 못살겠다. 진작 보따리 싸야 되겠다.’ 했는가봐.
31 예수께서 다시 두로 지경에서 나와 시돈을 지나고 데가볼리 지경을 통과하여 갈릴리 호수에 이르시매
32 사람들이 귀먹고 어눌한 자를 데리고 예수께 나아와 안수하여 주시기를 간구하거늘
33 예수께서 그 사람을 따로 데리고 무리를 떠나사 손가락을 그의 양 귀에 넣고 침 뱉아 그의 혀에 손을 대시며
34 하늘을 우러러 탄식하시며 그에게 이르시되 에바다 하시니 이는 열리라는 뜻이라
아람어입니다. 히브리어가 아니고 아람어로 ‘에바다’ 하는 말이 ‘열리라’ 하는 뜻이죠.
35 그의 귀가 열리고 혀의 맺힌 것이 곧 풀려 말이 분명하더라
36 예수께서 저희에게 경계하사 아무에게라도 이르지 말라 하시되 경계하실수록 저희가 더욱 널리 전파하니
37 사람들이 심히 놀라 가로되 그가 다 잘 하였도다 귀머거리도 듣게 하고 벙어리도 말하게 한다 하니라
이런 참 놀라운 일이죠.
지금 방금 우리가 봤던 수로보니게 여인 사건도 보세요.
그 두로와 시돈이라하면 이스라엘 국경을 넘어선 것이나 마찬가지인데, 그렇게까지 치우치게 간 일이 별로 없었고, 갔는데 단지 그 사건 하나만 해결하고 왔어요.
그 사건 하나만..
그러니까 다시 말하면 진심으로 그 딸을 낫게 하고자 하는 그 간절한 마음이 있는 여인이 있는 곳으로 그 예수님의 마음이 끌리고 있다는 거예요.
예수님이 그렇게 보고 싶어 하는 삭게오가 있는 곳으로 예수님 지나가시다가 그렇게 예수님을 보고 싶고 알고 싶어 하는 삭게오가 예수님과 전혀 일면식도 없지만 그 예수님을 보고 싶어 하는 그 마음이 하나님께 상달한 거예요.
그러니까 예수님이 지나가시다가 ‘삭게오야 내려오라’ 이름을 부르잖아요.
그리고 사람이 도무지 스스로 해결할 수 없는 쪽에 지난번에 거라사인 사건 보세요.
거기가서도 아무 다른 사건 없고 그 한건 해결하고 오는 거예요.
그래서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진실하고 또 우리가 이룰려고 하는 소원이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을 할뿐 아니라, 우리가 되면 되면이 아니고 전심으로 하나님을 찾는 전심으로 하나님을 사랑하는 그런 마음이라도 그 마음이 하나님께 연결된다는 거죠.
여러분 사도행전 나중에 보겠습니다만 ‘고넬료의 기도와 구제가 하나님께 상달되었다.’
옛날부터 그런 말이 있죠?
지극한 정성일 때 ‘지성(至誠)이면 감천(感天)이라’ 그런 말이 있죠?
지극한 정성이 하나님을 감동시킨다. 이런 말이 있는데, 성경에 상당히 그런 말이 있어요. 실제적으로..
다 찾으면 정말 지극한 정성을 가지고 하는 사람들에게 하나님 가까이 하는 사례가 있다는 거예요.
그리고 남을 고칠려고 하는 마음이나 가족을 고칠려고 하는 마음, 혹은 자기 자신의 병을 고칠려고 하는 마음도 조금 해보다가 포기해버리면 안 돼요.
투병의지가 단단해야 됩니다. 흔들리지 않고..
그리고 귀신을 쫓아내는 경우는 예수 안 믿는 사람도 그냥 길길이 뛰면서 ‘귀신아 나가라’ 그렇게 하니까 귀신이 나가는 거예요. 진짜.. 귀신도 재미 없거든..
귀신도 환영받아야 가서 제사도 지내주고 달래주고 그래야 머물러 있는 거지..
귀신도 하나의 인격체인데, 그렇게 싫어하고 대적하고 하면 재미가 없으니까 가는 거예요.
우리 동네에 한분을 보면 집에 자꾸 귀신이 든다하니까 ‘귀신은 무슨 귀신!’하고 도끼를 들고 설치니까 귀신도 재미 없으니까 나가는 거예요.
그러니까 영적인 세계를 잘 모르는 사람도 그 정도로 해서 대적을 하는데, 예수 믿는 사람이 되어가지고 믿음도 흐지부지 해가지고 결단도 없고 그러면 안 돼.
단호하게 아닌 것은 확실하게 아니게..
그리고 딱 귀신을 대하거나 질병을 대하거나 할 때 이기겠다는 의지가 단호해야 돼요.
여기 여자 대단하지 않습니까?
그런 수모를 무릅쓰고라도 ‘옳소이다마는 개들도 주인의 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를 먹나이다.’ 예수님도 깜짝 놀랐을거야.
그런 악한 것과 잘못된 것을 대적하는 그런 정신이 있어야 돼요.
그 정신이 살아 있어야 돼요.
예수 믿는 사람들이 흐리멍텅해가지고 은혜를 주시든지 마시든지 이래갖고는 안 되는 거야.
그리고 진심으로 매달리고..
성경에 보면 ‘너희가 전심으로 나를 찾고 찾으면 나를 만나리라.’
지난번에 우리가 이사야서에 본 대로 ‘하나님은 스스로 숨어계시는 하나님이시다.’ 찾는 자가 있는가 보려하시는 거예요.
‘얼마나 나를 찾는가 얼마나 진지하게 나를 믿고 나를 찾는가’ 그것을 보려하신다는 거예요.
여러분 성경을 보는 것도 되면 되면 하게 건성으로 봐서는 성경이 안 보이는 거야.
전심으로 찾아서 기어이 뚫어낼려고 하니까 그것도 한꺼번에 그렇게 값싸게 주시는 것이 아니라, 귀한 것을 귀한 줄 알게 하나씩 하나씩 열어서 보여주시는 거예요.
그래서 우리가 가치있는 것을 생각할 때 가치있는 것을 추구할 때 바랄 때 정말 정성을 다하는..
그래서 우리를 통해서 하나님 뜻이 드러날 때 아주 귀하게 드러나서 또 드러났을 때 소중한 줄 알아야 돼요.
그리고 예수님께서는 그 형식으로 겉치레로 외식하는 것보다, 그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고 힘을 다해서 그렇게 하나님을 사랑하고 또 그와 같은 마음으로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받은 사람을 사랑하는 기독교인이 되어야지, 형식적이고 남을 정죄하고 사랑도 없는 긍휼도 없는 애정도 없으면 잘못된 거예요.
항상 그 본질에서 벗어나지 않도록 그리고 끝없이 이런 저런 시험이 있지만, 그런 시험에 결코 흔들리지 않고 하나님 앞에 믿음과 소망과 사랑을 가지고 나아가서 우리의 삶 속에 주님의 뜻이 아름답게 이루어질 수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
하나님 아버지,
오늘도 우리 하나님 아버지께서 사람들의 아픔이 있는 곳에 다가오시고, 또 딸을 치료하지 못해서 애태우시는 그 어머니에게 1단계 2단계 이런 시험이 있었지만 그러나 그 시험을 통과하는 사람에게 하나님께서 큰 은혜로 갚아주신 것을 보았습니다.
우리도 세상 살아가는 동안에 주님의 은혜가 우리 삶 속에 나타나게 하시고, 우리와 함께 하시는 하나님을 만민이 보게 하여 주시옵소서.
질병이나 악한 것을 대적할 때 쉽게 포기하지 않고 낙심하지 않고 끝까지 믿음을 가지고 사랑을 가지고 소망을 가지고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내는 우리 모두가 되게 하여 주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