大師摯適齊 태사(악사장)인 지는 제나라로 가고 ○ 大師 魯樂官之長 摯 其名也 태사는 노나라 악관의 우두머리다. 지는 그 이름이다. 亞飯干適楚 三飯繚適蔡 四飯缺適秦 아반(악사)인 간은 초나라로 가고, 삼반(악사)인 요는 채나라로 가고, 사반(악사)인 결은 진나라로 가고, ○ 亞飯以下 以樂侑食之官 干繚缺 皆名也 아반 이하는 음악으로써 식사를 권하는 관직이다. 간, 료, 결은 모두 이름이다. 周禮春官大司樂 王大食 三宥皆令奏鐘鼓 註大食朔日與月半以樂宥食時也 宥 勸也 주례 춘관 대사악에 따르면, ‘왕의 大食에 세 도우미 관리가 모두 종고를 연주하게 한다’고 하고, 註에는 ‘대식은 매월 초하루와 보름에 음악으로써 식사를 권하는 때다’라고 되어 있다. 宥는 권한다는 뜻이다. 朱子曰 白虎通曰 王者平旦食晝食晡食暮食 凡四飯 諸侯三飯 大夫再飯 故魯之師官 自亞飯以下 皆三飯也 주자가 말하길, “白虎通義에 이르길, ‘왕이라는 사람은 평소 아침식사, 점심식사, 새참, 저녁식사, 이렇게 모두 4번 식사를 한다. 제후는 세 번 식사하고, 대부는 두 번 식사한다.’고 하였다. 그래서 노나라의 악관들은 亞飯 이하로 모두 3명의 식사 도우미였다.”라고 하였다. 齊氏曰 魯諸侯 故止三飯 然不言一飯 豈周公錫天子樂而魯僭之 孔子正樂而去其一邪 記者起數以亞 其仍魯之舊 以見其昔之僭邪 제씨가 말하길, “노나라는 제후국이기 때문에, 노나라 임금은 세 번 식사하는 것에 그쳤다. 그러나 첫 번째 식사를 말하지 않았는데, 어찌 주공이 노나라에 천자의 악을 하사했다고 해서 노나라가 그것을 참월하겠는가? 공자께서 악을 바르게 하시면서 그 사특한 하나를 제거한 것이고, 기록한 자는 亞飯부터 세기 시작하였으니, 노나라의 옛것을 따라함으로써 그 옛날에 참월한 것을 드러내 보인 것이다.”라고 하였다. 厚齋馮氏曰 天子諸侯 皆以樂侑食 每食樂章各異 各有樂師 후재풍씨가 말하길, “천자와 제후들 모두 음악으로 식사를 권하였는데, 매끼마다 악장이 각자 달랐고, 각자 담당 악사가 있었다.”라고 하였다. 鼓方叔入於河 북치는 사람 방숙은 하내로 들어가고, 鼓 擊鼓者 方叔 名 河 河內 鼓는 북 치는 사람이다. 방숙은 이름이고, 河는 하내다. 播鼗武入於漢, 소고를 흔드는 무는 한중으로 들어가고, ○ 播 搖也 鼗 小鼓 兩旁有耳 持其柄而搖之 則旁耳還自擊 武 名也 漢 漢中 播는 흔드는 것이다. 鼗는 작은 북이다. 양쪽에 귀가 있어서 그 자루를 잡고 그것을 흔들면, 양쪽의 귀가 되돌아와 스스로 북을 치게 된다. 무는 이름이다. 한은 한중이다. 少師陽 擊磬襄入於海 소사(부악장)인 양과 경쇠치는 사람 양은 바다의 섬으로 들어갔다. ○ 少師 樂官之佐 陽襄 二人名 襄卽孔子所從學琴者 海 海島也 소사는 악관의 보좌관이고, 陽과 襄은 두 사람의 이름이다. 襄은 곧 공자가 거문고를 따라 배운 사람이다. 바다란 바다의 섬을 말한다. 史記世家 孔子學鼓琴師襄子 十日不進 師襄子曰 可以益矣 孔子曰 丘已習其曲矣 未得其數也 有間曰 已習其數 可以益矣 孔子曰 丘未得其志也 有間曰 已習其志 可以益矣 孔子曰 丘未得其爲人也 有間曰 有所穆然深思焉 有所怡然高望而遠志焉 曰 丘得其爲人 黯然而黑 頎然而長 眼如望羊 如王四國 非文王 其誰能爲此也 師襄子避席再拜曰 師蓋云文王操也 사기 공자세가에 이르길, 공자는 북과 거문고를 악사 양자에게서 배웠는데, 10일이 되어도 진도가 나가지 않았다고 한다. 악사 양자가 말하길, “진도를 나가도 되겠습니다.”라고 하였다. 공자가 말하길, “저 공구는 이미 그 곡을 배웠습니다만 아직 그 수를 터득하지 못했습니다.”라고 하였다. 사이를 두었다가 말하길, “이미 그 수를 익혔으니 진도를 빼도 되겠습니다.”라고 하였다. 공자가 말하길, “저 공구는 아직 그 뜻을 터득하지 못했습니다.”라고 하였다. 사이를 두었다가 말하길, “이미 그 뜻을 익혔으니 진도를 나가도 되겠습니다.”라고 하였다. 공자가 말하길, “저 공구는 아직 그 사람됨을 터득하지 못했습니다.” 얼마간 있다가 말하길, “조용하게 깊이 생각하는 바가 있는 것 같고, 기쁘게 높이 바라보면서 뜻을 멀리 두는 바가 있는 것 같습니다.”라고 하였다. 공자가 말하길, “저 공구는 그 사람됨을 터득하였습니다. 어두우면서도 검고, 헌걸차면서도 키가 크며, 눈은 양을 바라보는 것 같고, 마치 사방의 나라들에게 왕 노릇을 하는 듯합니다. 문왕이 아니라면 그 누가 능히 이렇게 할 수 있겠습니까?”라고 하였다. 악사 양자가 자리에서 일어나 재배하고는 말하길, “악사들이 대체로 말하길, 文王操라고 하였습니다.”라고 하였다. ○ 此記賢人之隱遯以附前章 然未必夫子之言也 末章放此 이것은 어진 사람의 은둔을 기록한 것으로서 앞 장에 이어 붙인 것이다. 그러나 반드시 공자의 말씀이라고는 할 수 없다. 끝장도 이와 비슷하다. 張子曰 周衰樂廢 夫子自衛反魯 一嘗治之 其後伶人賤工識樂之正 及魯益衰 三桓僭妄 自大師以下 皆知散之四方 逾河蹈海以去亂 聖人俄頃之助 功化如此 如有用我 期月而可 豈虛語哉 장자가 말하길, “주나라가 쇠약해져 음악이 폐지되었는데, 부자께서 위나라에서 노나라로 되돌아와 일찍이 한 번 음악을 다스리셨다. 그 후로 영인과 천공도 음악의 올바름을 알게 되었다. 노나라가 더욱 쇠약해지고 삼환이 망령되이 참월함에 이르러, 태사부터 그 아래 음악 관련 관원들 모두 흩어져 사방으로 가서 황하를 넘고 바다를 건너감으로써 난리를 피해 갈 줄 알았다. 성인이 잠시잠깐 도왔지만 그 공효와 감화됨이 이와 같았다. 만약 나를 기용한다면 1년이면 웬만큼 될 것이라고 하셨는데, 어찌 빈말이겠는가?”라고 하였다. 勉齋黃氏曰 列此於逸民之後 以嘆魯之末世 決不可以復仕也 면재황씨가 말하길, “이 장을 逸民 장의 다음에 나열함으로써 노나라가 말세여서 결단코 다시는 벼슬할 수 없음을 탄식한 것이다.”라고 하였다. 慶源輔氏曰 自太師以下 皆傷時之衰 禮樂僭妄 去而辟難者 故以記逸民之後 경원보씨가 말하길, “태사부터 그 이하의 악사는 모두 당시가 쇠미해지고 예악이 함부로 참월되는 것을 마음 아파하여 그곳을 떠나서 난을 피한 사람들이었다. 그래서 이로써 逸民의 다음에 기록한 것이다.”라고 하였다. 潛室陳氏曰 上失其道 下擅其權 大義不明 正論不行 則禮樂不可作 今也魯旣衰矣 三家强僭 王綱爲之掃地 生民且塗炭矣 若是固可以作禮樂乎 夫旣不可以作禮樂 則太師以下諸官 尙可以擧其職乎 夫旣不可以擧其職 安得不散之四方逾河蹈海而去亂乎 잠실진씨가 말하길, “윗사람은 그 도를 잃고, 아랫사람은 그 권세를 제멋대로 하며, 대의가 밝지 못하고 정론이 행해지지 않으면, 예악은 일어날수가 없는 것이다. 지금은 노나라가 이미 쇠미해져 버렸으니, 三家가 강제로 참월하여 천자의 벼리가 그들에 의해 땅을 쓸고 있고, 산 백성들 또한 도탄에 빠졌다. 이와 같다면, 본래 예악을 일으켜 행할 수 있겠는가? 무릇 기왕에 예악을 일으켜 행할 수 없다면, 태사 이하의 여러 관리들이 그래도 자기 직분을 거행할 수 있겠는가? 무릇 기왕에 그 직분을 거행할 수 없다면, 어찌 흩어져 사방으로 가서 강을 건너고 바다를 건너 난리를 피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라고 하였다. 雙峯饒氏曰 賢者仕於伶官 已是衰世之事 到夫子時 伶官亦不可仕 想是時專尙淫哇之樂 正樂不行 是以 皆散之四方 쌍봉요씨가 말하길, “賢者가 伶官의 자리에 벼슬을 하는 것은 이미 쇠미해진 세상의 일이다. 공자님 시대에 이르자, 영관마저 벼슬할 수 없게 되었다. 생각하건대, 이때는 오로지 음탕하고 외설스런 음악을 숭상하고, 正樂은 행해지지 않았으니, 이 때문에 모두들 흩어져서 사방으로 갔던 것이다.”라고 하였다. 汪氏曰 記此篇者 先齊歸女樂 後此章 不無微意 蓋魯之君臣惑溺於女樂 樂官失職 盡無所用矣 奔迸駭散 無一人留 樂工皆去樂音絶矣 夫子初心欲定禮樂以示來世 而乃廢絶如此 此章所記 雖若汎及 其實深有感也夫 왕씨가 말하길, “이 편을 기록한 자는 제나라가 여악대를 보낸 것을 먼저 편차하고 이 장을 뒤에 편차하였는데, 그 은미한 뜻이 없지 않다. 아마도 노나라의 君臣이 여악대에 미혹되고 빠져서 악관들은 실직하고 전부 쓸모가 없게 되었던 것 같다. 뿔뿔이 흩어져서 남은 사람이 하나도 없게 되니, 악공들이 전부 떠나서 음악소리가 끊어지게 된 것이다. 공자는 처음에 예악을 정하여 다음 세상에 보여주고자 마음먹었으나, 오히려 폐하고 끊어진 것이 이와 같았다. 이 장에 기록된 바는 비록 마치 넓게만 두루 미치는 것 같지만, 그 실상은 느낀 바가 아주 깊었던 것 같다.”라고 하였다. 新安陳氏曰 魯末樂崩 賢人而隱於樂官者 皆散之四方 魯之衰微 可知矣 夫子自衛反魯而正樂 故師摯之始有洋洋盈耳之盛 彼一時也 及其末年而樂衰 故自師摯之去 諸賢皆有望望潔身之高 此一時也 諸賢之去 固見魯政衰微之極 然諸賢知出處之義而能去 亦見夫子道化之功也 신안진씨가 말하길, “노나라 말기에 樂이 무너지자, 賢人으로서 악관의 자리에 숨어있던 사람들은 모두 흩어져서 사방으로 갔으니, 노나라의 쇠미함을 알 수 있는 것이다. 공자께서 위나라에서 노나라로 돌아와서 樂을 바로잡았기 때문에, 악사 摯가 처음으로 귀에 양양하게 가득찬 성대함을 가졌던 것이 저 한 때였던 것이다. 그 말년에 이르러 樂이 쇠미해짐에 이르자, 그 때문에 악사 摯가 떠나면서부터 여러 현인들이 모두 우러러보며 제 몸을 깨끗하게 하는 고상함을 가진 것도 이 한 때였다. 여러 현인들이 떠난 것에서 진실로 노나라 정치가 극도로 쇠미해졌음을 알 수 있지만, 그러나 여러 현인들이 벼슬길에 나가고 물러나는 합당함을 알아서 능히 떠날 수 있었던 것에서, 역시 공자께서 도로써 교화한 공효를 알 수 있는 것이다.”라고 하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