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등 단 기
이미나
안내 전광판에는 지연 0분이라는 자막이 떴다. 빨리 뛰어요. 좀 더 빨리 남편과 교회 사모님 친정어머니와 나는 정신없이 호들갑을 떨며 뛰었다. 10시 42분 상행 용산 기차가 굉음 소리를 내며 들어오는 소리에 심장은 터질 듯이 뛰었다. 운이 좋아서 인지 네 사람이 기차에 몸을 싣자마자 기차는 출발했다.
버스표가 매진된 사실을 알고 자포자기하다가 7~8분 후 10시 42분에 기차가 있다는 사실을 알고 승용차를 타고 내려서 기차역 매표소에서 플랫폼까지 얼마나 급박 했겠는가
하마터면 기차를 놓쳐 서울 등 단식에 참석 못 할 뻔한 것을 생각하니 가슴을 쓸어내렸다. 그제야 승차권 예매 앱을 휴대폰에 깔아 놓치지 않았다는 뒤늦은 자책과 전날 가서 미리 버스표를 끊어 놓지 않은 남편에 대해 원망을 하기도 했다.
입석이라서 좀 심통이 나기도 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였다. 한편으로는 먼 서울까지 마다하지 않고 가주는 것이 얼마나 감사한 일인가 생각하니 마음이 저절로 풀어졌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꿈에 그리던 수필가가 된다니 마음은 희망으로 부풀어 올랐다. 교회 사모님은 몇 분 동안의 초조한 달음질에 지친 일행들을 위해 자판기에서 시원한 음료를 구매 해오신다. 탄산음료는 목과 폐부까지 도달하여 갈증을 해소해준다. 게다가 서울 강동구청 등 단식에서나 뵙기로 한 지도 선생님을 열차에서 만나게 되는 우연도 있어서 더욱더 반갑고 즐거웠다.
얼마 전에 급박했던 분위기와는 다르게 이제는 서울을 향해 가는 기차에 안착했다는 호젓함은 평소에 느낄 수 없는 안온함을 가져다주었다.
2시간 넘는 여정 동안 입석이어서 조금은 힘들기도 했지만, 입석 자들을 위한 네 번째 휴게실 칸에 순차적으로 자리가 나면서 앉아서 갈 수 있는 조그만 호사도 누릴 수 있었다.
사모님과 나란히 앉아 시간 가는 줄 모르게 도란도란 이야기꽃을 피웠다.
얼마 후 서울에 도착한다는 안내 방송이 나오고 막상 도착해도 등단 식이 열리는 강동구청까지도 적지 않은 거리가 된다는 사실을 지도 선생님으로부터 전달받은 후 또다시 마음이 분주해지기 시작한다. 일행들이 심란해하던 그때 오랫동안 서울에서 사역하시다 얼마 전 홍성으로 부임해 오신 사모님은 망설임 없이 앞장서서 복잡한 지하철역을 찾아주시고 표를 끊어 오시며 우리를 안내해 주시기 시작했다.
지하철에 내려 잰걸음으로 걸어가며 애초에 기꺼이 함께 축하해 주러 가시겠다는 사모님이라도 부담 끼칠 수 있으니 정중히 거절했어야 했다는 친정어머니에게 사모님 안 계셨으면 어쩔 뻔했냐는 여유도 부리면서 한참 행사 중인 강당에 들어섰다.
나와 지도 선생님을 포함한 일행은 임수홍 이사장님께 인사를 나누었고 이사장님은 불과 두 달 전에 출산하여 붓기도 채 안 빠진 나에게 위로와 격려를 해 주셨다. 이제야 작가의 일원이 되었다고 하는 실감이 들기 시작하였다. 행사에는 축사와 시 낭송 그리고 기성 문인들의 시상을 진행하고 있었다. 숨을 고르며 대기하고 있노라니 약속한 대로 수원에서 직장생활을 하는 여동생까지 행사장에 도착하여 더욱더 든든한 한팀이 되었다.
몇몇 수필 부문 시상자들과 내 이름이 호명되었다. 상패와 꽃다발을 받으면서 지도 선생님을 비롯한 일행분들과 기념촬영을 하면서 등단하기까지 많은 시간이 스쳐 지나갔다. 글쓰기에 소질이 있다며 반 아이들 앞에서 칭찬해 주셨던 초등학교 4학년 담임선생님이 떠올랐고 그 후로 자신감이 생겨 글쓰기에 도전하면서 시상대에 계속 올랐던 일은 언제고 가슴 흐뭇한 추억이었다. 문학소녀로 기대를 모았던 내가 아이들의 놀림과 조롱으로 자존감이 흔들리며 글쓰기를 단념하는 불행도 겪었다.
다시 20대 후반이 되어서야 글쓰기에 도전해 도내백일장에서 응모할 때마다 상을 타오면서 극구 말리는 부모님의 반대를 무마시키는 반전의 묘미는 지금 생각해도 가슴 시원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사람들은 등단하기까지 어린 딸과 둘째를 임신 중에 글 쓰느라 얼마나 힘들었냐 안부를 묻지만, 그 어려움보다는 어린 시절의 아이들이 내뱉던 말들과 부모님의 미온적인 태도들로 나의 가능성을 무시하는 것 같은 생각이 치고 올라오는 것이라고 말하곤 했었다. 그럴수록 밀려왔던 오기가 나를 여기까지 오게 한 것이었다고 말하고 싶었다.
어쨌든 이런 일 저런 일이 있었어도 이젠 옛일이라며 웃어넘길 수 있으니 너무나 기쁘다.
행사장에 무대 중앙에서 등단 기념사진을 찍는데 지도 선생님을 포함한 일행분들이 각자 준비해온 꽃다발이 많아서 촬영하기가 어려운 행복한 고민을 하면서 촬영을 하기도 하였다.
단에 내려와서 멀리서 주말에 각자 바쁜 일도 마다하지 않고 한걸음에 달려와 준 친정어머니, 지도선생님, 남편, 여동생, 사모님 모두 감사하다는 말도 잊지 않았다. 특히 글 쓰느라 육아에 전념하지 못하는 딸을 위해 전화를 걸면 언제고 달려와 아이를 봐주시던 친정어머니께는 이것이 다 엄마 덕분이라며 거듭 감사하다는 말을 전했다.
오래간만에 올라온 서울 길이라 등단 식을 마치고도 많은 구경도 하고 맛난 것도 먹으면서 즐거운 시간을 갖고 싶은 것도 사실이였지만 나와 일행분들의 일정 그리고 내려가는 버스 시간을 보니 그렇게 여유를 느낄 시간이 없었다. 아쉽지만 행사를 다 마치시는 것도 보지 못하고 서둘러 나와 근처 식당서 간단히 늦은 점심을 마치고 버스터미널로 향했다.
지도 선생님은 서울서 더 일정이 있으시다 하셨고 여동생은 다시 수원으로 떠나면서 나와 남편, 친정어머니, 사모님과 홍성으로 가는 버스에 몸을 실었다.
창가 너머 석양이 지고 거대한 빌딩들이 나타났다 사라지고 있었다.
이제 숨 바쁜 일정들을 다 마친 홀가분함에 마음이 편안해진다. 가방 한쪽에 넣어두었던 등단 패와 지도 선생님이 주신 등단 기념패를 쓰다듬어 본다. 아침에 가졌던 설렘은 다소 누그러지고 등단을 통해 성공이나 실패냐의 갈림길에 서 있게 될 수 있다는 생각도 조심스레 들었다.
어떤 분들은 등단을 통해 그 자리에 안주하거나 자만심과 독선에 빠지기도 하는 경우도 보았다. 나 역시 그런 오류에 빠지지 않도록 늘 주의하며 낮은 자세에서 겸손하게 주위를 관찰하며 어떤 의견에도 귀를 기울일 줄 아는 관용의 자세를 갖춰야겠다고 생각해 본다.
또 화려한 미사여구나 수식어만이 아닌 진정 삶과 사람을 사랑하며 어느 노래의 가사처럼 어두운 곳에 손을 내밀어 밝혀 줄 수 있는 빛과 같은 역할을 감당해내는 결과물의 기록이 되게 해야지
아직은 부족하고 마음의 한쪽에 유년 시절 아이들의 못된 말들로 인해 멍들기도 했지만 그런 상처들마저도 감사하며 더욱 약자와 소외된 이들을 품고 사랑하라는 하나님의 뜻임을 알고 선한 삶을 살아내고 아름다운 글을 써 내려가는 진정한 문인이 되어야겠다
내 인생의 행복의 신호탄이 된 이 기회를 잘 살려 많은 이들에게 내 글이 사랑의 매개체의 역할 또한 잘 감당하겠다는 다짐 섞인 기도를 하기도 했다.
어느새 버스 창가는 어둑어둑해지고 거리와 빌딩의 불빛들이 보이기 시작한다.
얼마 지나지 않아 홍성터미널에 도착하여 나와 일행은 집으로 향하는 남편의 차에 올라탔다.
모두 아침부터 일어난 헤프닝이 화젯거리였고 지친 기력이 역력한 서로에게 위로의 말을 아끼지 않았다. 그러면서도 결론은 모두가 오늘은 기쁘고 행복한 날이라며 입을 모았다.
한편 미소 띤 남편 옆에서 네 살인 딸 예원이와 이제 태어난 지 석 달도 채 안 된 규원의 얼굴이 아른거린다. 모처럼 만에 만난 할머니와는 종일 무슨 놀이를 하고 어떤 음식을 먹었을지 안부가 궁금해진다.
얼마 후 휴대전화 너머로 애교 섞인 딸 아이의 목소리가 들리고 그리움에 지친 나의 마음을 아는지 별들은 환히 앞길을 비춘다. 우리는 앞을 향해 숨 없이 내디뎠고 인생의 이정표가 된 오늘 영롱히 떠 있는 별빛은 부푼 감정들을 차분히 가라앉혀 주고 있었다.
첫댓글 지난 일이지만 등단을 진심으로 축하합니다. "할머니를 위한 미니 콘서트" 작품의 소재와 내용이 참 좋아서 주저없이 등단을 시킨 것으로 압니다. 등단식에 참석하느라 바쁘게 돌아다닌 하루 일정 재미있게 앍었습니다. 이제 명실상부한 수필가로 좋은 작품을 보여주세요.
예~노력하겠습니다~감사합니다~
그래요. 미나씨!!
정말 대견합니다. 아이 둘의 엄마이면서 그래도 짬짬이 시간을 내서 글을 쓴다는 것이 좀처럼 쉽지 않을 것인데
정말 다시 한번 축하 해요. 글이란 것이 그냥 쓴다고 되는 것이 아닙니다. 역시 글도 타고나야 합니다.
앞으로 주옥같은 글 많이 배출하시길 빕니다
예~격려해주셔서 감사합니다~노력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