캔타우롯스(반인반수) - 인간에게 친화적이며, 신적 능력을 가지고 있다. 미술 양식은 기학적인 문양이다.
기원전 8세기는 암흑기가 끝나가고
앞에서 미술 이야기를 하면서 기원전 8세기 경의 도자기 이야기를 하였다. 우리가 암흑기라고 불렀던 그리스 역사가 서서히 밝음 속으로 떠오르게 되었다. 왜? 생각해봅시다.
암흑기라고 부르던 시기에는 남하한 도리아인은 자기들이 살아온 방법인 유목생활을 하면서 그리스 본토를 이리저리 떠돌아 다녔다. 기원전 8세기 경이 되면 그들은 농경생활로 접어들면서 어느 지역에 정착하기 시작하였다. 땅이 생활 터전이 되면서 땅이 중요한 자산으로 떠올랐다. 이 땅은 자신들의 조상이 살던 땅이라는 주장을 펼친다. 유목 생활 때는, 땅이란 자기들이 지나다니는 길 정도로만 생각했지만, 정착 생활을 하면 땅의 개념이 달라진다.
이때는 음유시인들이 여기저기를 떠돌면서 트로이 전쟁의 영웅들을 퍼트리고 다녔다. 지역민들은(유목 생활에서 정착하여 농경생활을 하면서) 자신이 정착한 땅이 선조들이 터잡고 살던 땅이라는 것을 믿게 되고, 그 땅에 깊은 애착을 가졌다. 더구나 자신이 정착한 땅에서 고대 분묘라도 발굴되면 그 분묘는 영락없이 조상의 분묘이다. 제사를 조상에게 지내듯이 깍듯이 올렸다. 고대 유적-유물을 통해서 자신의 가계를 세탁하는 것이다. 선사시대의 유물, 유적이 기원전 8세기 경에 갑자기 활성화 된 것은 아니고, 그 전에는 관심이 없었으나, 정착 생활을 하고 나서 관심을 가진다. 기원전 8세기 경에 이르러 이것저것이 서로 맞물리면서 활성화가 더 심하게 일어난 것이다. 이때는 그리스에서 암흑기가 거의 끝난 시기이기도 하였다
그리스 미술의 기본은 원칚적으로 신의 이야기를 만들어 내는 것이다. 그러다가 반신반인적인 인간이 선보이고, 다음은 인간의 영웅적인 행위가 음유시인들에 의하여 선보인다. 대표적인 서사시가 호머의 일리아드이다.
기원전 6세기 경에는 아테네의 참주 페이시스트라토스(시험에 잘 안 나올 이름일텐데-, 이름이 너무 기네요. 억지로 외우지 않아도 됩니다.)는 트로이 전쟁에 나오는 필로스의 영주 네스토르가 자기의 선조라고 하였다. 이런 경우는 그리스 인들에게는 흔한 일이다.
디플론 공방에서 만든 도자기가 묘지라는 주장도 이래서 나온 것이다.(선조 찾기의 방법ㅇ로, 영웅의 무용담이 자기 선조의 무용담이 된다.) 디플론 도자기 그림에는 영웅적인 전쟁이야기를 담았다. 묘비에 표현하여 자기의 선조가 실제로 그렇게 영웅적이라고 선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