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닝과 나의 아저씨
비는 내리고 운동은 취소되었다. 일정이 다 망가져버렸다.
이런 날에는 영화를 보고 맛난 음식을 나누어 먹으면서 지내는 것도 좋으리란 생각에
남편과 메가박스로 가기로 했다. 프로그램을 보고 가지도 않는다. 가서 마음이 짚히는대로
보고 오면 된다.
부슬부슬 비가 내리는 날에는 걷기에 좋다. 우산을 쓰고 민낯으로 거리를 걷는다. 투명우산과
무지개색 우산이 나란히 걸어간다. 개봉첫날 '버닝'을 보게 되었다.
난 문제작 이런 것보다 이제 화면이 평화롭고 보는 것만으로도 즐거운 그런 화면이 그립다.
극명하게 대립되는 두 주인공 남자의 외관과 살아가는 모습이 이리저리 얽히면서 심기를 건드린다.
그들 사이에 낀 한 여자도 생각을 하지 않고 배길 수 없게 만든다. 영화 속의 대사가 역겹거나
아프다. 어느 한 구석 맑고 화사하게 웃을 구석이 없다. 다만 연기력이 좋아서 불편하지 않다는
것 빼고는 매력적이지 않다. 사람 겉봐서는 모른다는 말만 안고 극장을 나왔다.
영화는 딸이 준 공짜표로 관람하고 안동찜닭은 남편호주머니에서 나오고 탐앤탐스에서의
허니버터빵과 커피는 '스승표'이다. 집에 오니 이러한 행위가 아르바이트로 일상을 이어가는
젊은이들에게 잘못하는 것처럼 미안하여 마음이 편하지가 않다.
저녁에는 다시 '나의 아저씨'라는 드라마의 종방을 보았다. 아이유라는 가수겸 배우가 어찌
그런 어둡고 축축한 연기를 잘 해내는지 소름이 돋을 정도였다. 하루종일 등장 인물들의 아파하고
슬퍼하고 어두운 면만 보아서 웃을 일이 없다. 가만히 있을 수 있는 것도 축복이고 부를 가족이
있는 것도 축복이라고 드라마가 자꾸 외친다. 일년에 두 번, 설날과 추석에는 서로 가족인듯
만나자고 제의를 하는 장면도 보았다.
모두가 부러워하는 것을 고루 가지고 있는 나는 얼른 여기저기 전화를 한다. 5월이 가기 전에 밥
한번 먹자고 약속을 잡는다. 그렇지만 나에게는 이제 청춘이 없다. 가장 아름다운 것이 빠져
나갔다.
드라마도 필요하고 영화도 필요한 것은 이 세상 어딘가에 그러한 삶을 살고 있다는 것을
알려줌으로써 우리는 인간에 대한 깊이를 공유할 수 있고 다양한 삶에 대한 이해를 얻을 수가 있다.
영화나 드라마가 젊은이들의 가려진 진실을 엿보게 하지만 조금 더 긍정적인 쪽으로 포커스를
맞추어주면 좋겠다는 염원이 생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름답게 살기를 꿈꾸며 일구어나가는
낙관적인 이야기를 듣고싶고 보고싶다. 버티고 견딘 세월이 지나서 이제 버겁다는 신호다. 고요보다 조금 큰 울림만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