下關条約(しものせき じょうやく; 시모노세키 조약)은 1895년(明治28년) 4월 17일 청(淸)과 일본(日本) 사이에 체결된 강화조약이다.
지금도 중국 측에서는 이를 '馬關條約'이라고 부른다.
현재 일본 측의 자료를 검토해보면,
일본열도에 있는 '下關'(しものせき; 시모노세키)라는 지역은 원래 '馬關'(ばかん; 바칸)이라 불리었는데, 1889년(明治22년) 시제(市制)의 시행에 따라 '赤間關'(あかまがせき; 아카마가세키)로 변경되었고, 1902년(明治35년) '下關'(しものせき; 시모노세키)로 개칭되었다고 한다.
[출처=http://homepage3.nifty.com/jpnships/meiji01/meiji01_kokunai_osk01_.htm]
참고로, '赤間關'는 본래 '赤馬關'라고 표시했으나 한문풍(漢文風)으로 줄여서 '馬關'이라 표시했다고 한다.
[출처=http://ja.wikipedia.org/wiki/%E4%B8%8B%E9%96%A2%E6%9D%A1%E7%B4%84]
또한 '下關'이라는 명칭은 1895년(明治28년) 당시 강화조약을 공포한 문서에 '下ノ關'라는 지명이 공식적으로 사용되었던 것에 유래한다고 한다.
[출처=http://www.kawashimashin.com/09/essay/bakanjoyaku.html]
즉 '下關'의 옛 이름 또는 별명은 '馬關'이기도 하다.
1895년 강화조약 체결 당시에는 '赤間關'가 공식적인 도시 명칭이었으나, 이유는 명확하지 않지만 그 당시 청(淸) 측에서는 '馬關'이라는 지명을 사용했다는 것이 특이하다.
<대륙사관>에 따르면 '馬關'은 어디에 있었을까?
[참고 자료 1]
1881년 신사유람단 이헌영의 <일사집략(日槎集略)> 지(地) 4월 14일(을사)에서 일부 발췌하면...
맑음.
묘정(卯正 상오 6시 전후)에 복강현(福岡縣) 박다파(博多波)에서 닻을 내리고 아침을 먹었다.
촌락(村落)이 수십 리에 뻗고 산들은 완만하며 들 경치는 멀리 감돌아, 또한 손꼽을 만한 곳이었다.
사초(巳初 상오 9시 전후)에 닻을 올려 장문주(長門州)의 소창성(小倉城)에 도착하니, 부두 건너에 커다란 마을이 있는데, 이곳은 병정 연간(丙丁年間 1866~1867, 고종 3~4)에 서양과 왜(倭)가 전쟁을 하던 곳이다. 집들은 다 불에 탔었는데 이제야 겨우 마을 모양을 이루었다고 한다. 왼편으로 육련도(六連島)가 바다 위에 솟아 있어 관광하기에 족했다. 이 고을엔 가끔 인걸(人傑)이 난다고 한다. 산구현(山口縣)의 적마관(赤馬關)에 이르러 닻을 내렸는데 박다파로부터 3백 50리이다. 이곳은 이른바 일본의 서해도(西海道)의 하관(下關)이라는 곳으로, 민가가 번창하기가 박다파보다 낫고, 신당(神堂)의 새로 쌓은 석대(石臺)가 우뚝하게 바라보였다.
[출처=한국고전번역원, http://www.itkc.or.kr/MAN/index.jsp]
[참고 자료 2]
<최두환 칼럼> "1895년의 '시모노세키' 조약은 없었다" 에서 발췌하면.....
(1) "在1894年 中日甲午戰爭中, 新起的日本帝國主義打敗了腐朽的淸政府. 次年 日本把屈辱的《馬關條約》强加給中國, …."[胡毅華·徐鋒,『辛亥革命』(上海書店出版社, 2002), p. 2]
[번역: 1894년에 중국과 일본 사이의 갑오전쟁에서 새로이 일어난 일본제국주의는 부패한 청나라 정부를 무너뜨렸다. 이듬해에 일본은 굴욕적인《마관조약》을 맺어 중국에 강화하였는데, …]
현재 중하인민공화국의 학자가 쓴 글에서 분명 "馬關條約"(마관조약)이라고 하여, 그 조약의 체결지가 "마관"이었다. 그렇다면 "下關"(하관)은 어디에 근거하는가?
지금『중국고금지명대사전』에 "마관"은 나오지 않는다. 그렇다고 해서 그런 흔적이 없는 것은 아니다. 바로 "下關"이란 이름이 "首都市의 서북부에 있으며, 大江의 가에 있다.[瀕臨大江]"이라고[위의 책, p.51] 했다. 이것은 양자강 가에 있다는 말인데, 1930년대까지만 해도 중국대륙에 "下關"이란 이름이 불렸음을 알 수 있다.
그렇다면 이 "下關"이 정확하게 어디에 있다는 말인가?
(2) 上元門: 在江蘇江寧縣北. 當長江濱. 東至觀音門十里. 西距下關十里.[위의 책, p. 41]
[번역: 상원문은 강소성 강녕현 북쪽에 있다. 장강 가에 있는데, 동쪽으로는 관음문까지 10리이고, 서쪽으로는 하관까지 10리이다.]
여기서 바로 "下關"이란 지명이 언급되며, 거기서 동쪽으로 10리에 상원문이 있다는데 그곳이 바로 양자강가의 강녕현이라는 말이다. 이것은 위의 사료 (1)에서 말한 "馬關"과 동일지점이다.
그렇다면, 바로 이 강소성 강녕현에 있는 장강(長江) 하류의 이 "下關"이 일본으로 갖다놓고 "시모노세키"라고 했던 것이다. 그러므로 력사에서는 "시모노세키 조약"은 없는 것이며, 시모노세키는 겨우 1905년 러일전쟁 뒤에 일본렬도에다 만들어 놓은 지명이라는 말이 된다.
그래서 1895년의 조약명칭은 두 말할 것 없이 "하관(下關)과 동일 이름인 "마관조약(馬關條約)"이라야 옳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