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역 구역사 앞에서 노숙을 하는 이씨가 진료소를 찾아왔다.
“선생님, 저도 기초생활수급을 받을 수 있을까요? 지나가면서 신문을 보니까 나같은 사람들도 수급을 받을 수 있다던데..”
이씨는 4차례나 사업실패를 하고 3억이라는 큰 빚을 진채 거리로 내몰린 사람이었다. 그렇게 4년이라는 긴 시간을 거리에서 살았다. 2년 전 과다한 음주로 인해 간경화에 걸려 고생하고 있지만 그나마 다행스럽게도 우리 진료소를 통해 투약을 하고 있고 열악하게나마 절주 관리를 하고 있는 상태다.
그래도 남아있는건 자존심 뿐이라고 “나는 절대 빌어먹지 않아!!” 라고 외쳐대며 정부지원금을 받지 않겠다고 뻣뻣하게 목에 힘주던 이씨다. 그런데 자기 입으로 기초생활수급을 한 것을 보면 자신의 몸상태가 좋지 않아 더 이상 노숙생활이 위험하다는 것을 나름대로 인지한 모양이다. 자존심 강한 양반이 마음변하기 전에 얼른 수급신청 준비를 착수했다.
최저 빈곤계층인 노숙인들에게 기초생활보장을 한다는 것은 어쩌면 매우 당연스러운 일이다. 하지만 고령, 장애, 질병 등 수급조건을 충분히 충족시킴에도 불구하고 노숙인들이 기초생활보장을 받는다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다. 가장 큰 이유는 ‘주거 결여’의 문제였다.
노숙인은 말 그대로 거리에서 사는 사람이고, 집이 없는 것은 너무나도 자명하다. 주거가 상실된다는 것은 단순히 집이 없는 차원이 아닌, 연고지가 없는 인원으로 취급되고 주민등록이 말소되는 상황에 놓이게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의 대부분의 공공부조 등 복지서비스는 주민등록 주소지를 근거로 행해지고 있어, 자연스럽게 주민등록이 말소될 수밖에 없는 노숙인들은 배제되고 있는 것이다. 기초생활보장법 역시 예외는 아니다.
이씨의 수급획득을 위해 주소지를 마련해야 했다. 이씨 아저씨가 가지고 있는 돈은 일용직 막노동으로 조금씩 모아둔 15만원이 전부.
이 돈으로 방을 마련한다는 것은, 그것도 땅값 비싸다는 서울근교에서는 꿈도 꾸지 못할 판이다. 간신히 동자동 구석탱이의 쪽방을 구해 열악하게나마 주소지는 구할 수 있었다.
주민센터에 가서 주소지 전입을 하고 수급신청을 하려고 했다. 주민등록 재등록 과태료가 십만원이란다. 노숙인에게 십만원은 천만원 만큼이나 큰 돈이다.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어 오르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다. 다행스러운건지 취약계층에게는 협조공문을 통해 50% 감면해 줄수 있는 여지가 있었다. 당장 센터에서 협조공문을 꾸몄고, 이래저래 이씨의 지인을 통해 5만원을 빌렸다. 그렇게 간신히 주민등록을 재등록 할 수 있었다.
사방팔방 뛰어다니면서 수급신청서를 작성하고 주민센터에 자랑스럽게 들이밀었다. 하지만 이씨는 기초생활수급을 받을 수 없었다. 과거 가족 중에 이씨를 부양할 아들이 2명이나 있다는 것. 그리고 이씨 명의로 소위 말하는 대포차가 2대나 있었다. 노숙생활 중에 명의를 도용당한 모양이었다. 주민센터 복지사는 아쉬운 표정으로 우리가 정성껏 작성한 수급신청서를 돌려줬다. 4년 동안이나 노숙을 한 사람이고, 가족들과도 단절되었다고 하소연하였지만 돌아온 대답은 변하지 않았다. 그저 정부가 정한 지침을 따라야 한다는 대답이 참 섭섭하게 들렸다.
“신문에 보니까 기초생활보장의 폭을 넓힌다 어쩐다 하더만...”
이씨는 적지않게 실망한 모양이었다. 게다가 그로부터 얼마 후 재등록한 주소지에 그동안 미납된 건강보험료에 부채압류통지서가 날아왔다. 당장 내야할 돈만 3백만원에 이르렀다. 이 돈을 어디서 구한단 말인가. 그리고 가족 몰래 갖다 썼던 사채업자가 주소지를 추적해 찾아와 빌린 돈 이자쳐서 갚으라 협박까지 해댔다. 심지어는 칼도 들이밀었단다.
“차라리 노숙할 때가 편했지, 대한민국 국민으로 살아간다는게 참 힘드네요.”
이씨는 주거지를 포기하는 상황에 이르렀고, 다시 노숙상태에 빠지게 되었다.
노숙인을 만나면서 이씨와 유사한 사례는 흔히 볼 수 있다. 기초생활보장을 받기도 힘들고, 그렇다고 안정적 주거지를 마련할 수도, 일자리조차 쫓겨나기 일쑤인 사람들이 바로 노숙인 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사회에서 바라보는 노숙인의 모습은 썩 좋지만은 않다. 구걸을 하거나, 술을 마시고 힘없이 늘어져 있는 등 ‘노숙하는 모습’으로만 비춰져 자칫 노숙이라는 생활이 그들의 ‘선택’을 통해 결정지어졌다고 판단하여 이들에게 기본적인 자선조차 아깝다고 여기는 시선들이 팽배해 있는 것이 사실이다. 사회에서 감싸주어야 할 사람들이 오히려 배제되고 있는 현실이 안타깝다.
얼마 전에 또다시 기초생활보장수급의 폭을 넓힌다는 기사가 나왔다. 매년 정부에서 자랑하듯이 내놓는 정책이지만, 이 정책이 우리의 가슴에 와 닿는 것은 좀 더 기다려 볼 일인 듯 싶다. 하지만 그 정책이 노숙인에게도 자활의 힘으로써 소중하게 다가올 수 있는 날을 다시 한번 기대해 본다. 그리고 그동안의 힘들었던 나날들을 스스로 위로한다.
“단지 우리는 아직 체감하지 못했을 뿐이다.”
★ 본 기사는 서울특별시 사회복지사협회를 참조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