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쉬레, 하나님이 주시는 내적 행복(시1:1-3)
2023.10.29 김상수목사(안흥교회)
대부분의 사람들은 비오는 날 작은 우산을 두 사람이 같이 쓰고 걸어본 경험이 있을 것이다. 만약 여러분이 사랑하는 자녀와 작은 우산 하나를 같이 쓰고 걷는다면, 아마 여러분들의 대부분은 자녀 쪽으로 우산이 더 많이 가도록 배려하려고 할 것이다.
얼마 전에 비오는 날 아버지가 우산의 천이 있는 쪽은 아들에게 씌여 주고, 살대만 있는 쪽은 자신이 쓰고 있는 그림을 본 적이 있다(좌측). 이 그림을 유심히 보면서, 이것이 부모의 마음이고 사랑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정상적인 부모들은 예외없이 자녀들이 행복하기를 바란다. 그런데 생각해 보면, 하나님 아버지도 그렇다. 그래서 하나님은 우리들이 행복하게 살 수 있는 길을 말씀해 주셨다. 그것이 바로 성경말씀이다.
성경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행복 지침서와도 같다. 그래서 이 시간에는 특별히 시편 1편 말씀을 중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참된 행복을 누리는 길이 무엇인지 함께 나누고자 한다. 왜냐하면 오늘 본문인 시편 1편은 모든 시편 말씀들의 서론이자 결론과도 같은 말씀이기 때문이다.
1. 아쉬레, 하나님이 주시는 내적인 행복(시1:1)
. “복 있는 사람은 악인들의 꾀를 따르지 아니하며 죄인들의 길에 서지 아니하며 오만한 자들의 자리에 앉지 아니하고(시1:1)
이 말씀에서 가장 먼저 주목할 표현은 “복”이라는 단어이다(1절). 이 단어는 ‘행복’ 또는 ‘지복(至福, 더 없는 행복)’이라는 뜻을 가진 “아쉬레(רשֶׁאֲ)”이다.
구약성경에서 복(福)이라는 단어는 두 가지 있다. 그것은 바라크(창1:28)와 아쉐레(시1:1)이다. 바라크는 하나님을 예배하고 찬송하는 존재라는 의미가 있고, 오늘 본문인 시편 1편 1절에 쓰인 복(아쉐레)는 실제로 하나님을 가까이 할 때, 누리는 내적인 행복을 뜻한다(내적인 깨달음, 위로, 용기, 감동, 안정감, 세상이 줄 수 없는 주님의 평안-요14:27 등).
그렇기에 우리들은 바라크(예배하는 존재)가 되었다는 사실로만 만족하지 말고, 실제 우리의 모든 생활 속에 늘 하나님을 예배하고, 깊이 만나는 아쉬레의 사람들이 되어야 한다. 시편에 기록된 다윗의 고백들이나 요셉, 다니엘, 선지자 하바국 등의 고백은 우리들이 본받아야할 대표적인 아쉬레의 복을 누리는 사람의 모습이다.
이 시간 잠시 하바국의 고백에 우리의 간절한 마음을 실어서 읽어 보자.
“17 비록 무화과나무가 무성하지 못하며 포도나무에 열매가 없으며 감람나무에 소출이 없으며 밭에 먹을 것이 없으며 우리에 양이 없으며 외양간에 소가 없을지라도 18 나는 여호와로 말미암아 즐거워하며 나의 구원의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기뻐하리로다 19 주 여호와는 나의 힘이시라 나의 발을 사슴과 같게 하사 나를 나의 높은 곳으로 다니게 하시리로다 이 노래는 지휘하는 사람을 위하여 내 수금에 맞춘 것이니라”(합 3:17-19)
2. 묵상, 아쉬레의 복을 누리며 살아가는 방법(시1:1-3)
오늘 본문인 시편 1편 1절 말씀을 보라. 이처럼 하나님이 주시는 참된 행복을 누리며 살아가기 원하는 모든 사람들(성도, 나, 우리, 세상의 모든 사람들)이 의지적으로 가까이 하지 말아야 할 것들이 있다. 그것은 악인들의 꾀를 따르지 않고, 죄인들의 길에 서지 않고, 오만한 자들의 자리에 앉지 앉는 것이다.
. “복 있는 사람은 악인들의 꾀를 따르지 아니하며 죄인들의 길에 서지 아니하며 오만한 자들의 자리에 앉지 아니하고(시1:1)
여기에 사용된 “악인(惡人,레샤임)”이라는 말은 하나님을 대적하는 무리들을 뜻한다(이단, 사이비 집단, 악한집단, 범죄 모의, 덕스럽지 못한 조직가담 등). 죄인(罪人, 하타임)”은 우발적으로 죄를 짓는 사람이 아니라, 습관적으로 일부러 죄를 짓는 사람들을 뜻한다. 이처럼 일부러 또는 습관적으로 죄짓는 사람을 지속적으로 가까이 하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그것에 물들고, 자신도 죄의 수렁이 빠진다. 반대로 성도들의 모임이나 예배 또는 교회의 행사들(소풍, 선교여행, 각종 예배, 구역, 봉사활동 등)에 열심을 내는 것은 복된 사람이 되는 길이기도 하다. 그리고 “오만한 자(傲慢, 레침)”란 하나님의 가르침을 거부하고, 스스로 모든 것을 해결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교만한 사람을 뜻한다. 교만한 자의 특징은 조언을 거부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어지는 2-3절 말씀을 주목하여 보라. 이 말씀을 보면, 우리들이 진정으로 하나님이 주시는 평안을 누리는 행복한 사람이 되기 위해서, 단지 악인이나 죄인이나 오만한 자를 가까이 하지 않는 것뿐만 아니라, 더 적극적인 것을 말씀한다. 다같이 2-3절 말씀을 함께 읽자.
“2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의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도다 3 그는 시냇가에 심은 나무가 철을 따라 열매를 맺으며 그 잎사귀가 마르지 아니함 같으니 그가 하는 모든 일이 다 형통하리로다”(시 1:2-3)
이 말씀처럼 우리들이 정말 복된 사람이 되기 원한다면, 악에 떠날 뿐만 아니라, 더 적극적으로 항상 하나님을 가까이 하려고 힘쓰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하나님을 가까이 하라는 말씀은 다른 말로 하나님의 말씀을 가까이 하라는 말씀이다. 그래서 복 있는 사람은 “오직 여화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도다”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이다. 하나님은 이런 사람을 시냇가에 심은 나무처럼 형통하게 하신다.
여기서 사용된 묵상한다(히브리어, 하가)는 말은 ‘생각한다’, ‘성찰한다’, ‘작음 소리로 읊조린다’, ‘으르렁 거린다’는 뜻이 있다. 작은 소리를 읊조린다는 말은 입으로 계속해서 암송하면서 기억을 되살리는 것이다. 옛날 조선시대 서당에서 학생들에게 외우게 하는 방법이 원시적인 것 같지만, 사실은 그것이 잊지 않게 하는 효과적인 방법이다. 우리들도 이렇게 암송하면서 늘 말씀을 되새겨야 한다.
그런데 묵상의 의미들 중에 유달리 눈에 띠는 것은 ‘으르렁 거린다’는 뜻이다. ‘으르렁 거린다’는 말 속에는 맹수가 먹잇감을 물고 그것을 놓치지 않으려고 하듯이 하나님의 말씀을 놓지 않아야 한다는 의미도 있고, 하나님께서도 말씀을 묵상하면서, 그 말씀대로 순종하려는 성도들을 놓치지 않고, 뺏기지도 않고 끝까지 보호하신다는 의미도 있다(사41:4). 우리들이 이와같이 하나님의 말씀을 놓치지 말고 굳게 붙잡아야 한다.
이런 이야기가 있다. 2차 대전이 끝난 후 미군 유해발굴단이 노르망디 상륙작전이 있었던 지역에서 전사자들의 유골들을 발굴할 때 있었던 일이다. 발굴단은 전사자들의 유해들을 찾던 중에 유독 어느 특정 지역에 형형색색의 온갖 아름다운 꽃들이 만발한 것을 보았다. 그 원인이 어느 미군병사의 군복 속에 있던 꽃씨들 때문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 미군병사는 전쟁이 끝나면 고향에 심을 생각으로 가는 곳마다 아름다운 꽃씨들을 모아서 군복 주머니에 넣었던 것이다. 그런데 그 계획을 이루지 못하고 그만 전사하고 말았다. 그러나 세월이 흐르면서 그 병사의 군복 속에 있던 씨앗들이 퍼져서 그 일대가 아름다운 꽃밭이 된 것이다. 군인은 죽었지만 꽃씨는 남아서 아름다움을 발하고 있었다.
이 병사의 모습처럼 무엇을 품느냐에 따라 피는 꽃이 달라진다. 우리의 마음 밭에 악을 품으면 불행의 꽃이 피고, 말씀을 품으면 하나님이 주시는 행복(아쉬레)의 꽃이 핀다. 이런 면에서 볼 때, 행복은 선택이다. 행복한 사람이란, 소극적으로는 악한 일이나 악한 사람을 선택하지 않는 것뿐만 아니라, 적극적으로 아무리 분주하고 감정을 자극하는 방해꺼리들이 많을 지라도, 마치 맹수가 으르렁 거리면서까지 먹잇감을 놓치지 않는 것처럼, 하나님이 나에게 주신 말씀을 품고 읊조리며, 뺏기지 않으려는 힘쓰는 사람이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그리고 이 글을 읽는 지역 주민 여러분들이여, 지금 이 순간에도 하나님은 우리에게 아쉬레의 참된 행복을 준비하시고, 우리들이 그것을 품고 행복한 사람들이 되기를 간절히 원하신다. 그러므로 우리들도 선지자 하바국처럼 하나님의 말씀으로 늘 나를 성찰하고, 그 말씀을 나의 생활 속에서 적용시켜 나가자. 그러면 우리가 품은 그 말씀이 우리 안에 세상이 줄 수 없는 참된 행복과 평안을 줄 것이다. 이런 사람이 하나님이 주시는 내적인 아쉬레의 복을 누리며 살아가는 사람이다. 주님이 우리와 함께 하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