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3.17. 주일오전예배 설교문. 【사순절 제5주일】 요한복음19:17~22절
제 목 : 십자가를 지신 예수님 144,146,150.341.457.
할렐루야!! 하나님의 한량없는 은혜와 우리의 구세주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이 이 시간도 예배드리는 성도 여러분에게 충만 충만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아 멘!>
오늘은 『사순절 다섯째 주일』 입니다. 다음 주일은 여섯째 주일이며 고난주간이 시작되는 종려주일입니다. 오늘도 이 사순절을 맞이하여 주님이 지신 십자가의 의미를 되새겨 보면서 함께 은혜를 받고자 합니다.
본문 17절 말씀에 “그들이 예수를 맡으매 예수께서 자기의 십자가를 지시고 해골 (히브리말로 골고다)이라 하는 곳에 나가시니…” 라고 하였습니다.
우리 다함께 따라 하시기 바랍니다. “십자가를 지신 예수님” 오늘의 설교 제목입니다.
예수님은 온 인류의 죄를 사하시려고 끝내 십자가를 지셨습니다. 이미 이사야 선지자는 700여 년 전에 예수님의 십자가의 구원의 사역을 예언하였습니다.
(사53:5)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 때문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 때문이라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는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는 나음을 받았도다”
(히9:11-12) “그리스도께서는 장래 좋은 일의 대제사장으로 오사 손으로 짓지 아니한 것 곧 이 창조에 속하지 아니한 더 크고 온전한 장막으로 말미암아 염소와 송아지의 피로 하지 아니하고 오직 자기의 피로 영원한 속죄를 이루사 단번에 성소에 들어가셨느니라” 고 하셨으니 예수님은 십자가를 지심으로 지성소와 성소 사이에 휘장을 찢으시고 인간과 하나님 사이에 막힌 담을 헐어주신 생명의 대속자가 되신 것입니다.
그래서 기독교는 십자가의 종교요, 십자가는 기독교의 상징이요, 구원의 증표라고 사도 바울은 고린도전서 1장18절에서 말씀하셨습니다.
그래서 초대교회에서는 십자가를 지신 예수님을 생각하며 금요일마다 성금요일이라 하며 금식의 날로 선포를 하였고, 아프리카에서는 이 십자가를 지신 예수님을 생각하며 목요일마다 성만찬 예식을 행하였다고 합니다.
또한 한국 교회는 십자가를 지신 예수님을 생각하며 가정에 모여 속회 예배를 드리면서 은혜를 받고 있습니다. 그래서 기독교의 교리의 중심은 바로 십자가가 되는 것이요, 설교도 십자가에서 우리를 구원하시려고 피 흘리신 예수를 증거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기독교에서 십자가를 빼면 아무 것도 아닙니다.
본래 십자가는 사람을 죽이는 가장 흉악한 형틀이었습니다. 중동 유럽의 여러 나라에서 정치범이나 흉악한 죄인을 죽일 때에만 이 십자가의 형틀을 사용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그 십자가를 지시고 형극(荊棘)의 길을 가셨습니다. 하나님을 모독했고, 동족을 배신한 자란 구실을 붙여서 대제사장의 관정에서 억울한 재판을 받고, 로마 황제를 거역한 최대의 정치범으로 무고를 당하여, 십자가의 사형 선고를 받았습니다. 예수님은 체포되기 전 다락방에서 제자들과 마지막 유월절 만찬을 하신 후에 베드로와 요한과 야고보 세 명의 제자를 데리시고 겟세마네 동산에 올라가서 밤을 새워 기도하셨습니다. 십자가의 구속 사역을 감당 할 수 있게 해 달라고 하나님께 간절한 기도를 하였습니다. 이때 땀방울이 뚝뚝 떨어지는 것이 마치 핏방울 같았다고 하였습니다. (눅22:44) “예수께서 힘쓰고 애써 더욱 간절히 기도하시니 땀이 땅에 떨어지는 핏방울 같이 되더라”
예수님은 지친 몸으로 체포되어 새벽부터 끌려 다니면서 온갖 수모와 천대를 당하시고 대제사장의 군관들의 구둣발에 채이고 뭇매를 맞았습니다. 그리고 빌라도의 법정으로, 헤롯의 관저로, 이리 저리 끌려 다니면서 견딜 수 없는 곤욕을 치르셨습니다.
당시의 무지몽매한 유대인 군중들의 야수와 같고 악마 떼와도 같은 시위 앞에서는 빌라도 총독도 어쩔 수 없이 무력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의 얼굴에 침을 뱉었습니다. 눈을 수건으로 가리고 뺨을 치면서 조롱을 합니다. 발길로 찹니다. 갈대로 때립니다. 예수님의 온 몸이 부어오릅니다. 유혈이 낭자했습니다. 가시 면류관을 씌웠습니다. 얼굴은 피투성이로 변했습니다.
예수님은 십자가를 지시고 영문 밖으로 가셨습니다. 힘에 겨운 십자가를 지고 골고다를 향하여 올라갑니다. 예수님은 기진맥진해졌습니다. 십자가를 질질 끌고 올라가시다가 쓰러집니다. 무자비한 군인들은 가죽 채찍으로 때립니다. 매 맞은 자국은 터져서 퍼가 흐릅니다. 골고다 언덕길에서 예수님이 걸으신 자국 자국마다 피로 물들여졌습니다. 골고다에 이르러서는 십자가 형틀에 눕히고 양손과 양발에 못을 박았습니다. 그 처절한 광경은 차마 눈을 뜨고 볼 수가 없었습니다. 굵은 쇠못을 박는 망치 소리가 골고다 온 산야를 흔들고 수많은 사람들의 심금을 울렸습니다. 그러나 우리 주님은 그 고통을 참으시면서 오히려 그들을 위해 용서의 기도를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이렇게 십자가에 달려 죽어갔습니다. 왜 예수님이 이런 십자가의 죽음을 당해야 합니까? 바로 나와 여러분의 죄를 인하여 그 죄 값으로 십자가의 고통을 당하신 것입니다. 믿으시면 다 같이 아멘 하시기 바랍니다.<아 멘!>
그러면 예수님이 가신 십자가의 길은 어떤 길인가를 생각해 보겠습니다.
1. 십자가의 길은 고독한 길이었습니다.
주님이 십자가를 지고 가신 골고다는 외로운 길이었습니다. 3년 동안 따라다니던 제자들은 도망쳐 가고 연약한 몇 사람의 여자들이 울면서 그 길을 따라갔습니다. 베 홑이불을 두르고 멀찍이 따라가던 제자도 겁을 먹고 달아났습니다.
십자가의 길은 분명히 고통의 길이요, 죽음의 길이었습니다. 그러나 우리 주님은 그 고통을 모두 당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마지막 만찬을 하실 때 “오늘 밤에 너희가 다 나를 버리리라”(마26:31)고 말씀하실 때 이구동성으로 죽는데 까지라도 따라 가겠노라고 장담하던 제자들은 한 명도 볼 수가 없었습니다.
베드로에게 “오늘 밤 닭 울기 전에 네가 세 번 나를 부인하리라” 고 하셨을 때 “주여 내가 주와 함께 옥에도, 죽는 데에도 가기를 각오 하였나이다”(눅22:33) 라고 장담하였지만 결국 베드로도 예수님을 떠났고 세 번 예수님을 부인하고 말았습니다.
2. 십자가의 길은 대속의 길입니다.
(고전1:18) "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요 구원을 받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라"고 하였습니다.
<예>스코트랜드의 성자 까일즈의 이야기가 있습니다. 왕자로 태어난 그가 예수를 믿고 난 다음에는 모든 세상 영광을 다 버리고 평소에 사랑하던 한 마리의 꽃사슴만 데리고 산중에서 수도 생활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그 산 속에 왕이 사냥을 나왔다가 까일즈의 사슴을 산짐승으로 오인하고 활을 쏘았습니다. 기도하던 까일즈는 재빠르게 달려가 화살을 자기 손으로 막아버렸습니다. 손은 화살에 뚫려서 피가 쏟아지고 그 대신 사슴은 가벼운 상처를 입었을 뿐 생명에는 지장이 없었습니다.
부왕은 그때 예수님의 십자가를 생각하고 까일즈의 희생에 감탄하면서 다시는 사냥을 하지 않기로 맹세하고 돌아갔습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께서 온 인류의 죄를 대신하여 십자가에서 희생하신 이 놀라운 사건이 어찌 까일즈의 이야기 정도로 비교될 수 있겠습니까? 세례요한은 예수님이 세례를 받으러 오실 때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양이로다" 라고 증거를 하였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 죄를 지고 십자가의 길을 가신 분입니다. 그래서 누구든지 이 위대한 십자가의 복음을 받아들이는 자는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습니다.
(요3:17-18) “하나님이 그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것은 세상을 심판하려 하심이 아니요 그로 말미암아 세상이 구원을 받게 하려 하심이라 그를 믿는 자는 심판을 받지 아니하는 것이요 믿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의 독생자의 이름을 믿지 아니하므로 벌써 심판을 받은 것이니라”
그렇기에 바울은 표적을 찾는 유대인에게나, 지혜를 구하는 헬라인에게나 오직 십자가에 못 박힌 그리스도만을 전한다고 말씀한 것입니다. 이제 십자가는 우주의 핵으로 역사의 중심점에 서 있습니다. 십자가가 있는 곳에 영원한 생명이 있고, 승리가 있고, 영생이 있으며, 축복이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주님 가신 십자가의 길을 여러분도 가시기를 바랍니다.
3. 십자가의 길은 승리의 길이요, 축복의 길입니다.
예수님은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마16:24)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스도를 믿고 그와 함께 생활하는 일, 믿음을 가지고 살아가는 십자가의 길은 괴로운 길입니다. 그러나 거기에 축복이 있고 승리가 있고 영광이 있습니다. 그렇게 믿으시면 다 같이 아멘 하시기 바랍니다.
진통을 겪고 있는 오늘 우리의 역사를 우리 자신이 책임지고 그 십자가를 지고 갈 때, 우리와 우리의 후손들이 영광의 날을 만나게 될 줄로 믿습니다.<아 맨!>
예수님이 십자가 지시고 골고다를 올라가실 때 자꾸만 쓰러져 시간이 지체되자 로마 병정은 곁에서 구경하고 있던 힘깨나 쓸 만한 사람을 붙들어서 십자가를 억지로 지워 올라가게 하였습니다. 그때 십자가를 진 사람이 구레네 에서 온 시몬이란 사람이었는데 그는 재수 없게 걸려서 예수의 십자가를 졌지만 그의 후손들이 얼마나 큰 축복을 받았는지 모릅니다. 아마도 시몬은 십자가를 지고 골고다를 올라가면서 허구 많은 사람들 중에 왜 하필이면 내가 걸리느냐고 재수 더럽게 없다고 투덜거렸을 것입니다.
그러나 구레네 시몬이 억지로 십자가를 진 다음 그의 아내가 예수를 믿고 바울을 크게 도와서 바울이 선교를 하는데 큰 공헌을 하였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구레네 시몬의 아내를 내 어머니라고 까지 하였습니다. 그 아들 루포는 사도 바울의 전도에 크게 협력을 한 사람이 되었습니다.
(롬16:13) “주 안에서 택하심을 입은 루포와 그의 어머니에게 문안하라 그의 어머니는 곧 내 어머니니라” 이 말씀의 루포가 바로 구레네 시몬의 아들입니다.
그뿐만이 아닙니다. 역대의 로마 황제들이 기독교와 무슨 철천지 원수진 일이 있는지 기독교라면 공연히 이를 갈고 기독교를 핍박을 하였습니다. 그러나 콘스탄티누스는 황제로 즉위하자 AD312년 기독교를 인정하고 기독교를 로마의 국교로 선포하기까지 하였습니다. 바로 이 콘스탄티누스 황제가 골고다 길에서 재수 없게 붙들려 예수님의 십자가를 억지로 지고 간 구레네 시몬의 12대 손이라는 기록이 있습니다.
성도 여러분 !
십자가를 지고 가는 길에 영광이 기다리고 있으며, 십자가를 피해 가는 길에는 멸망이 기다립니다. "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요 구원을 받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라"(고전1:18) 이 말씀은 우리가 영원히 영원히 가슴에 지니고 살아야 할 하늘의 음성으로 간직되어야 하겠습니다.
결 론 : 오늘의 말씀을 마칩니다.
십자가의 길은 힘들고 어렵고 고통스러운 고독한 길입니다.
십자가의 길은 우리 주님께서 바로 나와 여러분의 원죄와 자범죄까지 모두 속량해 주신 대속의 길입니다. 그래서 우리들도 이 십자가의 길을 가야 합니다.
또한 십자가의 길은 승리와 축복의 길입니다.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심으로 모든 죄와 사망의 권세를 이기시고 승리하셨으며 우리가 예수를 믿고 십자가를 질 때 우리에게 하늘의 영생의 축복을 받게 하시는 줄로 믿습니다.<아 멘!>
예수님은 나와 여러분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 누구든지 제 목숨을 구원하고자 하면 잃을 것이요 누구든지 나를 위하여 제 목숨을 잃으면 찾으리라”(마16:24-25).
그러므로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나 위하여 십자가를 지신 주님을 생각하며 여러분 자신과, 또 여러분의 가정과 일터에서 날마다 예수님의 십자가를 지고 영원한 천국의 목적지까지 힘차게 달려가 승리와 영광의 면류관을 받는 성도가 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아 멘!>
다 같이 복음성가를 한 곡 부르고 마치겠습니다.
주의 길을 가리<복음성가 132장 1.2절>
1. 비바람이 갈 길을 막아도
나는 가리 주의 길을 가리
눈보라가 앞길을 가려도
나는 가리 주의 길을 가리
이 길은 영광의길 이 길은 승리의길
나를 구원하신 주님이 십자가 지고 가신 길
나는 가리라 주의 길을 가리라
주님발자취 따라 나는 가리라
나는 가리라 주의 길을 가리라
주님발자취 따라 나는 가리라
2. 험한 파도 앞길을 막아도
나는 가리 주의 길을 가리
모진 바람 앞길을 가려도
나는 가리 주의 길을 가리
이 길은 고난의길 이 길은 생명의길
나를 구원하신 주님이 십자가 지고 가신 길
나는 가리라 주의 길을 가리라
주님 발자취 따라 나는 가리라
나는 가리라 주의 길을 가리라
주님 발자취 따라 나는 가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