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양명이 49살에 양지를 결정한 강서성 감주 통천암(贛州 通天巖)
2024년 6월 27일(목)에 강서성 감주에 있는 통천암과 울고대에 가보았습니다.
통천암은 붉은 사암이 풍화되어 만들어진 얕은 골짜기이며 입구에서 臥佛(길이 15m)까지 대략 20분 정도 걸으면 모두 볼 수 있을 만큼 골짜기도 길지 않습니다. 골짜기 위에 있는 정자에 올라가면 높지 않으나 멀리까지 잘 보이고 바람도 시원합니다. 그런데 통천암은 정좌하기에는 좋은 곳은 아닙니다. 산등성이에 둘러앉아 달 구경하면서 노래하고 가끔 토론하기에는 적합한 곳입니다.
울고대는 감주 시내를 흘러가는 강가에 있고 벽돌을 쌓아 성을 만들었습니다. 왕양명이 여기 울고대에 군사를 주둔하고 있었고 활터를 짓고 학생들이 머물 수 있도록 하였답니다. 당연히 현재 왕양명의 흔적은 없습니다.
울고대 주변은 도시화되었고 근처에는 주렴계가 잠시 살았다는 집터도 남아있습니다.
왕양명이 49살(1520) 8월 추석날에 몇몇 학생들이 놀러간 감주(贛州) 통천암(通天巖)에 찾아가서 학생들과 노래하며 보름달을 즐기면서 치지(致知)를 토론하면서 양지를 학술종지로 결정하였습니다. 이보다 앞서 왕양명이 48살(1519) 8월에 남창(南昌)에 있을 때 학생 진구천(陳九川)이 북경에서 내려오다가 들러 인사하였고 대화하는 동안에 진구천이 양지를 건의하였고 왕양명이 받아들여 부연 설명하였습니다. 그래서 이듬해 8월 추석날 양지를 확정하였습니다. 따라서 통천암은 왕양명 학술 인생에서 중요한 장소입니다.
울고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