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혜 3,1-9; 로마 5,17-21; 마태 11,25-30
+ 오소서 성령님
오늘은 위령의 날입니다. 미사를 봉헌하며 세상을 떠나신 모든 분들을 위해, 특별히 우리 본당 가족 연령들을 위해 기도 드립니다. 올해에도 많은 분께서 하느님 품으로 떠나셨는데요, 함께 기도해 주신 모든 분들, 그리고 특별한 수고를 해 주시는 위령회원님들께 감사드립니다.
예수님께서는 “식사를 베풀 때, 네 친구나 형제나 친척이나 부유한 이웃을 부르지 마라. 그러면 그들도 너를 초대하여 네가 보답을 받게 된다. 네가 잔치를 베풀 때에는 오히려 가난한 이들을 초대하여라. 그들이 너에게 보답할 수 없기 때문에 너는 행복할 것이다. 의인들이 부활할 때에 네가 보답을 받을 것이다.”(루카 14,12-14)라고 말씀하십니다.
예수님 말씀에 따르면, 우리가 선행을 베풀 때 가장 귀한 선행은, 보답할 수 없는 분들에게 베푸는 선행입니다. 그것에 대해 하느님께서 직접 보답해 주실 것이라 하십니다. 우리의 선행에 대해 가장 보답할 수 없는 분이 누구일까요? 바로 연옥 영혼입니다. 우리가 연옥 영혼을 위해 드리는 희생과 기도는 헤아릴 수 없을 만큼 귀한 것입니다.
어제 모든 성인 대축일 미사를 봉헌하면서, 모든 성인의 통공에 대해 말씀드렸습니다. 천국과 지상과 연옥 영혼들이 서로 영적인 도움을 주고 받는다는 것입니다. 어제 모든 성인 대축일이 천국과 지상, 즉 승리교회와 순례교회의 연결을 기념했다면, 오늘 위령의 날은 우리와 연옥, 즉 순례교회와 정화교회의 연결을 묵상하는 날입니다.
오늘 제1독서에서 지혜서는 “의인들의 영혼은 하느님의 손안에 있어 어떠한 고통도 겪지 않을 것이다.”라고 말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십자가 위에서 돌아가시며, “아버지, 제 영혼을 당신 손에 맡기나이다.”라고 외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당신 영혼을 아버지 손에 맡기셨듯, 의인들의 영혼도 하느님 손안에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 의인들은 누구일까요? 지혜서는 이렇게 말합니다. “사람들이 보기에 의인들이 벌을 받는 것 같지만 그들은 불사의 희망으로 가득 차 있다. 그들은 단련을 조금 받은 뒤 은혜를 크게 얻을 것이다.” 이 단련을 지상에서의 단련으로 생각하면 의인은 성인들을 의미하는 것이겠지만, 내세에서의 단련으로 해석하면 연옥 영혼을 의미한다 하겠습니다.
“그들은 단련을 조금 받은 뒤 은혜를 크게 얻을 것이다.” 이 말씀에서 ‘단련’이라는 단어는 ‘교육, 교정’이라는 의미를 포함하고 있으며, 정화를 위한 것입니다. 이 단련과 정화가 연옥입니다.
가톨릭교회교리서는 이렇게 말합니다. “하느님의 은총과 사랑 안에서 죽었으나 완전히 정화되지 않은 사람들은 영원한 구원이 보장되기는 하지만, 하늘의 기쁨으로 들어가기에 필요한 거룩함을 얻으려면 죽은 다음에 정화를 거쳐야 한다. 교회는 선택된 이들이 거치는 이러한 정화를 연옥이라고 부르는데, 이는 단죄받은 이들이 받는 벌과는 전혀 다르다.”(1030-1031항)
교회는 정화의 과정에 있는 영혼들을 위해 초기부터 기도를 드려 왔으며 특히 미사를 드렸습니다. 이렇게 우리가 연옥 영혼들을 위해 드리는 기도와 미사는 “너희가 이 가장 작은 이들 가운데 한 사람에게 해 준 것이 바로 나에게 해 준 것이다.”라는 예수님의 말씀을, 지상의 영역 너머에서까지 실천하는 것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하느님 아버지께 기도하시며, “아버지, 하늘과 땅의 주님”이라고 부르십니다. 하느님께서는 하늘과 땅의 주인이십니다. ‘하늘’은 하늘에 있는 모든 것을, ‘땅’은 땅 위에 있는 모든 것을 뜻합니다. 따라서 이 말씀은, 하느님께서 이 세상과 하늘나라, 즉 이 세상과 저세상의 모든 존재들의 주인이시라는 의미입니다.
“아버지, 하늘과 땅의 주님”이라고 하느님을 부를 때 우리는 하느님께서 우리 아버지실 뿐만 아니라 세상을 떠난 분들의 아버지이심을 고백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세상을 떠난 분들을 아버지 손에 맡깁니다. 하느님은 이 세상을 떠나서도 여전히 아버지이시기 때문입니다.
최근에 아버지를 여읜 어느 청년이 제게 물었습니다. “문득문득 아빠 생각나서 눈물 나는 건 언제 멈춰요?” 제가 대답했습니다. “나도 궁금해…. 나도 아직 안 멈췄거든….”
우리는 부활을 믿고 있으면서도 여전히 그리움이라는 감정을 안고 살아가는 존재들입니다. 부모님을 잃는다는 것은, 우리가 살면서 경험하는 가장 아픈 일 중 하나입니다. 그런데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부모님을 얻기 위해서는 어떤 노력을 했던가요?
부모님을 얻기 위해 노력한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태어나보니, 처음 보는 분들이 자기가 부모라며, 먹여주고 재워주고 기저귀 갈아주고, 내가 아프면 당신들이 더 아파하고, 학교든 학원이든 저 때문에 돈 들어가는 거 다 해 주고, 나보다 더 나를 걱정하며 한평생 그렇게 내 뒷바라지를 해 줍니다. 너무나 놀라운 은총이 아닌가요? 내가 그분들의 자식이 되기 위해 노력한 공로나 업적이 아무것도 없는데 말입니다.
지상에서의 여정을 마치고 하느님 나라에서 새로 태어나면, 하느님께서 ‘내가 네 아빠’라며, ‘그동안 고생 많았다’며, 지상에서 우리가 다 알아듣지 못한 당신의 사랑을 영원히 우리에게 베풀어 주실 것입니다. 내가 그분의 자녀가 되기 위해 노력한 것이란 세례받은 것이 전부이고, 그것도 그분의 은총인데 말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예수님을 따라, 예수님과 함께 하느님을 부릅니다. “아버지, 하늘과 땅의 주님!”
우리는 연옥을 간다 해도 아버지 손안에서 떠날 수 없습니다. 연옥은 고통과 형벌의 장소가 아니라 사랑이신 하느님과 영원히 하나 되기 위한 정화와 단련의 과정이기에, 우리를 지극히 사랑하시는 아버지의 자비에, 세상을 떠난 분들을 맡겨 드리며 주님의 말씀에 귀 기울입니다.
“주님을 신뢰하는 이들은 진리를 깨닫고
그분을 믿는 이들은 그분과 함께 사랑 속에 살 것이다.
은총과 자비가 주님의 거룩한 이들에게 주어지고
그분께서는 선택하신 이들을 돌보시기 때문이다.”(지혜 3,9)
https://youtu.be/P1oplwpNddE?si=y068CDjmyMyrIq_I
모짜르트, 위령미사곡(레퀴엠) 중 입당송
크리스토퍼 호그우드 지휘, 고음악 아카데미
Requiem aeternam dona ets, Domine,
주님 그들에게 영원한 안식을 주소서.
et lux perpetua luceat ets.
영원한 빛을 그들에게 비추소서. (4에즈 2,34-35 참조)
Te decet hymnus, Deus, in Sion,
하느님, 시온에서 당신을 찬미함이 마땅하오니
et tibi reddetur votum in Jerusalem.
예루살렘에서 당신께 서원을 돌려 드리리다.
Exaudi orationem meam,
제 기도를 들어주소서.
ad te omnis caro veniet.
모든 이가 당신께 오리이다. (시편 65,1-2)
Requiem aeternam dona ets, Domine,
주님, 그들에게 영원한 안식을 주소서.
et lux perpetua luceat ets.
영원한 빛을 그들에게 비추소서.
아나스타시스 (부활 - 그리스도께서 저승에 가시어 아담과 하와를 구원하심), 14세기, 코라 성당, 이스탄불.
첫댓글 그리운것은 그대일까, 그때일까.
그리운 사람을 맘껏 그리워 하는것이 위령성월의 매력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