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적 점검 (잠 14:10-13)
10 마음의 고통은 자기가 알고 마음의 즐거움은 타인이 참여하지 못하느니라 11 악한 자의 집은 망하겠고 정직한 자의 장막은 흥하리라 12 어떤 길은 사람이 보기에 바르나 필경은 사망의 길이니라 13 웃을 때에도 마음에 슬픔이 있고 즐거움의 끝에도 근심이 있느니라
이 시간에 “영적 점검”이라는 제목입니다. 우리는 늘 자신의 믿음을 점검해야 합니다. 잘하고 있는지, 아니면 잘못하고 있는지, 어떤 문제는 없는지 살펴보아야 합니다.
어떻게 영적 점검을 해야 할까요?
1. 함께 하심을 점검해야 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전쟁할 때마다 무슨 중대한 일을 할 때마다 여호와께서 함께하심을 물었던 것과 같습니다. 10절 “마음의 고통은 자기가 알고 마음의 즐거움은 타인이 참여하지 못하느니라” 마음의 고통이나 즐거움은 자기밖에는 알 수 없다는 말입니다.
여기에 대해서 학자 중에는 할 수 없다기보다 어렵다는 말이라고 해석했습니다(Zockler). 제 3자는 얼마나 아플까? 상상할 수는 있지만 그 아픔은 당해본 사람이 아니고는 잘 모릅니다. 즐거움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는 임재의 기쁨도 누려본 사람만이 압니다.
이처럼 함께 하심을 점검해야 합니다. 영적으로 문제가 생겨 함께 하시지 않는 것처럼 고독한 것은 없습니다. 기도의 교통도 끊기고 고독하다면 영적으로 문제가 생긴 것은 아닌지 살펴보아야 합니다. 우리를 고아와 같이 혼자 두지 않으신다 약속하셨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언제나 아버지께서 함께 하셨습니다. 요8:29에 “나를 보내신 이가 나와 함께 하시도다” 하셨습니다. 십자가의 고통 속에서도 아버지께서 버리지 않으셨습니다. 요16:32에 “보라 너희가 다 각각 제 곳으로 흩어지고 나를 혼자 둘 때가 오나니 벌써 왔도다 그러나 내가 혼자 있는 것이 아니라 아버지께서 나와 함께 계시느니라”
이 말씀을 하시자 사람들이 믿더라 했습니다. 왜 믿었을까요? 임마누엘은 예수님의 랜드 마크(land mark)였기 때문입니다. 표지물, 두드러진 특색을 영어로 land mark라 하잖아요. 예수 이름이 임마누엘입니다. 이름처럼 사람들은 항상 아버지께서 예수님과 함께하심을 보았습니다.
이처럼 든든하고 행복한 임재를 체험하시기 바랍니다. 누구도 알 수 없는 함께 하심의 행복과 함께 하시지 않는 고통인 임마누엘의 은혜를 깨달으시기 바랍니다. 그렇지 못한다면 1차 영적 문제가 생겼다고 보아야 합니다.
2. 삶을 점검해야 합니다.
11절 “악한 자의 집은 망하겠고 정직한 자의 장막은 흥하리라” 12:7과도 비슷한 말씀입니다. 7절 “악인은 엎드러져서 소멸되려니와 의인의 집은 서 있으리라” 사울의 집과 다윗의 집이 생각나는 본문입니다. 아시는 대로 불의한 사울의 집은 멸망해가고 의로운 다윗의 집은 날이 갈수록 흥왕했습니다.
사울은 육의 예표라면 다윗은 영의 예표요, 상징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예표하기도 하고요. 우리에게도 이런 현상이 필요합니다. 육성이 죽고 영성이 살아나야 합니다. 성령이 함께 하시면 육은 죽고 영이 살아납니다. 반대로 은혜가 떨어지면 육은 살아나고 영은 죽습니다.
롬8:12-14에 “그러므로 형제들아 우리가 빚진 자로되 육신에게 져서 육신대로 살 것이 아니니라 너희가 육신대로 살면 반드시 죽을 것이로되 영으로써 몸의 행실을 죽이면 살리니 무릇 하나님의 영으로 인도함을 받는 사람은 곧 하나님의 아들이라”
그러므로 영인가? 육인가? 자기 삶을 점검해야 합니다. 영성이 더 많이 나타납니까? 육성이 더 많이 나타납니까? 죄악의 육성은 사라지고 은혜의 영성만 나타나시기 바랍니다. 그러기 위해서 늘 은혜의 충만함을 받아야 합니다.
경건을 점검해야 합니다. 하나님께 경외하는 삶이 충분해야 합니다. 늘 예배하고 마음에 하나님이 차지해야 합니다. 다른 생각이 차지하지 않아야 합니다. 눈을 떠도 딴 생각 눈을 감아도 딴 생각이라면 물리치시기 바랍니다. 경건한 삶을 살아가십시오.
3. 진리를 점검해야 합니다.
12절 “어떤 길은 사람이 보기에 바르나 필경은 사망의 길이니라” “사람이 보기에” 이 말은 판단 기준이 세상적이고 인간적인 것을 가리킵니다. 잘못된 판단기준입니다. 이런 기준으로 살면 낭패입니다.
사람들이 바르다고 가고 있지만 잘못된 길이 얼마나 많습니까? 많은 사람들이 마호메트를 따라 갔고 따라가고 있습니다. 또 많은 사람들이 석가를 따라갔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마르크스를 따라 갔고요. 더 많은 사람들은 육체의 정욕, 안목의 정욕, 이생의 자랑을 따라 달려가고 있습니다. 그 길은 멸망의 길입니다.
스칸디나비아 반도와 시베리아의 툰트라 지역에 서식하는 나그네쥐라는 레밍 쥐들은 번식하여 개체수가 많아지게 되면 앞에 선두 쥐를 따라 바다로 빠져서 자살한다고 합니다. 거반 다 죽을 때까지 자살의 대열이 끊어지지 않습니다.
동물학자들은 레밍이 살기 위한 이동인데 주변이 바다라서 자살로 이어진 것이라고 해석하지만 우리 어리석은 인간의 모습이 꼭 그와 같습니다. 자기는 옳다고 가지만 필경은 멸망할 잘못된 길이라는 것입니다. 지옥의 길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 멸망으로 인도하는 문은 크고 그 길이 넓어 그리로 들어가는 자가 많고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은 좁고 길이 협착하여 찾는 이가 적음이라”(마7:13-14) 하셨습니다. 알지 못하기에 멸망 길을 향해 나가고 있습니다.
진리가 잘못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어떤 진리여야 합니까? 영원불변의 하나님의 말씀이어야 합니다. 성경은 “케논”입니다. 잣대입니다. 잣대가 기준입니다. 성경 이탈하면 그럴듯해도 잘못된 것입니다.
이처럼 내 생각도 버려야 합니다. 내 고집도 버려야 합니다. 성경과 다르다면 배척해야 합니다. 하나님이 나타나 말씀했다고 해도 성경과 다르면 배척해야 합니다. 말씀 충만하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보이지 않는 세계를 말씀을 통해서 보이는 것처럼 믿음으로 사시기 바랍니다.
4. 감정을 점검하시기 바랍니다.
13절 “웃을 때에도 마음에 슬픔이 있고 즐거움의 끝에도 근심이 있느니라” 보통 사람의 마음이 그렇지요. 웃지만 마음에 슬픔이 있고, 즐거워하지만 그 즐거움 속에도 근심이 있습니다. 세상에는 완전한 기쁨이란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주시는 것은 다릅니다. 살전5:16-18에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이것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 그 때 의인들은 자기 아버지 나라에서 해와 같이 빛난다 했는데 그렇게 밝게 산다는 말씀입니다.
성도는 세상에 살지만 성령 안에서 완전한 기쁨을 소유할 수 있습니다. 고난 풍파 많지만 마음에는 어두운 그림자가 없습니다. 마음에 하나님 나라가 있기 때문입니다.
서부개척시대, 캘리포니아에서 세 사람이 엄청난 금광맥을 발견했습니다. 그들은 “우리가 관계기관의 허락을 받아 금을 캐낼 때까지는 이 일을 비밀로 하자.”라고 결정하고 한 사람은 허가를 받으러 가고, 또 한 사람은 생필품을 사러 가고, 나머지 한 사람은 장비를 준비하러 갔습니다.
준비를 마치고 세 사람이 금을 캐러 가는데 마을 사람들이 다 따라왔습니다. 세 사람은 서로 “누가 비밀을 누설했지?” 물어보았습니다. 아무도 비밀을 누설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마을 사람들에게 물어보았습니다. “당신들, 어떻게 알았지요?”, 그러자 “누구에게 들은 것이 아니요. 당신들의 얼굴에 함박웃음이 가득한 것을 보고 당신들이 금을 발견한 사실을 알았지요.”
이게 예수 믿는 정상적인 성도의 모습입니다. 마음에 완전한 기쁨이 있습니까? 그렇지 않다면 분발하시기 바랍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 주님은 항상 온전하셨습니다. 바울은 “너희가 믿음 안에 있는가 너희 자신을 시험하고 너희 자신을 확증하라” (고후13:5) 했습니다. 우리 모두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지, 진리 기쁨 경건 즉 지정의가 성경대로 바로 되어 있는지 점검하여 정상을 달리는 온전한 믿음으로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출처: 한국강해설교연구원 글쓴이: agas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