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쓰기 기법(7)-맥주 세 병 안주 하나
- 습관을 경계하라 -
권대근
문학박사, 대신대학원대학교 교수
습관적으로 자주 쓰는 말을 경계하라. 여러분의 친구들이 말하는 내용을 귀 기울여 들어 보라. 그러면 그들 대부분이 어떤 특정한 어휘를 습관적으로 자주 사용한다는 사실을 알게 될 것이다. 글을 쓸 때도 습관적으로 자주 쓰는 말이 있기 마련이다. 따라서 자신이 써놓은 글을 꼼꼼히 읽어 볼 필요가 있다. 그러면 여러분이 유달리 자주 쓰는 어휘가 눈에 띌 것이다.
나는 글의 윤문작업을 할 때마다 윤오영의 수필 <방망이 깎던 노인>을 떠올린다. 어쩌면 그 노인의 방망이를 깎는 태도가 바로 수필 다듬기의 본보기가 아닐까 생각되어서다. 그 노인은 기차시간이 다 되었으니 그만 방망이를 달라고 재촉하는 소비자에게 생쌀이 재촉한다고 밥이 되느냐며 나무란다. 그래도 어서 달라고 재촉하자 안 팔 테니 다른데 가서 사라고 엄포를 놓는다. 소비자는 왕이라는 세상에 방망이 깎던 노인은 그 왕 앞에서 오히려 큰소리를 치는 셈이니 얼마나 꼬장꼬장한 장인인가.
그 방망이 깎던 노인은, 수필가는 물론 모든 예술가의 자세가 어떠해야 하는지를 일깨워주고 있다. 수필가라면 모름지기 이 방망이 깎던 노인에게서 진짜 수필가로서의 자세를 배워야 하리라. 청탁원고 마감에 쫓겨서 허둥지둥 원고를 마무리하여 보내는 수필가라면 그 노인의 태도를 보고 무엇인가 크게 뉘우치고 깨달아야 할 것이다. 글을 다듬을 때 밤에 쓴 수필은 낮에, 비나 눈이 내릴 때 쓴 글은 햇볕이 쨍쨍 내리쬐는 날 다시 읽어 보며 글을 다듬는 게 좋을 것이다. 날씨에 따라 수필가가 너무 감상에 치우쳐 쓰지 않았는지 검토해야 하기 때문이다. 글다듬기는 며칠 또는 몇 주일, 몇 달이 걸리기도 할 것이다.
또 글다듬기를 할 때마다 제목과 서두, 내용, 결미까지 꼼꼼히 읽으면서 단어 하나하나를 짚어가는 게 좋다. 왜냐 하면, 습관적으로 의식없이 자주 쓰는 어휘가 독자에게 거슬림을 주기 때문이다. 이 단어를 더 쉬운 우리말로 바꿀 수는 없을까, 토씨를 넣을 것인가 뺄 것인가를 생각한다. 그뿐 아니라 한 글자라도 더 줄일 수는 없을까 궁리한다. 그것이 수필문장의 경제학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한자말이나 외래어는 가능한 한 우리말로 바꾸는 게 좋다. 그러다 보면 영어의 번역문투가 우리말에 깊이 스며들어 있음을 알 수도 있다. 그런 사실을 우리가 미처 깨닫지 못하고 있는 경우도 없지 않다.
‘~위하여’란 어휘를 생각해 보자. 이 어휘는 영어 ‘~for + 명사(동사 + ing, to + 동사원형)’을 번역한 어투지 순수한 우리말의 어투가 아니다. 그런데도 그 어휘가 순수한 우리말로 알고 즐겨 사용한다. ‘~위하여’를 ‘~하고자’ ‘~하려고’ 등으로 바꾸면 자연스러운 우리말 투가 된다.
또 ‘~후’자를 생각해 보아도 그렇다. 이는 한자 ‘後’자를 뜻하는 한자말인데 한문세대는 말할 것도 없고 한글세대까지도 무의식중에 이 글자를 사용한다. ‘後’자를 우리말로 바꾸면 ‘뒤’다. 그런데 버릇처럼 순수한 우리말 ‘뒤’자는 ‘後’자에 밀려나고 있다. ‘아침밥을 먹은 뒤’라고 표현하면 좋을 텐데 ‘아침밥을 먹은 후’라고 쓰면서도 그것이 한문문장 투라는 사실을 깨닫지 못한다.
다시 말하지만 원고를 마무리 지은 다음, 글을 다듬을 때는 단어 하나하나를 읽어 가면서 그 단어를 순수한 우리말로 바꿀 수 있는 한 바꿔야 한다. 그래야 세종대왕께서 만드신 한글이 얼마나 아름답고 쓰임새가 높은지도 알게 될 것이고, 그렇게 작품을 손질하고 나면 누구나 읽어도 이해할 수 있는 친근한 수필로 바뀔 것이다. 그래야 수필가를 ‘우리말 지킴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게 아닌가.
다음은부분이라는 말을 습관적으로, 또는 무작정 사용한 문장이다. (1) 예술은 우리에게 교훈적인 부분과 또 다른 부분을 보여 주는 양면성을 지녔다. (2) 포장은 물건을 사기전에 가장 먼저 보게 되는 부분이다. 예술 작품은 인간에게 감동과 재미 외에 교훈을 주기도 한다. 그런데 (1)과 같이 예술의 이러한 기능을 몇 개의부분으로 나눌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설령 예술을 교훈적인 부분과 또 다른 부분으로 나눌 수 있다 하더라도또 다른 부분이 어떤 것인지 구체적인 어휘로 밝힐 수 있어야 한다. (2)에서 포장이라는 것은 물건의 한 부분이 아니다. ‘부분이라는 말보다는 주어를 바꾸어서사람들은 물건을 사기 전에 포장부터 보게 된다라고 쓰는 것이 좋다.
(3) 오늘은 정설로 여겨지는 학설이 내일은 거짓이 될 수 있고, 거짓이던 학설 속에서 새로운 지식이 나올 수도 있다. (4) 우리는 수많은 가치관과 삶의 기준 속에서 때론 무엇을 선택해야 할지 고민하게 된다. 두 인용문에 쓰인 ~속에서도 까닭 없이 자주 쓰이는 말 가운데 하나다. 학설이니기준이니 하는 추상 명사에겉과속이 있는가? 굳이 그러한 구분이 필요하다면 차라리안과밖이라고 쓰는 편이 나을 것이다.
(5) 한 순간에 그 때의 상황 모습을 그대로 나타내 주는 사진은 그야말로 다른 예술 작품에 나타나는 작가의 주관은 전혀 나타나지 않는다. (6) 사람들이 가위를 들고 설립 테이프를 자르는 모습과 기둥들이 늘어서며 그 가운데 햇빛이 빛나는 마치 시간의 흐름을 연상하는 듯한 이 사진들은 같은 사진기로 찍었으면서도 구별이 확연히 되는 것이다.모습이라는 말은 본래사람의 생긴 모양을 뜻하는데 근래에는자연이나 사물의 겉모양까지도 칭하는 말로 그 뜻이 확장되어 사람들 사이에서 남용되고 있다. 예컨대 요즘 젊은 세대는 너를 보고 싶어하면 될 것을 굳이 네 모습을 보고 싶어라고 한다. 사람 자체가 아니라 그 사람의생김새만 보고 싶다는 것일까. (5)에서상황 모습이라는 말을 쓴 것도 억지 습관이다. 모습이라는 말을 아예 쓰지 말아야 했다. 또한 (6)은 사진이라는 말을 써야 할 자리에 모습이라는 말을 써 버리는 바람에 완전히 다른 뜻을 가진 문장으로 탈바꿈해 버렸다.
이 밖에도 사람들이 습관적으로 자주 쓰는 말에는역할,‘입장등이 있다. 모두 잘 생각해서 써야 할 어휘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