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출처: 최일환 목사(장안중앙교회)설교 카페 원문보기 글쓴이: 최일환목사
익명성 헌신을 즐겨라
마태복음6:1~6
2009년 5월 17일 장안중앙교회 주일낮예배 최일환 목사 설교
1 사람에게 보이려고 그들 앞에서 너희 의를 행하지 않도록 주의하라 그리하지 아니하면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상을 받지 못하느니라
2 그러므로 구제할 때에 외식하는 자가 사람에게서 영광을 받으려고 회당과 거리에서 하는 것 같이 너희 앞에 나팔을 불지 말라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그들은 자기 상을 이미 받았느니라
3 너는 구제할 때에 오른손이 하는 것을 왼손이 모르게 하여
4 네 구제함을 은밀하게 하라 은밀한 중에 보시는 너의 아버지께서 갚으시리라
5 또 너희는 기도할 때에 외식하는 자와 같이 하지 말라 그들은 사람에게 보이려고 회당과 큰 거리 어귀에 서서 기도하기를 좋아하느니라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그들은 자기 상을 이미 받았느니라
6 너는 기도할 때에 네 골방에 들어가 문을 닫고 은밀한 중에 계신 네 아버지께 기도하라 은밀한 중에 보시는 네 아버지께서 갚으시리라
설교:
유대인들은 경건한 신앙생활을 하기 위해서 반드시 해야 할 3대 덕목이 있었습니다. 구제와 기도와 금식입니다. 그런데 이 세 가지를 깊이 생각해 보세요.
은밀한 구제, 은밀한 기도, 은밀한 금식, 이것은 어떤 것인가요.
구제는 對人 관계요, 기도는 對神 관계요, 금식은 對我 관계입니다. 이 3가지 관계가 성숙하면 우리 신앙도 성숙해 지는 것입니다.
대인관계에서 은밀한 사랑으로 구제하고,
대신관계로 은밀한 기도로 하나님을 신뢰하고
대아관계로 은밀한 금식으로 자기를 이겨나가면 그 사람이 성숙한 그리스도인이 되는 것입니다.
문제는 은밀한 중에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은밀한 중에 하라는 것은 나를 들어내지 말고 匿名(익명)으로 하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본문 1절에서 “사람에게 보이려고 그들 앞에서 너희 의를 행치 않도록 주의하라”고 경고하시고 계십니다.
결국 자기를 들어내지 말고 하라는 것입니다. 익명으로 하라는 것은 구제할 때 다른 사람을 의식하지 않고 내가 했다는 것도 잊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구제한 사람도 잊어야 되고, 자기 자신도 잊어야 됩니다. 기도도 그렇고 금식도 그렇습니다. 심지어는 하나님께서 보상해 주실 것도 잊어야 됩니다. 그저 하나님 앞에서 ‘나는 다만 무익한 종입니다. 할 일을 했습니다.’이것이 되어야 합니다. 그러나 쉽지 않습니다.
사단이 파놓은 가장 무서운 함정은 육신의 정욕, 안목의 자랑, 이생의 자랑인데 이것은 하나님께로부터 온 것이 아닙니다.
요일 2:16을 보세요. "이는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이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이니 다 아버지께로부터 온 것이 아니요 세상으로부터 온 것이라"
세상으로부터 온 것이라 했습니다.
이것 가지고는 하나님을 기쁘게 할 수 없습니다.
그렇다면 우리 성도가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익명성의 헌신"은 어떻게 해야 누려지는 것일까요?
1. 사람을 의식하지 말아야 합니다.
이 설교를 하기에 앞서 제가 먼저 회개합니다.
솔직히 저는 가끔 하나님 앞에 헌금할 때 제가 위선자였던 것을 고백합니다. 헌금을 드릴 때 어떤 때는 나도 모르게 이런 생각이 옵니다.
‘내가 목사니까 교인들보다 더 많이 바쳐야지 그래야 내가 떳떳하지’ 그러고, 어떤 때는 ‘내가 많이 바쳐야 재정부에서 헌금 집계하는 분들이 볼 때 “우리 목사님은 헌금을 많이 바치는구나!” 그렇게 인정을 하겠지’ 그런 생각이 떠오를 때가 종종 있습니다.
그런 것이 합당치 않은 것임에도 저도 모르게 그런 생각이 들 때가 있습니다. 그때 저는 얼른 "주여 용서하옵소서." 하고 기도합니다.
사실 남을 의식하여서 하는 헌금은 헌금이 아닙니다. 그것은 투자일수는 있으나 하나님이 받으실만한 헌금은 아닙니다. 자기 홍보비입니다. 자기를 사람에게 보이기 위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사람에게 칭찬받고 인정받는 것은 그 결과가 허전합니다. 때로 허탈하기 그지없습니다. 그래서 연예인들이 무대에서는 인기가 있고 길거리에서는 사람들이 알아주어 좋으나 집안에 들어가면 허전하고 허탈하여 우울증에 걸리기도 하고 심지어는 마약을 복용하거나 자살을 하는 극단적인 행동도 하게 되는 것입니다.
사람의 칭찬과 격려는 잠시잠간이다.
사람이 알아주느냐 안 알아주느냐를 중요하게 여기면 하나님은 그 사람을 멀리합니다. 이스라엘의 초대왕 사울이 왜 버림받았나요?
삼상15장 28절~31절을 보세요.
28 사무엘이 그에게 이르되 여호와께서 오늘 이스라엘 나라를 왕에게서 떼어 왕보다 나은 왕의 이웃에게 주셨나이다. 29 이스라엘의 지존자는 거짓이나 변개함이 없으시니 그는 사람이 아니시므로 결코 변개하지 않으심이니이다 하니
30 사울이 이르되 내가 범죄하였을지라도 이제 청하옵나니 내 백성의 장로들 앞과 이스라엘 앞에서 나를 높이사 나와 함께 돌아가서 내가 당신의 하나님 여호와께 경배하게 하소서 하더라
31 이에 사무엘이 돌이켜 사울을 따라가매 사울이 여호와께 경배하니라
사울왕은 이미 심각한 교만 병에 걸렸습니다.
그래서 하나님 앞에서 자기 죄를 회개하기보다는 백성들 앞에서 자기 체면을 더 중요시 했습니다. 하나님이 어찌 보든 상관없다는 것입니다. 백성들이 자기를 어떻게 보느냐가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함께 예배를 드려 달라는 것입니다. 결국 이 사건 이후에 하나님은 사무엘 선지자에게 다윗에게 찾아가게 하고 그에게 기름을 붓게 합니다.
성도 여러분!
사람을 의식하기 보다는 하나님을 더 의식하시기를 축원합니다.
사람들이 알아주던 안 알아주던 신경 쓰지 마시고 하나님 앞에서 행하시기를 축원합니다.
예수님이 이 세상에 계실 때에 구제하는 일을 열심히 한 사람들이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입니다. 그런데 이들의 구제는 심각한 문제가 있었습니다. 동기가 불순했던 것입니다. 이들은 가난한 사람들을 불쌍히 여기고 사랑하는 마음으로 구제한 것이 아니라 사람에게 보이려고 구제를 했습니다.
오늘 본문2절을 보세요.
2 그러므로 구제할 때에 외식하는 자가 사람에게서 영광을 받으려고 회당과 거리에서 하는 것 같이 너희 앞에 나팔을 불지 말라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그들은 자기상을 이미 받았느니라.
"사람에게 영광을 받으려고" 이것이 문제입니다.
3~4절도 보세요.
“3 너는 구제할 때에 오른손이 하는 것을 왼손이 모르게 하여 4 네 구제함을 은밀하게 하라 은밀한 중에 보시는 너의 아버지께서 갚으시리라"
오른손의 하는 것을 왼손이 어떻게 모릅니까? 이 말씀의 깊은 뜻은 좋은 일을 한 것을 기억하지 말고 빨리 잊어버리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준 것은 어찌그리 기억이 잘나고 받은 것은 속히 잊어버리니 문제입니다.
베풀어 준 것을 왜 잊어 버려야 하나요?
그 이유는 우리가 평생 좋은 일을 한 것을 기억하고 말하면서 살게 되면 나도 모르게 교만해지기 쉽기 때문입니다.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공치사하기 쉽기 때문이란 말입니다.
그러면 인간인지라 내가 했다는 공로의식이 들게 되고 결국은 교만해 지는 것입니다. 실상 내가 한 것도 아닙니다. 하나님이 은혜 주셔서 한 것입니다.
나눌 수 있다. 베풀 수 있다는 것은 받은바 은혜가 크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거저 받았으니 거저 주어야 하는 것입니다. 아멘?
기도도 사람의식하지 말아야 합니다.
사람이 본다고 기도하는 척하고 사람이 안본다고 기도안하면 그것이 성숙치 못한 신앙입니다. 부끄럽습니다만 또 하나 고백할 것이 있습니다.
제가 목회 초창기에 그렇게 새벽기도를 했습니다. 새벽기도에 나오시는 분이 계신데 그 분은 그 분은 아주 오래 기도를 하셨습니다. 그러다 보니 제가 목사로서 먼저 일어나는 것이 창피했습니다. 그래서 그분이 돌아갈 때까지 강단에 버티고 기도하는 척 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이렇게 하는 것이 성경에 나오는 바리새인과 다를 바 없다는 생각을 하게 하셨습니다. 그래서 그 후로는 제가 기도하여야 할 것을 다 했으면 일어나 갑니다. 사람이 뭐라 할까봐 기도하고 사람이 뭐라 할까봐 대표기도를 못하는 것은 참으로 안타까운 것입니다.
어떻게 익명성 헌신이 이루어지는가?
2. 하나님이 살아계심을 믿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다 보고 계십니다. 은밀한 중에 다 보시고 다 아시고 계십니다. 그러기에 하나님께 우리의 비밀이나 감추인 은밀한 일이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하면 안 됩니다.
하나님이 어떻게 아실까요?
하나님은 영이시고 무소부재하신 분이십니다. 그래서 우리의 행동뿐만 아니라 우리의 생각까지도 다 알고 계십니다. 하나님은 감찰하시는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하나님께 은밀히 감출 수 있는 것이란 있을 수 없습니다.
그래서 전도서 12:14에는 "하나님은 모든 행위와 모든 은밀한 일을 선악 간에 심판하시리라" 했습니다.
또 예레미야 23:24에는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사람이 내게 보이지 아니하려고 누가 자신을 은밀한 곳에 숨길 수 있겠느냐 여호와가 말하노라 나는 천지에 충만하지 아니하냐" 하셨습니다. 감찰하신다는 말은 낱낱이 살펴 아신다는 뜻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언제나 내가 지금 하나님 앞에 서 있다고 하는 사실을 확신해야 합니다.
하나님 앞에서 살아가고 있다는 사실, 하나님 앞에서 행하고 있다는 사실, 하나님 앞에서 말하고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하는 것입니다.
'감추인 것이 드러나지 않을 것이 없고 숨은 것이 알려지지 않을 것이 없다'고 주님이 말씀하셨고 감추인 것들을 다 드러낸다고 하셨습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우리 마음과 생각에 대한 것까지 책임을 져야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마음의 생각과 뜻을 감찰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러기에 하나님을 속이려고 하는 사람처럼 어리석은 사람이 없습니다. 그것처럼 얄밉고 가증스러운 것이 없습니다. 속을 다 보고 계시는 분 앞에 그분을 속이려고 하면 그야말로 미련한 짓입니다.
왜 아나니아와 삽비라가 베드로 앞에서 죽었나요?
헌금을 적게 했나요? 아니요, 하나님은 다 바치라 강요한 적이 없습니다. 아나이아 자신이 자진하여 팔았습니다. 그러다가 현찰을 손에 잡으니 욕심이 생겼습니다. 그러면 일부라고 말하고 헌금했으면 아무 문제없습니다.
그는 순간 사람을 의식했습니다. 성도들이 자기 땅을 판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러니 일부만 드리면 체면이 상한다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일부는 감추어 두고 다 바친다고 거짓말을 한 것입니다. 그것은 하나님과 성령을 속이는 것이었습니다.
사도 베드로가 성령이 가르쳐 주심으로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에게 기회를 주려고 물어 봅니다. 그런데도 속입니다. 그것은 베드로를 속인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영을 속인 것입니다.
그 부인 삽비라도 동일한 기회를 줍니다. 역시 함께 하나님을 속이려 합니다.
그러기에 하나님이 그들을 심판하십니다. 하나님은 속일 수 없는 분입니다. 그분의 살아계신 것을 믿어야 합니다. 또 그분의 전능하신 것을 믿어야 합니다.
그러기에 그분이 알아주는 것 하나로 족해야 합니다.
성도 여러분! 성경의 원리를 아셔야 합니다. 세상 원리는 나누면 손해인데 성경의 원리는 나누는 것은 결코 손해가 아닙니다. 나누면 오히려 복이 되고 오히려 더 많은 은혜를 체험하게 하십니다.
잠언13장 24~26절을 보세요.
24 흩어 구제하여도 더욱 부하게 되는 일이 있나니 과도히 아껴도 가난하게 될 뿐이니라.
25 구제를 좋아하는 자는 풍족하여질 것이요 남을 윤택하게 하는 자는 자기도 윤택하여지리라
26 곡식을 내놓지 아니하는 자는 백성에게 저주를 받을 것이나 파는 자는 그의 머리에 복이 임하리라
그러면 어떻게 구제하는 자는 왜 윤택해 지고 풍족한 하나님의 축복을 받을 수 있는 것입니까? 해답은 잠언19:17절입니다.
"가난한 자를 불쌍히 여기는 것은 여호와께 꾸어 드리는 것이니 그의 선행을 그에게 갚아 주시리라" 아멘?
하나님은 우리에게 빌리신 돈에 대하여 반드시 갚아 주시는 분이시며 그것을 갚되 30배로, 60배로, 100배로 갚으십니다. 이 일에 대하여 예수님도 누가복음 12:33에 '너희 소유를 팔아 구제하여 낡아지지 아니하는 배낭을 만들라 곧 하늘에 둔 바 다함이 없는 보물이니 거기는 도둑도 가까이 하는 일이 없고 좀도 먹는 일이 없느니라 고 하셨습니다.
낡아지지 아니하는 배낭이 뭘까요? 하나님께 드리는 헌신의 배낭입니다. 거기다 드리면 다함이 없는 보물이 된다는 약속입니다. 거기는 좀도 없고 도적도 없다는 것입니다. 하늘에 쌓아 두라는 것은 하나님이 기억하시는 도구로 사용하라는 것입니다. 그런 사람은 더 많은 것을 맡기게 되는 것입니다. 살아 계신 하나님이 채워주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복의 통로가 되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움켜잡으려고만 합니다. 자기만을 위해 사용하려 합니다. 그러니 통로가 아닌 창고가 되려고 하는 것입니다.
카네기는 그의 저서에서 “부자의 인생은 두 시기로 나뉘어야 한다. 전반부는 부를 획득하는 시기이고 후반부는 부를 분배하는 시기여야 한다.”라고 주장했습니다.
카네기는 사업에서 은퇴한 후 자신의 재산을 나누어 주기 시작했습니다. 그는 1902년에 워싱턴 카네기 협회를 설립했습니다. 당시로서는 천문학적 액수인 2천 5백만 달러의 사재를 털어 미국 전역에 2,500개의 도서관을 지어 헌납했으며 카네기 회관, 카네기 공과대학, 카네기 교육진흥재단 등에 모두 3억 달러를 기증했습니다.
카네기의 이러한 자선행위에 이어 록펠러 재단과 포드 재단 등이 설립된 것은 모두 카네기 정신의 계승이었고, ‘부의 사회 환원’이란 자본주의 사회의 기업가 정신을 제시한 것입니다.
카네기가 남긴 유명한 말이 있습니다. 따라서 합시다. “부자인 채로 죽는 것은 정말 부끄러운 일이다.”다 나누고 베풀고 선용하고 죽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3. 익명성 헌신의 기쁨을 즐겨야 합니다.
하나님은 분명하고 명백하게 상급을 약속하고 있습니다. 그러기에 아무도 모르게 익명으로 헌신하면 헌신하는 나도 즐겁고 그것을 받는 이도 감동이 되고 특별히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결과가 찾아옵니다.
그러기에 익명으로 일하면 하나님이 더 많은 것으로 섬길 능력과 복을 주십니다. 결국 하나님이 주시는 참된 기쁨을 맛보게 되는 것입니다.
서울의 어느 교회는 헌금 중에 익명 구제 헌금이 있답니다. 그 헌금을 어디다 쓰게 되는지는 목사님과 재정부장만 안답니다. 그런데 놀라운 사실은 그 헌금에 많은 사람이 동참한다고 합니다. 돈이 없어 점심을 못 먹는 신학생들 용돈으로, 선교지에서 돌아와 병을 치료받는 선교사들에게 사용된다 합니다.
저는 그 교회는 그런 일로 큰 복을 받을 거라 생각합니다. 그래서 우리 교회도 구제와 섬김을 신청 받아 몰래 몰래 하고 있습니다.
미국 역사상 최고의 부자였던 록펠러는 52세 때 근 무력증, 탈모증, 불면증, 위궤양 등으로 인해 먹지도 자지도 못하고 나무막대기처럼 바짝바짝 말라갔습니다. 죽음의 문턱에 이르자 그처럼 악착같이 모았던 재산도 그에게 아무런 의미가 없었습니다.
그때 그의 삶을 바꾼 것은 누가복음6:38절. "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줄 것이니 곧 후히 되어 누르고 흔들어 넘치도록 하여 너희에게 안겨 주리라 너희가 헤아리는 그 헤아림으로 너희도 헤아림을 도로 받을 것이니라" 라는 말씀이었습니다.
록펠러는 당장 자신의 부를 나누기 시작했습니다. 그 후 기적적으로 건강을 회복하여 98세까지 장수했습니다. 할렐루야!
실제로 주는 사람이 더 건강하고 행복하고 장수한다는 어떤 연구결과가 발표되었습니다. 남에게 주는 사람이 고통과 아픔을 적게 느끼고, 정신적으로 더 건강하며, 스트레스도 적고, 질병에도 덜 걸린다는 것입니다. 결국, 남을 돕는 행위는 자기를 돕는 행위가 되는 것입니다.
또 우리나라 어느 성구사 사장님 이야기입니다. 그가 찢어지게 가난할 때 심장병에 걸렸답니다. 그런데 그 당시 40만원이 없어서 수술을 못하고 죽어갈 판이었습니다. 그때 이름을 밝히지 않은 어떤 사람의 도움으로 수술을 받아 기적적으로 생명을 구하였습니다. 그때 그는 결심했습니다. "나중에 반드시 갚는다." 는 것이었습니다. 결국 그는 매년 40만원을 들고 세브란스병원 심장병 담당 의사를 찾아가서 내밀었답니다. 의사는 웬 일이냐고 물었습니다. “네, 내가 이곳에서 심장수술을 받았습니다. 그때 40만원이 없어서 죽을 뻔 하였는데 누군가가 도와주어 살았습니다. 지금도 그런 환자들이 없으란 법이 어디 있겠습니까? 긴급하게 돈 없는 환자가 오면 누구라도 좋으니 거절하지 마시고 이 돈으로 고쳐 주십시오.”
그 후 그 장로님은 매년 심장병 환자 1명을 도와주고 있답니다. 누군가의 40만원은 그 후 수천만 원의 헌신을 만들어 낸 것입니다.
오늘 마태복음6장을 자세히 보면 구제, 기도, 금식에 대해 말씀하신 후 19절에 이런 말씀이 이어서 언급됩니다.
19 너희를 위하여 보물을 땅에 쌓아 두지 말라 거기는 좀과 동록이 해하며 도둑이 구멍을 뚫고 도둑질하느니라. 하셨습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하늘에 쌓아야 할 보물이 무엇인가요? 구제, 기도, 금식이 하늘에 쌓아둘 보물입니다.
하나님이 기억하시고 하나님이 갚으시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은밀한 중에 행해지는 구제, 기도, 금식은 하나님이 갚아주시는 것입니다.
제가 존경하는 곽선희 목사님의 간증을 들어보니 얼마나 은혜가 되는지 모릅니다.
목사님이 북한에서 나올 때 성경책만 한 권 들고 나왔다고 합니다. 생각해보면 오늘까지 밥을 굶지 않았고 장학금을 받아 돈 한 푼 없이 유학까지 했으며 하나님의 축복으로 재벌보다 더 잘 산다고 자랑했습니다.
왜냐하면, 재벌은 빚이 많으나 자신은 빚이 하나도 없고 자녀까지 복을 받아 잘살고 있으니 재벌이 부럽지 않다는 것입니다.
곽 목사님이 말하기를 어려서부터 저의 집에 항상 거지들과 불쌍한 사람들이 많이 찾아왔다 합니다. 어머님이 그들을 정성껏 도와주었답니다.
배고프다는 사람에게 쌀을 줄 때면 쌀을 푸는 며느리에게 시어머니가 좀 더 갖다 주라고 말씀하셨답니다. 그때는 배가 고픈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밥을 얻어먹기 위해 찾아온 사람이 있으면 아무리 남루한 거지라도 한 상 가득 차려주었으며, 누구든지 제대로 잡수시도록 정성껏 잘 대접하기를 잊지 않답니다.
그는 어렸기 때문에 할아버지께서 무슨 일을 많이 하셨는지 몰랐답니다.
그러나 남한에 와서 알게 되었습니다. 어떤 목사님은 할아버지가 장학금을 주어서 일본에 가서 공부했고, 목사까지 되었다고 찾아와서 알려 주었답니다.
결국 그 할아버지의 행함의 복이 다 자손에게 돌아왔던 것입니다.
일찍이 조부모님 때부터 가난한 사람에게 도움을 주고 사랑을 베풀고 구제한 덕분에 오늘날 저와 후손들이 이렇게 복을 누리고 있는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가 알게 했든 모르게 했든 사랑을 베풀고 도왔다면 조급해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때가 되면 반드시 돌아옵니다.
여러분 주변에 어려운 사람이 있습니까? 은밀하게 그분들을 도와주시기 바랍니다. 성령의 감동으로 누군가를 도울 맘이 생겼습니까? 그러면 주님의 말씀대로 은밀히 행하시기를 바랍니다.
때론 이름을 밝히지 말고 누가 알아주기를 기대하지 말고 하시기를 축원합니다.
특별히 하나님이 깜짝 놀랄 만한 헌신을 하시기를 축원합니다.
주님은 아십니다. 그리고 반드시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갚아 주십니다.
여러분! 이 강대상 누가 하셨는지 아시나요? 아무도 모를 것입니다.
그런데 하신 분은 아시지요. 그분은 교회에 들오실 때 마다 이 강단을 보고 기뻐하며 영광 돌릴 것입니다.
여러분 모두에게 이름을 감춘 헌신의 기쁨이 넘치기를 축원합니다.
기도합시다. (통성기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