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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피앗사랑 원문보기 글쓴이: rigel
그들 가운데에 섞여 있던 어중이떠중이들이 탐욕을 부리자, 이스라엘 자손들까지 또 다시 울며 말하였다. "누가 우리에게 고기를 먹여 줄까?(4) 우리가 이집트 땅에서 공짜로 먹던 생선이며, 오이와 수박과 부추와 파와 마늘이 생각나는구나."(5) '그들 가운데에 섞여 있던 어중이떠중이들'은 이스라엘과 함께 출애굽한 '섞여 사는 무리'(mixed multitude; rabble), '잡다한 족속들'이 포함될 수도 있고, 모계쪽만 이스라엘 민족(레위24,10)인 혼혈아들이 포함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들은 이스라엘 사회의 비주류 계층으로 누구보다도 불만이 많을 수 있고, 신앙적으로도 문제가 있을 수가 있었다. '섞여 있던 어중이떠중이'로 번역된 '아싸프쑤프'(asapsup)는 탈출기 12장 38절에 나오는 '이국인' 즉 이스라엘 백성과 혈통이 다른 사람만을 가리키는 말로 이해하기보다는, 힘들고 어려운 일이 생기면 언제나 함께 모여 부정적인 여론을 형성시키는 이스라엘 백성가운데 있었던 일부 불만 세력들도 포함되는 것으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 '탐욕을 부리다'로 번역된 '히트아우우 타아와'(hithauu thaawa)에서, '히트아우우'와 '타아와'는 동일한 어근을 지닌 단어이다. '히트아우우'는 '원하다', '갈망하다'(잠언21,10), '사모하다', '바라다'(미카7,1) 라는 뜻을 지닌 '아와'(awa)의 재귀형으로, '탐내다'(신명5,21)라는 뜻을 지니고 있다. 그리고 '타아와'는 '아와'(awa)동사에서 유래한 명사로서 '욕심', '탐욕'(시편106,14), '정욕', '욕심'(잠언21,25), '소원'(시편21,3)등의 뜻을 지니고 있다. 이어서 따라오는 내용으로 보아 이들이 가진 탐욕은 음식에 대한 것이 분명하다. 이처럼 동일한 어근을 지닌 단어를 반복하여 사용한 것은 음식에 대한 그들의 탐욕이 얼마나 강했는지를 보여 주는 것이다. 이러한 그들의 지나친 육체적 욕망이 결국은 이스라엘의 원망과 불신앙을 자극했던 것이다. '이스라엘 자손들까지 또 다시 울며 말하였다' (4) 원문에 '아싸프쑤프'로 나오는 불만 세력들의 무리들이 이집트에서 먹었던 음식을 갈망하자 모든 이스라엘 백성들의 마음도 그것을 다시 기억하게 되었고, '누가 우리에게 고기를 먹여줄까?' 하며 통곡하기 시작했다. 인간이 주위 환경에 얼마나 쉽게 영향을 받는지를 여실히 보여 주고 있는 것이다. 여기서 '다시'로 번역된 '와야슈뷰'(wayashubu)는 접속사 '와우'(wau)와 '돌아가다'란 뜻을 기본적으로 지닌 동사 '슈브'(shub)의 미완료 3인칭 복수형이 결합된 것이다. 본문에서 이 '슈브' 동사는 '다시'라는 뜻으로 쓰이기도 했지만, '하느님께로부터 돌이켜 옛 행실로 돌아간다'는 의미가 강하게 내포되어 있다. 민수기 11장 1절의 말씀은 "백성이 주님의 귀에 거슬리는 불평을 하였다. 주님께서 그것들 들으시고 진노하셨다. 그러자 주님의 불이 그들을 거슬러 타올라 진영 언저리를 삼켜 버렸다." 이다. 민수기 11장은 지금까지 진술되어 오던 민수기 내용의 전환점 역할을 하고 있다. 결국 약속의 땅에 들어가지 못하게 될 출애굽 제1세대의 운명을 암시하는 복선이 민수기 11장 서두에, 특히 민수기 11장 1절과 4절에 깔려 있는 것이다. 그 중에서도 이 '슈브'동사는 민수기 14장에 서술된 내용과 깊은 연관을 지니고 있다. 가나안 땅을 정탐하고 나서 그들은 이집트로 '돌아가는 것'(슈브)이 낫지 않겠느냐고 서로 논의한 다음, 결국 한 우두머리를 세워 이집트로 '돌아가자' (슈브)고 결의한다(민수14,3.4). 이에 대해 주님께서는 그들이 광야에서 모두 죽을 것이라고 말씀하시고 (민수14,35), 모세는 그 말씀을 전하면서 그들이 주님 뒤를 따르지 않고 '돌아선 탓'<배반했기('슈브')때문>이라고 그 이유를 설명한다(민수14,43). 이처럼 민수기 11장 4절의 내용은 이스라엘 자손들이 '다시 울며'에 초점을 맞추기보다는, 원망하고 불신앙하는 옛 행실(탈출15,24; 16,2; 17,3)로 '다시 돌이켜서' 결국은 이집트의 옛 죄의 노예 상태로 '돌아가려는' 주 하느님께 대한 '배반' 행위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 것이다. '누가 우리에게 고기를 먹여 줄까?' 사실 이스라엘 백성들은 가축에 둘러싸여 있으면서(탈출12,38; 19,13; 34,3) 고기를 달라고 통곡하였다. 아마도 이 가축들은 하느님을 위한 제사용으로 준비되었기 때문에 먹지 않았던 것 같다(탈출5,3; 10,24-26). 그렇다고 이들은 기근 속에 있는 것도 아니었다. 매일 그들이 먹을 수 있을 만큼의 만나가 하느님께로부터 공짜로 제공되었다. 하지만 그들은 불평하였다. 왜냐하면 그들의 식용을 다양한 먹거리로 채울 수 없었기 때문이다. 이처럼 하느님을 향한 우리들의 불평과 원망은 이스라엘 백성들처럼 하느님에 의해 기본적인 필요가 채워짐에도 불구하고, 더 좋고 더 풍요로운 것을 누리고자 하는 인간의 욕망에서 비롯되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한 가지 중요한 사실은 하느님께서 이미 1년 전에 이스라엘 백성에게 메추라기를 보내어 고기를 먹게 하신 적이 있었다는 것이다(탈출16,1.13). 이집트에서 나온 지 1개월 후 그리고 홍해를 건너 엘림을 지나 신 광야에 이르렀을 때, 그들은 고기를 먹게 해 달라고 원망했고, 하느님께서는 메추라기를 보내어 진을 덮게 하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 하느님을 믿고 간구하기보다는 '누가 우리에게 고기를 먹여줄까?'라고 슬퍼하고 있다. 이런 태도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모세 역시 '이 온 백성에게 줄 고기를 제가 어디서 구할 수 있겠습니까?(민수11,13) 라고 말한 것으로 마찬가지였음을 알 수 있다. 즉 백성이나 모세나 모두 1년 전 신 광야에서 메추라기 사건을 별로 기억하지 못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아마도 신 광야에서의 메추라기 사건이 일회적이었다는 점(탈출16,13), 그래서 하느님께서는 이제 그 고기를 한 달 간 구역질이 나도록 먹게 하시겠다고 말씀하신 점(민수11,20)을 참고하고, 둘째로 봄철에 북아프리카 지역에서 홍해를 건너 이동하는 메추라기가 운좋게 자연적으로 이스라엘 진영에 떨어진 것으로 여겨, 신 광야에서의 메추라기 사건을 하느님의 초자연적인 역사로 안 볼수도 있다는 점, 셋째는 시간적인 요인으로, 민수기 11장에 기록된 메추라기 사건의 시기는 시나이산을 떠난 시기가 출애굽한 이듬해 이월 이십일(민수10,11)이므로 그 이후가 분명하다는 참고할 때 이스라엘 백성들의 불평을 가늠할 수 있다. 그러니까 신 광야에서의 첫 메추라기 사건(출애굽 일년 둘째 달 보름; 탈출16,1)이 있은지 약 1년이 더 지난 시점에서 그때의 사건을 하느님의 초자연적 역사로 믿는 믿음이 많이 시들었다고 보는 것이다. '공짜로'로 번역된 '힌남'(hinnam; freely; at no cost)은 '은혜','호의'를 뜻하는 명사 '헨'(hen)에서 유래된 부사로서, '거저', '값없이'(창세29,15)라는 뜻이다. 즉 여기에는 '아무런 수고도 하지 않고'라는 의미가 담겨 있다. 민수기 11장 5절에 기록된 음식들은 노예 생활을 했던 이스라엘 백성들도 비교적 쉽게 구할 수 있었고, 파와 마늘은 강제 노역에 동원된 일꾼들에게 식사로 제공된 것들이다. 하지만 이들이 그 음식들을 '공짜로' 먹었다는 것은 과장된 표현이다. 왜냐하면 노예 생활의 강제 노역에서 이들은 참으로 힘들게 수고했기 때문에 이 정도의 음식들은 지극히 당연한 대가요, 오히려 부족한 대가라고 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이 굳이 '공짜로'라는 표현을 써서 말한 것은 모세를 향한, 더 나아가서 하느님을 향한 강한 불만을 표현한 것이다. 말하자면, '이집트의 종으로 있었을 때에도 이러한 음식들을 공짜로 먹었는데, 이제 자유로운 계약의 백성이 된 우리에게 겨우 공짜로 주어진 것이 이 만나뿐인가?' 하는 한탄을 드러내는 것이다. 결국 이것은 배부른 노예생활, 종살이가 배고픈 하느님의 백성으로서의 자유로운 생활보다 더 낫다는 불신앙의 극치를 나타내는 표현이다. |
첫댓글
zucchero123
우리는 메추라기가 떨어진 사건이 두 차례라는 걸 알아야 합니다~
처음에는 단회성으로(탈출16,13), 그 다음에는 1년뒤에 한달동안(민수11,20)
만나는 광야 생활 40년동안 내렸지만, 메추라기는 단 두번, 한달 정도였어요.
임언기 신부님
zucchero123
하느님의 초자연적 영적과 역사하심도 과학이나 자연의 현상으로
모두 다 치부하는 불신앙과 인간의 오만이
이 시대의 인간들의 특징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