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가을 산행의 백미는 뭐니뭐니 해도 단풍 구경이 최고다.
명산이 아니더라도 단풍이 곱게 물든 산은 그저 아름답기만 하다.
지난 13일(토요일)에 갔던 부항령에서 우두령 대간길이 그랬다.
명산으로 꼽힐만큼 멋진 산이 없어 그저 밋밋한 풍광의 연속이나 단풍이 한몫을 했다.
단풍이 아니더라도 지루한 코스는 아니었다.
부자 곁에 사는 거지는 부자거지라고 덕유산에 이어진 산마루가 제법 장대하였다.
얼른 가늠해 볼 수 있도록 비교한다면 팔공산(1192m)과 비슬산(1084) 높이와 비슷한 봉우리
가 10개나 줄줄이 이어져 있었으니 결코 호락하지는 않았다.
오전 8시50분 부항령 도착.
3주 만에 다시 찾아왔더니 그 사이 단풍이 곱게 물들어 우리를 반겼다.
기다리느라 애가 탔는지 상당히 새빨갛다.
오전 8시55분, 성미 급한 일행들이 선두로 먼저 출발했다.
스트레칭을 무시할 만큼 체력에 자신감을 가지는 대원들이다.
소요시간 보다 빨리 완주하는 것을 목표로 삼으니까 다른 대원들이 따라 오든 말든
앞서 나간다.
첫번째 봉우리 백수리산(1034m)을 향해 미끄러운 낙엽을 조심스레 밟고 간다.
초장이라 그런지 모두들 힘이 넘치는 모습이다.
10시15분, 후미그룹 백수리산 통과.
앞으로 가야할 산들이 만만치 않게 도열해 있다.
두 번째 봉우리 박석산(1175m)을 내려서는 비탈길에서 만난 단풍이다.
어우, 그냥 지나치기 어렵다.
후미그룹이 예전에 화전민들이 살았던 터에 시설한 나무보도 위를 지난다.
억새의 사열을 받으며 간다.
스페인의 유명 건축가 ‘안토니오 가우디’가 한 말이 생각났다.
직선은 인간이 만든 것이고 곡선은 신이 내린 선물이라고....
곡선으로 이어진 아름다운 대간 능선의 포근함을 만끽하며 간다.
삼도봉 전방 500m 안부에서 만난 이정표.
산삼약주를 판다는 낙서를 보니 산삼이 더러 발견되는 곳인가 보다.
이정표를 쳐다 보는데 줌마 대원이 걸려온 전화를 받는다.
“엄마는 지금 삼도봉 가까이 와있어, 아, 냉장고에 고등어 찌개 있잖아, 그거 전자레인지에
돌려서 밥하고 먹어, 라면 먹고 힘 쓰겠어 ? 아, 귀찮으면 짜장면이라도 시켜 먹어, 쨔샤 !”
듣자하니 도서관에 공부하러 간 아들이 점심식사를 하기 위해 집으로 돌아온 듯 하다.
12시30분, 삼도봉(1176m) 도착.
백두대간 종주팀의 회장을 맡고 있어서 호위병들이 많다.
앞에 뾰족한 산이 석기봉(1200m), 뒤편에 좀 떨어져 있는 산이 민주지산(1242m).
그런데 아쉽게도 백두대간 소속이 아니다.
멀리 남쪽으로 덕유산 향적봉이 보인다.
벌써 가물가물하게 보일 정도로 멀리 왔다.
덕유산 줄기도 이제 더 이상 보이지 않을 정도로 북상한다.
앞 골짜기는 전라북도 무주군 설천면 미천리.
삼도봉 동남쪽의 경상북도 김천시 부항면 해인리 골짜기를 내려다 본다.
삼도봉에서 점심밥을 먹고 오후1시35분, 부항령에서 8.3km지점의 삼마골재를 지난다.
백두대간에 체육시설이 있는 건 처음 본다.
점심시간의 휴식을 취하고 난 후 솟아나는 에너지로 1124m 고지를 힘차게 오른다.
밥상을 거나하게 차려서 다 먹고 오느라 뒤쳐졌으므로 편하고 빠른 길인 우회로로 가자니까
젊은 일행들이 한사코 봉우리를 넘겠다고 했다.
역시 한창 나이는 다르다.
남쪽보다 일교차가 더 있어서일까.
주로 북쪽 능선의 단풍들이 곱다.
오후 2시24분, 밀목령을 지나서 1089 고지를 오를 때 만난 안내판.
"더 이상 걷기 싫으면 내려와서 연락 주세요."
화주봉 곁의 암릉(1172m)이 가까이 다가오는지 계속 오르막이다.
눈이 부시도록 절정이다.
낙엽 쌓인 길이 레드카핏 보다 낫다면 만추에 대한 아부일지 모르겠다.
저 멀리 한가운데 서로 붙어 있는 두 봉우리, 초점산과 대덕산이 아직도 시야를 따라 온다.
그렇게 보이는 까닭은 대간길이 C자형으로 굽어 돌면서 직선거리가 별로 멀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오늘의 첫 봉우리 백수리산에서 오른쪽의 삼도봉으로 이어진 대간 마루금이 장대하게 보인다.
오후 3시35분, 암릉(1172m)에 도착.
아따~ 힘드네 힘들어.....
뭐할라꼬 이 고생인지 모르겠네.
여간해서 움직이기가 싫을 정도로 힘들다.
화주봉(석교산 1207m)이 바로 눈앞이다.
다음에 지나가야할 우두령에서 추풍령 구간의 김천 황악산 능선이 북쪽 뒤편으로 보인다.
오후 3시55분, 꼴찌들이 암릉에서 일어났다.
암릉에서 화주봉으로 가려면 이 수직 암벽에 걸린 밧줄을 타고 내려서야 한다.
위에서 내려다보면 위협적인데 밑에서 쳐다보면 별 것 아니다.
오후 4시25분, 땀을 화끈하게 흘리며 드디어 화주봉(석교산)에 올랐다.
정상에 오른 기분이 어떤지 표정들을 보시라.
화주봉으로 올라온 능선.
맨 뒤쪽에 삼도봉에서 서북쪽으로 뻗어나간 민주지산 줄기가 아슴프레하다.
오후 5시45분, 우두령에 내려서자 먼저 도착한 대원들이 일제히 환한 미소로 반긴다.
법원에서 10분 정도 걸으면 도착하는 집이지만 오늘은 더 이상 걷기가 싫었다.
경산과 시지로 가는 대원들과 함께 성서 홈플러스 앞 용산역에서 지하철을 탔다.
우리 일행 중에 언제나 앞서가는 파워를 지닌 젊은 대원이 이번 대간길에서는 눈에 띄게
발걸음의 힘이 없어 보였다.
간밤의 숙취 탓인지 아침밥을 걸렀는지 까닭이 아리송했는데 중간쯤 가서야 새 신발을 신어서
그런지 무릎이 아프다고 실토를 했다.
목수가 연장 나무랄 수 없다고 하지만 사실 연장이 손에 맞아야 일은 진척이 잘 된다.
새 신발을 신고 지리산 종주를 하다 지독하게 무릎과 발목을 아파본 경험이 떠올랐다.
천왕봉에서 치밭목을 거쳐 대원사로 내려가면서 스틱도 다 부러트리고 다리를 끌고가다시피
간 적이 있었다.
정말이지 그때는 몸에 걸친 것이라면 뭐든지 다 내던져 버리고 싶을 정도로 힘들었다.
가야 하는데 다리가 아픈 그 심정을 왜 모르겠는가.
참을성이 강한 젊은이란걸 알면서도 은근히 걱정이 되었다.
나 역시 겨울채비를 훈련한답시고 큰 배낭을 메고 갔더니 그 무게 때문에 이전만큼 걷기가
수월치 않았다.
후미 일행의 선두에 서서 마지막 봉우리인 1158m를 넘고 우두령을 1.5km 남짓 남겨둔 지점
에서 그 젊은이가 많이 쳐졌는지 모습이 안 보인다고 뒤따라 오던 대원이 말했다.
해는 서산으로 뉘엿뉘엿 넘어가고 산행종료 시간은 촉박하였지만 우리는 발걸음을 멈췄다.
무릎이 아파서 천천히 갈테니 걱정하지 말고 먼저 내려가라는 얘기를 듣긴 했지만 어떻게
그럴 수 있겠는가.
부축하든지 업고 가든지 어려운 상황을 그려 보면서 기다렸다.
산대장으로부터 어디까지 왔느냐는 연락을 받고서야 늦게 내려가는 사정을 알렸고 기다린지
20분이 다 될 무렵 저만치 떨어진 내리막길에서 그 젊은이가 나타났다.
우리는 모두 환호성을 지르며 박수를 쳤다.
이후로 그 젊은 대원의 발걸음에 맞추어 함께 내려 왔다.
우두령을 200m 남겨 둔 지점에서 먼저 하산했던 어느 대원이 올라 오고 있었다.
연락을 전해 듣고 걱정이 되어 구조하러 올라오는 중이고 해서 감동을 했다.
단풍처럼 아름다운 것이 사람의 풋풋한 정이다.
세상이 각박하다지만 우리 마루금 산악회 백두대간팀의 분위기는 횟수를 거듭할수록 정이
각별해지는 느낌이다.
종주팀의 회장을 맡고 있으니까 팀웍에 신경을 쓰지 않을 수 없다.
비록 꼴찌로 대간길을 내려섰으나 마음이 단풍처럼 느껴진 아름다운 산행이었다.
이번에도 이만큼 걸었다.
< 끝 >
첫댓글 소나무에 걸린 '개인콜택시 010-689.....;'광고판이 좀 거시기 하네....
백두대간을 콜택시로 쉬이 갈 수는 없는 것인지...ㅎ~
오늘도 맛깔나는 산행기 잘 읽고갑니다~~^*^;
^^ 눈팅만 즐기지 말고 같이 가볼 수 있도록 궁리해 보자.
다리가 따라갈련지 알 수가 없어 그냥 눈팅으로만 즐긴다네. 좋은 경치구경과 산행기 고마우이.
맛보기로 한 코스만 따라가 봐도 될려나?
추풍령에서 속리산 가는 구간이 낮아서 비교적 수월할거라고 예상되는데 일정표를 올려 볼께.
법원에서 아침 6시에 출발하니까 집에서 새벽5시에 기상해서 준비해야할 거고 반월당에 6시10분, 성서 홈플러스에 6시25분에 차를 갖다 댄다네. 회비는 3만원. 점심 각자 준비. 내가 회장을 맡고 있으니까 간다면 각별히 대우하겠네. 참한 색시 소개팅은 기본^^ 형호경이가 번개팅을 준비하고 있다니까 먼저 한 번 만나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