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
바람도 없는 강이
몹시도 설렌다
고요한 시간에
마음의 밑둥부터가
흔들려 온다
무상(無常)도 우리를 울리지만
안온(安穩)도 이렇듯 역겨운 것인가?
우리가 사는 게 이미 파문(波紋)이듯이
강은 크고 작은 물살을 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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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종고
나는 한평생, 내가 나를
속이며 살아왔다.
이는 내가 나를 마주하는 게
무엇보다도 두려워서였다.
나의 한 치 마음 안에
천 길 벼랑처럼 드리운 수렁
그 바닥에 꿈틀거리는
흉물 같은 내 마음을
나는 마치 고소공포증
폐쇄공포증 환자처럼
눈을 감거나 돌리고 살아왔다.
실상 나의 知覺만으로도
내가 외면으로 지녀 온
양심, 인정, 명분, 협동이나
보험에나 들듯한 신앙생활도
모두가 진심과 진정이 결한
삶의 편의를 위한 겉치레로서
그 카멜레온과 같은 위장술에
스스로가 도취마저 하여 왔다.
더구나 평생 시를 쓴답시고
綺語* 조작에만 몰두했으니
아주 죄를 일삼고 살아왔달까!
그러나 이제 머지않아 나는
저승의 관문, 신령한 거울 앞에서
저런 추악망측한 나의 참 모습과
마주해야 하니 이 일을 어쩌랴!
하느님, 맙소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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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신비의 샘인 하루를 맞는다.
이 하루는 저 강물의 한 방울이
어느 산골짝 옹달샘에 이어져 있고
아득한 푸른 바다에 이어져 있듯
과거와 미래와 현재가 하나다.
이렇듯 나의 오늘은 영원 속에 이어져
바로 시방 나는 그 영원을 살고 있다.
그래서 나는 죽고 나서부터가 아니라
오늘서부터 영원을 살아야 하고
영원에 합당한 삶을 살아야 한다.
마음이 가난한 삶을 살아야 한다.
마음을 비운 삶을 살아야 한다.
삶과 꿈의 앤솔러지 / 좋은시 2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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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의 맹점盲點에서
시방 세계는 짙은 어둠에 덮여 있다.
그 칠흑 속 지구의 이곳 저곳에서는
구급을 호소하는 비상경보가 들려 온다.
온 세상이 문명의 利器로 차 있고
자유에 취한 사상들이 서로 다투어
매미와 개구리들처럼 요란을 떨지만
세계는 마치 나침반이 고장난 배처럼
중심도 방향도 잃고 흔들리고 있다.
한편 이 속에서도 태평을 누린달까?
황금송아지를 만들어 섬기는 무리들이
사기와 도박과 승부와 향략에 취해서
이 전율할 밤을 한껏 탐닉하고 있다.
내가 이 속에서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일까?
저들에게 새 十誡命은 무엇일까?
아니, 새것이 있을 리가 없고
바로 그 十誡命을 누가 어떻게
던져야 하는가?
여기에 이르면 판단 정지!
오직 全能과 무한량한 자비에
맡기고 빌 뿐이다.
인류의 盲點에서 / 문학과사상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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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사나운 짐승
내가 다섯 해나 살다가 온
하와이 호놀룰루 시의 동물원,
철책과 철망 속에는
여러 가지 종류의 짐승과 새들이
길러지고 있었는데
지금도 잊혀지지 않는 것은
그 구경거리의 마지막 코스
"가장 사나운 짐승"이라는
팻말이 붙은 한 우리 속에는
대문짝만한 큰 거울이 놓여 있어
들여다보는 사람들로 하여금
찔끔 놀라게 하는데
오늘날 우리도 때마다
거울에다 얼굴도 마음도 비춰 보면서
스스로가 사납고도 고약한 짐승이
되지나 않았는지 살펴볼 일이다.
인류의 맹점에서 / 문학과지성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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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詩 . 2
나는 그대들에게
나의 마음의 사연들을
습관처럼 털어놓곤 한다.
하지만 그대들은 내 입술에서
행복한 말이 흘러나올 때
결코 나를 부러워하지 말라.
실상 그때 나의 가슴속은
모진 아픔과 쓰라림에 차서
애타는 갈망과 탄식만이 있느니
또한 그대들은 내 입술에서
불행한 말이 흘러나올 때
결코 나를 가엾이 여기지 말라.
그때 이미 나의 가슴속은
아픔과 쓰라림이 말끔히 가시고
안도의 한숨과 평정 속에 있느니
나의 거짓 사연에
그대들은 속지 말라.
그리고 정녕 속 깊은 사연은
아직 한 번도 내지 못하였음을
이제사 그대들에게 고백하노라.
인류의 맹점에서 / 문학사상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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