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일 무더위가 기승을 부린다. 집안에서는 에어컨이 있어 시원하게 지내지만 창 밖은 눈이 부시도록 햇빛이 쨍쨍 내리쬔다. 이런 오후에는 나는 눈밭으로 추억여행을 떠난다.
오래 전, 딸과 둘이 워싱턴 주 아들 집으로 가며 가보고 싶은 곳을 들리기로 했다. 오리건에서는 '크리에이터 호수'를 들려 가기로했다. 5월 말이기에 눈이 내리리라는 생각은 아예 하지않았다. 산을 오르는 길은 얼음판이고, 좁은 길 양쪽에는 치워놓은 눈이 차보다 높아 얼음으로 변하여 마치 얼음동굴속 같았다. 하늘에서는 함박눈이 펑펑 내리고 한 낮인데도 어두웠다. 속으로는 너무 아름답고 행복해 감탄을 하는 나였지만 두려움을 떨쳐버릴 수가 없던 그 날은 눈과 함께 떠오르는 추억이다.
메인은 아들이 사는 동안 자주 찾은 곳이다. 나무들이 옷을 갈아입고 뽐내는 가을이면 단풍을 보러가고, 겨울이면 추위에 혼자 있는 아들을 찾아 자주갔다. 메인은 유난히 눈이 많이 내린다. 산속의 시골 동네는 눈이 내린 날이면 한 폭의 그림으로 변했다. 눈덮인 산길을 온 가족이 차를 타고 다니던 곳. 등대가 많아 바다를 끼고 있어 등대가 많은 메인. 밤새 내린 눈으로 가끔 현관문을 열 수 없어 애를 먹을만큼 많은 눈이 내렸던 메인에서 아직도 어린아이처럼 눈을 좋아하는 나는 꿈을 꾸듯 행복했다. 지금도 눈을 감으면 눈속의 풍경이 아른거린다. 무엇보다 집으로 떠나기 전 날, 아무도 밟지않은 새하얀 벌판에서 우리는 서로 손을 잡고 혼자 남을 아들을 위해 기도했던 그 눈밭이 떠오른다.
얼마 전, 사위 생일날이었다. 아들이 생일 선물을 주며 우리에게 티셔츠를 하나씩 주었다. 무슨 일인가 싶어 쳐다보니 "그냥 똑같은 거로 샀어요" 하며 웃는다. 이번 여행을 준비하며 사위가 맨 먼저 준비한 가족 티 생각이 났나보다. 그 순간을 놓치지않고 "그럼 이거 입고 또 어디로 여행을 가야겠네" 내가 말했다. 사위는 "언제든 지 가죠" 장단을 맞춰주었다. 10월에 메인으로 갈 예정이라고 사위가 말했다. 결혼기념일에 맞춰 다녀온단다. 메인이라는 말에 내 귀가 쫑끗했다. "이 옷 입고 우리도 같이 가면 안될까? 메인은 내 버킷리스트에 있는 데" " 뭐 어려워요. 가세요. 헌데 수현씨가 같이가는 조건이예요" 아들에게 공을 넘기고 일초도 망설이지 않고 응해주는 사위가 고마웠다.
나도 안다. 아무리 생각이 없어도 어떻게 결혼 기념일에 떠나는 여행에 따라가겠다고 나설 수 있는 지. 허나 메인이라는 데. 그곳은 추억이 많아 언제든 다시 꼭 가고 싶은 곳인 데. 사위가 딸을 보며 눈으로 물었다. "나는 노 코멘트할래요" 딸은 생각할 시간이 필요한거였다. 열흘동안의 둘만의 여행을 생각했는 데 엉뚱하게 엄마가 나서니 얼른 말이 안나왔을 것이다. 아들은 집으로 오며 메인은 가고싶으면 언제든 지 4일정도면 갈 수 있다며 슬쩍 나를 떠본다.
비행기를 타고 보스턴으로 가서 렌트카로 메인까지 갔다 퀘백을 들려 온다는 데 듣기만해도 설레는 일정에 나는 꿈이라도 꾸고 있다. 나도 안다. 아무리 가고싶어도 참아야한다는 것을. 이렇게 내다보기만 해도 눈부시게 뜨거운 오후에는 잠시 이루어지 못할 꿈일지언정 생각은 할 수 있다며 혼자 기대를 갖는다. 내년에 데리고 간다해도 건강이 허락지않아 못 갈 수도 있는 데...내가 자주 애용하는 문구다. 식구들은 말한다. " 엄마, 그 소리를 몇 십 년 전부터 한 거 알아?" 딸이 그 말이 생각나서 나에게 가자고 할지 모르잖아. 뜨거운 한 낮에 엉뚱한 꿈을 꾸고, 흰 눈이 쌓인 벌판을 찾아 나서며 더위를 잊어본다.
첫댓글 봉희샘의 글농사는 늘 풍년입니다~ 잘 수확하는 일만 남았네요.
허리띠 한번 더 꽈악 동여매시고 화이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