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왕조실록 연산군일기에는 이런 대목이나온다 임사홍은 성품이간사하고 아첨을잘하여 나라를 어지럽혔다 사관이 직접이름을박아 남긴기록이다 실록은 왕도 열람할수없었던 문서인만큼 거기 실린평가는 당대사람들이 목숨걸고 쓴말이라고 봐도 무방하다 단순히패배한 정치인이나 반대당파를 제외하고 기록이증명하는 해악을 기준으로추렸다 유자광 임사홍 김자점 이이첨 유영경 조사의 신숙주 정인홍 실록안에 어떤 점방으로 남아있는지 확인해본다 조의 제문으로 무오사화를 일으킨 유자광의 고발 무고한장으로 충신을 죽이고 사림을불태운 고변의달인 유자광 서얼출신의 신분한계를 밀고로 돌파한유자광은 1468년 남이장군을 역모를꾸몄다며 성종에게 고변해단숨에 제거한 인물이다 어머니가 천첩소생이라 과거도 막혔던그는 무예하나로 간신히 관직에 발을들인뒤 정적을제거하는 고변을 출세 수단으로삼았다 결정적장면은 1498년 무오사화다 김종직의 조의제문을 문제삼아 연산군을뽐뿌했고 사림파 수십명이 참형유배되는 피바람을 직접설계했다 충신을 죽인죄와 사림을도륙한죄 두개의 사화를한몸에 담은그는 조선역사상 가장치밀하게 권력을 이용한 간신으로꼽힌다 갑자사화를 점화한 임사홍의폐비고변 왕의분노에 불을지핀자 사화의설계자 임사홍 갑자사화는 임사홍이 연산군에게 생모윤씨의 폐비사사전말을 밀고하면서 촉발됐다 성종대에 능력을 인정받았으나 사림의 탄핵을받아 유배되는 수모를겪은 인물이었다 권토중래를 노리던 그는 연산군의 총애를 등에업고 정계에복귀했고 마침내 자신을짓밟았던 사림을 일거에쓸어낼 기회를포착했다 어머니의 죽음을몰랐던 왕에게 당시 폐비사사에 관여한자들의 이름을 속삭이는순간 수십명의 하이바가날라갔다 훈구든 사림이든 가리지않은 피바람이었다 그결과 실록은 그를나라를 망친간신으로 못박았고 중종반정직후 아들과함께 처형당하며 역사에서지워졌다 청나라에 북벌 기밀을넘긴 김자점의 밀고 북벌의꿈을 팔아치운 조선최악의 배신자 김자점 효종이극비리에 추진하던 북벌계획을 1651년청나라에 직접밀고한 인물이 바로김자점이다 병자호란이 터지던해 도원수로서 수만병력을 이끌고도 청군과제대로 싸우지않은채 퇴각해 인조를 남한산성에 고립시켰다 전쟁이끝나도 처벌받지않았다 오히려 인조의 총애를등에업고 권력핵심에 파고들어 정적을제거하며 조정을 장악했다 그러나 효종즉위후 북벌파에밀려 유배되자 복수심에불탄 그는 조선의 군사기밀을 청에팔아넘겼다 나라를 두번무너뜨린 이배신이 그를 간신록의 정점에세운다 인목대비 폐위를이끈 이이첨의조정장악 인목대비를 폐하고 왕자를죽인 광해군의입과손 이이첨 계축옥사를 설계해 영창대군을 강화도에 유배시키고 끝내증살로 몰아넣은인물이 이이첨이다 선조말년 대북파의핵심으로 광해군 즉위를이끈 그는 왕권의 뒤에숨어 반대파를역모로 찍어내는 정치공학에 탁월했다 그의 진짜정점은 폐모론이었다 살아있는 대비를 폐위하자는 주장은 조선성리학의 금기였지만 이이첨은 상소를조직하고 반대신료를 유배처형하며 1618년 인목대비 서궁유폐를 현실로만들었다 인조반정이 일어나던날 반정군은 그를 가장먼저 체포해참수했다 광해군도 아닌 이이첨을 먼저 반정세력조차 진짜권력이 어디 있었는지 알고있었다 영창대군을 내세운 유영경의 왕위계승공작 끝내 사약을받은 당쟁의설계자 유영경 선조말년 소북의영수로서 영창대군 옹립을주도하다 광해군 즉위직후인 1608년 사사된인물이 바로유영경이다 임진왜란이 끝나고 조정이 숨고를틈도없이 후계다툼으로 뒤흔릴무렵 대북의 이이첨과맞서며 소북을이끌었다 선조가 병석에서 광해군대신 어린 영창대군에게 왕위를 넘기려한다는 소문이돌자 유영경은 그흐름의중심에서 주도적으로 움직였다 그러나 선조가갑작스레 승하하고 광해군이 즉위하면서 판은 단숨에뒤집혔다 권력의 절정에서 역모의 죄목으로내몰린 그의몰락은 당쟁이란 결국칼날위의 줄타기임을 가장선명하게 보여주는 장면으로 실록에남아있다 이성계에 맞선 조사의의 무장반란진격 태종이 직접손본 외척전횡의 교과서적인물 간신 조사의 태종의외척으로 권세를남용하다 1409년 태종 9년 태종에의해 유배·숙청된 조사의는 조선초 외척전횡 문제를상징하는 인물로 실록에기록된다 태종의 처남이라는 후광하나로 권력의중심부에 진입한 그는 왕실외척이라는 지위를 방패삼아 사리사욕을 채우는데 거침이없었다 전환점은 태종이 외척세력전반을 정리하는 과정에서 직접 그를겨냥한 순간이었다 처가세력까지 단호히쳐낸 태종의 칼날앞에서 조사의는무너졌고 실록은 이장면을 외척이왕권을 넘볼수없다는 태종의 원칙이관철된 사례로 남겼다 단종을 버리고 수양대군을 택한 변절의밤 단종을팔고 권력을산남자 신숙주 집현전학사출신 신숙주는 1456년 사육신의 단종 복위운동당시 세조편에서며 동료들을 저버린 변절의 상징으로 역사에새겨졌다 세종이 아낀수재로 훈민정음 창제에도참여한 그였지만 성삼문 박팽년등 동료들이 죽음을 택하던그날 신숙주는 반대편 자리를골랐다 세조의 신임을등에업고 영의정까지 오른 그를백성들은 쉬상하는 나물에빗대 숙주나물이라 불렀다는 야사가 지금까지전한다 가장빛나는 재능이 가장깊은배신을 완성했기에 실록속 공신명단보다 숙주나물 이름하나가 그를 더오래기억하게 만들었다 사림을 공격한 정인홍의 문묘훼철상소 팔순노인을 형장으로 끌고간반정 정인홍 인조반정이 일어난 1623년 정인홍은 82세의나이로 처형대에 올랐다 선조대부터 북인의거두로 이름을 날렸던그는 광해군 치세에서 이이첨과함께 대북파의 양대축으로 군림했다 성리학의정신적 성지인 문묘에모셔진 이언적과 이황을 출향시키려한 사건은 당대사림전체를 경악시켰다 두성현을 끌어내리려는 시도는 실패했지만 정인홍이라는 이름은 학문적권위마저 정쟁의 도구로삼은 인물로 역사에새겨졌다 반정세력이 권력을잡자 그는 즉각체포됐고 팔십 평생쌓아온 모든것은 형장의 이슬로사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