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인들이 기억해야 할 한국교회 위인들 [13]
클레먼트 C. 오웬(Clement Carrington Owen, 1867-1909)①
클레먼트 오웬은 1867년 미국 버지니아 주에서 태어나 대학을 졸업한 후 신학을 공부했는데 유니온 신학교와 스코틀랜드 에딘버러(Edinburgh) 신학교를 졸업했습니다. 그러나 미국남장로교 선교사로 조선에 파송되기 전 버지니아 대학교에서 의학을 공부하기도 했습니다. 그가 조선에 도착한 때는 1898년 11월이었고, 목표 선교지부에서 선교사역을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그가 선교를 위해 보낸 세월은 10년 정도 밖에 되지 않았습니다. 전남 장흥 지방에서 전도를 하다가 급성폐렴으로 1909년 4월에 사망하고 말았습니다. 비록 짧은 기간이었지만 그는 목포에서 최초로 서양식 진료소를 세워 가난한 사람들을 치료했습니다. 목포 사람들에게 신의(神醫)라 불릴 정도로 그의 의술은 뛰어났고 사람들은 그가 약봉지에 쓴 성경 구절을 보고 기독교에 대한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습니다. 진료소에 배치해 둔 기독교 서적도 환자들과 보호자들의 관심을 끌었습니다. 치료비를 바라지 않았기 때문에 대부분 가난한 환자들이 오웬을 찾아왔지만 경무청의 총순(현 경찰청 경감)이자 목포에서 주조장을 소유하고 있었던 김윤수와 같은 사람도 어머니 손에 난 종기 때문에 치료차 오웬을 찾았다가 복음을 듣게 되었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부인과 어머니, 그리고 장모까지 전도했습니다. 1900년 김윤수는 오웬에게 세례를 받고 경찰직과 주조장을 모두 포기하고 교회 일과 선교사를 돕는 일에 앞장섰습니다. 교회당 건축 때는 총감독을 맡았고, 존 프레스턴(John F. Preston, Sr., 1875-1975) 선교사가 왔을 때는 우리말을 가르치는 선생 역할도 했습니다. 오웬이 환자들을 치료하고 그들에게 기회가 되는대로 복음을 전하게 되면서 김윤수와 같은 복음의 열매를 맺게 된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