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운대를 에너지 자립마을로
● 건물 모양만 생각하는 에너지 낭비형 건물들
건축물의 디자인은 도시의 이미지를 좌우한다. 영국의 대처수상은 “Design or resign” 즉, 디자인을 모르면 사퇴하라는 말을 함으로써 모든 분야에 디자인이 중요성하다는 것을 역설적으로 표현했다.
해운대에도 멋진 외관을 가진 건축물들이 많이 들어서고 있다. 그 중 대표적인 것이 해운대 마린시티에 있는 ‘두산 위브 더 제니스’로서, 무려 80층인 이 건물은 부산을 대표하는 마천루를 자랑한다. 그렇지만 건물 전면이 통유리로 되어 있어 여름에는 강한 일사로 실내가 무척 덥고 겨울에는 추워서 냉난방을 하는 데 많은 에너지가 필요하다. 통유리로 뒤덮인 벡스코도 마찬가지로 에너지 낭비가 심한 건물이다.
지붕이 철판인 반여농산물도매시장은 대표적인 에너지낭비형 건물이다.
● 기능성보다 디자인이 우선된 반여농산물도매시장
반여농산물도매시장도 대표적인 에너지 낭비형 공공건물이다. 1993년에 완공된 이 시장은 설계 당시 1만 평에 달하는 청과물동 지붕을 부산의 상징인 ‘바다가 넘실대는 파도’를 형상화하기 위해 철판으로 만들었다. 그 바람에 청과물동 내부는 한여름이면 열기로 달아올라 대형선풍기를 틀어도 농산물이 금세 변질한다. 게다가 겨울에는 철판의 냉기로 인한 추위를 견디기 위해 난방 에너지 수요가 급증한다.
반여농산물도매시장은 농산물의 산지와 소비자를 잇기 위한 경매가 이루어지는 곳으로 1천 명 이상의 상인들이 오가는 번잡한 곳이다. 따라서 이곳은 농산물유통 기능이 최우선되어야 하는 시설이다. 만약 그 전에 만들어진 엄궁농산물도매시장처럼 두터운 슬라브 지붕으로 했다면 냉난방 에너지 사용도 훨씬 절약하고 옥상은 주차장으로 활용하여 심각한 주차난도 해결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뜨거운 태양 때문에 반여농산물도매시장의 지붕을 덮은 우레탄이 녹아내리는 일은 없을 것이다. 이로 인해 지붕을 보수하기 위한 예산이 매년 수억에 이르고 있다.
2006년 한여름 더위를 겪으면서 당시 반여농산물도매시장 관리소장이었던 기자는 뜨거운 태양을 조금이라도 완화하기 위해 청과물동 옥상에 태양광 패널을 설치하여 그늘도 만들고 전기도 생산하자는 제안을 했다. 이를 위해 부산환경운동연합과 공동으로 반여시민햇빛발전주식회사를 만드는 구상도 했다. 그렇지만, 당시 담당 국장과 부산시장의 이해 부족으로 진척이 없다가 기자가 다른 부서로 자리를 옮기면서 아예 흐지부지되어 버렸다. 만약 그때 태양광 패널을 설치했다면 당시 kw당 700원 이상 한전에서 전기를 사주었으므로 큰 이익이 되었을 것이다.
반여시민햇빛발전(주)의 구상은 얼마 뒤 설립된 온천천시민햇빛발전(주)와 수영시민햇빛발전(주)에서 실현되었다. 거기에 투자한 시민들은 배당금을 받아 쏠쏠한 투자수익을 올리고 있다. 10년이 지난 지금은 kw당 한전에서 200원 이하로 매입해 주지만, 기술발전에 의한 태양광 모듈 가격하락 등으로 수익성이 있어 시골의 농토 위에 이르기까지 전국적으로 태양광 설치 붐이 일고 있다.
근래 풍산금속 일대의 제2센텀 계획에 따라 2020년에는 반여농산물시장이 이전할 계획이라고 한다. 앞으로 이전할 농산물도매시장은 반여시장의 실패를 거울삼아 에너지 제로 하우스 개념을 도입한 에너지 절약형 건물이 되기를 바란다. 디자인만 생각하는 건축전문가 위주로 구성된 부산시건축위원회에 최근부터 신재생에너지 전문가도 참여한다고 하니 건물의 디자인과 에너지 절약이 조화된 건축물이 들어서길 기대해 본다.
/ 김영춘 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