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적의 간격 외 1편
최연수
보고 싶다 보고 싶다 죽을 만큼 보고 싶다
노래 부르던 그는
더 슬픈 게 생각나지 않아서 슬픔이 줄어들질 않는다고 했다
더 더 슬픈 게 뭘까
두 배 세 배여서 웃음이 얼씬도 못하는
눈부신 슬픔
기적이라 믿는 건
기적과 기적의 간격이 멀어서 기적 같을 때 오는 것
먼 거리만이 위로가 된다
홀로 떨어져 있을 때보다 북적거리는 간격이 더 슬프니까
우리는 멀어서 행복했나
도무지 알 수 없는 서로의 간격
색깔이 달라서 덜 외롭다고 느꼈을까
먼먼 빨강과 파랑, 그리 붉거나 시퍼렇게 우리는,
슬픔을 훌쩍거려도 전혀
부끄럽지 않게
그렇게
목련의 오차
인구조사는 호흡이 가팔랐다
손이 가리킨 골목, 오래거나 갓 핀 송이를 통계 낸 목련의 필체가 흐릿해
가지는 여러 번 숫자를 담에 눌러 적었다
몰래 챙겨 내려간 짐가방은 비밀, 숨은 꽃을 암산으로 헤아리고
발 헛디딘 눈먼 주소지 옆엔 빈 괄호만 남겨두었다
무료함을 켜놓고 일 나간 익숙한 이름을 들고
다시 칸칸을 두드릴 때면
지붕을 밟고 다니는 기분이었다
산 번지, 찢어진 연과 붕붕거리는 꽃의 시종들과 동거하는
한 채가 적막해
눈부신 외출을 마친 인기척 없는 사월 옆에
온기 잃은 한 켤레 걸음을 기록했다
마른 젖을 물린 어미개와 마주친 순간 녹슨 고리처럼 표정이 얽혔다 풀어졌다
서류철엔 몇 마리 울음이 추가되었다
계약직 같은 봄날의 낮과 밤이 다른
오차와 통계
수수료를 떼듯 하얀 방에 들어앉은 목련 촉이
팍,
끊어지고
학점과 맞바꾼 길에서 유리 밟는 소리가 났다
최연수
2015년 영주일보 신춘문예, 시산맥 등단.
시집 안녕은 혼자일 때 녹는다 외. 평론집 이 시인을 조명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