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 남의 문학기행
죽곡./ 김 용 상
호남지방에는 무등산변의 산자락과 영산강변을 따라서 유독 수 많은 정자들이
즐비하게 산재되어 있으면서 선현들의 아름다운 유휴(遊休) 공간으로서의 삶의
한 모습을 느껴 볼수 있다.
한때는 중앙의 정치무대에서 자신의 꿈을 펼치면서 위로는 왕을 보필하고 백성들을
위해서 열심히 지내 오다가 정치 일선에서 물러 나와서 아니면 당쟁이나 사화에 밀려서
한가한 삶을 산수가 아름답고 풍광이 좋은정자(亭 子)에서 서로 글을 주고 받으면서
유유자적한 삶을 이어나가고 그리고 향촌의 미풍양속으로 교화하고, 때로는 재야 세력으로
활동하기도 하는 것이다.
이번에는 무등산 자락을 따라 서해로 흘러가는 영산강변에 있는' 영모정'을 중심으로
정리해 보고져 한다.
나는 지난 가을에 영남문학의 맹주이신 농암(聾 巖) 이현보( 李賢輔 )선생의
애일당과 정자를 답사를 한적이 있었다.
낙동강 상류에서 찾을수 있었으며, 천암만학(千巖 萬壑)의 아름다운 낙동강의
상류에서 농암의 계산풍류(溪 山 風 流)의 흥취를 느껴 보기도 하였다.
여기에 대응하는 호남문학의 산실을 지난 가을철에 광주에서 담양으로 향해서
답사를 한적이 있었는데, 어제도 시립남산도서관과 내가 보던 여러가지 책을
읽어보고 또한 지금까지 소장한 책들을 참고하면서 답사기를 정리를 하기도
하였다.
.
필자는 원래 누정 문학을 공부 해 보고자 나주향토 문학에 관심이 많아 영산강 줄기를
따라 답사를 계속해서 다녔다.또한 나주향토문학회에서 발간한 "樓 亭 題 詠"을
확보하여 나주지방 정자를 찾아 공부를 하여보고자 현직에 있을때나 퇴직 이후에도 나주목
향토문화연구회에 가입하여 고향의 향토문학에 관심을 가지고 있으며 나름대로 공부를
하고 있다.
거기에 물론 필자의 12대조 시서 김선(金 璇)도 나주 금성산변의 죽림에 오락정(五樂 亭)을
세우시고 한 시대를 풍미하면서 수 많은 한시와 상소문 그리고 시대를 걱정하고 자연을
완상(玩 賞) 하시면서 게학대(憩 鶴 臺)에서 글을 쓰시면서 올바른 선비로써 당.후대에
추앙받는 분으로 기억하고 있다.
영산강 구비따라 한 정자(亭 子)를 찾아드니
돌하나 기와 한장 고색이 창연하여
오늘도 선인의 문기(文 氣) 훈훈하게 감돌고
편액에 새긴 시정(詩 情) 풍류가 넘치는듯
청아한 목소리에 속진(俗 塵)이 씻기는듯
지나는 바람 한점도 예사롭다 하리오.
-------이하중략------------
이 글은 나주 향토문학 연구 회장님이신 이재홍 회장님이 필자에게 주신" 慕 亭" 이란
책에서 나온 글이며 영산강 유역 18대 연혁기에서 정자를 관리하는 후손들에 의해
발간된 책의 내용이기도 하다.
나주지방의 영산강의 줄기따라 수많은 정자가 산재되어 있으나 영모정을 비롯하여
현존하는 정자가 44개와 현존하지 않는 정자가 180개 정도가 문헌에 나와 있다
(樓 亭 題 詠 --나주향토문화연구회 발간 2002년발간 참조).
행정 구역으로는 나주시 다시면 회진리 마을로 들어가는 입구에 위치하고 있으며
2014년 봄에 개관한 백호문학관이 임백호 선생의 탯자리에 사업비 33억으로 세워져
개관을 하게 되었으며 백호선생의 삶과 그리고 사상,문집등을 살펴볼수 있는 공간이
현대식으로 세워져 있으며 영산강변의 풍광이 아름다운 곳에 명실공히 문학의 공간으로
손색이 없는 영모정과 한테 어우러져 자리 매김하고 있다.
영모정의 앞으로는 영산강의 물결이 앙암바위 앞을 돌아서 서해로 유유히 흐르고
있으며,아침 저녁으로 석양에 비치는 곳에 범선(帆船)의 노도소리에 장강백사장에
백로들이 더 덩실 춤을 추니 금성(錦 城) 팔경의 제일인지라 백리의 푸른물결이
출렁거리며 청풍이 고색창연한 정자에 스며들면 심금이 쇄락하여 문우지기들이
음풍농월하며 소요하기 그지 없으며 정자주변의 약500여년 된 노홰나무들이 옛
선현들의 모습을 대변이나 하는 듯이 선현들의 살아오신 삶의 모습들이 그려지면서
말없이 영산강을 바라보며 영모정을 지키고 서 있다..
영모정에서 영산강변을 향하여 노산 이은상 선생님이 글을 지으시고 김충현선생이
쓰신 백호선생의 시비가 아담하게 세워져 있으며 ,임백호의 '금성곡(錦 城 曲)'과
'물곡사(勿 哭 辭)'의 시비와 그리고 국회의원을 지내시고 임백호 추진사업회 회장이며
14 대후손이신 '회진가" 시비가 영모정 주변에 세워져 있다.
원래 이 정자의 터는 귀래정 임붕(林 鵬)이 귀래당을 짓고 지방문우들과 금강십인계
를 조직하여 자주시회(詩 會)와 정자앞 영산강에서 선유(船遊)를 하는 곳이며 명종11년
(1556년)에 그의 아들 풍암 임복과 셋째아들 임진이 이 터에 부친의 삼년의 시묘살이를
마친뒤에 선친을 깊이 사모하여 정자를 새로짓고 '永慕 亭'이라 하였다. -- 계속
☞ 특히 영모정은 나의고향 나주이고,고등학교를 다닐때 '고대문학'이라는 시간에 유독 선생님이 백호 임제
선생님에 대하여 강의를 많이 하였고,특히 저의 집안의 선대에서 부터 많은 교류를 하셨으며 ,저의 12대
시서 김선 할아버지의 글이 이 정자에 소장되어 있고 많은 문인묵개들과 이 정자에서 글을 많이 나누었으며
유독 백호 임제선생님의 아드님하고 그리고 임백호 선생님의 사촌간인 석촌 임서하고 많은교류를 하신것이
자료에 많이 나옵니다.그리고 특히 이 글을 쓰는데는 백호 공 도유사이신 임동열 선생님(작고 )이 저에게
많은 자료를 주어서 글로 남겼습니다. 감사합니다
첫댓글
항상 만장봉님 같이
자신의 뿌리를 사랑하시는 님이
애국도 하고 애향도 하십니다.
오늘도 만장봉님의 조상님에 관하여
영산강변의 영모정에 대해서 잘 읽고 갑니다.
수필방도 사랑하심을 알게 되었습니다.
감사합니다
과찬에 말씀을 하십니다.
저의 12대조 시서김선의 자료와 유고집의 번역과 유적관리를 하다보니
고향의 선대의 살오신 삶을 더듬어 볼수뿐이 없었습니다.
유독 영모정하고는 관계가 많으며 ,그래서 그런지 저도 꼭 영모정을 답사를 하고 ....
남은 삶 고향의 향토문학에 그리고 유적에 관심을 갖고 노력하면서 살려고 합니다
부족한 글에 감사를 드림니다.
향토문화를 사랑하는 만장봉님..
오늘 소개해 주신 영모정과 관련이야기들 잘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도움이 되셨다니 고마울뿐입니다.
오늘, 나주 KTX역 과 예전 광주학생독립운동 진원지 인 나주역
사이에 위치한 LG화학 공장으로 직원들 대거 출장 보냈는데...
시공간이 맞아 떨어지는 것이 우연이 아니었고, 신비롭기 까지 !!
구나주의 역사가 광주 학생사건의 진원지이지요.
거기에 광주 학생사건의 자료들이 박물관에 소장되어 있습니다.
그곳도 답사를 하였습니다. 학생사건의 주인공이신 '고 박준채 선생님의 일본 와세다 대학 경상학부 다닐때
교재를 그의아들 박형근씨가 자료를 내놓아 보관하고 있슴을 알았습니다.
특히 나주는 단발령 사건 , 동학군이 4대문안의 나주읍성을 침입을 하지못하고 잡히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동학군이 다른지역은 다 점령을 하였는데도 '나주읍성'만은 침범을 하지 못하였습니다
관심을 가져 주셔서 감사합니다
나주하면 나주곰탕을 빼놓으면 안되지요. ㅎ
나주시 송월동에 있는 '완사천' 이 생각납니다.
고려 왕건과 오씨부인에 얽힌 샘이지요.
왕건이 길을 가다가 샘물가에서 빨래하는 여인에게 물 한그릇 청하였다.
여인은 바가지에 버들잎 하나를 띄워 바쳤다.
급히 물을 마시면 체할까 하여 그렇게한 것이다.
이 여인이 후일 장화왕후 오씨부인이다.
나주하면 나주배도 유명하지요.
지석강 민물욕수장 유원지도 있고
'엄마야 누나야 강변살자' 는 드들강도 있지요.
전남 광주를 비롯하여 주변 소도시를 제가 조금은 압니다.
어떤 인연과 연고로....ㅎ
만장봉님의 게시글 늘 관심갖고 애독하고 있습니다.
감사하며 고맙습니다.
건안하십시오.
시골촌부님은 ......
제가 글을 올리면은 거의 내용을 잘알고 계시니
글이 소통이 잘되고 있는 셈이지요
나주곰탕, 완사천에 얽힌 사연 ,드들강의 시비도 알으시고 .....
감사를 드립니다.
그 물 나 주시오, 해서 나주가 됐다는 말도 설핏 들은 것
같습니다. ㅎㅎ
시골촌부님 글 역시 열심히 읽고 있습니다. 댓글도 달았고요.
만장봉님 글을 접하게 되어 몹시 기쁩니다.
저도 영산포 권역에 대한 공부를 하고 있습니다.
@묘인 낯설지 않은 대명입니다. 반갑습니다.
묵은 게시글의 댓글에 답댓글 주시어 대단히 고맙습니다. 감사 드립니다.
호남의 중심인 광주를 비롯하여 그 주변 권역 소도시에 대해서 남달리 관심이 많습니다.
그럴만한 연유가 있지요~~
불볕더위.
무척이나 덥습니다.
건강 잘 챙기시고 늘 평안하십시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