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53년....
비탈리 2세는 초조하게 각 군단병들의 보고를 듣고 있었다.
결과는 성공이었다.
아일랜드, 웨일즈, 노르웨이, 스웨덴 모두 이탈리의 영토가 되었다.
하지만 희생도 컸다.
확실치는 않지만 4지역에서 사망한 이탈리아 보병대의 수는 1000명을 넘는 것으로
추정되고 있었다.
비탈리 2세는 암울해질 수 밖에 없었다.
그가 가장 믿었던 이탈리 경보병대의 큰 희생은 이탈리에게는 뼈아팠다.
아일랜드에서는 갤로우 글래스 보병들이 그들의 목을 베고 투창이 그들을 꿰뜷었다.
웨일즈에서는 웨일즈 출신의 장궁병들의 화살에 의해 그들은 희생되었다.
노르웨이와 스웨덴에서는 바이킹들의 폭발적인 힘으로 인해 쓰러져 나갔다.
이는 이탈리아 군의 3분의 1에 해당하는 피해였다.
하지만 이는 후에 이탈리아 군에 편성에 큰 영향을 준 사건이기도 하다.
비탈리 2세는 생각하였다.
지금의 이탈리 경보병대가 중보병과 대등하게 싸울 수는 있다고하나,
어디까지나 대등하게 싸울 뿐이지 압도적으로 이기지 않으면 소용이 없었다.
반군의 그 엄청난 저항을 단지 무시할 것인가?
비탈리 2세는 그러지 않았다. 이는 매우 현명한 처사이기도 하였다.
그는 웨일즈 지방의 롱보우병들을 징집하였고
갤로우 글래스 보병대를 편성하였다.
그들은 그 때부터 이탈리아 군을 떠받치는 축으로 존재하게 되었다.
그리고 그들 덕분에 이탈리아 군이 빠른 신속성과 더불어
중장병들을 압도적으로 물리칠 수 있었던 원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