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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망한 호로위츠가 소리쳤다. "차 안(inside)에 있는 무언가로만 문제를 풀 수 있겠어!" 그 순간 골든버그의 머릿속에 해결책이 떠올랐다. 차를 들어 올리는 기구인 잭이 트렁크 안에서 웃고 있는 것 같았다. 잭과 스패너를 함께 이용하니 더욱 강력한 힘으로 너트를 돌릴 수 있었다. 두 사람은 타이어를 가는 데 성공했다.
이날의 사건은 골든버그의 운명을 바꿔놓았다. 혁신적인 아이디어를 얻는 방법을 깨우쳤기 때문이다. "혁신을 하려면 '아웃사이드 더 박스 싱킹(outside the box thinking)', 다시 말해 기존의 '틀 바깥(outside the box)'으로 생각의 지평을 넓혀야 한다고 하잖아요. 그러나 실제 효과는 없었지요." 두 사람은 너트를 풀기 위해 자동차라는 틀 밖으로 생각의 지평을 넓혀 아이디어를 짜냈지만 소용이 없었다. "반면 문제가 위치한 '틀 안(inside the box)'에서만 생각하는 '인사이드 더 박스 싱킹(inside the box thinking)'을 하니까 금세 해결책이 떠올랐죠." 해결책인 잭은 자동차라는 틀 안에 있었기 때문이다.
이날 이후로 혁신 연구에 삶을 바친 골든버그는 이스라엘 헤브루대학교와 미국 컬럼비아대, 이스라엘 IDC 등에서 교수로 일하며 '인사이드 더 박스 싱킹'의 전도사가 됐다.
그는 최근 매일경제신문 MBA팀과의 인터뷰에서 "아웃사이드 더 박스 싱킹은 창조에 대한 가장 큰 미신"이라며 "생각의 범위를 좁은 세상 안으로 가두는 '인사이드 더 박스 싱킹'을 해야 더 많은 혁신을 할 수 있다"고 말했다.
특히 골든버그 교수는 "기존 규칙이나 패턴을 따르면 기존의 낡은 생각에서 벗어날 수 없기 때문에 혁신이 힘들다는 생각도 잘못된 것"이라며 "견본(template)이 되는 5가지 패턴을 따르면 훨씬 쉽게 누구나 혁신할 수가 있다"고 주장했다. 그가 말하는 5가지 패턴은 핵심 제거, 분할, 다수화, 업무 통합, 속성 의존 등이다. 다음은 골든버그 교수와의 일문일답이다.
-'인사이드 더 박스'의 뜻을 구체적으로 설명해달라.
▶경계가 있는 닫힌 세계(closed world)를 뜻한다. 경계 안으로만 생각을 집중하는 게 인사이드 더 박스 싱킹이다. 경계를 뛰어넘어 다양한 아이디어를 요구하는 브레인스토밍과는 반대다. 그러나 브레인스토밍보다 훨씬 더 창조적이다.
경계를 둔다는 것은 일종의 제한이다(경계 바깥으로는 생각하지 말자는 뜻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인간은 브레인스토밍처럼 선택의 범위에 제한이 없을 때보다 오히려 있을 때 가장 창조적이 된다. 제한은 창조성을 높이고 마음을 자유롭게 한다.
-닫힌 세계의 경계는 어떻게 설정하나.
▶당신의 손이 닿는 친숙한 환경이 바로 닫힌 세상이다. 혁신을 위한 최고의 방법은 우리 손이 닿는 근처의 자원을 활용하는 것이다(골든버그 교수는 차 타이어를 교체할 때 가장 가까이에 있는 자원인 잭을 활용했다). 혁신의 출발점은 문제에 집중하고 근처의 자원에 주의를 기울이는 것이다. 그러면 새롭고 창조적인 해결책을 찾을 수 있다. 해결책은 바로 우리 코 아래에 있다.
-당신은 기존의 패턴ㆍ규칙을 벗어나야 혁신을 할 수 있다는 통념도 배격한다. 반대로 '체계적 사고(systemic thinking)'가 혁신에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과거 수천 년 동안 혁신가들은 다섯 가지 단순한 패턴을 따랐다. 이는 나와 동료들이 수백 개의 혁신 제품을 연구한 결과다. 5가지 패턴은 DNA처럼 우리 주변의 제품ㆍ서비스에 녹아들어 있다. 아이디어 창조 과정의 틀을 짜고 생각을 규제하는 테크닉을 활용하면 훨씬 더 창조적이 될 수 있다. 브레인스토밍의 무작위성을 극복할 수 있다.
▶기존 제품에서 핵심을 제거하고 남은 부분으로 새로운 혁신 제품을 창조할 수 있다. 페브리즈를 비롯해 이런 예는 매우 많다. 안경에서 안경테를 제거한 게 콘택트렌즈다. 분말 수프는 수프에서 물을 뺀 것이다. 자전거에서 뒷바퀴를 제거한 게 운동용 자전거다. 은행 거래에서 직원을 뺀 게 ATM 기기다. (애플 아이팟도 같은 예다. 아이팟이 등장하기 전에 MP3플레이어 업계는 새로운 기능을 계속 추가하는 방식으로 경쟁했다. 그러나 아이팟은 정반대 전략을 썼다. 기존 MP3플레이어에서 핵심이라고 여겨졌던 기능을 뺐다. 디스플레이 없이 셔플 기능만 갖춘 아이팟(shuffle-only iPod)을 출시해 큰 성공을 거두었다.)
-'분할(division)'의 테크닉은 무엇이며 왜 혁신에 유용한가.
▶기존 제품은 여러 요소로 분할할 수 있다. 분할한 요소를 새로운 방식으로 재배열하면 혁신적인 제품을 개발할 수 있다. 새로운 배열이 처음에는 비생산적으로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제품에 대한 고정관념을 깨는 데 매우 유용하다. 워밍 오븐(warming oven)은 전통적인 레인지에서 분할돼 개발됐다.(골든버그 교수에 따르면 비타민 음료 제조회사 비즈(viz)가 개발한 비즈캡(Vizcap)도 분할의 테크닉을 활용한 사례다. 비즈는 기존의 비타민 음료는 거의 효과가 없다는 데 주목했다. 비타민은 일단 물에 녹으면 점점 효능을 잃기 때문이다. 그래서 비즈는 음료 용기를 두 부분으로 '분할'했다. 한 부분에는 액체를, 다른 한 부분에는 고체 비타민을 담았다. 소비자가 비즈캡을 돌려 음료 뚜껑을 여는 순간 비타민이 액체 속으로 들어가 녹도록 했다. 덕분에 소비자는 비타민 효능이 있는 음료를 마실 수 있게 됐다.)
-분할의 기법을 서비스 혁신에도 적용할 수 있는가.
▶그렇다. 서비스를 분할해 재배열하는 유용한 팁을 알려주겠다. 먼저 서비스를 단계별로 분할해 하나씩 포스트잇에 써본다. 그리고는 고객에게 제공하는 순서대로 벽에 포스티잇을 붙인다. 그런 다음 무작위로 포스트잇 하나를 벽에서 떼어낸다. 눈을 감고는 떼어낸 포스트잇을 다시 벽에 붙인다. 눈을 뜨고는 벽을 다시 바라보라. 서비스를 제공하는 순서가 달라져 있을 것이다. 이 같은 변화로부터 어떤 편익을 얻을 수 있는지 스스로에게 물어보라.
존슨&존슨은 이 같은 팁을 활용해 의료 분야의 영업사원 훈련 절차를 새롭게 디자인했다. 먼저 기존의 훈련 절차를 해부ㆍ수술ㆍ사후절차 등의 카테고리로 분할했다. 그런 다음 이들 카테고리를 완전히 새롭게 배열했다. 덕분에 훈련 시간을 크게 줄였다.
-'다수화(multiplication)' 테크닉을 쓸 때는 제품의 구성요소 중 하나를 선택해 성격을 일부 바꾸라고 했다. 그리고는 이 구성요소를 계속 복제해 숫자를 늘리라고 했다..
▶P&G의 '페브리즈 노티스블' 제품 라인이 다수화 기법의 예다. P&G의 개발팀은 '페브리즈 에어'의 새로운 제품 카테고리를 개발하는 게 목표였다. 우선 기존 페브리즈 에어를 구성하는 핵심 요소의 리스트를 만들었다. 액체 향수와 용기, 플러그 등 5가지였다. 개발팀은 이 중 용기에 다수화 테크닉을 적용했다. 용기의 구조를 바꾸고 용기 수를 2개로 늘린 것이다. 그리고는 각각의 용기에 서로 다른 향기를 담았다.(인간의 코는 향기에 금방 적응이 된다. 그래서 페브리즈 에어를 뿌려도 금세 향기를 느끼지 못하게 된다. 이때 소비자는 두 번째 용기의 향기를 뿌리면 계속해서 신선한 향기를 느낄 수 있게 된다.)
이처럼 혁신적인 제품ㆍ서비스는 자신의 한 구성요소를 변경한 다음 이를 복제해 숫자를 늘린 결과물인 경우가 많다. 어린이용 자전거를 예로 들어보자. 일반 자전거 바퀴의 크기를 줄인 작은 바퀴 2개를 복제해 뒷바퀴 옆에 붙였다. 그 결과, 바퀴의 숫자가 4개가 됐다. 사진의 레드 아이 문제를 해결한 더플 플래시도 다수화 기법의 예다.
-'업무 통합(task unification)' 마인드를 가지면 거의 무한대의 가능성이 열린다고 했다.
▶두 가지 이상의 업무(task)를 한 제품 안에 통합하면 생각지도 못했던 혁신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자동차 뒷창문에 붙어 있는 서리 제거 장치를 라디오 안테나로 사용하는 것이 그런 경우다. (서리 제거 업무와 안테나 업무를 한 제품 안에 통합한 것이다.) 최초의 기능ㆍ업무(서리 제거)와는 전혀 관련이 없다고 여겨졌던 새로운 기능ㆍ업무(라디오 수신)를 수행하게 된 것이다. 샘소나이트의 대학생용 백팩(backpack)도 업무 통합의 예다. 통상 대학생이 지는 백팩은 상당히 무겁다. 교과서와 노트북컴퓨터를 넣고 다니기 때문이다. 학생들은 백팩의 무게 때문에 등과 목에 통증을 호소하곤 했다. 이에 대해 대부분의 경쟁사들은 백팩의 끈에 패딩을 대는 방식으로 대처했지만, 샘소나이트는 달랐다. 백팩의 무게가 어깨의 '시아추'(일본의 전통적인 마사지 치료기술) 지점을 누를 수 있도록 끈을 설계했다. 덕분에 백팩이 무거울수록 사용자는 어깨의 긴장이 완화돼 스트레스가 풀리는 효과를 얻었다.(샘소나이트의 백팩은 기존의 가방 기능에 마사지 기능을 추가해 통합한 셈이다.)
-모든 혁신의 35%는 '속성 의존(attribute dependency)' 테크닉의 결과라고 말했는데.
▶'하나가 변하면 다른 하나도 변한다'는 구절이 속성 의존의 핵심이다. 트랜지션(transition) 선글라스를 떠올려보라. 외부의 빛이 더 밝아지면 렌즈 색깔이 더 어두워진다. 빛의 세기에 따라 렌즈 색이 변한다. 이런 게 속성 의존이다. 반 고흐의 명화 '별 밤'(Starry Night)도 그런 예다. 별 밤을 바라보는 관람객의 시각이 바뀜에 따라 그림 속 이미지도 따라서 바뀐다. 이는 관람객과 그림 사이의 거리와 붓질이 서로 의존적인 관계이기 때문이다.
-'형식(form)이 기능(function)보다 먼저'라는 구절을 당신은 혁신의 원칙으로 제시한다. 무슨 뜻인가.
▶대부분의 사람들은 혁신을 위해 '문제 정의→해결책 마련'의 순서를 따라야 한다고 믿는다. 그러나 나의 방법론은 정반대다. 먼저 해결책(형식)부터 생각한 다음에 어떤 문제를 해결(기능)할 수 있는지를 생각하자는 것이다.
심리학자 로널드 핑케에 따르면 생각에는 두 가지 방향이 있다. 문제에서 출발해 해결책으로 나가는 방향과 해결책에서 문제로 나아가는 방향이 있다. 핑케는 후자가 훨씬 더 효과적이라는 것을 입증했다.
예를 들어보자. 아기는 우유병에 담긴 뜨거운 우유를 먹고 입에 화상을 입을 위험이 있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해결책은 무엇일까. 사람들은 쉽게 답을 찾지 못할 것이다. 이제 반대로 생각해보자. 우유 온도가 높아지면 색깔이 변하는 우유병이 있다고 하자. 이 우유병으로 어떤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까. 누구든지 금세 답을 떠올릴 것이다. 뜨거운 우유 때문에 아기가 화상을 입는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나의 방법론은 혁신을 위한 5가지 테크닉을 활용해 먼저 어떤 '형식'(예를 들어 색깔이 변하는 우유병과 같은 해결책)부터 찾아내자는 것이다. 그런 다음 이를 활용해 어떤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지 그 기능(예를 들어 화상을 입을 위험 제거)을 탐색하자는 얘기다.(핵심 제거의 테크닉을 예로 들어보자. 1단계로 세탁 세제의 핵심 요소인 세제를 아예 제거한다. 제거 후 남은 물건이 '형식'(form)이 된다. 2단계로 이 형식으로 어떤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지 고민한다. 옷에서 냄새를 제거하는 '기능'(function)이 발견됐다. 그 결과로 탄생한 혁신 제품이 바로 냄새 제거제 '페브리즈'였다.)
■ '앱' 에서 혁신테크닉 배워보세요
골든버그 교수는 앱을 활용하기 전에 혁신을 위한 5가지 테크닉을 이해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를 위해 만든 코너가 'My Innospace'(마이 이노스페이스). 다양한 샘플 프로젝트가 소개돼 있다.
자신만의 프로젝트를 하고 싶다면 'New Innospace'(뉴 이노스페이스)로 이동한다. 먼저 혁신하고 싶은 제품의 이름을 입력한다. 제품의 구성요소들도 함께 입력한다. 그런 다음 5가지 테크닉 중 하나를 선택한다. 그러면 앱이 작동해 새로운 가상의 제품을 창조해낸다. 이 제품으로 어떤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지 탐색하면 새로운 아이디어를 얻을 수 있다.
아이디어가 떠오르면 사용자는 앱에 아이디어의 이름을 입력하고 설명을 적어 넣는다. 아이디어를 활용해 얻을 수 있는 편익의 리스트도 만든다. 마지막으로 'Done' 버튼을 클릭하면 프로젝트가 완료된다. 이메일이나 페이스북, 트위터 등으로 자신이 만든 새로운 아이디어를 타인과 공유할 수도 있다.
■ he is…
제이콥 골든버그(Jacob Goldenberg)는 이스라엘 헤브루대학교와 미국 컬럼비아대학교의 마케팅 교수를 거쳤다. 지금은 이스라엘 IDC 교수다. 창조와 혁신 신제품 개발이 주요 연구 분야다. 사이언스, 마케팅사이언스, 매니지먼트사이언스 등 주요 저널에 논문이 실렸다. 월스트리트저널과 뉴욕타임스 등에 기고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