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복강해] 가장 행복한 사람 1 (마 5:1-6)
1 예수께서 무리를 보시고 산에 올라가 앉으시니 제자들이 나아온지라 2 입을 열어 가르쳐 이르시되 3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들의 것임이요 4 애통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위로를 받을 것임이요 5 온유한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땅을 기업으로 받을 것임이요
이 시간 팔복 강해의 첫 시간으로 “가장 행복한 사람”이라는 제목입니다.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인간을 창조하셨을 때 행복을 주셨는데 인간이 그 행복을 제멋대로 사용해 천사들이 행복을 회수하기로 결정했습니다. 그리고 행복을 어디다 숨겨놓아야 할지 의논을 했습니다.
한 천사가 제안했습니다. “저 깊은 바다 밑에 숨겨놓으면 어떨까요?” 천사장이 고개를 흔들었습니다. “그건 안 돼. 인간은 머리가 비상하기 때문에 바다 속 쯤은 금방 뒤져서 찾아낼 거야.” “그러면 저 산꼭대기에 숨겨 놓으면 어때요?” “인간의 탐험정신 때문에 아무리 높은 산 위에 숨겨두어도 찾아내지.”
한참 고민을 하며 의논한 끝에 이런 결론을 내렸습니다. “인간의 마음속에 숨겨두기로 합시다. 아무리 저들의 두뇌가 비상하고 탐험심이 강해도 자기들 마음속에 숨겨져 있는 것은 좀처럼 찾아내기 어려울 거요. 그래도 찾아내면 그 사람은 행복을 누릴 자격이 있지요.” 지어낸 이야기지만 일리 있는 교훈입니다.
오늘 본문에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행복을 원문으로 보면 “마카리오스”인데 이 말은 성경 곳곳에 “복되신 하나님”이라고 한 용례를 볼 때 복의 하나님을 가리키는 용어입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이 곧 복이요 하나님을 모시는 마음을 가리킵니다. 마음에 행보ᅟᅥᆨ이 있습니까? 마음에 하나님을 바로 모시기 전까지는 진정한 행복은 없다는 사실입니다.
어떻게 행복의 하나님을 바로 모실 수 있을까요?
1. 하나님으로 만족해야 합니다.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들의 것임이요" 마음이 가난해야 천국을 누린다는 말씀입니다. 여기 '가난하다'는 의미의 헬라어 '푸토코스'는 구걸해서 먹어야 하는 거지와 같은 가난을 의미합니다. 아무 것도 없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마음에 무엇으로 가득 차 있습니까? 세상 염려 근심 미움 욕심 탐심 분주함 이해관계 등 세상에 얽힌 마음으로 차 있다면 다 버리시기 바랍니다. 소유할수록 고통스럽습니다. 버리는 것이 영성입니다. 그러나 이것만 알면 세상 도인들의 영성이나 다를 바가 없습니다.
성도의 마음은 빈집이 아닙니다. 빈집에 귀신이 들어와 더 악하게 된다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성도의 영성은 빈집의 영성이 아니라 하나님으로 가득 찬 영성이어야 합니다. 하나님으로 가득 차서 다른 것이 자리 잡을 틈이 없어야 합니다.
그래서 성경은 마음을 다하여 하나님을 섬기라고 했고, 예수님께서더 “어린이와 같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느니라”고 하셨습니다. 어린이에게 어머니가 전부이듯 하나님이 나의 전부여야 합니다. 반면 부자가 천국에 들어가기 어려우니라 하셨습니다. 그는 그것이 전부인 줄 알고 마음에 예수님이 차지하는 비중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이 시간 세상의 잡다한 것으로 가득 찼다면 우리의 심령을 하나님 앞에 내어놓고 하나님을 나의 최고의 가치로 알고 하나님만 사랑하고 하나님만 생각하고 하나님을 나의 전부로 삼는 사람이 되게 해달라고 기도하시기를 바랍니다. 혹시 세상의 것을 다 잃는다 해도 신앙을 잃지 않은 것을 감사하시기를 바랍니다. 그 사람이 가장 복된 사람입니다. 하나님을 온전히 모실 수 있기 때문입니다.
2. 치유함을 받아야 합니다.
4절 “애통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위로를 받을 것임이요” 여기 위로란 마음에 상처가 있음을 전제한 말씀입니다. 상처란 잘잘못을 떠나 알고 보면 큰 죄악입니다. 미움 원망 좌절 슬픔 원한 저주 앙심 완악함 강퍅함 인색함 복수함 마음의 살인에 이르기까지 무시무시한 악의 쓴뿌리가 바로 마음의 상처입니다.
어찌 그 마음에 하나님을 바로 모실 수 있겠습니까? 이 상처가 치유되기까지는 사탄이 그 마음을 떠나지 않습니다. 행복할 수 없습니다. 어떻게 상처를 치료할까요? 주님은 우리에게 애통하라고 가르쳐 주셨습니다. 여기 애통을 헬라어로 보면 ‘펜테인’, ‘펜테인’은 마음속 깊은 곳에서 나오는 영적인 슬픔을 뜻합니다.
그러니까 그 아픔을 하나님 앞에 기도로서 내어놓으라는 말씀입니다. 울어도 하나님 앞에서 울어야 합니다. 그것이 바로 ‘펜테인’입니다. 상처가 생기는 대로 그대로 두지 말고 언제나 하나님 앞에 쏟아내 놓으시기 바랍니다. 화평함과 거룩한 마음에 만이 하나님이 온전히 함께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기도생활이 약해지면 또다시 마음의 상처가 살아납니다. 그러므로 애통하는 자란 기도하는 자를 가리킵니다. 깊은 기도생활입니다. 그런데 기도생활을 잘하고 우리가 평안하게 살고 싶어도 세상은 우리를 평안하라고 놔두지 않습니다. 수산의 유다인들처럼 얼마나 많은 중압감과 부담감들이 다가오는지 그걸 해결하지 못하면 결코 평안할 수가 없습니다.
바울도 고후11:23-29에 내가 수고를 넘치도록 하고 옥에 갇히기도 더 많이 하고 매도 수없이 맞았다고 하면서, “이 외의 일은 고사하고 아직도 날마다 내 속에 눌리는 일이 있으니 곧 모든 교회를 위하여 염려하는 것이라 누가 약하면 내가 약하지 아니하며 누가 실족하게 되면 내가 애타지 아니하더냐” 했습니다.
세상 되어가는 일들을 바라볼 때면 가슴이 찢어집니다. 항상 기뻐하며 살아야 하는데 불가능할 때가 많습니다. 이런 세상에서 어떻게 마음의 행복을 가질 수 있겠습니까? 그러나 그때마다 하나님 앞에 엎드려 눈물로 기도하라는 말씀입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오냐 알았다면서 우리 마음을 쓰다듬어 주십니다.
3. 온유해야 합니다.
5절 “온유한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땅을 기업으로 받을 것임이요” 땅은 승리자가 차지합니다. 옛날이나 지금이나 땅 빼앗기 전쟁입니다. 힘이 있어야 합니다. 강해야 합니다. 강포하고 인정사정 없어야 합니다. 그러나 진정한 승리자가 되려면 온유해야 합니다.
온유가 무엇일까요? 예수님이 말씀하신 온유의 원문은 ‘프라우스’인데 그 뜻은 “온유한, 친절한, 겸손한, 동정심 많은” 등의 의미로서 악으로 악을 갚지 않고 선으로 갚으며 사랑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시37:1에 “악을 행하는 자들 때문에 불평하지 말라”고 하면서 11절에 “온유한 자들은 땅을 차지하며 풍성한 화평으로 즐거워하리로다.” 했습니다.
호랑이나 사자 어떻게 이깁니까? 그러나 어릴 때부터 사랑해서 키우면 어린애와 같이 우리의 품에 안깁니다. 사람 사자도 있습니다. 시57:4에 “내 영혼이 사자들 가운데에서 살며 내가 불사르는 자들 중에 누웠으니 곧 사람의 아들들 중에라 그들의 이는 창과 화살이요 그들의 혀는 날카로운 칼 같도다” 했습니다.
세상살이 힘든 것이 인간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일도 모두가 천사 같으면 무슨 문제가 있겠습니까? 모두가 개성이 강합니다. 자기 주관대로만 하려고 합니다. 사람부터 정복하지 못하면 아무 일도 할 수 없습니다. 어떻게 정복합니까? 성경은 온유하라. 사랑하라고 말씀합니다. 온전히 사로잡을 때까지 사랑해야 합니다.
예수님은 사랑으로 세계를 정복했다고 하지 않습니까? 믿음 갖지 않는 남편? 온전히 예수님 말씀 들을 때까지 사랑하십시오. 세상 사람들 전도도 기도와 사랑으로 하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의 마음도 사랑으로 정복합니다. 한편 중국과 러시아는 세계적인 대국이 되는 길에 있었지만 놓쳤습니다. 침략 야욕 버리고 모든 나라와 친하게 지냈으면 그들을 이길 나라가 없을 것입니다. 그들은 성경을 몰랐습니다. 하나님은 사랑하는 자에게 온전히 함께하시겠다고 말씀하십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행복의 하나님을 온전히 모셨습니까? 세상에 어떤 행복이 있다 해도 하나님을 온전히 모신 사람만큼 행복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 모두 행복의 하나님을 모시기 위해 하나님이 우리의 전부여야 하고, 날마다 기도하며 우리의 안팎의 문제의 짐을 주님께 부리고,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내 몸과 같이 사랑하는 가장 복된 성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