곡우 주남지
사월 셋째 화요일 날이 밝아왔다. 이른 아침 현관을 나서 산책 걸음에 앞서 습관이 되다시피 아파트단지 이웃 동 꽃밭으로 먼저 가봤다. 주인장인 꽃대감이나 밀양댁 할머니는 내려와 있지 않아도 꽃밭을 빙글 둘러봤다. 봄비가 잦았고 일조량이 부족함에도 여러 가지 화초들은 제각각 모습으로 꽃을 피웠다. 매발톱꽃과 옥매는 잎줄기가 웃자라 꽃을 피운 채 쓰러질 듯 기울어 갔다.
본포로 가는 30번 버스를 타려고 아파트단지를 벗어나 원이대로로 향했다. 반송 소하천을 지나는 길목 은행나무 가로수가 선 바닥에 모양이 특이한 꽃이 떨어져 눈길을 끌었다. 곡우 무렵이면 꽃을 피우는 은행나무다. 암수가 구분된 은행나무는 이즈음 꽃을 피우는데 수 그루 밑에만 흔적을 남겼다. 바람이 인연을 맺어주는 은행꽃은 향기로나 색깔로 매개충을 유인할 일이 없었다.
외동반림로를 따라가니 높이 자란 메타스퀘이아 가로수는 연초록으로 물들어갔다. 하늘로 솟구친 메타스퀘이아는 잎이 돋으면서 지난해 묵은 가지에 붙은 열매들이 떨어졌다. 신발에는 솔방울보다 작은 열매들이 자갈돌처럼 밟혔다. 원이대로에서 대방동을 출발해 본포로 가는 30번 버스를 탔다. 충혼탑을 두르는 길에 직장인 출근 시간과 노면 포장 공사로 지체되어 운행이 더뎠다.
명곡교차로에서 도계동을 벗어나 용강고개를 넘어갔다. 동읍 덕산에서 화양과 동전을 지나면서 요양원과 작은 회사로 출근하는 이들이 타고 내려 용산마을에 이르렀을 때 내렸다. 북쪽의 산남저수지와 수문을 사이에 두고 주남저수지와 이어지는 용산마을이다. ‘용산’이라는 지명은 강가가 습지에 흔한데 우리 지역도 마찬가지다. 어디서나 용이 붙은 지명은 물이 흔한 곳임은 당연했다.
주남저수지로 가는 산책로로 드니 드넓게 펼쳐진 저수지 수면은 아득하게 멀기만 했다. 연초록 잎이 돋는 갯버들은 비가 그친 뒤라 더 싱그러워 보였다. 저수지 가장자리로는 덩치 큰 잉어와 붕어들이 나와 알을 스느라 어슬렁거렸다. 물고기는 암컷이 알을 놓은 자리에 수컷이 다가와 정액을 방사하는 체외수정이다. 봄날 비가 온 뒤 새벽에 용지호수에서도 본 적 있는 장면이었다.
길고 긴 둑길 산책로에는 움이 트는 물억새가 세력 좋게 자랐다. 지난해 묵은 그루터기는 잘라 놓아 시퍼런 잎줄기의 초록빛은 더욱 선명했다. 색깔이 다른 두 마리 오리 모양을 한 공중화장실은 남녀로 구분되어 있었다. 선착장 계류장에는 트럭을 몰아온 한 사내가 그물을 살피다가 떠났다. 주남저수지에는 당국으로부터 면허를 받은 지역민이 생계로 민물고기를 잡는 이가 있었다.
겨울 철새가 떠난 주남저수지는 빈 둥지 같았다. 용산마을에서 탐조대로 향하는 둑길에는 산책 나온 이가 간간이 스쳐 지났다. 시야에 든 구룡산과 백월산 봉우리로는 낮은 구름이 걸쳐 있었다. 둑 바깥 넓게 펼쳐진 들판이 끝난 곳은 대산 산업단지와 진영 신도시 아파트가 아스라이 보였다. 쉼터에 앉아 사진으로 담은 저수지 풍광을 몇몇 지기들에게 보내면서 아침 안부를 전했다.
산책로에서 들녘으로 내려가 농로를 따라 걸었다. 지난해 추수 이후 기러기와 재두루미들이 와 놀다 간 일모작 벼농사 지대였다. 철새가 떠난 논바닥은 깊이갈이를 해 여름 농사는 아직 시작되지 않았다. 군데군데 볍씨를 부어 키울 못자리를 만들려는 구역이 보이기는 했다. 들길을 하염없이 걸어 신동마을 근처에 이르니 들판 가운데 우뚝한 굴참나무 한 그루가 당산목으로 자랐다.
가술에 닿아 행정복지센터 1층 쉼터에 앉아 잠시 쉬었다. 때가 되어 바깥으로 나와 점심을 해결하고 오후 현장 근무 중 ‘곡우 주남지’를 남겼다. “색 바래 시든 검불 봄비에 파릇해져 / 찔레순 자라나고 물억새 움이 터서 / 길고 긴 저수지 둑길 / 녹색 향연 펼친다 // 왜가리 한가로이 텃새로 눌러사는 / 겨울새 진작 떠난 빈 둥지 넓은 수면 / 갯버들 연녹색으로 초록 우열 겨룬다” 24.04.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