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케이블방송 tvN에 「어쩌다 어른」이라는 프로그램이 있다. 소위 스타강사가 출연하여 자신의 전문지식을 일반인들에게 알기 쉽게 강의하는 인기 프로그램이다. 작은애 얘기를 듣고 그 채널을 찾아 우연히 최진기의 강의를 듣게 되었는데, 마침 스티브 잡스와 그 동업자가 나란히 찍힌 사진을 영상에 올려놓고 설명하는 중이었다. 그런데 최진기가 스티브 잡스의 사진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계속 ‘이 친구가’, ‘얘가’ 하고 지칭하는 게 아닌가. 참으로 충격적인 장면이었다.
제까짓 게 아무리 뭘 좀 안다 해도 스티브 잡스에 미치겠는가. 게다가 스티브 잡스는 이미 고인이 되었고 최진기보다 나이도 한참 위다. 겸손까지는 아니더라도 최소한 고인에 대한 예의는 지켜야 할 것 아닌가. 얼마 뒤 최진기는 현대작가의 <군마도>를 오원 장승업의 그림이라고 잘못 소개했다가 「어쩌다 어른」에서 자진 사퇴했다는 보도를 읽었다. 그림에 문외한인 내가 봐도 오원의 화풍과는 거리가 먼 작품이었다. 깊이 없는 얄팍한 스타강사의 인과응보 아니었나 싶다. 그 이후로 나는 「어쩌다 어른」은 물론 일체의 TV 강의를 듣지 않는다. 다른 방법을 통해서도 그 정도 지식을 습득할 기회는 얼마든지 있기 때문이다. -
시오노 나나미는 15권으로 된 「로마인 이야기」로 우리나라에도 널리 알려져 있는 倭人 여류작가다. 「레판토해전」은 「콘스탄티노플 함락」, 「로도스섬 공방전」과 함께 3부작을 이루는 전쟁 Faction으로서, 유럽의 신성동맹(기독교국가 연합)과 이슬람 국가인 오스만제국 간에 벌어진 전쟁사다. Faction은 Fact와 Fiction의 합성어로서 史實이나 傳記에 재미와 박진감을 더하기 위해 자주 사용되는 창작기법이다. 「레판토해전」은 1571년 10월 7일 오전부터 5시간에 걸친 격전 끝에 신성동맹이 승리를 거둠으로써 이후 이슬람 국가들의 유럽 진출 야욕을 완화시킨 내용을 담고 있다.
역사상 레판토해전의 주인공은 연합함대 총사령관인 스페인 왕의 동생 돈 후안이었다. 그러나 나나미는 연합함대 좌익 참모장 아고스티노 바르바리고에 포커스를 맞춰 이야기를 풀어나간다. 바르바리고는 베네치아공국의 키프로스섬 해군사령관이었다. 이야기는 찐한 로맨스로 시작된다. 바르바리고는 순직한 부하장교의 부음을 전하러 갔다가 미망인과 첫눈에 사랑에 빠진다. 情炎에 눈이 멀면 가장 먼저 아내에 대한 의무감부터 눈 녹듯 사라진다.
1570년 7월, 오스만제국은 300척의 전함에 10만 명의 군사를 싣고 가서 키프로스를 점령한다. 키프로스는 베네치아 령의 일개 섬이 아니라 기독교국가와 이슬람국가 간에 패권을 다투는 지중해 최고의 전략요충지였다. 지중해는 또한 서양문명의 요람이자 상징으로서 양대 세계의 운명을 가름하는 결전장이기도 했다. 예로부터 지중해를 지배하는 자가 세계를 지배했으며, 수많은 제국이 지중해에서 벌어진 해전을 분기점으로 명멸했다. 따라서 오스만제국의 키프로스 점령은 기독교국가 전체에 대한 선전포고였다.
신성동맹의 출발은 순조롭지 못했다. 교황의 요청에도 불구하고 오랜 세월 대소규모 전쟁을 벌여온 이탈리아의 소국들은 미온적이었다. 반면 강대국으로 발돋움하려던 스페인은 베네치아와 껄끄러운 관계임에도 불구하고 가장 먼저 원정군을 편성했다. 키프로스의 상실은 스페인에게도 순망치한(脣亡齒寒)이 될 터였던 것이다. 총사령관 자리를 두고도 당사국인 베네치아와 협력국인 스페인 간에 소모적인 다툼이 있었다. 1571년 5월, 신성동맹은 스페인 왕의 동생인 돈 후안을 총사령관으로 삼아 키프로스 탈환에 나섰다. 돈 후안은 베네치아 해군사령관 바르바리고를 좌익 참모장에 임명했다.
1571년 10월 7일 아침, 오스만제국 해군은 키프로스섬의 레판토기지를 출발하여 외해에서 신성동맹 해군과 맞닥뜨렸다. 해전은 배끼리 가까이 접근하여 상대편 배로 뛰어든 뒤 각자 소지하고 있는 무기로 육박전을 벌이는 형태였다. 20여년 뒤, 먼 동양의 나라 조선에서 제너럴 리가 鶴翼陣을 편 채 倭船에 함포사격을 가하는 수준의 전술은 상굿도 개발되기 전이었다. 양쪽을 합쳐 500척이 넘는 전함과 17만 명의 戰士 및 노잡이가 뒤엉켜 전장은 금세 아수라장으로 변했다. 총사령관이나 참모장들의 명령이 먹혀들 여지도 없었다. ‘마지막 십자군전쟁’이라 불리는 레판토해전의 서막이 열린 것이다.
오스만제국 총사령관 알리 파셔가 전사하면서 전투는 오후 4시경 신성동맹의 승리로 끝났다. 아마도 알리 파셔가 숨을 거두기 직전 ‘내 죽음을 적에게 알리지 말라’는 유언을 남기지 못했던 모양이다. 오스만제국 해군은 53척의 갤리선이 격침되고 137척의 전함과 247문의 대포를 신성동맹에 넘겨준 채 퇴각했다. 양군을 합쳐 3만여 명의 사상자가 발생했다. 신성동맹은 戰勝 기념으로 1만 5천 명의 노예를 해방시켜 고향으로 돌려보냈다. 신성동맹의 좌익 참모장 바르바리고도 전투 중 총탄이 왼쪽 눈을 관통하여 전사했다. 신성동맹의 勝因으로는 우세한 화력과 총사령관 돈 후안의 리더십이 꼽히고 있다.
오스만제국은 6개월이 지나기도 전에 레판토해전 규모의 함대를 재건하여 복수전에 나섰다. 1572년 10월 2일, 신성동맹의 연합함대가 해산된 뒤였다. 도저히 적수가 될 수 없는 베네치아는 화친을 제의하여 1573년 3월 7일 조약을 체결했다. 말이 화친이지 항복이나 다름없었다. 베네치아는 평화를 얻는 대가로 키프로스섬을 오스만제국에 할양하고 3년 동안 막대한 액수의 통행료를 지불하기로 했다. 이 조약으로 베네치아는 1642년까지 72년 동안 막강한 오스만제국의 침략을 받지 않고 국력을 회복할 수 있었다. 모든 전쟁의 양상이 그러하듯이, 레판토해전 역시 정치적인 이유로 시작되어 정치적인 흥정으로 막을 내린 셈이다.
蛇足 ; 1573년 베네치아가 키프로스섬을 오스만제국에 할양한 결과로, 1974년 터키軍은 키프로스섬의 북쪽 절반을 점령하여 ‘북키프로스 투르크 공화국’을 선포했다. 이 공화국을 승인한 나라는 터키빼이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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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저분의 영면이 친구의 가슴을 쓰리게 하나보다!
나무관세음보살~!
이래서 또 역사를 배우고 가네.
그나저나,
Faction
그 말, 내 오늘 처음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