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생각] 아버지와 콜라

콜라를 유리컵에 따르면 “쏴아~.”하는 소리를 내며
탄산가스가 스르르 사라진다.
콜라를 볼 때마다 돌아가신 아버지가 떠오른다.
29년 전,
내 나이 열 살 때 간암 수술을 두 번 받은 아버지는
기력이 쇠할 대로 쇠해 더 이상 예전의 건장한 사내가
아니셨다.
동네 울력이 있던 날, 아버지는 바람이나 쐰다며 나가셨다.
울력 나온 분들을 위해 이장님이 콜라를 준비했나 보다.
동네 아재들에게 콜라를 얻어 자신 아버지는
부리나케 집으로 달려오셨다.
숨이 가빠 잘 걷지도 못하는 아버지가 집에서 숙제하던 나를
데리러 오신 것이다.
“정남아이, 언능 나와 봐라이.”
“왜라우? 아부지?”
“언능. 사람덜이다 묵어 분다. 언능 나와야.”
나는 검정 고무신을 질질 끌며 아버지를 따라갔다.
아버지는 내 손을 꼭 잡고 뛰기 시작하셨다.
“아부지 뛰믄 안 된담서.”
“헉……. 헉……. 괜찮혀. 헉헉.”
늘 누워만 있던 아버지가 달리기를 하시니
병이 다 나았나 보다 하며 신이 나서
깡충깡충 뛰기 시작했다.
그때 아버지 배 속에서 출렁출렁 물소리가 들려왔다.
빈속에 드신 콜라 때문이었을까.
드디어 동네 아재들이 모인 장소에 도착했다.
“오매 형님, 정남이 데릴러 갔소? 말씀을 허시제.
어찌께라우, 콜라 다 묵어부렀는디.”
아! 맛있는 콜라. 달달한 맛이 혀끝에 느껴졌다.
땀에 흠뻑 젖은 아버지 얼굴, 빈병을 들고
너무도 아쉬워하시던 그 얼굴을 평생 잊을 수가 없다.
며칠 후, 아버지는 돌아가셨다.
아버지 나이 마흔둘.
송곳 하나 꽂을 땅 없는 가난한 집안에 태어나
죽을힘으로 농사를 지으셨다.
논 닷 마지기 살 때까지 쌀밥 안 먹는다며
늘 잡곡과 고구마로만 배를 채우셨다.
닷 마지기가 생겼지만 열 마지기를 채울 때까지
잡곡과 고구마는 계속 상에 올라왔다.
열 마지기의 주인이 되어 쌀밥 먹기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아 간암 말기 판정을 받으신 것이다.
제사 때마다 엄마는 쌀밥을 고봉으로 올려놓으신다.
이제 아버지 얼굴은 가물거리지만 콜라와 출렁거리는 소리,
가쁜 숨소리와 꼬옥 잡아 주시던 따뜻한 손의 기억은
지워지지 않는다.
살아가며 아버지의 빈 자리를 원망하지 않게 해 주는
유일한 기억이다.
Mozart - Piano Concerto No.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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