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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인섭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로스쿨) 교수가 매년 신임검사가 임관할 때 하는 ‘검사선서’를 가슴에 새기고 법과 양심에 따라 소신 있게 일하다 최고권력 혹은 검찰 상층부와의 마찰로 결국 검복을 벗고 검찰을 떠나거나 징계를 받은 검사들에 대한 인물 총평을 내놓아 눈길을 끌고 있다.
바로 채동욱 전 검찰총장, 윤석열 전 특별수사팀장, 임은정 창원지검 검사, 임수빈 전 서울중앙지검 부장검사 얘기다. 그러면서 검찰의 치부에 정곡을 찔렀다. 한 교수는 특히 “모든 공적 기관에는 그 기관의 가치를 상징하는 역사적 인물을 기리는 흉상이나 반신상, 전신상 등을 세워 기념한다.
그 기관의 자부심이자 교훈으로 삼기 위해서인데, (유독) 대검찰청에만 없다”며 검찰을 세게 꼬집었다.
한인섭 교수는 지난 9일 페이스북에 “대법원에는 가인 김병로 초대 대법원장의 흉상이 있습니다. 다행이지요. 대한변협에는 재야의 상징, 이병린 변호사의 흉상이 있다. 서울법대에는 조영래 변호사를 기념하는 조영래홀이 있고, 최근 이준 검사의 전신상을 세웠다”며 말문을 열었다.
한 교수는 그러면서 “대검찰청에는? 없습니다. 그럼 기념할 만한 인물이 없었단 말인가? 역대 검찰총장, 검찰 고위간부 중에서 찾아보려 하니, 나오지 않는 게지요”라고 검찰을 꼬집었다.
그는 “그럼 진짜 없는가? 구한말에 상부의 뜻에 거슬러 검사 본연의 기개를 세운 이준 검사(나중에 열사)가 있습니다. - 1차 인혁당 사건에서 중앙정보부(현 국정원ㄱ)의 조작에 맞서, 증거가 없어 기소 못하겠다고 버틴 이용훈 검사가 있습니다”라고 말했다.
한 교수는 “그런데 이 분들의 흉상을 세울 수 가 없습니다. 이준은 구한말이어서, (그럼) 해방 이후엔 뭐 아무도 없냐는 반문을 받게 됩니다. 이준은 파면 당했고, 이용훈은 옷을 벗어야 했습니다. 언급할만한 인물은, 모두 징계받거나 사직해야 했던 것이지요”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존경할만한 검사 : 검사다운 검사>의 역사를 쓰면, 현직에서 최선을 다한 인물은 떠오르지 않고 징계, 파면, 사표 낸 검사 중에서 찾아야 하는 것이니, 이들 중 흉상을 세우면, 장차 검사들에게 권력에 맞서 불이익을 각오하고 싸우라는 것을 고무하게 되니, 아예 흉상이니 뭐니 안세우고 마는 거지요”라고 검찰의 치부에 정곡을 찔렀다.
한 교수는 “학생들에게 가르칠 때 고민됩니다. 어떤 검사가 되어야 할까? 그건 자신이 어떤 인생을 살까와 직결되는 중요한 질문이지요. 다만 역사적 진실은 분명히 알려줘야지요”라며 “이준, 이용훈....채동욱, 윤석열, 임은정, 임수빈”이라 검사들을 호명했다.
◆ “총체적 권력에 맞서 권력형범죄의 수사를 강행하다
강판당한 채동욱 검사”
첫 번째, 채동욱 전 검찰총장에 대해 한인섭 교수는 “총체적 권력에 맞서 권력형범죄의 수사를 강행하다 강판당한 채동욱 검사”라고 평가했다.
| | | ▲ 채동욱 전 검찰총장 |
채동욱 검찰총장은 지난 4월 국회 인사청문회에서 여야 청문위원들로부터 모두 박수를 받으며 통과한 최초의 검찰총장으로 기록된다. 특히 여당 청문위원들은 채동욱 후보자에 대해 “파도남”이라고 불렀다. “청문회를 위해 파도 파도 미담만 나온다”고 해서 붙여진 별명이다.
이후 채 검찰총장은 ‘국정원 정치관여 및 대선개입 사건’을 수사하기 위해 서울중앙지검에 특별수사팀을 꾸렸다. 차장검사 예우를 받는 팀장에는 ‘특수통’인 윤석열 여주지청장을 임명했다.
수사가 급물살을 타며 진행됐지만 특별수사팀이 원세훈 전 국정원장을 국정원법 위반은 물론 공직선거법 위반을 적용하려는 과정에서 황교안 법무부장관과 줄곧 마찰을 빚었다. 이후 우여곡절을 겪다, 결국 채동욱 총장은 지난 9월30일 검찰을 떠나야 했다. 야당과 법조계 안팎에서는 ‘말 안 듣는 검찰총장 찍어내기’라는 비난이 거셌다.
당시(9월14일) 김윤상 대검찰청 감찰1과장(사법연수원 24기)은 검찰 내부통신망에 황교안 장관에 대해 후배의 소신을 지켜주지 못한 용기 없는 못난 장관으로, 반면 채동욱 검찰총장은 전설속의 영웅에 비유하면서 자신은 채동욱의 호위무사였다는 사실을 긍지로 삼고 살아가는 게 낫다고 판단해 사직하려 한다는 글을 남겼다. 누리꾼들은 ‘멋있다’며 환호했고, 황교안 장관은 체면이 크게 구겨졌다.
◆ “화끈하게 진실을 말하고 권력의 음모를 진술하다 징계 위기 처한 윤석열 검사”
두 번째, 윤석열 전 특별수사팀장(여주지청장)에 대해 한인섭 교수는 “청문회장에서, 화끈하게 진실을 말하고 권력의 음모를 진술하다 징계 위기 처한 윤석열 검사”라고 평가했다.
| | | ▲ 윤석열 전 특별수사팀장 |
한 교수는 “징계 건의 본질은 진실추구 검사에 대한 정치적 탄압이고, ‘보고 소홀’ 어쩌고 하는 것은 그냥 막 갖다 붙이는 핑계잡기에 지나지 않음은 누구나 아는 바”라고 이번 감찰을 꼬집었다.
윤석열 전 팀장은 지난 10월 21일 서울중앙지검장에 대한 국정감사장에서 검찰 지휘부와 법무부장관을 향해 ‘수사에 외압이 있다’는 양심선언이 담긴 폭탄발언을 작심한 듯 쏟아내 검찰 지휘부를 곤혹스럽게 만들었다.
특히 자신이 직무배제명령을 내렸던 윤석열 전 팀장과 국정감사장에서 진실공방을 벌이며 ‘항명’이라며 ‘눈물’을 보인 조영곤 서울중앙지검장은 이른바 ‘셀프 감찰’을 요청하기에 이르렀다. 이에 대검찰청 감찰본부(본부장 이준호)는 지난 8일 감찰위원회를 열어 윤석열 전 팀장에 대해 ‘보고 누락’ 등을 이유로 정직 3개월의 징계를 법무부에 청구한다는 보도가 나오기도 했다.
하지만 야당은 물론 SNS를 통해 국민과 소통하는 법조인들은 비판의 목소리가 높다. 신경민 민주당 최고위원과 민변 사법위원회 부위원장을 맡고 있는 이재화 변호사는 윤석열 전 특별수사팀장에 대해 “국민검사”라고 부른다.
국민들도 그를 ‘국민검사’라 칭하는데 주저하지 않는다. 특히 익명의 국민들은 윤석열 전 팀장이 근무하는 여주지청장실에 보낸 응원 메시지가 담긴 화분들이 수북이 쌓여갈 정도다.
| | | ▲ 시민들이 윤석열 지청장에게 보낸 화분들..부속실에 있다. |
또한 국민들로부터 ‘국민법관’이라는 별칭을 부여받은 판사 출신 서기호 정의당 의원은 10일 “윤석열 정직 3개월 중징계가 아니라, 정의롭고 용기 있는 검사로서 모범상을 줘도 모자랄 판”이라고 검찰을 매섭게 질타했다.
특히 서울중앙지검 특수2부 김선규 검사는 10일 검찰 내부통신망에 <국정원 수사팀에 대한 정직, 감봉 등 징계건의를 철회하십시오>라는 글을 올리며 “오히려 검사로서 소신 및 국민에 대한 봉사정신을 저버린 채 ‘법과 원칙’에 위반된 결정과 지시를 한 사람들이 징계돼야 할 것”이라며 검찰 지휘부를 겨냥했다.
◆ “말도 안 되는 편법. 변칙구형을 따르지 않고, 무죄구형을 내려
징계 받은 임은정 검사”
세 번째, 임은정 창원지검 검사에 대해 한인섭 교수는 “‘법과 원칙에 따라 재심사건 재판해 달라’는 말도 안 되는 편법. 변칙구형을 따르지 않고, 무죄구형을 내려 징계 받은 임은정 검사”라고 평가했다.
| | | ▲ 임은정 창원지검 검사 |
법무부는 작년 2월 임은정 검사를 ‘우수 여성 검사’로 선정해 서울중앙지검 공판부에 배치했다. 당시 법무부는 보도자료를 배포하며 “임은정 검사를 포함한 여성 검사들을 주요 부서에 발탁했다”며 적극 홍보했다.
그럼에도 검찰과 법무부는 우수 여검사라고 자랑하던 임은정 검사를 검찰 지휘부의 명령을 듣지 않아 징계를 받은 검사로 만들었다.
이 사건 때문이다. 작년 12월 서울중앙지검 공판2부 임은정 검사는 1960대 억울하게 옥살이 한 윤OO(2001 사망)씨에 대한 재심사건에서 무죄 구형을 주장했다.
하지만 상급자인 부장검사는 공안부의 의견대로 ‘백지구형’을 할 것을 지시했다. 백지구형은 검사가 법과 원칙대로 판단해 달라며 재판부에 판단을 맡기는 것이다. 이에 부당하다고 판단한 임 검사는 이의제기권을 행사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오히려 공판에서 제외됐다.
하지만 백지구형은 법과 원칙에 어긋나는 구형이라는 확신을 가진 임은정 검사는 재심사건 재판정에 들어가 다른 검사가 들어오지 못하도록 문을 잠근 채 무죄를 구형했고, 재판부도 무죄를 선고했다. 이 소식을 접한 누리꾼들은 ‘진정한 검사’, ‘정의로운 검사’, ‘소신 있는 검사’라고 찬사를 보내며 환호했다. 법조계 인사들도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검찰 지휘부의 판단은 달랐다. 대검찰청은 지시위반 등으로 감찰을 벌였고, 결국 법무부 검사징계위원회는 지난 2월 28일 임은정 검사에게 정직 4개월의 중징계를 내렸다. 이후 소속도 창원지검으로 발령냈다.
당시 대구지검 형사부 수석검사 출신인 백혜련 변호사는 “임은정 검사의 중징계에 분노한다”고 말했다. 또한 이재화 변호사도 “임 검사는 징계대상이 아니라 표창대상”이라며 “임 검사를 징계한 검찰을 징계하자”고까지 주장했다.
특히 임은정 검사에 대한 검사징계위원회에 김칠준 변호사와 함께 특별변호인으로 참여한 한인섭 교수는 징계가 결정되자 “검사로서의 소신과 양심을 지키려한 진짜 검사를 징계하다니”라고 개탄했다.
임은정 검사는 2007년 수사업무 뿐만 아니라 ‘공판업무 유공’으로 검찰총장상을 받은 바 있다. 임 검사는 현재 징계가 부당하다며 징계취소소송을 제기해 진행 중이다.
◆ “PD수첩사건 도저히 유죄거리가 안 된다며, 끝까지 기소하라는
상층부 뜻에 따르지 않고 사표를 내야 했던 임수빈 검사”
네 번째, 임수빈(사법연수원 19기) 전 서울중앙지검 부장검사에 대해 한인섭 교수는 “PD수첩사건, 도저히 유죄거리가 안 된다며, 끝까지 기소하라는 상층부 뜻에 따르지 않고 사표를 내야 했던 임수빈 검사”라고 평가했다.
서울중앙지검 형사2부 임수빈 부장검사는 2008년 MBC PD수첩의 광우병 보도와 관련해 당시 이명박 정부측 인사들의 고소고발이 제기된 사건을 맡았다. 하지만 PD수첩 제작진들에 대한 형사처벌에 반대하다 지휘부와 마찰을 빚었고, 결국 검복을 벗었다.
그럼에도 검찰은 PD수첩 제작진을 재판에 넘겼다. 그러나 대법원 제2부(주심 이상훈 대법관)은 2011년 9월 모두 무죄를 선고했다. 또한 PD수첩 제작진은 7개의 소송에 휘말렸으나 모두 승소했다. PD수첩의 보도가 정당하다는 것으로 판단한 것이다.
한인섭 교수는 “이들의 삶에서, 후학들이 힘을 얻게 될지, 아니면 ‘그렇게 살면 인생 고단하다’는 반면교사로 삼을지...그건 각자의 선택입니다. 그러나 국민으로서, 학자로서, 기억하고 힘을 보태줘야지요. 가끔 일러주고 싶지요. 서로 힘을 더하기 위해”라고 글을 쓴 배경을 설명했다. 한 교수는 끝으로 이런 말을 남겼다.
“제비 한 마리가 왔다고 봄이 온 것은 아니지만,
제비 한 마리를 보고 봄에 대한 희망을 갖는 법이니~~
그 ‘희망을 심어주는 제비’의 역할을 역사적 국면에서 했다면,
그 자체로서 의미있는 삶이 아닐까 하는 등등 말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