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일담 [後日談]
이야기는 뒷 얘기 ㅎ
뒷담화도 자미가 제법 쏠쏠하지비 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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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호와 이수인~
이 곡은 1970년대 알려지기 시작한 곡이라 아주 오래된 곡이라 할 수는 없지만
이 곡이 알려진 초기에는 가곡 "가고파"와 함께 마산을 대표하는 곡으로 알려졌었다.
작곡가 이수인이 고향 마산을 염두에 두고 작곡 하였다니 아주 틀린 말은 아닐 것이다.
이 곡은 작곡가와 작시자 김재호가 마산제일여고에서 교편을 잡고 있던 시절의 인연으로 만들어진 곡이다.
1967년 이수인이 KBS합창단 지도교사로 발탁되어 서울로 이사온 이듬해,
이수인은 마산제일여고 시절 단짝이었던 김재호로 부터 엽서를 받는다.
음악실에서 바다를 바라보다 쓴 편지에 시 한 편을 보낸다고 엽서는 적고 있었다.
"고향의 노래"였다.
이수인은 엽서를 보고 한동안 눈을 떼지 못했다.
그 길로 곡을 붙여 노래를 탄생시킨 것이 1968년 이었다.
노래가 발표되고 이수인과 김재호는 서로 연락이 닿지 않았다.
김재호는 이후 부산과 마산의 고교를 전전하다가 부산시내 어느 학원에서 국어강사로 일하고 있었다.
김재호시인 (1939~ 2019) 시화전시회
~ "고향의 노래"~
시인 김재호의 고향은 경남 김해군 진영읍 내룡리.
금병산과 월파산 기슭의 산골로 진영단감과 진영사과로 유명한 이곳이 "고향의 노래"의 배경이다.
김재호는 초등학교를 졸업하자 바로 마산으로 나와 마산중과 마산상고를 졸업하고 연세대 국문과에 입학했다.
대학 2학년 때인 1960년 국제신문 신춘문예에 당선됐고, "현대문학"에 박목월의 추천으로 재등단한 시인이다.
그는 열세살 어린 나이에 고향을 떠나 올 당시, 서른여섯의 어머니가 돌아 가시고 이후 어머니 생각과 고향생각에 눈시울을 붉힌 적이 한두번이 아니었다고 한다.
싸리울 고운 고향 집마당에 들어서면 처마 끝에 매달린 육각등불에 소리없이 펄펄 날리던 함박눈.
그 눈 속을 뚫고 들리던 경전선의 기적소리, 그리고 돌아가신 어머니를 그리워 하며 이 시를 지었다고 한다.
고향에는 앵두꽃 피는 언덕너머 철둑길이 뻗어 있었고 빨간 우체통이 유난히 크게 보이는,,,
제비가 둥지를 비운 처마 끝의 빨간 초롱불 등불에 펑펑 쏟아지던 함박눈을 바라보면서 어머니를 소리쳐 불러보고 싶은 그날의 소년은 이제 나이만 들어가고 있었다.
배움 때문에 고향을 떠나 새벽길을 걸어 나올 때 읍내역까지 배웅 나오신 할머니가 꼭 쥐어주시던 지폐 한장과 경전선 철길을 따라 피어 있던 가을 들녘의 국화 냄새를 잊을 수 없다는 김재호 시인...
"고향의 노래"는 '우리의 고향' 노래인 것이다.
나,
별고을의 고향은
별고을이다
1992.1.26. 경향신문
첫댓글 고향!!
언제나 가고픈 고향??
어린시절에 간직한 소박한 꿈이 가득한 나의 고향??
그립고 소중합니다
나는
고향생각을 하면
먼저간 소꼽친구가 보고싶고....
그립습니다
그리고
고생만 하고 떠나신 부모님도 한없이 그립습니다!!
내 고향
별고을!!---ㅎ
김재호 시인의 스토리가
고향의 노래를
낳은 배경이라요.
이수인님의 노래는 음악을 한다
하는 분들은 다들 좋아하시더군요.
저도 물론 좋아하죠.
시인이신 김재호님의 가사가
너무 아까워 이수인님에게
가사를 이수인님에게 보낸 것은
신의 한 수 였던 것 같네요.
훗날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좋아하게 될 줄은 두 분 다 모르셨겠죠.
고향의 내음을 느껴 보라는 싸인이라
보네요. 잘 들었습니다.
내일은 주말 이네요
잘 보내시길 바랍니다.
말씀하신 바
딱 그러하네요.
동료교사로서
두분이 나눈 우정과 인정이
물씬 묻어나는 이야기가 낳은 이야기지요.
감상과
진지하고 세심한 논평의 말씀
감사합니다.
즐거운 주말
삶이 행복하시기 바랍니다.
별고을님이 누구이신가
궁금하게 하는 대목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