짙은 황사를 뚫고
이틀째 황사가 기승을 부리는 사월 중순 목요일이다. 어제 아침나절은 황사로 연무가 낀 듯 대기는 흐릿했는데도 진영읍에서 대산 들녘으로 나가 두어 시간 걸었다. 주천강 냇물에는 어리연이 잎을 펼쳐 자라고 둑에는 절로 자란 야생 갓이 노란 꽃을 피워 화사했더랬다. 들녘에는 벼농사 뒷그루로 비닐하우스에서 키운 멜론이 영글고 화훼재배 농장은 카네이션과 장미가 잘 자랐다.
목요일 새날이 밝아와도 짙게 낀 황사는 걷힐 기미가 없었다. 날씨가 고르지 못한 때면 도서관으로 나가 머물러도 되겠으나 자연학교로 나가는 생태 탐방은 주체할 수 없어 산책 걸음을 감행했다. 아침밥을 일찍 해결하고 현관을 나서 아파트단지를 벗어나 퇴촌삼거리로 향했다. 외동반림로와 용호동 일대 미끈하게 솟구쳐 자라는 메타스퀘이아 가로수는 연초록 잎이 돋아 싱그러웠다.
창원천 천변을 따라 상류로 올라가 창원대학 캠퍼스로 들어섰다. 이른 아침이라 대학인이 오가지 않는 캠퍼스는 넓은 공원을 걷는 기분이었다. 이른 봄 매화와 산수유꽃이 피던 캠퍼스를 거닐고는 처음이다. 어느새 봄은 무르익어 유실수이기도 한 모과가 피운 꽃은 저물고 조경수로 자란 라일락이 보라색 꽃을 피워 향을 풍겼다. 장미를 심어둔 꽃밭에는 꽃봉오리가 맺어지고 있었다.
공학관 뒤에서 창원중앙역으로 올라가 마산역을 출발해 동대구로 가는 무궁화호 열차표를 한림정까지 끊었다. 정한 시각 플랫폼으로 들어온 열차를 타고 진례터널을 빠져나가 진영역을 지나자 화포천 습지 갯버들은 연초록 잎이 무성해갔다. 갈대숲에서는 세대교체가 이루어지면서 시퍼런 잎줄기가 솟아나지 싶었다. 개구리밥이나 부레옥잠과 같은 수생식물도 표면적을 넓혀갈 테다.
평소 이용 승객이 적어 역무원이 근무하지 않은 무인역으로 격하된 한림정역이다. 내 말고는 내리고 타는 이가 아무도 없는 덩그런 역사를 빠져나간 면 소재지 거리에서 북녘 들판을 향해 걸었다. 주택지가 끝난 곳에서 들녘 들길을 따라 걸으니 북면에서 대산을 거쳐 생림으로 뚫리는 60번 국가 지원 지방도 확장 공사는 진척이 상당히 이루어져 올해 상반기 부분 개통을 앞둔 때였다.
어디선가 시작된 농업용수가 흘러가는 농수로 곁에는 지역민들이 텃밭 농사를 잘 지었다. 아침 이른 시간 노부부가 나와 괭이로 이랑을 지어 놓고 무슨 작물을 심으려고 했다. 이즈음 파종할 씨앗은 들깨나 콩이지 싶었다. 지난해 가을 심어둔 마늘과 양파는 잘 자라 뿌리가 굵어지는 때였다. 텃밭 모퉁이에 머위가 넓은 잎을 펼쳐 자랐는데 초벌을 채집한 후 다시 돋은 순인 듯했다.
들녘에서 술뫼마을로 가 은퇴 후 농막에서 전원생활 즐기는 지인을 찾아뵈었다. 텃밭 작물을 심으려고 이랑을 준비하는 중이었다. 지기는 주말에 머문 부산 자택을 떠나 시골 텃밭을 가꾸며 유튜브에 올려 바깥세상과 소통하며 살았다. 일전 퇴직 동우회 여가생활 공모전 시상식에서 영상 제작 부문 상을 받는 장면을 보기도 했다. 농막 거실로 들어 차를 마시면서 인사를 나누었다.
통유리로 된 농막 창밖은 낙동강 강가 풍경이 훤히 펼쳐지는데 황사가 희뿌옇게 끼어 시야가 흐렸다. 처음엔 지인을 뵙고 둑길을 계속 유등에서 마을버스로 가술로 갈까 싶었다. 황사가 짙어 당초 계획을 바꾸어 환담을 계속 나누며 시간을 보내다가 지인과 점심을 같이 들기로 했다. 운전대를 잡은 지인 동반석에 앉아 유등을 거쳐 수산다리 근처 메밀국숫집으로 차를 몰아가게 했다.
자전거 길을 겸한 강둑에는 느티나무 가로수가 녹음을 드리워갔다. 비탈진 강둑 경사면에는 야생으로 자란 갓이 노란 꽃을 피워 유채꽃을 보는 듯했다. 늦은 봄에서 초여름 금계국이 피면 황금빛을 이루는 강둑인데 야생 갓이 서막을 열어주었다. 제1 수산교를 비켜 초등학교 근처 국숫집을 찾으니 주차장이 만차라 농로 곁에 차를 세우고 돈가스가 곁들여 나오는 우동을 먹고 나왔다. 24.04.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