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태칼럼] (15) 신고리 5·6호기 공론화와 에너지 민주주의
발행일2017-08-20 [제3058호, 8면]
‘탈핵’은 지난 19대 대선에서 거의 모든 대선 후보들이 내걸었던 주요 공약의 하나였다. 문재인 대통령도 탈핵·에너지전환 공약을 내세웠다. 공약 내용은 신규 핵발전소 건설 중단, 노후 핵발전소의 수명 연장 금지, 월성1호기 폐쇄, 신고리 5·6호기 공사 중단, 원자력발전 진흥정책 폐지, 탈핵에너지전환 로드맵 수립, 신재생에너지 보급 확대 등이었다. 선거 후, 반대 여론이 상당한 현실에서 문재인 정부가 과연 종합공정률 29%, 실제 시공률 10% 정도인 신고리 5·6호기 공사 중단을 단행할 지가 초미의 관심사로 떠올랐다. 지난 6월 19일, 문 대통령은 고리1호기 영구정지 기념사에서 “원전 중심의 발전정책을 폐기하고 탈핵 시대”로 가겠다고 천명했다. 대통령에 의한 최초의 탈핵 선언이었다. 한편, 공사 중인 신고리 5·6호기에 대해서는 “사회적 합의”로 중단 여부를 결정하겠다고 했다. 6월 27일, 정부는 사회적 합의의 방식으로 공론화 과정을 제시했고, 7월 24일에는 공론화 과정을 설계하고 관리할 공론화위원회를 발족했다.
문재인 정부의 탈핵 선언에 원전 추진세력은 신속하게 움직였다. 보수언론들은 전력수급의 심각한 차질, 전기요금 폭탄, 지역경제에 미치는 부정적 영향, 대안 부재, 탈핵으로 인한 핵발전소 수출 차질과 같이 탈핵정책의 문제점들을 연일 쏟아냈다. 하지만 대부분 ‘팩트’가 아니라 일방적인 주장에 불과했다. 여기에 ‘전문가 프레임’이 더해졌다. 이들은 문재인 정부의 탈핵·에너지전환 정책이 “소수 비전문가의 제왕적 조치”로 “국가안전을 해칠 위험”이 있다고 몰아갔다. 신고리 5·6호기 공론화에 대해, 전문가를 배제하고 비전문가인 시민들이 최종 결론을 내는 것이 심각한 잘못이라며, “전문가 참여와 합리적인 방식의 공론화”를 요구했다. 전문가인 자기들만이 고도의 기술인 핵발전 정책 결정의 적임자라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중요하고 필요하다. 하지만 특정한 사안의 논의와 결정을 해당 전문가들이 독점하겠다는 것은 전문가의 역할과 전혀 관계없는 ‘전문가주의’일 뿐이다. 건축 전문가인 설계사와 건축가는 설계도를 비롯해 집을 짓는데 필요한 온갖 제안과 조언을 하지만, 최종 결정은 결국 그 집에 살 사람이 한다. 마찬가지로, 에너지 기술의 채택, 개발, 사용을 최종 결정하는 것은 실제 사용자들인 시민들의 몫이다. 에너지 기술과 정책 전문가들의 역할은 사용자들이 제대로 숙고하고 결정하도록 필요한 자료와 정보를 정확하게 제시하는 것이다. 한편, 핵발전에는 기술적, 경제적 차원 이외의 중요한 문제들이 있다. 하청노동자들은 위험하고 열악한 환경에서 피폭노동을 감수하고, 핵발전소와 송전탑 지역주민들의 삶이 망가지고, 미래세대는 감당할 수 없는 고준위 핵폐기물을 떠안아야 한다. 하지만 핵발전 전문가들은 여기에선 모르쇠로 일관한다.
소수의 전문가들이 논의와 결정을 배타적으로 독점할 때, 공동선이 아니라 자신들의 사익을 추구할 가능성이 크다. 전문가들이 직접적인 이해당사자라면, 전문가주의의 위험성은 더 말할 나위도 없다. 신고리 5·6호기 공론화는 에너지정책의 논의를 밀실에서 광장으로 옮기는 첫걸음이다. 광장은 에너지 사용자이자 사용 결과에 영향을 받는 시민 모두에게 열려 있다. 이렇게, 공론화로 에너지 민주주의의 길이 열리게 된다. 공론화의 근원적 의의는 바로 여기에 있다.
조현철 신부(예수회) 녹색연합 상임대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