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이 유난히 큰 어느 날
이 이야기는 시작 된다.
야근, 그래.. 야근이였다.
학자금 대출과 밀린 월세와 곧 끊길것 같은 나의 핸드폰을 살리려면
열심히 또 열심히 ...
나는 모 광고회사의 디자이너 라고 쓰고 노예 라고 읽는다.
광고 회사의 특성상 항상 새로운 아이디어와 톡톡 튀는 발상,
그 누구도 생각한적 없었던 새로운 무언가를 원한다.
아.. 이 팀장님의 목소리가 들리는듯하다
"썸띵뉴!!! 새로운것, 태초의 신이 빛이있으라!! 라고 말했을때의 그 신선함!! 뭐, 그런거 있잖아?
오호호호호호"
그래, 너의 새로운 섹시커리어 립컬러 위에 신선하게 내 주먹을 지그시 눌러보면 어떨까 ?
매우신선할텐데,
나는 먹이사슬의 맨 아래, 아니, 존재하는지 안하는지 도 모를 공기 같은 존재랄까
하루에도 몇번씩 오부장의 커피를 타고, 그 지방낀 눈알이 내 다리라도 훑는 느낌이 들때면
들고있는 쟁반으로 몇번이나 그자식의 대갈통을 내리치는 상상을 하곤하지만,
나의 통장한테는 전혀 재미난 일이 아닐 것 같아 그냥 분하디 분한 마음 감추고 조용히 자리로 돌아온다.
저 위치쯤 되면 사람이 저렇게 변하는 것일까?
아님 저 시대에 무슨일 이라도 있었던 것일까?
별의별 쓸데없는 생각을 멈추고 다시 모니터를 바라 보았을때,
난 마치 자이로 드롭이라도 탄듯 심장이 쿵 하고 내려앉는것을 느꼈다.
11시 30분
막차는 11시 40분
회사와 역의 거리가 대충 9분이라고 볼때
내가지금 스프링 튕기듯 튀어나가지 않으면
막차를 놓치게 된다!! 그러면 난 회사에서 노숙을 해야한다. 왜? 난 집까지 날 데려다 줄 그 누구도 없고!
또한 나의 잔액은 120원 이기 때문이지
미친듯이 외투를 걸치고 가방만 챙겨든채 지하철 역으로 내달렸다.
가까스로 열차에 몸을 내던지고 숨을 돌릴때쯤
내일까지 완료해야될 파일이 들어있는 USB 를 가지고 오지 않았다는 좌절감과
야근할때만 신는 곰돌이 슬리퍼를 신고 있는 내 발을 보며 자괴감에 시달렸다.
왜 기억하는가
초등학교 시절 겨울이 되면 학교앞 문방구에서 잠깐씩 팔았던 거대한 캐릭터 털 슬리퍼를..
그렇다, 나의 슬리퍼는 커다란 밤색 곰돌이가 무식하게 달려있는
바로 그러한 슬리퍼였다.
문이 열리고 닫힐때마다 수 많은 시선들이 느껴졌지만 난 고개를 푹 숙인채,
흥, 니들이 패션을 알아?
라고 애써 스스로를 위로했지만 내면 깊숙한곳 저 머나먼 나의 마음속에서 꿈틀대는 쪽팔림을
이기려 들진 못했다.
집으로 가는 언덕은 오늘따라 왜이리 길고 높게만 보이는지,
나는 나의 유일한 친구 곰돌이와 함께 터덜터덜 언덕을 올라갔다.
그리고 나의 밤색 곰돌이가 외로울까 동네 구멍가게에서 맥주라는 친구도 함께
마치 내 인생같은 뭐 같은 언덕길을 올라가고 또 올라갔다.
한없이 밝은 슈퍼 아주머니 께서 신발을 보고 흠칫 놀라시긴 했지만
이미 나의 멘탈을 저멀리 달나라 너머로 이민보냈기에, 아무 생각이 들지 않았다.
집에들어와 침대에 몸을 던졌다.
아무것도, 손가락 하나 까딱하기가 귀찮았다.
하지만 쪽팔림을 무릎쓰고 데려온 맥주가 먼지쌓인 바닥위를 뒹굴거리는 모습이
참으로 처량하게 느껴졌기때문에,
마셔야겠다! 라는 강한의지로
검은 봉투를 힘겹게 들어올린채
바깥으로 나갔다.
우리집은 흔히 말하는 옥탑방이다.
겨울이 되면 차도 못올라오는 그런 언덕위에 위치한 곳인데,
난 잘 올라간다
어쨋든 집은 가야할 것 아닌가?
새삼 인간의 생존 본능에대해 경의를 표했다.
살며시 불어오는 옥탑방의 봄 바람은,
사람의 기분을 좋게도, 또 외롭게도 만들었다.
봄바람과 함께 건배!
치익, 탁! 이란 멋진 소리가, 마을 전체에 울려퍼지는 듯 했다.
눈을 감고 더 이상 숨을 쉴 수 없을때까지 맥주를 들이켰다.
캬...
인생이여,
한밤의 캔맥처럼 멋지고 시원하기만 했음 얼마나 좋겠는가
무언가 씁쓸한 기분이 들어 오랜만에 하늘을 올려다 보았다.
그곳에 달이 있었다.
휘황찬란 멋지고 밝고 아름답게 또 영롱한듯 슬프게
빛을 내는 달이 있었다.
"달, 잘생겼네"
그날 따라 유난히 달이 잘생겨 보였다.
" 이봐, 잘생긴 달, 세상이 너 처럼 온갖 빛나고 아름답기만 한 것이라면 참 좋겠는데 말이야 "
미친척 잘생긴 달에게 말을 걸었다.
내면의 많은 감정들이 소용돌이 치듯,
내안의 자존심과 이성과 감성, 동심과 슬픔 아픔과 행복들이 한데 섞여
알수없는 벅참과, 외로움이 몰려들었다.
치익, 탁! 소리가 세번째로 온 동네를 울려펴질때쯤
난 별의별, 아니 달의달 소리를 짖고있다.
그렇다, 짖었다는 소리가 맞는것같다.
" 집은 망하고! 회사는 거지같고! 근데 난 거지고! 남자친구는 바람나서 도망하고! 어?!
어?, 맞아, 너 바람하고 친구아니야?... 야..걔 그러지 말라그래, 인생 그렇게 살면안된다고 꼭 전해줘 알겠지?
혹시, 태양하고도 친해? 당연히 친하겠지? 아닌가? 너랑 마주칠 수가 없나?...
그래, 넌 태양을 본적이 없겠구나.. "
달은 말 이 없었다.
" 그럼, 내가 태양 소개시켜줄까? 짠!! 반갑습니다 오햇님 입니다! "
갑자기 유학보냈던 멘탈이 소름돋게 돌아오는것을 느꼈지만, 그냥 무시했다.
그렇다, 이 미친세상 오늘만큼은 그냥 미쳐보고 싶었다.
" ....나미친건가? 어머, 나 미쳤나봐 으하하하하하하 "
내 웃음소리는 마치 조수미가 밤의여왕의 아리아를 부를때 처럼
미친 스타카토로 이루어져 있는데 아주 온동네 다깨울듯 메아리처럼 울려퍼졌다.
그 소리를 들었는지 동네 개들이 짖는다.
아 쪽팔려
"하... 아무튼, 너참..잘생겼다. 짝!(박수) 너 내 남자친구 할래?! 허흫...헣..대박! 내 남친해라야!! 으하하하하하하하 "
아, 이실력 정도면 배우를 할걸 그랬나보다.
연기에 감동받은 개들이 또 짖는다.
" 그럼, 우리 오늘 부터 1일? 오케?! 오케..오케.. 난.. 그럼 자러갈게!! 사랑해!! "
하늘위로 크게 하트를 그린 나는 비틀대며 방으로 향했다.
침대위로 스키점프하듯 몸을내던졌다.
아, 알콜 입냄새가 내코를 간지렸지만 나의 자겠다는 의지 까지 건드릴 수 없었다.
그날 밤 꿈을 꾸었다.
햇살 좋은 놀이터
나는 6살 어린이였다.
우리집이 잘 살았을때, 아빠가 사준 분홍색 꽃 원피스를 입고,
내가 너무 좋아했던 주주 공주 팔찌까지 했다.
"여보, 저녁드세요! 호호홓"
어린아이가 저렇게 기름지게 느끼하게 웃을 수 있구나
새삼 놀라며 참 나란 인간 대단하다 라고 느낄때쯤
무릎 멍 투성이의 남자 아이가 나무 칼을 들고 쪼르르 달려왔다.
"이게 뭐야! 난 국없으면 밥 안먹어!"
아, 저 아이의 아버지께선 국이 없으면 식사를 안하시는구나...
하..근데 난 나름 된장국이라고, 돌맹이로 두부 디테일 까지 살려서 내줬더니, 안쳐먹어?!
갑자기 화가났다.
" 어머, 여보! 여기 국 있어요, 된장국이예요! 여기 두부도 있어요, 뜨거워요!"
분명 화가 났는데, 티 하나 내지 않고 잘 이야기 한다.
지금의 나보다 났다는 생각이 들었다.
" 나 두부 안먹어! "
남자 아이는 큰 나무 막대기 칼을 휘두르더니, 정성껏 차려 놓은
나뭇잎 반찬과 고운 모래알 밥 그리고 돌맹이 두부가 들어간 된장국을 모조리 파해쳐 버렸다.
어린 나는 놀란 마음에 넘어졌다.
" 너랑 안놀꺼야!!! "
눈물이 그렁그렁 한 나는 그대로 으아아앙 울면서 집으로 갔다.
눈물을 닦으며 집으로 가는 횡단보도를 기다리다 파란불로 바뀌었다.
파란불이 되었는데, 갑자기 노래가 나온다.
굿모닝...굿모닝.... 빠라바빠빠빠바
순간 눈이 번쩍 떠졌다.
나는 눈이 퉁퉁 부을 정도로 울고있었다.
8시05분
세상에 마상에
오늘 출근을 옥상으로 해야될것같다.
뛰어내리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