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항산 단풍취
지난겨울에 이어 봄도 비가 잦은 편인데 강수가 예보된 사월 셋째 주말을 맞았다. 내리 사흘간 황사로 뒤덮였는데 이번 비가 공중에 떠도는 먼지를 말끔히 씻어 갔으면 싶지만 희망 사항이고 연이어 송홧가루가 날리는 계절이 다가왔다. 낮부터 비가 온다고 해도 금쪽같은 주말 틈새 즐겨 가는 산행을 나서지 않을 수 없어 마산역 광장에서 출발할 농어촌버스를 타려고 길을 나섰다.
월영동으로 가는 버스를 타고 가다 도중에 내려 마산역 광장으로 오르는 노점을 지났다. 주말이면 노점상은 텃밭에서 키웠을 푸성귀나 산자락서 채집한 산나물을 펼쳐 오가는 손님을 맞으려 했다. 새벽부터 저자에 펼칠 짐꾸러미를 챙겨 나온 할머니나 사내들에게 그것을 사 줄 여건이 되지 못해 미안한 생각이 들었다. 내가 마음에 둔 산을 찾아가면 얼마든지 마련할 산나물이다.
번개시장 들머리에서 김밥을 한 줄 마련 진북 서북동으로 가는 73번 농어촌버스를 탔다. 73번은 다른 노선과 달리 합성동 시외버스터미널로 와 삼성병원을 둘러 어시장과 댓거리를 거쳤다. 밤밭고개를 넘은 버스는 진북면 소재지에 들렀다가 덕곡천을 따라 이목과 금산을 거쳐 학동 저수지를 지났다. 영학리에서 비탈진 차도를 조금 더 올라간 서북동에서 마지막 손님으로 내렸다.
하늘엔 낮은 구름이 끼어 비는 언제든 내릴 듯했다. 서북산 기슭에서 종파를 달리하는 두 개 작은 절로 가는 들머리를 비켜 산허리로 뚫린 임도를 따라 걸었다. 봄이 오던 길목 낮게 자란 삼지닥나무가 꽃망울 달고 있던 나목이었을 적 찾고는 처음인데 그새 숲은 연초록 잎이 돋아 무성해졌다. 인적이 아무도 없는 임도를 따라 산허리로 올라 T자 갈림길에서 오른쪽으로 향해 갔다.
왼쪽으로 가는 길고 긴 임도에서는 부재고개에 이르러 부재골로 가거나 의림사로 내려선다. 그쪽은 동선이 멀 뿐 아니라 산나물이 드문 곳이라 부재고개를 넘을 참이다. 부재까지는 거리도 가깝거니와 길섶에서 여러 가지 산나물을 만날 수 있기 때문이다. 산기슭에는 야생 복숭아나무가 흔해 산벚꽃이 피기 전에 복사꽃이 피면 무릉도원을 연상하게 했는데 연분홍 꽃은 저물었다.
임도를 벗어나 수종 갱신지구에 심어둔 편백림으로 올라가 보니 숲 바닥에 흔하게 자라던 취나물이 드물었다. 산짐승도 취나물을 좋아해 노루나 고라니가 뜯어 먹었을 수 있겠으나 산나물을 채집하는 선행주자가 다녀갔었을 수 있겠다 싶었다. 짐승은 주둥이로 뜯어 먹은 흔적이 남는데 그렇지 않아 후자인 듯했다. 시기상으로 산나물은 쇠어가고 채집에도 철이 지나는 즈음이다.
조림지에서 임도로 나와 부재고개를 넘으면서 무덤가에 돋아난 고사리와 비비추를 뜯어 모았다. 고개를 넘은 여항산 둘레길에서 숲으로 드니 참취가 간간이 보이고 잎사귀를 넓게 펼친 바디나물도 만날 수 있었다. 다시 임도로 나와 길섶을 살피니 고비고사리와 나비나물까지 찾아 허리 굽혀 뜯으며 좌촌 주차장 방향으로 향해 나아가다 성근 빗방울이 들어 잣나무 밑에서 쉬었다.
쉼터에서 김밥으로 소진된 열량을 벌충하고 쉬는 사이 빗방울이 그치는 듯해 임도를 따라 걸으니 당국에서 배수로를 정비해두어 식생은 달라져 있었다. 가랑잎이 쌓여 부엽토가 된 배수로는 산나물 자생지였는데 예전처럼 되려면 몇 해 걸려야 될 듯했다. 굴삭기가 닿지 않은 언덕엔 벌깨덩굴과 어수리와 영아자를 비롯한 몇 가지 산나물이 눈에 띄어 주섬주섬 뜯으면서 나아갔다.
봉화산 허리로 멀게 이어진 봉성저수지까지 가지 않고 별천으로 가는 여항산 둘레길로 내려섰다. 참았던 비가 다시 내려 우산을 펼쳐 쓴 채 숲 바닥 잎을 펼쳐 자라는 단풍취를 뜯었다. 곰취보다 더 귀하고 고급 산나물인 단풍취는 이즘이 이파리가 보드라워 채집 적기였다. 예상하지 않은 단풍취 군락지를 만나 손에 든 보조 가방까지 산나물로 채워 귀로에 이웃과 나눌 수 있었다. 24.04.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