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4월 15일이었다. 일본에서 살아 있는 경영의 신으로 불리는 이나모리 가즈오 교세라 명예회장을 일본 교토에서 인터뷰했다. 그가 일본항공(JAL) 회장에서 물러난 지 보름째 되던 날이었다. 사실상 파산했던 JAL을 되살린 비결을 자세히 듣고 싶었다. 하지만 그럴 수 없었다. 교세라 측에서 인터뷰 조건으로 `JAL에 대한 질문은 하지 않는다`는 약속을 원했기 때문이다.
이나모리 명예회장이 JAL을 언급하지 않으려는 배경은 이해가 됐다. 정치적 편견에 따른 오해를 받기 싫어서였을 것이다. 그는 일본 민주당의 오랜 지지자다. 그를 JAL 회장으로 삼고초려한 것도 민주당 정권이었다. 이를 빌미 삼아 일각에서는 "JAL 회생은 민주당 정권의 특혜 덕분"이라고 평가절하했다. 교세라가 JAL의 증자에 참여해 돈을 벌었다는 의혹까지 제기했다. 그는 억울했다. "JAL의 회생을 통해 일본 경제 전체에 힘을 불어넣고 싶다"던 대의가 오해를 받았기 때문이다. 대쪽 같은 성격의 그로서는 굳이 JAL을 살린 업적을 드러내고 싶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그의 주변에는 노련한 관찰자가 있었다. 오니시 야스유키 니혼게이자이신문 편집위원이다. 그는 100여 명의 주요 인물을 인터뷰해 JAL이 회생한 비결을 추적했다. 그 결과물이 `이나모리 가즈오, 1155일간의 투쟁`이라는 책이다. 매일경제 MBA팀은 오니시 편집위원을 인터뷰해 간접적이나마 이나모리 명예회장이 JAL을 살린 비결을 들을 수 있었다. 오니시 편집위원은 "이나모리 명예회장이 초등학교 도덕 교과서에 나올 만한 기본 도덕률을 강조하는 경영철학을 끈질기게 설파해 JAL 직원들의 행동을 바꾸어 놓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다음은 오니시 편집위원과의 일문일답이다.
◆ 1단계 : 경영 목표 선언 `직원의 행복 추구’
-JAL이 회생한 비결은 어떻게 취재했나.
"100명 이상의 주요 인사들을 인터뷰했다. JAL 회장과 CEO, 교세라와 KDDI의 최고경영진, 정부 고위 관료, 금융업계 고위 인사 등을 인터뷰했다. 이나모리 명예회장과도 3번 만나 장시간 이야기를 들었다. 내 책 제목의 1155일은 그가 JAL 회장으로 재임한 기간이다. 2010년 2월 1일부터 2013년 3월 31일까지다"
-JAL 회장 취임 첫날이 인상적이다. 강당에 모인 직원들 앞에서 "경영의 목적은 모든 직원의 행복 추구"라고 밝혔다. 그러나 JAL 간부들이 이 같은 목표에 반대했다는데.
"JAL의 역사는 심각한 노사 갈등으로 점철돼 있다. 경영진은 노조에 밀릴 것을 두려워했다. 직원 행복이라는 목표를 내세우면 노조가 더 많은 것을 요구할 것이라고 염려했다. 그러나 이나모리 명예회장은 노사 간 신뢰를 회복하려면 직원의 행복추구가 필수라고 생각했다."
-JAL은 2만명의 직원을 해고했다. 이나모리 명예회장이 밝힌 경영의 목적과 모순되지 않는가.
"해고 결정은 기업재생지원기구(REVIC)가 했다. 이나모리 명예회장이 JAL에 참여하기 전에 결정이 된 일이다. 그는 해고 결정을 추인했다. (REVIC는 2009년 10월 민관 공동으로 설립된 펀드다. JAL 재생의 실무를 맡았다.) 해고가 그의 철학과 모순되는 것은 사실이다. 그 역시 `매우 슬펐다`고 말했다. 하지만 JAL이 회생하려면 대규모 해고가 불가피했다. 이후 이나모리 명예회장은 JAL의 남은 직원 3만2000명을 보호하는 데 집중했다. 그는 `이 일은 JAL뿐만 아니라 일본 전체를 위해서도 매우 중요한 일`이라고 했다."
◆ 2단계 : 리더들에게 도덕교육 실시
-이나모리 명예회장이 JAL에 합류하고 가장 먼저 한 업무가 리더 교육이었다. 회사가 망해가는 상황에서 한가롭지 않은가.
"JAL 회생을 위해서는 `철학`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오타 요시히토(이나모리 회장의 비서)는 `철학이 없었다면 JAL 회생에 큰 역할을 한 아메바 경영(이나모리 명예회장이 개발한 부문별 채산제도) 역시 작동할 수 없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오타 요시히토는 이나모리 명예회장이 JAL 회생을 위해 교세라에서 데려온 두 명 중 한 명이다. 오타는 이나모리 명예회장의 경영철학을 꿰뚫고 있기로 유명했다. 다른 한 명은 나리타 나오유키였다. 그는 일본 중소기업들에 아메바 경영을 전파하는 전도사 역할을 했다.
이나모리 명예회장은 두 사람을 통해 자신의 경영철학과 아메바 경영을 JAL에 심고 싶었다. 오타가 JAL에 온 지 3주 만에 "하루빨리 리더 교육을 시행해야 한다"는 보고서를 내밀자 기다렸다는 듯이 승인했다.
그러나 JAL 직원들은 강하게 거부했다. `비상 사태에 부하 직원들만 일을 시킨 채 한가하게 연수나 받을 수 없다`는 반발이 나왔다.
-JAL 직원들은 왜 리더 교육에 저항했나.
"JAL의 리더들은 자신들의 기존 방식에 자신감을 갖고 있었다. 이나모리 명예회장을 항공업계의 아마추어라고 생각했다. 제조업 출신의 노인에게 배울 게 없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이나모리 명예회장은 JAL 리더들에게 쉬운 말로 설명하고 또 설명했다. 결국 JAL 간부들은 자신들의 기존 방식이 실패했음을 가슴 깊이 느끼게 됐다."
-리더 교육의 내용은 초등학교 도덕 교과서에 나올 만한 얘기다. 이나모리 명예회장이 강사로 나서서 `다른 사람을 소중히 여겨달라`, `다른 사람을 속여서는 안 된다`는 얘기를 했다.
"이나모리 명예회장은 직원들에게 매우 어려운 것을 요구한다고 생각했다. `거짓말을 하지 말자`는 강연에서는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이는 매우 쉬워 보입니다. 그러나 하루 중에 한 차례도 거짓말을 하지 않기란 어렵습니다. 아는 것과 행동하는 것은 다릅니다. 저는 여러분에게 매우 어려운 것을 원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나모리 명예회장의 강연에 대한 간부 직원들의 첫 반응은 차가웠다. 이 사실을 그도 잘 알고 있었다. 그는 이런 말을 했다. "JAL 직원들은 아이들에게 가르쳐야 할 이야기를 왜 우리에게 하느냐고 생각했을 겁니다. 얼굴에 그렇게 쓰여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 내용을 머릿속에 심어 놓지 못하면 아메바 경영을 진행하더라도 회사는 바뀌지 않습니다. 그래서 끈질기게 설명했습니다."
이나모리 명예회장의 계속된 설명에 직원들의 마음도 움직였다. 교육이 거의 끝나갈 무렵에는 `쓸모없는 짓`이라고 말하는 임원도 없어졌다. 이나모리 가즈오의 경영 슬로건을 벽에 붙이는 것조차 반대하던 JAL 직원들로서는 큰 변화였다.
◆ 3단계 : 모두가 경영자 `아메바 경영` 도입
-2012년 12월 드디어 JAL에 아메바 경영을 도입하기 위한 체제가 완성된다. 직원들의 저항은 없었나.
"저항은 없었다. JAL 직원들은 아메바 경영을 즐겼다. 축구 경기를 예로 들어보자. 선수들이 경기 중에 점수ㆍ시간ㆍ순위 등을 모른다면 어떤 기분일까. 흥분과 재미를 느끼지 못할 것이다. 이나모리 명예회장은 직원들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했다. `직원들에게 실시간으로 점수(아메바별 매출ㆍ비용 등 성과)를 알려주어야 한다`고 JAL 경영진에게 말했다. 그는 아메바 경영을 통해 이를 실천했다. (아메바별로 수지타산이 공개되자) 직원들은 `이것은 나의 게임`이라고 느끼게 됐다. 스스로 생각하고 행동하기 시작했다. 게임의 승리가 직원들에게 기쁨이었다. 반면 이전의 JAL 직원들은 그렇지 않았다. (회사의 수지에 대해) `나와는 상관이 없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오니시 마사루 현 JAL 회장이 `과거의 JAL은 웃지도 울지도 않는 조직이었다`고 말한 것도 그런 맥락에서다."
기말이면 승패를 알 수 있는 시스템은 회사 분위기를 바꿔 놓았다. 3개월에 한 번씩 분기 결산을 발표하는 날의 풍경은 완전히 달라졌다. 승무원도 컴퓨터 앞에 앉아 결산 숫자가 공표되기를 기다리게 됐다. 자신이 속한 아메바 성적이 궁금해서였다. 이전의 JAL에서는 분기 말 결산 발표일을 모르는 직원도 많았다.
-경영철학과 아메바 경영의 관계는 비행기 양 날개와 같은가.
"철학이 없다면, 한 아메바가 다른 아메바에게 해를 끼치려 할 것이기 때문이다. (제조 아메바와 판매 아메바의 예를 들어보자. 판매 아메바는 제조 아메바로부터 싼 가격에 제품을 넘겨받아야 수익이 커진다. 반면 제조 아메바는 판매 아메바에게 비싼 가격에 제품을 팔아야 수익이 극대화된다. 서로를 배려하는 철학이 없다면 각각의 아메바들은 심각한 갈등에 빠지게 된다.) 철학이 있기 때문에 아메바끼리 서로 돕게 된다. 둘은 뗄 수 없는 관계다."
■ He is…
▷▷ 이나모리 가즈오 교세라 명예회장은 마쓰시다 고노스케, 혼다 소이치로 등과 함께 일본에서 경영의 신으로 불린다. 27세에 목조창고에서 교세라를 창업했다. 집단 사직하겠다는 직원들과 사흘 밤낮으로 대화를 나눈 뒤에 `직원의 행복추구`라는 경영의 목표를 정한 일화는 유명하다. KDDI 등 그가 창업한 회사와 JAL 등 경영을 맡은 회사의 매출을 합치면 6조엔에 이른다.
▷▷ 오니시 야스유키 니혼게이자이신문 편집위원은 와세다대학을 졸업하고 니혼게이자이신문에 입사했다. 유럽총국 주재 후 닛케이비즈니스 편집위원 등을 거쳤다.
■ <용어설명>
▷ 아메바 경영 : 회사 전체를 10명 안팎의 소집단, 즉 아메바로 쪼개어 독립채산제로 운영한다는 게 핵심이다. 각 아메바는 리얼타임으로 각자의 매출과 비용을 들여다보며 독립된 중소기업처럼 경영된다. 그 결과, 월말ㆍ분기말이면 아메바별로 잘하고 못한 승패가 분명히 드러난다.
첫댓글 좋은 글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