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정한 삶-13. 불안의 역이용
과도한 불안과 긴장은 개인의 내면과 사회에 질병과 같은 영향을 끼친다. 그러나 불안이라는 게 꼭 나쁜 심리인가 하면 그렇지 않다. 앞서도 말했듯이 불안을 잘 느끼는 아이들이 공부를 잘한다고 하지 않나. 불안이란 심리는 사람이 행동을 하게 만드는 힘이기 때문이다. 반대로 무기력한 상태에 있는 사람은 불안 또한 느끼지 못한다. 그러다 보니 더더욱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
인간이 가장 기피하고 싶은 심리, 불안. 그러다 보니 불안한 사람은 지금의 불확실성에서 빠져나가고 싶은 욕구를 강하게 느끼게 마련이다. 그러니 없는 에너지라도 짜내어 사용하고 머리와 몸을 움직여 행동을 하지 않겠는가.
불안 상태에서 평소보다 분명하게 보이는 것들이 있다. 큰 건 눈에 안 들어오지만 작은 것들은 잘 보인다. 작고 구체적인 것들이 쉽게 파악되는 것 또한 불안의 특징이라고 할 수 있다.
내가 싫어하는 공포영화 얘기를 다시 해 보겠다. 어쩌다 한 번 극장에서 공포영화를 볼 때면 불안하고 긴장돼서 몸서리가 처질 지경이다. 그래도 어차피 돈 내고 보기로 한 거 나름대로는 한 장면 장 한편 집중해서 봤다고 생각했는데 얼마 후 TV 영화 소개 프로에 그 영화가 나오기라도 하면 놀랄 때가 많다. “뭐야, 언제 저런 장면이 있었어?” 싶은 것이다. 인터넷에서 스틸 컷을 봐도 마찬가지. 어쩌다 한 장면이 아니라 거의 모든 장면이 그렇다. 아니, 그럼 도대체 난 무엇을 본 건가!
인간을 불안하게 만들면 시야가 좁아진다. 영화에는 주인공과 관련된 중심 사건 말고도 시선을 둬야 할 것들이 많다. 감독이 숨겨놓은 소소한 것들을 파악하는 것이 관객으로서의 특권이고 관람의 재미 아닌가. 그런데 유독 공포영화만큼은 중심 사건과 조금 떨어진 주변 인물이나 배경, 맥락, 분위기 돈 등을 하나도 파악할 수 없다.
공포영화뿐이겠는가. 불안한 사람에게 자신을 둘러싼 세계에 숨어 있는 거대한 흐름을 읽어 내라고 하는 것은 말도 안 되는 소리다.
그렇다면 반대로 생각해 보면 어떨까? 지금 당신과 공동체가 불안한 상태라면 맥락, 톤, 분위기 등과 관련 없는 일을 선택하는 것이다. 크고 원대한 일 대신 세밀하고 정확하며 구체적인 일을 해 보자. 아마 평소보다 훨씬 더 잘 될 테니 말이다.
작고 만만한 한놈만 패라
영화 얘기를 한 김에 흘러간 옛 영화 하나를 떠올려 본다. 1999년에 개봉한 〈주유소 습격사건〉은 당시만 해도 파격적인 전개로 영화사에 한 획을 그었다. 특히 유오성 배우가 연기한 무대포라는 배역이 참 인상 깊었다. 누군가 무대포에게 이렇게 묻는 장면이 나온다. “형님, 궁금한 게 있는데요. 필드에서 다구 붙을 때요. 여럿이서 한꺼번에 덤비면 어떻게 하세요?”
그때 무대포의 대답이 기가 막힌다.
“상대가 백 명이든 천 명이든 난 한 놈만 패!”
선택과 집중이란 게 이런 것일까. 그 이후로 ‘난 한 놈만 패’는 주먹 좀 쓴다는, 혹은 싸움에 로망이 살아 있는 많은 남성들의 입에 오르내리던 유행어가 되었다. 다른 일도 비슷하다. 해야 할 것들이 한꺼번에 닥쳐오는 골치 아픈 상황에서 일단 한 놈만 잡아서 깨끗하게 해치우면 다른 일들도 자연스럽게 처리되었던 경험, 다들 있을 것이다.
“너무 불안해서 아무것도 할 수 없을 때 어떻게 할까요?”라는 질문에 무대포 못지않게 터프한 인지심리학자인 나는 이렇게 답하고 싶다.
“일단 제일 작고 만만한 놈부터 조지세요.”
2002년 월드컵을 성공으로 이끌었던 히딩크 감독은 경기를 앞둔 선수들을 상대로 다양한 종류의 훈련을 한 것으로 유명하다. 왕복 달리기 시합이나 고깔 앞에서 왔다갔다하는 운동만으로도 선수들은 체력을 다 썼다고 혀를 내두를 정도였다. 특히 히딩크의 미니게임은 극한의 지옥 훈련으로도 유명하다. 이는 평소 11명이 한 팀이 되어 45분을 뛰는 축구 경기를 작게 만들어 버린 것이다. 인원도 한 팀에 네 명 내외로 줄이고 경기장의 크기도 축소했다. 게임 시간도 한 세트에 길어봤자 10분을 넘지 않는 작은 경기였다. 좁은 공간과 짧은 시간에 여러 상황이 발생하다 보니 선수들은 더 많이 몸을 부딪치고 골을 접할 기회가 생겼다. 저절로 부분적인 전술과 경기를 읽는 능력을 깨우치게 이끈 훈련으로 평가받는다.
과거 전쟁을 치르기 전 군대에서 행하던 여러 의식 중에는 ‘수렵’과 관련된 의식이 빠짐없이 포함되어 있었다. 보통 사냥을 하며 무예를 단련하고 잡은 짐승을 제사지내며 결속을 다지는 식으로 진행되었다. 중요한 것은 이때 사냥하는 동물은 커다란 맹수 한 마리가 아니라 작고 약한 동물 여러 마리였던 것이다. 말 그대로 제일 만만한 놈이다. 전쟁을 앞둔 군사들의 마음만큼 불안한 상태가 또 있을까? 이런 순간에 구체적인 일을 반복하면서 좁아진 시야를 확대시키고 아울러 불안한 심리를 다독이는 효과를 노린 의식이라는 생각이 든다.
업무도 미니게임처럼
지금과 같은 팬데믹 상황에서 일을 해야 하는 조직의 리더라면, 전체의 임원이든 작은 팀의 팀장이든 꽤나 머리가 아플 것이다. 언제 확진자가 나타나 당장이라도 사무실을 닫아야 할지, 지난 분기에 세워 둔 목표가 어떤 방향으로 어떻게 나아갈지, 당장 다음 달은 어떤 계획을 세워야 할지, 아무도 정확하게 말해 주지 않는다. 바이러스에 감염될까 봐 안 그래도 불안한데, 조직의 앞날을 알 길이 없어 더더욱 불안하다. 사장님부터 신입사원까지 모두모두 불안한 게 정상이다.
이런 상황에서 원대한 비전과 업에 대한 사명감을 강조하는 것은 얼마나 어리석은가. 조직 구성원들 눈에 분위기, 맥락, 톤과 같은 부수적인 것들은 보이지도 않을 것이며, 아무리 강조해도 큰 그림이 그려지지 않을 것이다.
이와 같은 상태에서도 일은 해야 한다. 팁을 드리자면 업무를 작고 구체적으로 쪼개라고 권하고 싶다.
“우리 여기서부터 여기까지 모조리 해야 해.”가 아니라 “다른 건 몰라도 이거 하나만은 제대로 하자.”라는 마음으로 잘게 끊어서 가는 것이 좋다.
리더가 부하 직원에게 업무 지시를 내릴 때도 마찬가지. 오늘 완수해야 할 일이 세 가지가 있다면 오전 중에 할 일 하나, 오후 3시까지 끝낼 일 하나, 6시까지 완수해야 할 일 하나로 나눠서 알려 주면 어떨까? 회의도 웬만하면 짧게 자주 하는 게 좋다. 아침에 30분 동안 회의를 통해 전달할 내용이 있다면 10분짜리 회의 세 번으로 나누는 것이다. 그날 해야 할 일이 10이라면 3, 3, 3으로 자르고 그때그때 짧게 피드백을 하는 것이 좋다.
작은 미션과 즉각적인 피드백은 흔히 게임에서 사용되는 커뮤니케이션 방식이다. 게임에 참여한 이는 작고 구체적인 활동을 반복하며 기본 실력을 다지게 되는데 화면 한 구석에는 실시간으로 점수와 포인트가 표시되어 현재 스코어를 확인할 수 있다. 게임의 방식이 어떻게 세상을 바꾸는지는 이 책의 2장에 나오는 ‘비대면 커뮤니케이션과 게임 요소의 만남’ 챕터에서 다시 풀도록 하겠다.
이와 같은 커뮤니케이션은 소통의 매체와도 관련이 있다. 길고 큰 이야기는 아무리 비대면 시대라도 만나서 해야 한다. 소통할 양이 많고 복잡하면 오해가 빚어지거나 문제가 생길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30분짜리 이야기는 화상회의로도 가능하다. 그보다 더 짧은 10분짜리 이야기는 줌에 접속할 필요도 없다. 메신저로도 충분히 분명하고 깔끔하게 전달할 수 있으니 말이다.
코로나 이후 시대에는 말하는 방식뿐 아니라 대화의 채널 또한 변화할 것이다. 얼굴을 마주보지 않아도 즉각적으로 핵심을 전달하며 빠르게 이해하고, 실시간으로 피드백하는 방식으로 바뀌는 것이 자연스럽다. 2020년 이후를 사는 인류는 이와 같은 화법에 적응해야 할 것이다.
물론 구성원들의 마음 상태가 여유롭고 기분이 좋다면 원대한 일의 목적과 방향에 대해 당연히 알려 주고 스스로 진행하게 하는 것이 맞다. 그러나 그들이 불안해 보인다면 사소한 일이라도 끊어서 전달해보자.
내 경우엔 학위 논문을 준비하는 학생들에게 이와 같은 방법으로 소통하곤 한다. 20줄짜리 이메일을 한 번에 전달할 수 있지만 가급적이면 한 줄짜리 이메일을 서너 번에 나누어 보내려고 한다. “참고문헌 정리는 끝났니?” “용어 통일은 이번 주 내로 완료해야 한다.” 등이다. 재미있는 것은 이런 소통에 학생들이 더 편안해한다는 것이다. 어차피 20일 안에 주고받고 완료해야 할 일이지만 더 많이 소통하고 가르침을 받았다고 느낀다. 시야가 좁아지고 생각이 단순해질 때, 그에 맞는 일을 주는 것이 바로 불안을 이용하는 방법 아닐까?
성취감 제곱의 힘
그때그때 전달받은 작은 일을 완수했을 때 성취감 또한 반복적으로 생기는데 이 또한 무시하기 어렵다. 일반적인 수 개념으로는 1+1+1+1은 4다. 그런데 심리의 눈으로 보면 다르다. 1만큼의 기분이 네 번 반복되는데 4가 아니라 8이나 12, 16이 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일례가 행복이다. 행복은 크기보다 빈도가 중요하다. 10점짜리 행복을 한 달에 한 번 느끼는 사람보다 3점이나 4점짜리 행복을 일주일마다 느끼는 사람이 더 행복하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심리학자들이 자질구레한 행복의 경험을 여러 번 축적하는 것이 좋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성취감도 마찬가지. 사람의 뇌 속에서는 성취감이라는 감정이 크기가 아닌 빈도로 기록된다. 3점짜리 4점짜리, 3점짜리 성취감을 자주 느끼는 게 어쩌다 한 번 10점짜리 성취감을 느끼는 것보다 훨씬 그 사람을 만족시키며 성장에 도움을 준다.
우리는 어린 시절 작은 성취감과 행복에도 깊은 만족을 얻었다. 처음 들은 칭찬과 맛있는 음식, 작은 도전과 성공에도 가슴이 벅찼을 것이다. 나이가 들고 어른이 되면서 점차 큰 것에 집착한다. 그러다 보니 가슴을 울리는 감동과도 점차 멀어지는 게 안타깝고 씁쓸하기만 하다.
모두 불안한 시기, 나에게도 작은 행복과 작은 성취감을 선물하면 어떨까? 업무 지시만 쪼개는 것이 아니라 좋은 감정도 더 잦게 느끼도록 마음과 환경을 바꾸어 보자. 늘 같은 일상에서 행복의 빈도를 높이는 것, 코로나가 우리에게 주는 작은 선물일지도 모른다.
*위 글은 고려대학교 심리학과와 동 대학원을 졸업한 후 미국 텍사스 주립대학교에 심리학과에서 박사 학위를 받고 인지심리학 분야의 세계적 석학인 아트 마크먼 교수의 지도하에 인간의 판단, 의사결정, 문제해결 그리고 창의성에 관해 연구하였고, 현재는 아주대학교 심리학과 교수로 재직중이면서 아주대학교 창의력연구센터장을 지냈고 ㄱ임문화재단 이사장을 맡고 있으면서 대학교 각종 교육기관, 기업에서 왕성하게 강연하고 있고, ‘어쩌다 어른’, ‘세바시’, ‘책 읽어 드립니다’, ‘나의 첫 사회생활’ 등 다수의 프로그램에서 왕성하게 활동하게 있는 “김경일”교수의 저서 ‘적정한 삶’ 제1장 ‘감정에 집중하다’ 중 일부를 옮겨본 것입니다. 그 외 저자의 저서로는 “지혜의 심리학”, “이끌지 말고 따르게 하라”, “어쩌면 우리가 거꾸로 해왔던 것들”, “십 대를 위한 공부사전” 등이 있고, 역서로는 “혁신의 도구” 등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