뻗대다가 진짜 왕자 보냈을때 구유크라고 대칸이 죽어서 형제들끼리 왕위쟁탈전이 일어남 → 몽골은 원래 장자계승이 아니라 막내계승이 제일 정당성 있어서 몽골귀족들 대부분 구유크 막내동생 아리크부카한테 힘을 실었음 →
근데 여기서 고려왕자가 아리크부카한테 가려다가 유턴해서 쿠빌라이한테 가버리면서 쿠빌라이에게 힘을 실어줌 → 쿠빌라이가 왕위쟁탈전에서 아리크부카 발라버리고 대칸에 오름 → 쿠빌라이 대칸지위에 오르게해준 고려왕자한테 자기 막내딸을 부인으로줌. 유목민족 사회에선 보르지긴 가문 중에서도 방계는 직계와 비비질 못함. 거기에 칸(황제)의 직계가족였으니 고려의 지위는 남달랐음 →
나중에 쿠빌라이 죽고나서 원나라 서열 4위먹고 다음 칸들이랑 권력비벼먹는 뻗대기 최고봉이 되어버림
+ 심양왕이라는 작위까지 줬는데 이건거의 고려 '충'붙은 왕들이 왕위에 오르기전에 그냥 스쳐지나가는 휴게소급 작위. 그 이후로 고려왕들은 원나라 공주들을 정식 아내로 맞이하게됨. 몽골은 원래 자신들에게 저항하면 지도에서 그냥 지워버리는데, 고려는 저항한것 치고 나라도 보존하고 풍속까지 지킨걸 보면 본전 다챙긴게됨. 원나라 내에서 고려왕의 지위는 공민왕이 왕될때까지도 나름 끗빨 날리는 지위였고 나중엔 그걸 다 뒤집어버리긴하지만 이런 뻗댐도 뻗댐이없다..
조금 더 설명하면 왕자가 항복하러 가던 길인데 갑자기 칸이 죽음 - 후계 때문에 어수산한데 줄을 잘 서야 하잖아? 오히려 열세에 있던 아들을 고려 왕자가 지지함 - 그 아들이 훗날 쿠빌라이 칸임ㅋㅋㅋㅋ자료가 없어서 도대체 왜 열세였던 쿠빌라이를 선택했는지 모른대. 이 선택 아니면 고려도 다른 나라처럼 쓸려나갔어
쿠빌라이가 엄청 기뻐했는데 그 이유가 27년인가 28년간 항전한 고려가 자신을 찾아왔으니 그 가치가 엄청났음. 고려의 항전이 무의미하지 않았던 거지. 쿠빌라이가 칸 되고 그 왕자는 쿠빌라이 딸이랑 결혼했는데 딸도 아들처럼 지위가 높았대. 당연 사위 지위도 높아짐ㅋㅋ쿠빌라이 칸이랑 독대도 가능했다 함~ 몽골은 한번 혼약을 맺으면 대대로 결혼하는 풍습 땜에 고려 사위들은 쭉 공주들이랑 결혼함
4. 강화도로 대피하고 전쟁 준비한 건 최씨 무신정권이 강제적으로 한 것 고려는 고려 초부터 침략을 받으면 앵간하면 싸우지 않고 피하려고 함. 당시 조정 내에서도 원과 싸우지 않고 개경을 사수하는 게 대다수의 의견이었는데 최씨 무신정권이 정권 유지를 목표로 강화도 천도함. 왜냐하면 몽골과 강화를 맺게되면 왕이 몽골하고 강화를 할텐데, 그럼 권력의 중심축이 무신정권이 아니라 왕에게로 옮겨가기 때문
5. 진짜 다 도망감 뻗댄게 아니라 대몽항쟁기 말엽에 가면 백성들이 몽골에게 투항하는 사례가 많이 발생함
8. 역참 설치했는데?
9. 고려 왕이 친조하는 걸 거부했던 고려이긴 하지만 태자였던 원종 시켜서 친조하러 가게 함. 그리고 그 태자였던 원종이 왕이 됐고
몽골이 무리한 요구조건을 많이 내세운 건 맞지만 고려 조정도 무책임했던 건 맞음 명확히는 고려 조정이라기보단 최씨정권이 무책임했던 거지만
그리고 쿠빌라이가 마치 자기 딸을 고려왕자에게 선뜻 내어준것처럼 서술했는데, 고려에서 요청해서 쿠빌라이 후궁의 딸을 준것. 처음에 원에서는 왜 결혼해야 하지..?라는 반응이었는데 고려가 계속 요청해서 결국 줌.
첫댓글 자 이제 누가 따까리죠?
멍충이들
심지어 왕자라고 속여서 왕족 보낸거 들켰을때 고려 느그 왜 구라치냐고 묻거든? 그니까 한다는 말이
아니 우리가 보낸 글에 친자란 말이 어딨음ㅋㅋ 사랑하는 자식(애자)이라고 했잖아ㅋㅋㅋ 진짜 자식처럼 사랑해서 보낸건데 어쩔?
이랬다잖앜ㅋ 진짜 뻔뻔ㅋㅋㅋ
ㅋㅋㅋㅋㅋㅋㅋㅋ끝까지뻔뻔하네ㅋㅋㅋㅋ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아 진짜 대박이다
기존나쎔;;
이런게 젤 재밌어 ㅋㅋㅋㅋㅋㅋㅋ
인생은 고려처럼
그리고 저때 공주 보낸 것도 진짜 공주 아니었음
조금 더 설명하면 왕자가 항복하러 가던 길인데 갑자기 칸이 죽음 - 후계 때문에 어수산한데 줄을 잘 서야 하잖아? 오히려 열세에 있던 아들을 고려 왕자가 지지함 - 그 아들이 훗날 쿠빌라이 칸임ㅋㅋㅋㅋ자료가 없어서 도대체 왜 열세였던 쿠빌라이를 선택했는지 모른대. 이 선택 아니면 고려도 다른 나라처럼 쓸려나갔어
쿠빌라이가 엄청 기뻐했는데 그 이유가 27년인가 28년간 항전한 고려가 자신을 찾아왔으니 그 가치가 엄청났음. 고려의 항전이 무의미하지 않았던 거지. 쿠빌라이가 칸 되고 그 왕자는 쿠빌라이 딸이랑 결혼했는데 딸도 아들처럼 지위가 높았대. 당연 사위 지위도 높아짐ㅋㅋ쿠빌라이 칸이랑 독대도 가능했다 함~ 몽골은 한번 혼약을 맺으면 대대로 결혼하는 풍습 땜에 고려 사위들은 쭉 공주들이랑 결혼함
항전이 무의미하지 않았다는 말이 너무 와닿는다. 나라의 위기에 바로 항복하기보다 끝까지 싸움으로써 스스로의 가치를 만들었다는게 너무 뿌듯하고 대단해.
@애플민트페퍼민트 나도 그래. 일본 강제 합병 이후 계속된 독립 항쟁을 의미없다 하는 사람들, 이런 것 좀 읽으시길
넘 흥미롭고 우리 조상님들 넘 대단하다 ㅠㅠ
재밌당ㅋㅋㅋㅋ
ㅋㅋㅋㅋ와 ㅋㅋ 개재밌당
4. 강화도로 대피하고 전쟁 준비한 건 최씨 무신정권이 강제적으로 한 것 고려는 고려 초부터 침략을 받으면 앵간하면 싸우지 않고 피하려고 함. 당시 조정 내에서도 원과 싸우지 않고 개경을 사수하는 게 대다수의 의견이었는데 최씨 무신정권이 정권 유지를 목표로 강화도 천도함. 왜냐하면 몽골과 강화를 맺게되면 왕이 몽골하고 강화를 할텐데, 그럼 권력의 중심축이 무신정권이 아니라 왕에게로 옮겨가기 때문
5. 진짜 다 도망감 뻗댄게 아니라 대몽항쟁기 말엽에 가면 백성들이 몽골에게 투항하는 사례가 많이 발생함
8. 역참 설치했는데?
9. 고려 왕이 친조하는 걸 거부했던 고려이긴 하지만 태자였던 원종 시켜서 친조하러 가게 함. 그리고 그 태자였던 원종이 왕이 됐고
몽골이 무리한 요구조건을 많이 내세운 건 맞지만 고려 조정도 무책임했던 건 맞음 명확히는 고려 조정이라기보단 최씨정권이 무책임했던 거지만
그리고 쿠빌라이가 마치 자기 딸을 고려왕자에게 선뜻 내어준것처럼 서술했는데, 고려에서 요청해서 쿠빌라이 후궁의 딸을 준것. 처음에 원에서는 왜 결혼해야 하지..?라는 반응이었는데 고려가 계속 요청해서 결국 줌.
이후에 뻗대기 최고봉이 되었다기엔 쿠빌라이 딸인 제국대장공주의 아들이자 쿠빌라이의 외손자였던 충선왕은 본문처럼 지위가 높았고, 원나라에서 영향력을 행사했던 것도 맞지만 나중에 개혁정치를 하는 과정에서 쫓겨나기도 함
그리고 심양왕이라는 지위는 지금 내가 기억이 안나는데 충렬왕이었나가 심양왕 지위가 있었는데 이걸 아들한테 안주고 조카였나한테 줘서 사실상 그 이후로는 사라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