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 94년 창단해서 국가대표아마선수들을 싹쓸이 해 프로팀의 원성을 받았던 현대피닉스를 기억하는가? 그때 당시 프로신인최고 몸값보다도 훨씬 많은 2,3억원의 돈을 퍼부어서 유망신인들을 싹쓸이 해 실업리그를 주름잡았던 현대피닉스.
현대피닉스를 선택한 선수들은 돈과 올림픽출전이 첫째였고 그 이후 1년후인 95년에 프로리그 창단을 하겠다는 구단의 약속하에 프로를 포기하고 아마현대에 입단했다.현대피닉스에 입단한 스타급 선수로는 당시 최고의 유망주들인 문희성,안희봉,문동환,임선동,조경환,박재홍등 셀수 없이 많다.현대 김시진코치도 현대피닉스의 투수코치였다.
하지만 95시즌후 재정난에 빠진 태평양을 현대기업이 인수했고, 창단을 약속받았던 현대피닉스 선수들은 낙동간 오리알 신세가 되어 버렸다.현대유니콘스로 창단하는 과정에서 현대피닉스 선수들을 적절히 활용하면서 현대유니콘스는 전력강화를 할수가 있었다.
일단 96년에 현대피닉스에 입단한 박재홍을 현대가 당시해태에게 최상덕을 내주면서 박재홍의 지명권을 얻어서 현대유니콘스의 신인으로 데뷔시켰고, 97년에 현대피닉스가 해체하므로서 각각 선수들이 지명팀에 입단했고 롯데는 문동환의 보상비를 마련하지 못해 롯데의 최고톱타자인 전준호를 현대에 보내는 사상최고의 실수를 저지른다.
전준호는 이후 현대를 3번이나 우승시키면서 부동의 톱타자로 9년간 활동하면서 올시즌역시 도루왕이 유력할정도로 맹활약을 하고 있다. 현대기업이 이걸 노리고 아마현대피닉스를 창단한거라고 볼수도 있을 것이다.
나머지 창단멤버들도 거의가 프로에서 뛰어보지 못하고 유니폼을 벗었다. 이둘중에 유망주도 많았는데 현대피닉스에 지키지못한 약속에 다들 설자리를 잃어버리고 선수생명을 끝냈다. 저 위에 거론되어 있는 주축선수들도 이유야 어쨌건 지금에 와서 제역할을 해주는 선수는 한명도 없다.
문희성,안희봉은 정말 10년에 한번 나올까말까하는 최고의 슬러거들이였다. 특히 문희성은 친 타구가 보이지가 않을정도로 굉장한 비거리를 자랑하는 최고의 거포였다. 하지만 문희성은 7년간 고작 257경기에 2할4푼1리의 타율에 19홈런 90타점에 그치고 있다.
통산 안타도 121개에 불과해서 간판선수들이 1년에 올리는 성적보다도 못한 통산성적에 그치고 있다. 안희봉도 현대와 기아를 떠돌면서 명함도 못내밀 성적으로 결국 이미 은퇴에 이르렀다. 조경환의 경우도 롯데와 sk를 거치면서 100개가 넘는 홈런을 기록하는등 나름대로의 활약은 해줬지만 아마추어때의 명성 이나 기대치에 비해 정확도나 장타력 모두 떨어지는 활약을 했다.
게다가 30홈런이상을 쳐본 시즌은 한시즌도 없고 3할도 한시즌에 그쳤다. 롯데에서 sk로 트레이드 되는 과정도 타격폼을 바꾸라는 백인천 전롯데감독의 명령을 거부해서 괴심쬐로 트레이드가 된 바 있다. 이 세명의 경우는 처음부터 프로에서 뛰었다면 더 좋은 성적이 가능했을 것이다.
프로에서 뛰었다면 여러가지 타격기술및 수준높은 투수들의 공을 접해봤을테지만 중요한시기에 실업야구의 한수낮은 투수들의 공을 장작패듯이 쪼갠것이 결국은 실력향상에는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았단 것이다.
3년간의 실업현대생활이 결국 더성장할 수 있었던 중요한 시간을 빼앗아 가버린것이다. 어찌됐던 프로에 입단했어도 다른신인보다 나이도 많고 경력도 출중한 선수들인만큼 신인의 마음가짐을 갖기에는 늦어버렸고 결국 자신들의 타격스타일만 고집하다가 결국 적응을 못하고 평범한 선수로 전략해 버린것이다.
강혁은 영구제명, 임선동은 일본진출파동과 부상,문동환은 부상의 이유로 꾸준함과는 거리가 먼 선수생활을 하고 있고 지금은 겨우 선수생명을 이어가고 있는 정도에 불과하다.이유야 어쨌든 아마현대출신들의 현재는 모두 밝지가 못하다.
문동환과 임선동만이 프로에서 (박재홍은 경우는 현대피닉스에서 뛰진 않았기때문에 제외) 타이틀획득까지 해봤고 그외의 선수들은 아깝게 자신의 기량을 펼치지못하고 있으며 펼쳐볼 기회를 얻어보지 못한 선수도 있다.
현대가 프로진출을 염두에 두고 선수를 싹쓸이해서 전력강화에 이용한점과 창단하기로 해놓고서 태평양을 인수하면서 아까운 선수들이 모두 은퇴하게된거는 분명히 야구발전에 큰 저해를 한 거라고 본다.
현대피닉스에 입단하지 않고 처음부터 프로에 들어와서 임선동,문동환,조경환,문희성,안희봉,김동호, 이외의 은퇴한 선수들이 체계적으로 선수생활을 시작했다면 이중에 한국프로야구를 주름잡는 선수들이 더욱 많이 나왔을 가망성도 높다.
개인적으로 조경환,문희성,안희봉 이 3명은 정말 아까운선수다.어쨌든 현대피닉스의 선수싹쓸이가 결국 많은 선수들의 성장을 막았다는 점에서 스타부재에 시달리는 한국야구로서는 큰 아쉬움을 느낄 수 밖에 없다.
<제가 궁금해서 안희봉선수에 대해서도 찾아보았습니다.>
1990년 봉황기는 안희봉이라는 걸출한 스타를 전국에 알렸습니다. 전경기를 완투로 장식한 성남고의 강병규와 맞붙은 결승전은 싱겁게도 안희봉의 완승으로 끝나면서, 그는 최우수선수로 뽑혔습니다. 동네야구에서도 가장 재능있는 선수가 투수를 하듯이 대부분의 투수들은 고교시절에 강타자였던 경우가 많습니다. 동산고의 슈퍼스타 위재영, 충암고의 공의식, 경북고의 이승엽, 경남고의 김건덕, 그리고 메이저리그에서 활약하고 있는 서재응과 김선우 등도 팀의 중심타자였습니다.
고교 졸업 후에 빙그레의 유혹을 뿌리치고 연세대로 진학하지만, 고교 때에 당한 발목부상과 당시 연세대는 넘쳐나는 투수들로 처치곤란이었기에 타자로만 전념하게 되었습니다. 팀의 간판타자로 국가대표에서도 클린업트리오의 일원으로서 홈런타자로서의 강력한 이미지를 보여주었습니다. 현대 피닉스의 창단멤버로 안희봉은 2억원의 계약금을 받고 입단하였습니다. 안희봉은 현대에 입단해서 미련이 남아있던 투수로 방향전환도 모색하기도 했지만, 국가대표에서도 팀에서도 그에게 필요한 것은 장거리타자로서의 안희봉이었기에 여전히 홈런타자 안희봉으로 잔류하게 되었습니다. 안희봉은 상무를 거쳐서 3억여원을 받고 1998년 현대 유니콘스의 유니폼을 입었습니다.
아마 제일의 홈런타자로서 기대를 한몸에 받으면서 프로에 입단하였지만, 아마와 프로의 차이를 확실하게 보여주는 투수들의 변화구에 농락당할 뿐이었습니다. 변화구에 대한 약점과 자신의 포지션인 1루는 용병들이 차지했기 때문에, 그에게 주어진 것은 좌투수에 대한 대타로서의 역할밖에 없었습니다. 2000년 시즌이 끝난 후에 현대에서 방출된 안희봉은 해태로 이적하였습니다. 해태(기아)에서 재기를 노렸지만, 고질적인 무릎부상은 그의 발목을 잡아서 무엇 하나 뚜렷한 성적을 남기지도 못하고 2001년 기아에서도 방출당하면서 은퇴하였습니다.
첫댓글 안희봉선수 몇년전에 대전에 있는 한 사회인 리그의 1부리그(전직선수주축)에 온다는 소문은 들었었죠. 물론 보지는 못했구요. 고졸로 빙그레에 왔었다면..박찬호처럼 천만원 차이인가..^^
흠...한때 막대한 자금력으로 야구계를 주름잡으려 했던 빈대 ;;;; 지금은 어쩌다 그 꼴이 됐는지...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