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냥 아래 글의 토론을 보고 급 의문이 들어 질문하게 되었는데요.
히데요시가 쌓아 그 아들 히데요리가 도쿠가와 군에 맞서 싸우다 결국 패망하게 된 그 오사카 성의 규모가 어느 정도였습니까?
명색이 일본 통일을 한 히데요시가 아들에게 물려준 성이니 절대 규모가 작지 않았을 것 같습니다만, 1년 이상 봉쇄에도 견디고, 10만에 달하는 도요토미 군의 식량과 물자를 대고 그들이 주둔할 수 있을만큼의 여력이 있을 정도로 규모가 컸었나요?
1년 이상 버틸 수 있는 식량과 물자, 그리고 10만 군이 주둔할 수 있을 정도로 오사카 성이 규모가 컸나요?
(이건 솔직히 잘 모르겠습니다. 10만군이 성 안에 주둔했는지, 아니면 공간 문제로 그렇지 못했는지...)
그냥 순수한 의문이 들어서 질문입니다.
일본 만화 센고쿠를 보는데, 일본 영주의 성채들이나 산성 모두 고만고만한 규모더군요. 솔직히 아무리 많아야 수천 명도 주둔하지 못할 정도로 보였습니다.
물론 그런 산성과 비교하면 압도적으로 크겠지만, 오사카 성의 규모는 어느 정도였습니까?
첫댓글 그냥 오사카 전투 치시면 지도까지 잘 나와있습니다. 일본 위키가셔도 되구요.~~
http://durl.me/c4iac 요기도 잘나와있습니다.
성곽도시. 끝.
직접가보시면 아실텐데 ㅎㅎ 엄청난 해자를 두번 건너야 되고 안쪽과 바깥쪽의 높이차이가 어마어마하죠 아 이래서 이에야스가 치지못하고 포위만 하고 있었구나 느끼실 겁니다.
일본 전국시대 후기가 되면 히데요시의 오사카나 이에야스의 하마마쓰처럼 평지에 대규모 성곽을 갖춘 [성곽도시]가 생겨납니다. 그 이전에는 호조의 오다와라성이 제일 크네 어쩌네 했죠...ㅋ 이러한 동향은 [병농분리]로 인해 토지와의 유착관계가 약화-단절된 무사층을 성 아래에 모으고, 이들을 위해 봉사할 직인이나 상인들이 모여듬으로 인해서 나타납니다. 이런 성 아래의 도시를 '조카마치(城下町)'이라고 하는데, 그 시초가 노부나가의 아즈치성입니다. 루이스 프로이스의 기록에 의하면 아즈치성 조카마치에는 무사 약 2000명과 상인 8000명 장도가 살았다고 하니, 그닥 큰 규모는 아니었던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근데 이 당시에는 이것도 세인들이 놀랄만한 대도시였어요...^^; 그러나 이후 히데요시 시절에 지어진 오사카성을 보면 아즈치성은 쨉도 안됩니다...-_-; 제가 전에 어떤 분께 이런 동향을 설명하면서 일본 전국시대의 발전이 후기에 집중적으로나타난다는 얘길 한 적이 있었죠...ㅋ 말하자면 노부나가-히데요시(쇼쿠호 정권) 이전의 성곽은 그닥 크지 않다는 겁니다.
나중에 병농은 물론 [농상분리]까지 시행하면서 신분제를 확립한 에도시대가 되면, 무사는 영주로부터 녹을 받는 셀러리맨으로 전락하고, 거의 모든 무사층이 조카마치에 거주하게 됩니다. 여기에 농상분리로 인해 상인계층도 조카마치로 올라오게 되었고,
신분제적 차별에 의해 한 구획에 집단거주하게 되죠. 일본의 [유통경제 및 도시의 발달]은 이처럼 일본이라는 나라의 특수성이 반영된 결과입니다. 근대화의 단계에서 나타나는 "도시로의 인구집중"과 비교하면 구색이 안맞는 부분이 있고, 정작 근대화로의 혁명이 일어난 지역은 막부령의 대도시인 오사카-쿄토-에도가 아니었죠...^^; 특히 에도의 경우는 참근교대제가 폐지되자 급격히 쇠락한 것은 물론 지독한 불경기에 시달리게 됩니다. 즉 인위적으로 인구집중이 일어난 결과가 나타난다는 것이죠...ㅋ
직접 오사카 성 천수각내에 있는 도요토미 시절 오사카 성의 조감도를 보신다면 대략 그 크기가 어느 정도인지 이해가 빠를 겁니다. 현재 남아있는 오사카 성은 도쿠가와 시절 오사카 성이라서 조금 그 느낌이 다르긴 합니다만......
지금 남아있는 부분이 얼마나 남아있는 지는 모르겠지만, 2년전 기억을 더듬어 보자면 엘레베이터로 4~5층까지 올라갔던거 같습니다. 상당히 높구요, 내부에 우물이 있었던 걸로 압니다. 성관에 절이라 해야되나 이런것도 있던 것 같구요.....웬만한 대학 캠퍼스 넓이정도는 되는 것 같았습니다.
지금건 부숴진 뒤 에도시대에 새로 짓고 또 부숴진걸 보수하여 또 지은(…)거라고 아니까.. 아마 별 관계 없을겁니다.
그래봤자..오사카성전투때 도쿠가와가 대포로 날려버렸죠...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