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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양사 오사카 성에 대해서 질문입니다.
▶◀ 치우승천 추천 0 조회 763 11.07.10 07:56 댓글 10
게시글 본문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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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 11.07.10 09:14

    첫댓글 그냥 오사카 전투 치시면 지도까지 잘 나와있습니다. 일본 위키가셔도 되구요.~~
    http://durl.me/c4iac 요기도 잘나와있습니다.

  • 11.07.10 10:55

    성곽도시. 끝.

  • 11.07.10 11:38

    직접가보시면 아실텐데 ㅎㅎ 엄청난 해자를 두번 건너야 되고 안쪽과 바깥쪽의 높이차이가 어마어마하죠 아 이래서 이에야스가 치지못하고 포위만 하고 있었구나 느끼실 겁니다.

  • 11.07.10 11:47

    일본 전국시대 후기가 되면 히데요시의 오사카나 이에야스의 하마마쓰처럼 평지에 대규모 성곽을 갖춘 [성곽도시]가 생겨납니다. 그 이전에는 호조의 오다와라성이 제일 크네 어쩌네 했죠...ㅋ 이러한 동향은 [병농분리]로 인해 토지와의 유착관계가 약화-단절된 무사층을 성 아래에 모으고, 이들을 위해 봉사할 직인이나 상인들이 모여듬으로 인해서 나타납니다. 이런 성 아래의 도시를 '조카마치(城下町)'이라고 하는데, 그 시초가 노부나가의 아즈치성입니다. 루이스 프로이스의 기록에 의하면 아즈치성 조카마치에는 무사 약 2000명과 상인 8000명 장도가 살았다고 하니, 그닥 큰 규모는 아니었던 것을 알 수 있습니다.

  • 11.07.10 11:53

    근데 이 당시에는 이것도 세인들이 놀랄만한 대도시였어요...^^; 그러나 이후 히데요시 시절에 지어진 오사카성을 보면 아즈치성은 쨉도 안됩니다...-_-; 제가 전에 어떤 분께 이런 동향을 설명하면서 일본 전국시대의 발전이 후기에 집중적으로나타난다는 얘길 한 적이 있었죠...ㅋ 말하자면 노부나가-히데요시(쇼쿠호 정권) 이전의 성곽은 그닥 크지 않다는 겁니다.

    나중에 병농은 물론 [농상분리]까지 시행하면서 신분제를 확립한 에도시대가 되면, 무사는 영주로부터 녹을 받는 셀러리맨으로 전락하고, 거의 모든 무사층이 조카마치에 거주하게 됩니다. 여기에 농상분리로 인해 상인계층도 조카마치로 올라오게 되었고,

  • 11.07.10 12:04

    신분제적 차별에 의해 한 구획에 집단거주하게 되죠. 일본의 [유통경제 및 도시의 발달]은 이처럼 일본이라는 나라의 특수성이 반영된 결과입니다. 근대화의 단계에서 나타나는 "도시로의 인구집중"과 비교하면 구색이 안맞는 부분이 있고, 정작 근대화로의 혁명이 일어난 지역은 막부령의 대도시인 오사카-쿄토-에도가 아니었죠...^^; 특히 에도의 경우는 참근교대제가 폐지되자 급격히 쇠락한 것은 물론 지독한 불경기에 시달리게 됩니다. 즉 인위적으로 인구집중이 일어난 결과가 나타난다는 것이죠...ㅋ

  • 11.07.10 12:57

    직접 오사카 성 천수각내에 있는 도요토미 시절 오사카 성의 조감도를 보신다면 대략 그 크기가 어느 정도인지 이해가 빠를 겁니다. 현재 남아있는 오사카 성은 도쿠가와 시절 오사카 성이라서 조금 그 느낌이 다르긴 합니다만......

  • 11.07.10 16:12

    지금 남아있는 부분이 얼마나 남아있는 지는 모르겠지만, 2년전 기억을 더듬어 보자면 엘레베이터로 4~5층까지 올라갔던거 같습니다. 상당히 높구요, 내부에 우물이 있었던 걸로 압니다. 성관에 절이라 해야되나 이런것도 있던 것 같구요.....웬만한 대학 캠퍼스 넓이정도는 되는 것 같았습니다.

  • 11.07.10 18:31

    지금건 부숴진 뒤 에도시대에 새로 짓고 또 부숴진걸 보수하여 또 지은(…)거라고 아니까.. 아마 별 관계 없을겁니다.

  • 11.07.10 17:43

    그래봤자..오사카성전투때 도쿠가와가 대포로 날려버렸죠...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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