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어
김승필
예리曳里 선창 막걸릿집이었다
톡 쏘는 맛이 없다는 것은 아직 삭히지 않은 간멀미*가 여태 남아 있다는 증거 걸쭉한 막
걸리에 찰진 홍어 썰어 팔던
검게 타버린 흑산도 할매
삭힌 것으로 드릴까, 회로 드릴까
검은 바다에 기대어 다섯 동생의 학비 마련한 기둥뿌리 목숨값, 숙성熟成 또 숙성
썩었다는 것은
독 안의 짚 위에서 코가 뻥 뚫리고 눈물과 재채기를 하다 그만 입천장 까지는 일
나는 퍼내도 퍼내도 마르지 않는 부엌 아궁이 물 위에 종갓집 다락에 누워있는 증조부 손
때 묻은 사서삼경을 한 장 한 장 찢어 던지고 또 던졌다
어창魚艙에서 새어 나오는
홍탁이 달달하다
찬바람이 분다
*간멀미: 땅 멀미.
반연간《씨글》Vol.4 2023년 상반기
도덕경을 읽다가 - 밥알
떨어져 있을 적엔
어디 한 군데 마음 붙일 곳 없어
서로가 등 뒤를 바라보더니
푸근푸근
목덜미를 어루만지며
제 몸 불리더니
세상에서 가장 낮은 자세로
묵묵히
또 한 생을 열기 위해
두텁게 길을 내고 있구나
휘어져야 온전해지고曲則全 구부러진 것이 곧은 것枉則直이라는
한 알의 밥알,
반연간《미당문학》Vol.16 2023년 하반기
멜라콩 다리
아주 오래전 일이네
작고 마른 체격에
손발이 떨리는
선천성 소아마비 짐꾼이
열다섯 살부터
목포역 소화물 취급소에 취직해 번 돈으로
목포항과 목포역 사이 하천에 다리를 놓아주었네
좀처럼 줄지 않던
두꺼운 망각의 축조된 슬픔을 뒤집어쓴 채
몸이 소거된
목포역 담벼락 아래 잊혀진 비석
멜라콩* 다리
아직 만져보지 못한
안 살아본,
생은 또 어쩌자고……
다저녁때
돌아갈 곳 없는 사람처럼
발끝에 단단히 힘을 주고 서 있었네
*멜라콩: 장흥 출신의 故박길수(1928~1989)가 중국 영화 속의 일본 무사 밑에 따라다니던 극중 인물과 닮
았다고 하여 사람들이 붙여진 별명.
계간《아라문학》Vol.39 2023년 봄호
김승필
2019년 계간《시와정신》등단. 시집『옆구리를 수거하다』(황금알, 2021.)
청소년 고전『우리 고전 캐릭터의 모든 것』, 청소년 문학『국어 선생님의 시 배달』참여.
2021년 광주문화재단 창작지원금 수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