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이트 요청을 그는 흔쾌히 받아준다. 지난 2일 ‘도완녀 신당’으로 향하면서 3년 전 강원도 정선에서 도씨와 만났던 때가 문득 생각났다. 음대 졸업 후 독일 유학 시절 브람스 음악원에서 강사로 있었을 만큼 잘나가던 그는 돈연 스님과 결혼한 뒤 방향을 확 틀어 정선 산골에서 콩농사 짓고, 메주 쑤고 된장 담그는 일에 몰두했다.
콩을 키울 때도, 메주를 쑬 때도, 항아리에서 숙성시킬 때에도 매일같이 첼로를 연주할 만큼 열의를 보였다. 그렇게 담근 된장, 간장, 고추장, 청국장 등의 장독만 3280개에 달해 장류 전문 기업으로도 성공한 모습이었다. 아울러 국내 최초로 ‘된장 명상센터’를 열어 전국의 아픈 사람들이 조용한 산골에서 편하게 쉴 수 있도록 ‘비움 프로그램’을 마련하는 등 ‘된장 컨셉트’의 일들을 차근차근 벌여 나갔다.
그렇게 왕성했던 ‘된장 일’에서 왜 손을 떼고 갑자기 무당이 됐을까.
그가 만든 장 브랜드는 최근 시중의 일반 고추장을 섞어 팔았다는 비난에 휩싸인 바 있다.
3년 전 도씨가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불교의 ‘고집멸도’(苦集滅道)를 인용하며 “고통은 모이게 마련이며 모인 것은 또 사라진다. 참기 어려운 고통이 찾아올 때마다 없어질 고통을 한 발짝 떨어져서 바라보는 훈련을 한다.”라고. 어쩌면 이미 그때부터 자신의 몸속에 내재돼 있는 영성(靈性)이 드러난 것이 아닌가 싶다.
‘도완녀 신당’ 앞에서 초인종을 눌렀더니 반갑게 맞이한다. 안으로 들어서자 50평 정도 돼 보이는 깨끗한 공간에 부처와 관세음보살을 비롯해 여러 신들이 엄숙하게 좌정하고 있었다. 도씨는 외부 손님이 왔으니 일단 신에게 절을 하란다. 3배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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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 녹차를 마시며 얘기를 나눴다. 신당 안 여기저기에는 옛날 궤짝 등 고색창연한 가구들이 쭉 놓여 있었다. 도씨는 정선 집에 있던 것들이라고 했다. 고풍스러운 실내 분위기였다.
“아이들은 어디 있나요.”
“우리 애들은 참 잘 커줬어요. 큰딸 여래는 디자인을 전공하기 위해 관련 고등학교에 진학할 준비를 하고 있지요. 둘째 문수는 중학생인데 소설을 참 잘 써요. 앞으로 작가가 되겠다고 합니다. 셋째는 애니메이션을 좋아합니다. 다 컸습니다. 큰딸은 서울에 있는 학교에 진학하기 때문에 곧 저와 같이 살게 될 것이고 나머지는 정선에서 아빠랑 같이 지내고 있지요.”
“돈연 스님은요.”
“정선에서 어린이대장경을 번역하고 있습니다. 모두 48권짜리인데 당분간 그 일에 몰두할 것입니다.”
“정선을 떠나올 때 가족과 이별하기가 어렵지 않았나요.”
“애들한테 이렇게 말했지요. ‘엄마가 18년 동안 너희들을 키우고 밥해줬으니 이제는 남을 위해 살아야 할 것 같다. 인생에 있어서 한번 치열하게 살아보는 것도 굉장한 축복이 아니냐’고 했더니 아이 셋 다 기꺼이 이해를 해주더군요. 남편도 (불교) 공부하신 분이라 그런지 제가 100일기도를 떠난다고 했더니 망설이다가 ‘어떻게 막을 수가 있겠느냐, 당신은 닦지 않은 흙 속의 보석이나 마찬가지이니 잘 다듬어서 훌륭한 일을 해보라’고 격려를 해줬습니다. 마음이 든든하고 편해지더군요.”
도씨는 가족의 이해와 남편의 후원이 너무 고맙다는 것을 여러 차례 강조했다.
“무당의 길로 들어선 까닭은요.”
“2005년 미국에서 13박 14일 동안 명상 프로그램에 참여한 적이 있습니다. 끝날 때 ‘옴마니밧메훔’(불교 천수경에 나오는 관세음보살의 진언)을 여러 번 외쳤습니다. 그때 산신령 할아버지가 갑자기 제 앞에 나타났는데 수염이 길고 하얀 도포를 입고 토굴 속에 앉아 있는 모습이었습니다. 그 할아버지는 제게 ‘밖으로 나갈까’라고 자꾸 하시더군요. 제 마음의 상태를 다 알고 말하는 것 같았습니다. 그러고 난 후 작년 8월 ‘된장 찜질과 명상’ 프로그램에 참여해 공부하고 기도할 때였습니다. 다시 그 할아버지가 나타나더니 ‘밖으로 나가자’라고 하시더군요. 저도 저절로 따라 나섰는데 온몸이 새털같이 가볍고 가슴이 무척 시원한 느낌이었어요. 이때부터 세상 밖으로 나가 많은 사람들을 도와주어야겠다는 강렬한 기운 같은 것을 느꼈지요.”
이 일을 겪은 후 ‘메주와 첼로’에 대한 20년의 노하우를 정리하기 시작했다. 콩 심는 방법에서부터 메주 쑤고 장 담그는 법, 마케팅 방법까지 모두 망라했다. 책으로도 낼 생각이었다. 때마침 이 무렵 경희사이버대에서 강의 요청이 들어오자 그는 100일기도 떠나기 직전인 올 3월 중순까지 강의용 촬영 작업을 모두 마쳤다. 첫 학기에만 140여명의 수강생이 몰릴 정도로 인기를 끌었다.
“그런 일들을 마치고 올 3월 27일 지리산으로 100일기도를 떠났습니다. 처음하는 일이라 잘 몰랐지요. 그래서 ‘신어머니’의 가르침을 받으며 고통의 일정을 잘 소화해냈습니다. 지리산과 계룡산을 거치면서 내림굿과 가리굿 등 무당이 되는 통과의례도 무사히 거쳤지요.”
막상 무당이 되고 보니 힘들지 않으냐는 질문에 그는 “100일기도할 때 명예를 버리는 것, 미안해하는 사람 등 모든 것을 버려야 할 때가 가장 힘들었다. 그래야 남을 도울 수 있다.”고 대답했다. 그러면서 “된장으로 다른 사람의 육체 건강을 도와주었다면 이제는 많은 사람들한테 정신 건강을 전달할 때”라고 말했다. 또한 우리나라의 ‘무교’(巫敎) 정신과 역사를 제대로 알리는 일에 매진하겠다고 밝혔다.
김문 편집위원 km@seoul.co.kr
■ 도완녀는 1954년 서울 출생. 77년 서울 음대 졸업. 85년 독일 뤼벡음대 수료. 독일 브람스음악원 강사. 귀국 후 충남대·전북대 강사, 한국예술기획 대표 등 역임. 1993년 돈연 스님과 결혼하면서 강원도 정선 된장 마을에 정착. 2008년 2월 강릉대 식품과학과 대학원(석사과정) 졸업. 현재 이 대학 박사과정 중. 2010년 3월 경희사이버대 외래교수. 2010년 9월 14일 ‘도완녀 신당’ 점안식.
●주요 저서 ‘메주와 첼리스트’, ‘남편인 줄 알았더니 남편이 아니더라’, ‘된장을 연주하는 여자’, ‘도완녀의 된장요리’ 등.
첫댓글 어울리지 않는 세 단어 된장, 첼리스트, 무속인... 얼굴도 때에 따라 변해가는걸까요? 아마 그렇든지...아니면 보는이들의 생각이던지~~
인생이란~~~ 그냥 열심히 살다 가는거죠~ 뭐~~ 가장 쉬운 방법 같지만 또한 가장 노력하는 방법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바이올렛님 3년전에 넘 젊어보이시네요~~ 정말 세월에 장사가 없는듯해요~~
지난번 훈장님과 막걸리 먹을때 이야기 했는데... 우리 사오모만 오면 사진 정말 많이 찍히잖아요~ 그래서 안찍히고 싶다 했더니... 그래도 찍어놓으라고
시간이 지나면 지금 마음에 안들었던 사진도 젊어보여서 좋아보인다고... 정말 그말에 공감했거든요~
아고~ 뭔 댓글에서 이리 수다
수님의 말을 듣고 보니...때에 따라그게 그렇게 보이는군요 뭔가그 눈매랄지....
나리 말 들어 손해날 일 엄따는...사진 많이 찍어두세요
아직 너무 젊고 이쁜 그대
그래서 죽어라고 찍어댔쥐
첼리스트 도완녀님과 옛 돈연스님이 일군 메첼(메주와 첼리스트)이란 멋드러진 이름을 갖춘 공간. 글구 그곳에서 만나신 도완녀님...성함도 좀 특이한 것 같구요...
바이올렛 기자님이 취재하신 글 여러 생각들을 하면서 감명 있게 잘 읽었습니다...
정선이란 고장이 넋을 놓게 아름다운 고장이기도 하거니와메첼 그 곳의 수백개 늘어선 된장독들...전나무숲 옆에 흐르는 냇물가 등 맨발로 걸었던 그 길이 눈에 선하네요.
이분 된장과 관련된 이야기를 TV를 통해서 봤는데 무속인이 되었군요. 인생 정말 파란만장하게 사시네요. 이 정도면 인생도사 아닐까요
한 치 앞도 알 수 없는 것이 인생살이인 것 같아요
"파란만장" 이란 촌철살인의 단어가 생각납니다. 산다는것이 스스로의 의지대로 되어지기도 하지만 숙명처럼 피치 못하게 그리되는것도 있을법한데
미리 쓰여져 있는 인생그대로를 넓은 가슴으로 받으며 "역마살"같은 삶을 살아가시는 분이시네요. 어제함께 방송 출연했던 후배가수의 인생이야기도
눈물이 날 정도 였습니다. 뭐랄지, 누구나의 인생살이가 그 자체로 무었보다 감동적일수 있다는 생각이... 언젠가 내게도 그런 깨닳음의 수호천사가 찾아 줄지.
윤준님 제가 보기엔 이미 깨
제가 주위력이 없어서 그런데 위엣 분이 피아니스트 임동창 님의 부인은 아니지요트이면서 된장과 관련된 일을 하시는 것 같아서리...
임동창 님의 부인도 첼
도완녀님은 돈연스님과 딱 한 번 결혼한 것으로 알고 있슴다
임동창씨 부인은... 이효재씨라고... 바느질 잘 하시는분이랍니다~
이분..근기가 남리 강하신 분인 듯합니다. 그 근기에 맞춰 살 밖에요.
요렇게 보면 부럽다가도...조렇게 보면 불쌍해보이기도 합니다.
암튼 각자의 인생을 열심히 살면 그뿐
지구의 60억분의 1을 책임진다는 생각으로
헤오리온님이 가진 란트로는 지구를 쪼매 더 채금지셔야 한단 욜렛아지매 생각@@
무당이되기전 도완녀님께서 행하신 대부분의일들이 신을 부르기에 좋은일들이셧네요인생사 맘대로 안되는거고,너무 안좋은일 생김신의장난인가하고 반문하기도 하죠신해봐야죠
나무,땅, 산, 개울..소원빌기..불태우기..무엇보다 중요한건 지금 그분이 행복하신지,아닌지..
그것일것같슴다
이왕 택함을 받으신 길이니..세상에 낙심하고 힘들어하는분들에게 도움이되길.. 그가운데서 행복을 느끼시길
글쿠나나도 함께 한...그런 일들이뜨다가 결국은 울면서 받아들이는 경우가 대부분이잖아요 내 시각으로 볼 때는 도완녀님은 본인이 먼저 처연하게 그 일들을 받아들인 것으로 보여지네요 ;;
보통 신내림굿하는 이들이 겪는 그런 고통들(집안파탄이라든지...온 몸이 아픈 병치레라든지..하는)은 생략된 기사인지 모르겠지만..일반인들은 죽어도 안받아들이려고 고통을 감내하면서도 끝까지 맞
비록 고달프고 힘들어도 새롭고 신비로운 길속에는 아름다운 희망들이 반짝이는데! 길지 않은 인생사 어찌 한길 뿐이랴~이거 아닌감! 하기야 우리 마눌도 센세이 하민서 쉬기도 바쁜데 무쉰 역술인가 뭔가 한다고 주말과 휴일에 어디에 가는거 보면~~
착하고 순진하면서도 좀 특이했던 후배인데 삶도 특이하네요.
환절기에 감기 조심하시구요
모든 인생사 내맘대로되겠소만 첼트에서무속인으로 겸허히받아들였다니 대단한것같습니다
그렇죠 어떤 거부할 수 없는 힘이 작용했겠지요
도완녀 그 분 정말 범상치 않은 인생을 사시네요. 모든 걸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 그 것이 행복한 삶의 비결. 그래서 도완녀 그 분의 삶, 결코 후회없는 행복한 삶이 분명할 듯.
본인을 안쓰러워하는 주변 분들에게 너무 죄송하단 말을 하더군요
"정말 인생이란 한 치 앞도 예측할 수 없는 불가항력의 무언가가 분명 있다는....?? violet생각!" 저는 이 말에 전적으로 동감하고 공감합니다. 정말 인생이란 한 치 앞을 내다 볼 수가 없지요. 어제 남의 일이 오늘 나의 일이 될 수도 있고, 오늘 나의 일이 내일 남이 일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이지요. 내림굿을 받아야 하는 그만한 이유가 있지 않았겠습니까....마음이 좀 짜안해 옵니다. 얼마나 힘든 결정을 하셨을까 싶기도 하고...ㅠㅠ
'어제 남의 일이 오늘 나의 일이 될 수도 있고, 오늘 나의 일이 내일 남이 일이 될 수도 있다는 것'백만번 공감해요
이런분도 계시고 이런분이 집중조명되기도하고~
“고통은 모이게 마련이며 모인 것은 또 사라진다. 참기 어려운 고통이 찾아올 때마다 없어질 고통을 한 발짝 떨어져서 바라보는 훈련을 한다.
.... 살아나감의 살아왔음의 실감이고 기본입니다
잘 읽었어요 바이올렛님.
꼭 끌어안고 살고 싶은 기쁨도 마찬가지 이치겠죠
新黨이 아니고 神堂?
...예전보다 기가 더 세어진 인상이군요.
신내림과의 일대전투를 겪었으니 그만큼의 흔적이 ,,얼굴에??
글쎄여러분들이 그렇게 말씀들 하시고 다시 보니 그렇게 인상이 좀 라보이긴 하더군요
신내림굿 즉 무당분들의 특색은 참으로 강인한 인상을 타인들에게 주는 것 같아요.^^ 된장담구며 사실때와 지금의 무당이 되었을때의 풍기는 인상이 너무나도 다르게 느껴집니다. 혹 저만 그런가는 몰라도
강한 기운을 느끼고 갑니다.^^
예전 가까이서 본 그 분의 인상도 좀 특하긴 했어요. 보통 사람들과는 좀 다른 좌중을 휘어잡는 포스랄지...강인함 같은...
우선 눈매가 예사눈매는 아니시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