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詩) 창작 강의 / 박정규 (시인)
시론 22. / 시적사고 안에서 숙성되는 시의 씨앗 생활 속에서 시적 사고의 습관을 키우다보면 속에 뿌리를 내린 시의 씨앗이 발효되는 것을 느낄 수 있다. 이 말이 익숙하지 않다고? 잘 생각해보라. 뭔가 머릿속을 뱅뱅 돌던 관념들이 좀 더 구체적 표현으로 만들어지던 경험 말이다. 그런 적이 없다면 아직 내면의 관념을 구체화 시켜보려는 열망, 시적 사고의 습관 등이 미숙한 때문일 수 있다. 무시하지 말라고? 무시하지는 않았는데 왜 발끈하시나? 읽다가 보니 자존심 상하는 기분 든다고? ‘오케이!’ 바로 그것이다. 자기에 대해서, 자기의 입장에 대해서, 자기의 상황에 대해서, 자기 존재의식에 예민한 감각을 유지하는 것 말이다.
균형 잡힌 감각으로 자기의 상태를 살펴보고 거기에 대해서 정직한 자세를 갖는 것이야말로 시인의 마음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럼 한 가지 질문을 하겠다. 씨앗을 뿌릴 때는 어떻게 뿌릴까? 씨 뿌려본 적이 없다고? 그럼 한번 연상 작용을 일으켜보자. 밭에 씨앗을 뿌릴 때는 한 알씩 뿌리는 것이 아니라 여러 개를 동시에 흩어서 뿌린다. 이와 마찬가지로 시의 씨앗이 마음의 밭에 떨어질 때도 여러 개가 뿌려지는 것이다. 이놈이 싹을 틔우고 잎을 만드는 것에는 시간의 차이가 있다. 피우는 꽃잎과 매달게 되는 열매에도 다 차이가 있는 것처럼. 이것들이 속에서 싹을 틔우고, 잎이 나고, 줄기가 솟고, 꽃이 필 때까지의 과정을 시의 발효, 숙성기라고 한다. 자, 이렇게 된 다음에는 뭐가 남을까? 피던 꽃 시들고 초록의 잎사귀가 누렇게 될 때쯤에는 당연히 열매가 맺어진다. 한 편의 시는 이렇게 해서 태어난다. 그럼 시에서 열매의 형상은 무엇으로 나타날까. 이 열매의 형태가 온전한 형상으로 만들어지려면 그 씨앗의 본질에 합당한 언어, 구체적 표현의 언어가 사용되어져야 한다. 이 언어들은 순수하게 골라지는 것도 아니다. 막막할 때가 많다. 한 두 걸음 나아가다가 막다른 골목에 들어선 것 같을 때가 있고 어떤 경우에는 그냥 언어 찾기를 포기하고 싶은 때가 생기기도 한다. 조심해야할 것은 여기서 억지를 부리지 말라는 것이다. 전혀 합당하지 않은 언어를 끌어다가 꿰맞추려 할 경우, 자칫 잘못하면 그것은 허위의 시로 전락하게 된다. 또 그런 일에 태연하다면 자기기만일 수도 있다. 아니라면 분별력조차 갖추지 못한 어리석음이라고나 할까. 언어 찾기가 벽에 부딪혔을 때 이것을 해소하는 방법은 모두가 다르다. 어떤 이는 하염없이 돌아다니기도 하고, 어떤 이는 커피를 계속 여러 잔 마시기도 한다. 나는 어떠냐고? 그냥 제일 몸에 안 좋은 것을 한다. 쉬지 않고 담배를 피워대는. 이런 진통이 따르다보니 시인에 따라서 언어를 찾는 시간도 다를 수밖에 없다. 사람에 따라서는 시어(詩語) 하나 찾는데 몇 시간, 며칠, 몇 달씩 차이를 보이는 경우도 봤다. 다시 말해서 구체적 표현의 언어를 찾는 일에 첩경은 없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한숨 쉴 필요는 없다. 원칙을 알려줄 테니까. 속에서 숙성된 시의 씨앗이 구체적 표현의 언어를 찾아가는 길은 구체적이고 유기적인 시적사고의 연장선상에서 발견된다. 그리고 이런 사고(思考) 없이는 구체적 언어가 건져지지도 않는다. 이것이 바로 앞에서 말한 원칙이다. 여기서 사용한 ‘유기적인 시적사고’란 단어도 새겨두면 도움이 될 것이다. 다시 한 번 되풀이해보겠다. 체험과 기억, 거기 반응하던 정서의 움직임 등은 모두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다. 또 한 가지 잊지 말아야할 것은, 거기에서 어떤 언어를 건졌다면 이 언어를 표현하는 과정에서 요구되는 것이 있다는 것이다. 체험과 기억과 유기적으로 작용하고 있는 ‘시적사고’ 안에서 숙성된 시의 씨앗을 표현하는 구체적 언어를 얻었다면 이 언어를 사용해서 시인이 강조하는 것이 무책임한 사고의 환상이 아니라 반드시 정서적 공감대를 유발해내는 상상력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꼭 기억해두기 바란다. 어렵다고? 반복해서 읽기 바란다. 백문무불통지(百聞無不通知)라는 말이 있다. 문장에 격식을 갖춰서 써놓은 글은 아무리 어려워도 백번을 읽으면 막힘이 없다는 뜻이다. 아마 자녀들 학습지도에 사용해본 사람이라면 이 효용성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제대로 된 시를 쓰기 위한 방법을 말하는 것으로 오늘은 마감. 첫째, 상상력 키우기 훈련을 할 것. 둘째, 깊이 있는 시적 사고를 습관화할 것. 셋째, 정확한 언어를 찾기 위해서 꿈속에서라도 진땀을 흘릴 것.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