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번은 “기독교인들, 불상 부순 기사”를 검색하니 여러 자료들이 떴습니다. 그중 하나는 수년 전에 60대 한 남성이 절에 있는 불상을 부수고 성당의 성모상을 부수다가 현장에서 붙잡힌 것입니다. 그는 자신이 개신교인이고, “신의 계시를 받아” 한 일이라고 주장했습니다. 또 한 기사에 따르면, ‘복음을 전파하려고’ 절에 불을 내고 불상을 훼손하다가 재판에 넘겨진 사람도 있었습니다. 이들에 대한 교계의 시각은 대체로 부정적입니다. 그러나 정작 당사자들은 여호와의 명령을 실행한 것뿐이라고 항변할 수 있을 것입니다.
참고로 여호와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이 가나안 땅에 들어간 후에, 할 일과 해서는 안 될 일에 대해 긴 경고의 말씀을 주셨습니다(레 26장). 그중에 첫 번째가 우상을 만들지 말라는 것입니다(1절). 또한 “산당들을 모두 헐어 버리라”고 하셨습니다(30절, 민 33:52). 그런데 아래 말씀은 하나님의 갈망을 따라 성전을 건축했던 장본인인 솔로몬이 오히려 산당을 세우는 데 앞장선 것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이 우상 제거 문제는 다만 눈에 보이는 불상 몇 개 부수는 것 그 이상으로 복잡하고, 또 깊은 교훈을 포함합니다(롬 15:4, 고전 10:11).
솔로몬은 예루살렘 앞에 있는 산에 모압의 가증스러운 것인 그모스를 위하여 산당을 짓고
암몬 자손의 가증스러운 것인 몰렉을 위해서도 산당을 지었다(왕상 11:7).
아침에 위 말씀을 묵상하면서, 구약에서 산당을 언급한 말씀들 그리고 관련 자료들을 찾아보았습니다. 참고로 위키피디아는 산당을 이렇게 정의합니다. “산당(山堂, high place)은 성경 문맥에서는 항상 "예배의 장소"를 의미한다. … (산당은) 산 위에 세워진 신전. 히브리어로 ‘바마’인데, ‘높은 곳’이란 뜻이다.”
한 목회자는 리처드 S. 히스가 펴낸 <이스라엘의 종교>(CLC)를 근거로 산당에 대해 이렇게 말합니다. “산당이 제거되기 힘든 이유는 집안에도 산당이 있었기 때문이다. 산당은 일종의 가정 제단과도 같은 것이었다. 산당은 큰 장소도 산당이지만 중국이나 일본에서 자기 조상들의 위패를 모셔 놓는 것처럼, 우리나라의 신줏단지처럼 모셔놓듯이, 다른 장소보다 조금 더 높게 세우면 그 모든 것이 다 산당이었다.”
성경의 관련 구절들과 이런 자료들을 참고한 후에, 산당은 히브리어 원문의 뜻처럼 1) ‘높은 곳’이고, 2) ‘우상’이 관련된 단어임이 제 마음에 새겨졌습니다. 또한 이 산당은 북이스라엘 왕 여로보암의 사례에서 보듯이, 하나 안에서 여호와만 높여야 하는 하나님의 선민의 정체성을 약화시키고, 결국 그들을 분열로 이끌 수 있음을 보았습니다(왕상 12:25-31).
아래 내용은 이러한 ‘높은 곳’, ‘우상’, ‘분열’의 문제를 오늘날의 우리 삶에 어떻게 적용할 것인지에 대해 조금 더 추구하고 묵상한 결과입니다. 먼저 한 신실한 성경 교사는 아래와 같이 이 ‘높은 곳’으로서의 산당 개념을 전진된 빛 안에서 우리에게 적용합니다.
“오늘날 기독교의 상황을 살펴본다면, 모든 분열은 어떤 것을 높이는 것임을 알 수 있다. 성경을 가르치는 것은 좋은 것이다. 그러나 성경 연구가 무언가를 높이는 것이 되어서 하나님의 백성을 서로 분리하는 것이 되어서는 안 된다. … 여러분은 말씀을 기도로 읽기가 매우 도움이 된다는 것을 발견할지 모른다. 그러나 … 여러분이 말씀을 기도로 읽기를 높인다면, 그것조차 분열의 원인이 될 수 있다. 우리 모두는 특히 청년들은 주 예수님 외에 어떤 것도 높이지 않기를 배워야 한다. 주 예수님만이 높임을 받으셔야 한다. 교회생활 안에서 우리에게는 어떤 산당도 있어서는 안 된다. 그보다 우리는 모두 동일 수준에 있으면서 그리스도를 높여야 한다”(CWWL, 1979년, 2권, 457-459쪽).
또한 우상과 관련된 산당에 대해서도, 서두에서처럼 불상이나 성모상만 생각하는 것은 피상적인 이해에 머문 것입니다. 성경은 심지어 각종 탐욕도 우상숭배라고 말합니다(골 3:5). 또한 사도 요한은 심오한 내용을 다룬 요한일서 맨 마지막을 “여러분 자신을 지켜 우상들을 멀리하십시오”로 마칩니다(요일 5:21).
참고로 회복역 성경 각주는 여기서의 “우상은 참되신 하나님을 대치하는 이단적인 대체물(substitutes)과 하나님을 대치하는 헛된 대치물(replacements)”이라고 설명합니다(각주 3).
이런 추구와 묵상을 통해, 저의 삶에서 몸의 머리이신 그리스도보다 높임을 받고, 제 안에서 모든 것이 되셔야 할 그리스도를 대치하여 어떤 가치와 위치를 갖는 모든 것이 오늘날의 ‘산당’이 될 수 있음을 보았습니다(골 1:18, 3:11).
따라서 올 한 해에는 제 안의 이러한 ‘산당들’이 철저하게 제거되는 하루하루가 되게 해 달라는 간절한 기도가 있습니다. 그 결과, 주님의 한 몸의 지체로서 그분만을 표현할 수 있기를 사모합니다. 아멘.
첫댓글 좋은 글인것 같아요! 근데 결국 나를 부인하고 그리스도만 높이는 삶!! 그게 장성함인데.. 반대로 자신도 모르게 위선에 빠질수도 있을것 같네요!!
실례로 까페에 적용 해보면 하구 한날 말씀 논쟁으로 실전에 참여하여 투닥대는 사람보면 자기를 높이 보이려 하는 우상 숭배자로 보일수도 있을것 같아요!
근데 일체 투다닥에 참여 안하다가 가끔 별 논쟁 거리 없는 고상한 내용의 게시글만 한번씩 쓰고 빠져 나가면 겉으로 보기에 장성하게 보이고 자신은 투닥맨들이 아직 어린 우상 숭배하는 자들로 은근 슬쩍 생각 될수도 있을것 같고요!
꼭 바울님이 그럴거라 단정하고 비꼬려고 말하는게 아니니까 스트레스 받지 마세요!!
그냥 한번 우상 숭배의 의미를 넓게 적용해보고자 하는 겁니다!
과연 어떤 분이 우상 숭배를 더 하고 있는지를 요??
나 자신도 논쟁에 일체 댓글로 참여 안하고 가끔 시끄럽지 않을 조용한 글만 한번 씩 깔짝 올릴까 생각 할때가 많아서요!!
그러면 미친갱이처럼 투다닥대며
열불 낼 필요도 없고 욕먹을 필요도 없이 속 편하게 만구 땡!일것 같아서요!!
Ok?
추천합니다!